> [김성구] 참세상 편집위원장

‘미래구상’, 뻔한 주판알 튕기기

[기고] 창조한국미래구상의 기획은 성공할 것인가

시민운동의 정치적 준동에서 또 다시 선거의 바람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이름 하여 ‘창조한국미래구상’(이하 미래구상)이란다. 낙천낙선운동의 그렇고 그런 인물들이 이름을 바꾸어서 새로운 정치 깃발을 올렸다. 시민운동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구한다면서 당장은 연말로 다가온 대선에서 반수구 진보개혁세력을 포괄하는 단일한 국민후보를 내겠다는 것이다.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정치운동에 뛰어드는 이유는 기존의 정치권이 더 이상 대안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안이 못되는 정치권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다. 열린우리당은 양극화의 심화와 한미FTA 협상 그리고 부동산 폭등에서 보는 바처럼 실정과 무능이 드러났고 당의 재편을 둘러싼 이합집산은 권력만 쫓아가는 낡은 정치형태라는 것이다. 또 민주노동당은 NL과 PD의 정파대립에만 몰두하고 대안정당의 정체성과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면 미래구상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모두 배제하고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대안세력을 모색한다는 것인가? 이는 단언컨대 꿈같은 소리다! 이런 구상은 시민운동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토대와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도 인식하지 못하는 과대망상의 발로다. 한국의 시민운동에 시민들이 없다는 것, 기껏해야 수십 또는 수백 명의 인물들이 신자유주의 언론매체를 무대로 활동한다는 것, 언론에서 봉쇄하면 시민운동의 존재도 봉쇄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시민운동이 주목받는 이유, 이들이 힘을 행사하는 근거는 자유주의 정파, 무엇보다 지금의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와 반(反)한나라당 행보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마치 중립적인 시민사회로부터 지지를 받는 외관을 가질 수 있으므로 시민운동에 적지 않은 이해관계가 있다. 열린우리당과 경쟁하는 한나라당은 바로 이런 이유로 시민운동에 대립적이며 이 운동에 크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매체들이 시민운동을 주목해서 보도하는 정치적 맥락도 이와 다를 게 없다. 따라서 시민운동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순간, 시민운동의 정치적 입지는 없어지게 된다. 열린우리당과는 경쟁관계에 들어서겠지만 열린우리당과 경쟁상대는 되지 않고, 시민운동은 아마도 정치적 소수파로,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 즐거운 사태를 활용하는 수준에서나 시민운동을 거론할 것이고, 시민운동은, 적어도 정치 문제에 관한 한, 언론으로부터도 주목받지 않게 될 것이다.

미래구상이 자신들의 이런 가련한 처지를 모르는가? 과대망상으로 구름 위에서 뛰고 있는 자가 아니라면, 분명 이런 구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의 진정한 구상은 다른 데 있다. 미래구상의 한 인물은 자신들을 범개혁진보진영의 노사모로 자처했다. 자신들의 입을 통해서도 공공연히 밝히는 바처럼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다시 한 번 자유주의 정파가 승리하는 역전 드라마를 기획하고자 한다.

드라마의 기획은 이런 게 아닐까? 먼저 한나라당의 이명박과 박근혜의 누군가가 경선에 불복해서 본선에 나오는 상황을 계산한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재편과정을 따라가면서 국민경선이라는 이름 하에 자유주의 정파의 후보에 국민후보라는 덧칠을 한다. 여기서 열린우리당의 후보와 미래구상의 국민후보가 앞서든 뒤서든 아니면 양자가 모두 참여하는 한마당에서 단일하게 뽑히든,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또 단일한 국민후보가 기존 정치권이든 시민단체의 인물이든, 이것도 중요한 게 아니다. 이른바 반수구개혁진영의 국민후보와 한나라당 수구진영의 두 후보와 결전을 치른다는 것이 중요하다.(이는 자유주의 진영과 보수 진영간 1987년 선거구도의 역전된 상황이고 한나라당으로서는 악몽같은 1997년 선거와 유사한 구도다.) 그리고 이 결전에 자유주의 언론을 동원하여 낙천낙선운동 같은 ‘정치소동’을 기획한다.

미래구상이 정말 이런 구상을 기획하고 있다면, 이는 자신들도 속이고 대중들을 기만하는 작태라 아니할 수 없다. 미래구상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선언하고 국민후보를 선출하겠다는 이유는 기존 정치권이 대안일 수 없기 때문이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들은 대안일 수 없다는 열린우리당을 국민경선에 끌어들이고 이 당의 후보에게 국민후보라는 외투를 입히려고 수작을 벌이는 것이다. 결국 무능하고 낡은 정치형태라고 열린우리당을 비판한 것은 헛소리란 말이다.

