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구] 참세상 편집위원장

진보정치가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

[기고] 진보논쟁과 2007 대선전략

노무현 정부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비판으로부터 촉발된 이른바 진보논쟁, 현직 대통령이 개입하는 희귀한 사건으로 발전해서 진보진영이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대통령의 논쟁 개입은 바야흐로 대선의 정치가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대선을 앞둔 길목에서 바닥을 기는 지지율을 반전시켜야 하는 조급함이 없었다면 노대통령의 개입은 없었을지 모른다. 진보논쟁은 2007년 대선에 대한 진보진영의 전략 논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고, 진보논쟁 자체도 대선의 전략적 관점에서 평가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진보논쟁 자체가 왜곡될 우려도 많다.

진보논쟁 자체를 보면, 이 논쟁은 대통령의 완패로 끝났다. 진보진영의 논객들은 모두가 노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의 핵심 표적으로 삼았는데 반해, 노대통령은 진보진영의 비판이 무슨 말인지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노대통령이 이해하지 못하는 진보의 정체성 문제는 신자유주의에 관한 것이다. 노대통령은 정치적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진보의 기준으로 이해하였고, 신자유주의는 필요에 따라 수용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부수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면서도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해괴망칙한 개념도 사용했던 것인데, 이번 논쟁에서 노대통령은 ‘유연한 진보’라는 실용주의적 태도로 자신의 진보성을 변호하고자 했다.

주지하다시피 신보수주의는 (군사화를 포괄하는) 정치적 보수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의 결합물이고, 1980년대 이래 세계적으로 진보 또는 좌파를 판단하는 기준은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의 수용이냐 반대냐에 있다. 노대통령이 진보의 기준이라고 본 정치적 민주주의는 부차적 쟁점이고(신보수주의도 정치적 민주주의를 반드시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민간정부가 들어선 이래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점점 더 그러하였다. 그런데도 노대통령은 신자유주의에 개방적 태도를 취하고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것을 유연한 진보라고 강변한 것이니 이는 유연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진보의 개념을 진정으로 왜곡한 것이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실정과 민생의 파탄 그리고 대중들의 분노가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기인한 것이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심화되는 양극화와 고용의 불안, 성장의 둔화, 투기와 부동산 폭등 등은 단순히 대통령의 실정과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의 필연적인 귀결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노대통령은 실정과 무능으로 파산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훌륭하게 집행함으로써 파국을 맞이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나가면서 자신을 진보로 자처했던 것, 이것이 노대통령의 비극이었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의 정체성이었다. 진보진영의 논객들이 일치하여 한 목소리로 대통령을 비판한 것은 바로 이 점이었고, 이 점에서 진보논쟁은 진보진영 내부에서 진보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반(反)신자유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진보진영의 자기정체성은 한국에서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노무현 정부, 아니 그 전의 김대중 정부이래 진보진영이, 특히 좌파진영이 이 정부들을 비판한 핵심은 신자유주의에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논쟁의 새로운 성과라면, 정치적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이유로 민간정부들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표방하던 진보진영의 우파와 중간파 인물들까지 이제는 진보의 기준으로 반신자유주의를 명확히 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우선 논쟁을 촉발했던 최장집 교수 자신이 그러하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으로서 김대중 정부에 참여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책임졌던 인물이 이제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가 대중들의 삶을 파탄으로 가져갔다고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최장집 교수가 자기 자신에게 향해야 마땅할 이런 비판을 노대통령에게 퍼부으면서 진보논쟁을 촉발하고 진보이론가로 둔갑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진보논쟁의 아이러니겠지만, 신자유주의의 강화와 대중 생활의 피폐화는 이렇게 진보논쟁의 지형을 변화시켰다.

노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탄핵반대를 주장하던 조희연 교수도 진보논쟁에서는 반신자유주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노무현 정부와의 단호한 결별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탄핵 국면에서의 자신의 정치적 태도에 대한 어떤 반성도 없이 노무현 정부 비판과 진보논쟁에 껴들어 온 것은 분명 유감스런 일이다. 돌이켜 보면, 당시 진보진영의 다수파(우파)와 중간파의 탄핵무효화와 탄핵반대 슬로건이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지지 효과를 창출한다고 비판하면서 ‘another0415’ 사이트를 운영하던 좌파의 관점이 뒤늦게 진보진영의 다수적 견해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진보논쟁이 가져온 의미 있는 성과라 할 것이다.

그러나 진보논쟁이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이로부터 귀결되는 실천적 전략을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형식화하고 대중들의 삶을 파탄낸 근원이라 평가한다면, 진보진영은 어떠한 연대 하에서 대중들을 동원하여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전선을 강화할 것인가를 도모해야 한다. 그것이 진보논쟁의 당연한 전략적 결론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실천적 전략의 문제를 다루는 순간부터 진보논쟁의 결론은 뒤집히기 시작한다. 신자유주의냐 반신자유주의냐 하는 진보의 합의된 기준이 대선을 앞둔 정세에서 다시 한나라당 집권이냐 저지냐 하는 자유주의 개혁전선에 퇴색되고 마는 것이다. 2004년의 탄핵정세가 다시 머리를 들어올리는 상황이고, 이런 상황이라면 진보논쟁은 무엇 때문에 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반신자유주의 정체성과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일관되게 주장한 손호철 교수를 제외하면, 진보논쟁과 실천전략은 따로 놀고 있을 뿐이다.

