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만큼 싸늘한 비정규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기고] 99주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36년만의 가장 추운 꽃샘추위란다. 성급하게 정리해버렸던 내복을 다시 꺼내 입어야 할 만큼 겨울 못지않은 날씨 앞에 3월이라는 날짜가 무색하다. 3월은 봄과 함께 많은 이들이 뭔가를 새로이 시작하는 달이라 한 해를 시작하는 1월보다 ‘시작’이라는 단어와 더 잘 어울리는 달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3월은 ‘세계여성의 날(3월 8일)’이 있어 더욱 의미 있는 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이 날씨만큼이나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것은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 때문이다. 여성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이고,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65%가 여성들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넘어, KTX 승무원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등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존재와 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체감기온 때문인 것이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계약해지 중단, 해고자 원직복직, 도급화 중단, 불법파견·계약직 노동자 정규직화, 성실교섭”에 대한 요구는 99년 전 럭거스 광장에서 “노조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10시간 노동 보장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라‘’ 임금을 인상하라‘를 외치던 방직공장 여성노동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99주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기념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무언가를 기념하는 것은 잊지 않기 위해서이고 잊지 않는다는 것은 오늘을 반추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99년 후 오늘,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는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여하고 여성 노동자의 요구를 알리는 퍼포먼스나 축하행사가 즐겁기는 하지만, 그 즐거움 속에 존재하는 불안감은 여성노동자의 요구를 알리는 퍼포먼스가 내용보다는 신문 사진 한 컷 속에 박제되어 끝나버리는 것에 대한 조바심이다.

한국여성연합(여연)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KTX 열차승무지부에서 받았다. 올해의 여성운동 상을 수여하는 것은 그 싸움에 대한 정당성과 의미를 부여하고 치하하는 것도 있지만, 그 싸움에 함께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구체적인 실천의 모습으로 드러날 때 그 상은 더욱 의미있고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럴 때 ‘세계여성의 날’이 ‘강당’에서 벗어나 다시 여성들의 연대와 투쟁의 힘을 확인하고 다시 싸움을 준비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으며, 내년 100주년 기념행사가 단순한 ‘자축’ 행사를 넘어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한 해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1908년 3월 8일 여성의 노동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싸웠던 여성노동자들의 정신을 기념하고 잊지 않으려는 노력과 투쟁이 세계여성의 날로 기념되는 의미이다.

"만약 우리가 남성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수 있다면,
산전산후 휴가를 받고 아이를 탁아소에 맡길 수 있다면,
모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정당과 공공기관에 들어가기 위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성과 수태를 조정할 권리가 있다면
이것 모두는 바로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피나는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대회연설 중에서)
덧붙이는 말

문은미 님은 본지 편집위원으로,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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