물론 10달 앞을 예단하여 미래구상을 비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미래구상이 자신들의 독자후보를 끝까지 밀고 갈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는 단 한 가지 상황뿐으로 생각된다. 즉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이 경선에 승복해서 하나의 후보로 통일되고 지금같이 압도적인 한나라당 대선후보 지지도가 대선국면까지 유지되는 경우, 다시 말해 열린우리당이나 자유주의 정파가 이번 대선에서 뒤집을 가능성이 무망할 경우, 그 때에는 미래구상이 자신들의 독자후보를 끝까지 밀고 나갈지도 모른다. 어차피 패배하는 대선에서 자신들이 열린우리당과는 다른 독자노선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인양 명분이라도 가장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기만의 다른 방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미래구상이 열린우리당을 지원하기 위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라는 기만적인 우회로를 취해야하는 것은 분명 이번 대선의 정치지형이 변화하였음을 말해준다. 양극화와 빈곤의 심화, 성장둔화와 고용위기 그리고 부동산 폭등 등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온 민생파탄으로 노무현정권과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시민운동은 은밀하게든 노골적이든 노무현 당의 후보 지지를 표방하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와 국민경선이라는 구상은 이런 정치지형에서 노무현 당(그것이 어떻게 재편되든)을 회생시키기 위한 현혹적인 기획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 생각하면, 노무현을 지지하고 탄핵 반대를 선동하며 노무현 당을 다수당으로 만들도록 대중들을 선동한 시민운동은 사실 노무현 당의 민생파탄을 비판할 처지가 아니다. 노무현 당과의 연대와 참여가 가져온 민생의 파탄에 대해 시민운동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자기비판과 반성을 선행해야 한다. 그런데도 미래구상은 대중의 참상과 노무현 당의 몰락이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일인 양 노무현 당을 점잖게 낡은 정치라고 비판하면서 뒤로는 이 당을 회생시킬 책략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미래구상의 기획이 성공할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이들의 기획은 더 이상 간교함이 아니라 뻔한 술책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난 두 번의 총선과 한 번의 대선에서 대중들이 시민운동의 정치소동으로부터 배운 교훈일 것이다.

노무현 당과 시민운동이야 신자유주의 또는 자유주의 이념을 추구해가는 세력이므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대중들을 기만한 것도 이들에게는 훌륭한 작품일 수 있다. 탄핵당시 공화국의 위기를 운운하며 대중을 선동하던 유시민은 지금 공화국의 장관으로서 연금개악의 선봉에 서서 대중의 고혈을 쥐어짜겠다고 하지 않나? 시민운동도 노무현 정부에 참여해서 많은 단맛을 빼갔기 때문에 괜찮은 거래였다.

그러나 이들에 놀아난 진보진영의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노무현 당의 몰락 속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은 그 대안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오히려 동반 추락하는 반면, 그 반사이익은 한나라당이 독식하는 상황이다. 비정규직 개정과 노사관계 개악, 한미FTA 협상 등 노무현 당을 지지한 대가로 노무현한테 얻어맞으면서도 노무현 당이나 진보진영은 한통속이라고 도매금으로 불신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비판적 지지의 값비싼 대가가 아닌가? 비판적 지지와 탄핵반대에 대한 재평가와 자기비판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위기에 빠진 노무현 당을 구해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도, 이제는 한국진보연대로 탈바꿈한 민중연대도, 그리고 ‘다함께’와 ‘미선이’도 이 질문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몰락의 위기 앞에선 노무현 당과 한나라당의 집권이라는, 탄핵사태와 다름없는 위협 앞에서, 당신들은 다시 한 번 노무현 당의 회생을 위해 미래구상과 함께 나갈 작정인가? 아니라면, 이번에는 왜 아닌가?
덧붙이는 말

김성구 님은 한신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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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이런 부류의 식자가 쓴 글로써는 드물게 수작이다. 이지경이된 현상에 대한 책임을 질 생각은 하지않고 꼼수로 도 다른 단맛을 빨기위한 수작으로 시민단체들의 '미래구상'을 진단한 것은 참으로 바르게 본것이다. 다만 한나라당 집권이 왜 탄핵사태와 다름없는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필자 역시 여전히 편집증세를 보이고 있음에 다름아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반성을 한다면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은 그것이 반사이익이든 아니면 진정한 기대에 기인하든 간에 정당정치에서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이런 부류의 필자들이 쓴 글로서는 탁월하다. 진정성도 풍부하다. 한 마디로 진보진영 역시 나르대로 일리 있으며 장기적으로 기대할만하다는 평가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류의 필자와 진보진영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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