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내희]의 문화사회를 꿈꾸며

잃어버린 20년, 좌파 분발하라

[기고] ‘1987년 체제’와 실질적 민주주의

‘87년 체제’와 신자유주의

이른바 ‘1987년 체제’는 1980년대 사회운동의 산물이다. 문제는 이 산물이 성과라기보다는 실망 그 자체라는 데 있다. 당시 사회운동은 70년대 식 민주화운동이 지닌 자유주의적 한계를 뛰어넘고 근본적 사회변혁의 전망까지 담아내며 ‘혁명의 시대’를 연출하고 있었다. 물론 이때 사회운동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과도한 기대, 지구적으로 작동하는 세계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 성장하는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여 등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사회운동이 지녔던 역동성, 특히 아래로부터의 변혁 요구는 그동안 사회운동을 지배해온 위로부터의 운동 관행을 반성케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를 ‘혁명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변혁에 대한 요구와 전망이 전례 없는 활력을 드러낸 것이 그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이런 1980년대를 타협과 배제의 시간으로 이동시켜 버린다. 운동의 주적 군부 독재 세력과 운동의 대변자를 자임한 자유주의 세력의 야합이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억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87년 체제’가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대중이 고대하던 민주주의를 얼마간 회복시킨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발전한 점을 부정할 수는 없으며, 이는 ‘87년 체제’를 바탕으로 형식적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도입된 결과이다. 체육관에서의 대통령 선출, 전임자에 의한 대통령 후보 선정 등은 덕분에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절차적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구현되려면 정치적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경제적 민주주의와 문화적 민주주의, 나아가서 사회적 민주주의가 고루 발전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87년 체제’에서 한국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는 일부 발전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의 강화와 더불어 오히려 후퇴했다.

물론 이 과정은 사회적 제 세력의 역학 관계로 이루어졌으며, 87년 체제가 보여준 것은 국가와 자본과 사회(비자본 세력) 세 주체의 새로운 역관계이다. 지난 20년, 한국사회에서는 자유주의적 정치개혁과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줄기차게 이루어졌고, 이 변동을 구조적으로 규정한 것은 자신의 자유를 강화하려는 자본, 이 요구에 부응하여 자신의 기능을 전환한 국가, 그리고 이에 대응한 사회(운동)라는 삼각 구도였다. 좀더 명확하게 말해 ‘87년 체제’는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제 세력의 각축이 벌어진 한국사회의 현재적 국면이고 모습이었다.

‘87년 체제’는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뉘고, 실질적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보면 전반기에서는 약간의 발전 가능성을 보이다가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크게 후퇴하는 면모를 드러낸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전반에 해당하는 전반기는 사회운동, 특히 노동운동의 고양과 함께 1980년대 초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거세진 시기라면 후반기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가 사회 전반을 장악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 고양과 저하는 실질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투쟁의 변화로 이어졌다.

‘87년 체제’의 전반기는 1970년대 말 박정희 정권 말기에 ‘경제안정화종합시책’을 계기로 도입되기 시작하고, 전두환 정권이 강화해왔으며, 노태우 정권에 이르러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참여와 함께 좀더 본격적으로 진행된 한국의 신자유주의화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더욱 격화한 시기이다. 1980년대 사회운동을 통제하기 위해 군부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의 타협이 이루어지며 ‘87년 체제’가 출범하기는 했으나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요구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위로부터의 타협이 강제되는 국면이었던 것이다. (낮은 단계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고양은 이리하여 한국사회에 1990-1997년 간의 ‘짧은 90년대’와 ‘포드주의적 타협’을 가져온다. 이 시기 지니계수가 0.3대에서 0.2대로 낮아진 것은 사회적 부의 하향 이동이 일어난 징후의 하나이다.

하지만 1997년의 외환위기를 전환점으로 나타난 신자유주의 공세의 강화 또는 이에 대한 저항의 무기력화는 대중에게 ‘잃어버린 10년’을 가져왔다. 지난 10년 우리사회에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가 초래되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 것은 ‘87년 체제’ 후반기에 실질적 민주주의가 극도로 후퇴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87년 체제가 국가와 자본과 사회(운동)의 역관계 속에서 규정된 점을 인정하면 이 후퇴는 그 세 주체의 새로운 관계가 빚어낸 구성적 효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운동이 고양한 것은 1980년대 말이지만 이때는 이미 국가사회주의의 전면적 붕괴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운동의 객관적 조건은 크게 악화된 시점이었다.

