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여의도 농민 집회 중 경찰의 살인 진압으로 두 농민이 사망한 뒤, 여론에 밀려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하고 허준영 경찰청장이 퇴진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정부와 경찰은 이후 오히려 ‘평화 시위’를 내세워 집회 시위에 대한 이념적 공세를 강화하며, ‘평화 적 집회시위를 위한 민관공동위(이하 민간공동위)’를 구성하여 집회 시위를 통제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방안들을 마련해왔다.
2006년 12월 경찰청이 발행한 ‘평화시위 매뉴얼: 평화시위 문화 정착으로 가는 길’이라는 매뉴얼은 기존 집시법의 문제들에 더해, 새로운 집회 규제 방안인 민관공동위 방안들을 더 담고 있다.
평화시위를 위한 제도적 보장
우선 경찰은 ‘평화 시위를 위한 제도적 보장’이라는 장에서, 집회 자유에 대해 개관하며 헌법 21조상 집회에 대한 허가가 인정되지 않으며, 집회의 자유가 자유민주사회에 필요한 기능임을 인정하고, 국가와 경찰에게 집회의 자유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다만 소위 ‘폭력’ 집회는 보호대상에서 제외되며, 경찰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직접적 위험’이 발생하는 ‘불법’ 시위에 대해 경찰권을 발동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국가와 경찰이 집회의 자유를 "보호"하는 후견인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 타당할까하는 의구심은 둘째치더라도, 경찰은 '폭력‘ 시위와 ’불법‘ 집회를 교묘하게 혼용하며 집회 시위에 대한 부당한 편견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찰이 ’폭력‘ 시위라 하지 못하고 '불법’ 집회라 할 때는 미신고 집회, 신고 내용보다 많은 참가 인원, 사전 신고에 없었던 도로행진, 야간에 이루어지는 촛불집회, 경찰청 앞 기자회견 등을 말한다. 그러나 과연 이런 것들이, 경찰이 금지통보하고 날 세운 방패를 휘둘러가며 해산시켜야 할 만큼 ‘명백하고 현존하는 직접적 위험’일까. 사전 신고 제도의 취지에 따르면, 집회 신고 의무는 경찰의 질서 유지 업무에 대한 단순한 정보 협조 의무에 불과하다. 따라서 저런 것들은 집회 금지나 형사 처벌의 사유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경찰은 헌법에 명시된 ‘집회에 대한 허가 금지'를 피하고,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판례가 거듭 확인하고 있는 '장소와 시간, 방법을 선택할 자유’를 제약하는 편법적 수단으로 ‘집회 신고’를 활용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있었던 반FTA 집회 등 평화적인 집회는 물론, 단순한 기자회견마저 불법 집회로 간주하여 물리력으로 해산해 온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에게 ‘평화 시위‘를 요구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준법집회협정(MOU)제도 - 또 하나의 조건부 허가제
경찰은 평화 시위를 위한 제도적 보장 방안으로, 준법집회협정(MOU)제도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민관공동위에서 나온 대책 안으로, 집회 주최자가 집회 전에 경찰에게 법을 지키겠다고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제도이다. 현재 법적인 체결 의무는 없으나, 경찰은 이를 ‘사회관습화’하여 집회의 자유에 또 하나의 조건을 두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2월 경찰이 반 FTA 집회를 금지하자 주최 측이 국가인권위원회에 낸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양해 각서 체결을 조건으로 집회를 허가하라는 권고를 내었고, 이에 경찰은 주최 측이 양해 각서를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금지 통고를 철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회/시위의 자유는 그러한 사전 조건이 붙지 않아도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당연한 권리를 놓고 집회 측의 준법 논란이 벌어지는 동안, 경찰이 실제 집회 현장에서 저지르고 있는 불법 검문, 통행 제한과 노상 감금, 심지어 살인 진압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와 불법 행위는 대중의 눈에서 멀어진다.
편향적인 시민참관단
또 하나의 공동위 방안으로, 경찰은 집회 시위에 대한 중립적 시민참관단을 모집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전의경 부모회, 해병대 전우회 등이 주요한 구성원인 시민참관단이 중립적으로 참관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사실 시민참관단은 중립적이어서도 곤란하다. 왜냐하면 집회 현장에서 집회 참가자와 경찰은 대등한 양측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회 참가자는 사소한 위법 행위만으로도 경찰에게 체포되어 처벌받는 반면에, 경찰은 2005년부터 지금껏 집회 참가자를 세 명이나 살해하고서도 아무도 형사적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에 의한 참관단이 존재한다면, 그 역할은 경찰과 국가 폭력을 감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경찰이 운영하는 시민참관단에게서 그러한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
경찰은 폴리스라인이 집회를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처벌함으로써 자유로운 통행을 통제하기 위해 설정된다. 때로는 띠의 형태로 설치되기도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는 ‘차벽’이다. 경찰 버스를 집회 장소를 포위한 형태로 빈틈없이 대어 설치되는 차벽은, 사람들이 집회에 자유롭게 참가/이탈하거나 움직여가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뿐만 아니라, 집회를 사회 일반으로부터 격리시켜 사실상 언론의 무관심과 함께 집회의 사회적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집회 시위의 예외적 제한과 경찰의 집회 관리 방향
'집회 시위의 예외적 제한' 장에서는 현행 집시법 상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를 밝히고 있다. 이 내용은 과도한 소음규제, 시간과 장소에 따른 원천적 집회 금지 등 현행 집시법의 문제를 그대로 담고 있다. 다만 “야간의 옥외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규정이 합헌으로 결정된 바 있습니다(헌재1994.428,91헌바14)“라는 내용은 자의적 왜곡이다. 야간 집회라도 경찰서장은 재량에 따라 허가하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허용해야 한다(그러므로 합헌이다)는 것이 헌재 판결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오히려 야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경찰의 관행이야말로 잘못된 것이다.
이어지는 '경찰의 집회 관리 방향‘에서는 외국의 집회 관리 방향에 대해 소개해놓고 있으나, 권력기관 앞 집회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백악관 앞에서도 집회가 가능하다거나, 군 병력을 상시적인 시위 진압 병력으로 전용하는 일은 없다는 등의 내용은 뺀 채 외국에서 집회를 엄격히 통제하는 내용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소개해놓고 있다. 최근 민주당 이상열 의원 등이 발의한 집시법 복장 규제 개악안도 독일 제도의 단편적인 한 부분만을 떼어와 적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길들여지지 않는 저항을 위해
정부와 경찰은 그동안 평화/준법 시위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집회/시위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왔다. 그러나 겉으로는 인권보호와 평화집회 보장을 말하지만, 실은 한미FTA 강행이나 평택 미군기지 확장 등의 반민중적인 정책을 강행함에 따라 일어나는 저항을 길들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경찰은 더 이상 과거처럼 힘으로만 탄압하지 않으며, 이런 저런 위장과 당근을 사용하는 좀 더 세련된 방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경찰력은 국가가 지배하는 힘의 요체라고 할 때, 이에 맞서 길들여지지 않을 저항을 조직해야 할 진보진영은 그들의 언어와 방법을 연구하고 대응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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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