자칭 진보이론가로 나선 최장집 교수는 한나라당 집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논쟁을 끝맺고 있다. 실패한 정당은 정권을 내주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책임정치라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진보이론가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여야교체와 책임정치라는 부르주아 정치학에 근거해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한나라당 집권을 정당화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를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라고 그렇게 비판하고, 또 한나라당도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를 공유하는 또 다른 정당이라 하면서도 한나라당의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로 가는 길을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그는 무엇 때문에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를 그렇게 비판했을까? 최장집 교수에게서 반신자유주의 진보전략에 대한 고민은 흔적도 읽을 수가 없다. 내가 최장집 교수를 사이비 진보이론가로 평가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손호철 교수가 반어법으로 말하는 한나라당 집권 용인론은 최장집 교수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진보적 맥락에 있다.

반신자유주의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내세운 조희연 교수도 특유의 화려한 수사 뒤에서는 당면한 대선에서 어떻게 한나라당 집권을 저지하느냐, 다시 말해 어떻게 다시 자유주의 정권의 재집권을 도모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다. 탄핵 국면에서처럼 대놓고 자유주의 정파를 지지할 수 없다는 상황의 변화 속에서 돌려돌려 들어갈 틈새를 찾아야 한다는 것에 그나마 조희연 교수의 양심적인 고민이 있다.

진보이론가를 자처하면서 한나라당 집권을 용인할 수 있다는 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러면 ‘미래구상’처럼 진보진영이 한나라당 집권을 막기 위해 열린우리당 또는 어떻게든 재편되어 나타날 자유주의 정파를 다시 지지해야 한다는 말은 할 수 있는가? 현 정세에서 이런 주장은 한나라당 집권을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 못지않게 정치적으로 뻔뻔스런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과 민생파탄으로 대중들의 분노가 끓어오르는 상황에서 실정의 책임을 덮어두고 다시 한 번 표를 주자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대중들을 설득할 수 없다. 오히려 진보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을 높여줄 뿐이다. 그것이 보수수구 한나라당 집권보다는 낫다는 주장도 진보진영에는 칼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몰락에 따른 반사이익이 왜 한나라당으로 돌아가는지를 진보진영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반사이익이라고 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이래 그 정책에 대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한 것은 유감스럽게도 진보진영(비판적 지지를 표방한 우파와 중간파)이 아니라 한나라당이었고, 대중들에게 진보진영은 노무현 정부와 한통속으로 보여 졌을 뿐이다. 한국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극히 보수적인 측면도 있지만, 노무현 정부의 실정과 파산이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대중들이 한나라당의 투쟁을 평가하고 그 지지로 돌아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정치적 결과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한나라당의 투쟁이 대중들의 이해관계와는 오히려 대립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해관계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 여하가 대중들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진보진영의 때늦은 비판과 진보논쟁은 씁쓸한 뒷맛을 남길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집권한다면, 분명 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정부보다 후퇴할 것이고(그렇다고 파시즘으로 가는 길은 결코 아니다) 신자유주의도, 그 폐해도 강화될 것이다. 그래도 진보진영은 2007년 대선에서 자유주의 정파와의 대연합과 반한나라당 전선으로 가는 길은 선택해서는 안 된다. 이 길은 자유주의 개혁의 작은 이익(전망 없는 이번 대선에서는 기대하기도 어렵겠지만)을 진보진영과 대중들에게 갖다 주겠지만, 그 대가로 진보정치를 결국에는 질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나락으로 떨어진 자유주의 정치의 꽁무니까지 쫓아가는 게 진보정치라면, 그것이 어떻게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현재의 실정과 한나라당의 신자유주의가 가져올 미래의 실정에 대항해서 투쟁하는 것, 이 길만이 진보정치가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반신자유주의 투쟁에서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하는 미래를 열 것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집권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을 책임지라 요구한다면, 그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적 지지가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말

김성구 님은 본지 편집위원장으로, 한신대 국제경제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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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참으로 간만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건필하세요.

  • ㅈㅈㅈ

    머리 나쁜 거 인정하시고 주둥아리 좀 닥치세요
    혼자 잘났고 설치는 꼴이 혼자 잘 먹고 잘살려는 거 같네요

  • 조용해

    댓글단 ㅈㅈㅈ님 대단하시네요 주둥아리 닥칠놈은 바로 너같은 놈이라 생각드오
    당신생각과 다르면 뭐가다른지 당신의 의견을 제출하면되지 그럴 능력없으면 남의글에 비아냥 대지말고 주둥이 아니 손목아지를 놀리지말고 자빠져 잠이나 자세요
    에이 더러븐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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