그래도 ‘1980년대의 힘’이 운동을 상승시키고 있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 지속되었지만 1997년의 외환위기가 결정적이었다. 그 직전에 일어난 노동자총파업의 열기를 식히고, 곧 이어 전개된 대대적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무력화하며 신자유주의를 운명처럼 바꿔버리고 만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국가로 전환하고 자본의 세계화를 위한 ‘사회개혁’을 실시한다. 이때 개혁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공공성을 무너뜨리는 ‘사회에 대한 공격’임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사회운동의 문제점

‘87년 체제’에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크게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두 갈래로 이루어졌다. 시민운동은 ‘87년 체제’가 제공한 민주화의 국면에서 기존의 사회운동과는 다른 시민적 삶에 대한 관심을 운동과제로 개발했다. 시민운동은 민주화 국면을 토양으로 삼고, 이 토양을 개량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87년 체제’ 이후 국가권력을 장악한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태도로써 자유주의 세력이 약속한 사회개혁을 완성하고자 했다. 시민운동이 주로 관심을 기울인 쪽은 정치적 개혁에 국한된다. 총선연대 등을 결성하며 보수우파를 겨냥한 정치개혁을 시도하고, 과거사 규명 등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적 자유주의 세력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민운동이 간혹 경제적 개혁에 나설 때도 있었지만 이때는 외국자본의 국내자본 침략을 돕는 식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지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동안 시민운동 노선의 개혁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비교적 순항해온 것은 시민운동이 이처럼 ‘87년 체제’가 진행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측면 지원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시민운동은 더 이상 대중의 전폭적 지지를 받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시민운동이 협조한 신자유주의 개혁이 민중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배제를 야기하고, 사회양극화를 초래한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다른 한편 민중운동 진영은 ‘87년 체제’의 성립에 기여한 점이 적지 않지만 갈수록 그것과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87년 체제’에서 민중운동에게 주어진 과제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구현이었다. 시민운동이 정치적 민주화의 내실을 기하는 쪽에 역량을 집중했다면 민중운동은 민주주의가 정치적 민주주의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으며, 실질적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는 한 정치적 민주주의 또한 부르주아 등 상층부를 위한 민주주의로 귀결된다는 인식에서 시민운동과는 다른 민주주의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민중운동은 ‘87년 체제’ 속에서 나름대로 성장을 이루기도 한다. 1987년 대투쟁을 계기로 80년대 후반에 급성장한 노동운동이 1990년에 전노협을 결성하고, 농민운동 역시 같은 해에 전농을 결성한 것이다. 이후 전노협이 민주노총으로 발전한 데서 보듯이 민중운동은 이 시기에 조직적으로 강화되고 안정되는 모습을 드러내며,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노동운동이, 지난 시기 운동대중을 독점적으로 제공하며 군림해온 학생운동을 대체할 정도로 위력적 모습을 갖게 된다. 하지만 민중운동은 조직적 안정화를 달성함과 동시에 실질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투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노협을 민주노총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등장한 ‘전투적 조합주의’의 비판을 기억하자. 전투적 조합주의는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불가피한 입장이었으나 ‘과도한 전투성’으로 노조운동에 대한 대중의 외면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전노협 해체 이후 등장한 경향은 오히려 대기업 노조의 경제적 투쟁에 전투적 조합주의가 활용된 측면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변혁적 성격이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전노협 시절의 전투적 조합주의와는 달리 1990년대 후반에 드러난 전투적 조합주의는 경제주의로의 경도를 통해 한국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을 포섭하기 위해 펼친 소비자본주의 전략에 포섭되는 모습을 드러낸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만으로도 경제적 민주주의만으로도 또 문화적 민주주의만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음을 생각할 때, 노동운동은 경제적 민주화 투쟁의 일환이기는 했지만 경제투쟁에 전투적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면 사회 전체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함을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경향은 ‘IMF 위기’ 이후 대규모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급증으로 ‘노동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오히려 더 강화된다. 오늘 노동운동이 한국 사회운동의 주된 동력이면서도 그 진보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걸림돌이라는 것은 과거 학생운동처럼 가장 강력한 동원력과 행동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회운동의 급진화를 막는 중대한 요인으로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주노총은 지난 1년의 한미 FTA 저지 투쟁에서 전선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뒤로 나앉아 투쟁을 무력하게 만든 책임이 크다.

이런 점은 노동운동이 과연 자본주의 극복을 자신의 전망으로 가지고 있는지 묻게 만든다. 경제투쟁의 전투적 전개는 노동자의 권리이지만 오늘 노동자 일반이 드러내고 있는 소비자본주의에의 경도는 노동운동이 결국은 자본주의 극복과는 거리가 먼 삶의 방식에, 자본주의적 일상에 포획되어 있다는 의혹을 사게 만든다. 지금 노동운동은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앞장서면서 일상적 삶의 주조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노동운동의 위기는 노동운동이 자기도 모르게 신자유주의와 타협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진보적 좌파의 책임

민중운동은 노동운동 이외에도 빈민운동, 농민운동 등 여러 갈래를 포괄하고 있으나 이미 노동운동의 모습이 보여주듯 그 큰 흐름에서는 당면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고, 대안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전망을 획득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민중연대가 한국진보연대(준)로 전환하면서 보여준 모습에서도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노력의 강화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생존하려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신자유주의와의 은근한 타협, 민중연대의 한국진보연대로의 전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의 ‘진보’가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모습이다.

이는 1987년 이후 진보운동이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이런 흐름들 속에서 그 좌표를 제대로 찾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시민운동과 자유주의 세력이 내건 자유주의적 정치개혁과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마저 보수 언론에 의해 ‘좌파’로 분류되는 것이 한국의 상황인 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력이 좌파로 분류되고, 민중운동의 우파가 상설연대체를 만들며 ‘진보연대’라 자임하는 것은 진보의 정체성이 우경화하고 보수적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진정한 진보, 또는 진보적 좌파의 책임이 작지 않다.

여기서 ‘진보적 좌파’란 신자유주의 개혁을 현단계 자본주의의 지배 전략으로 파악하고 그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까지도 넘어서려는 입장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진보적 좌파는 신자유주의에는 반대하지만 과거의 수정 자본주의로 돌아가려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입장을 지닌 케인스주의나 사민주의와도 구분된다. 이들 후자의 입장은 한국에서 요청되는 실질적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 세력보다는 분명 진보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자본주의의 온존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국가의 계획 및 통제 권력을 강화하려 든다는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억압하며 대중들의 계획 참여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이 결과 국가의 독재를 비판하며 사회적 공공성을 시장 관리 아래 둬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세력의 비판에 노출됨으로써 주기적으로 자본주의의 회귀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지지할 수가 없다.

진보적 좌파는 실질적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서는 사회 모든 측면의 민주화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며,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경제적 민주화를 포기하거나, 경제적 민주화를 위해 정치적 민주화를 포기하거나, 정치경제적 민주화를 위해 사회문화적 민주화를 포기하는 것을 거부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비판의식과 목표를 가진 국내의 진보적 좌파가 제대로 활동을 하고 자기 전망을 구축했는가, 자신의 대중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진보적 좌파에게 ‘87년 체제’는 절망과 고난의 시대를 안겼고, 한동안 전망을 상실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그것은 허위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인양 내세웠고, 민중의 삶을 짓밟는 정책들을 개혁으로 내세웠으며, 무엇보다 1980년대 운동이 추구한 대안을 자신이 제시하는 양 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진보적 좌파가 무기력해진 탓이기도 하다. 구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미국 중심의 신세계질서 구축,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전면화라는 정세 속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세력으로서의 진보적 좌파가 활동할 공간은 갈수록 축소되었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난관을 돌파할 방안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법이라면, 진보적 좌파로서도 책임질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좌파는 올바른 입장을 찾으려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을는지 몰라도 그 입장을 현실화하려는 기획이나 전략 개발에는 무력했거나 무관심하지 않았는가? ‘87년 체제’가 안겨준 ‘잃어버린 20년’을 되찾으려면, 우리 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좌파의 분발이 요구된다.
덧붙이는 말

강내희 님은 본지 논설위원으로, 중앙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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