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진 공장 門, 그 안에 우리 노동자

[기고] 금속노조 임원선거운동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

15만 금속노조의 직선 선거

지난 2월에 금속노조 선거가 진행되었다. 금속노조 각 단위 임원과 대의원 선출은 직선제로 해오던 터였다. 그러나 이번 직선제 선거가 특별히 주목된 것은 완성차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15만 대오의 직선제 선거라는 점과, 산별노조의 방향이 제시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금속노조 5기 임원선거에는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처장 후보군 5팀이 출마, 결선을 통해 한 팀이 당선되었고, 2명의 여성부위원장후보가 출마해 1명이 당선, 부위원장후보에는 15명이 출사표를 던져 5명이 당선되었다. 총 32명의 후보얼굴이 2장의 포스터에 다닥다닥 붙어 조합원들을 찾아갔다.

5차례의 권역별 유세와 각 후보진영의 넘치는 선전공세가 있었으나, 조합원들은 각 후보의 정책적 차이와 출마의 이유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선거운동은 현장활동가들의 조직화로 채워졌다.

필자는 이번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였다. 선거의 의미와 분석이 아니라 현장순회를 하면서 다가왔던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현상이겠지만 혹여라도 현장을 알고 싶어하는 동지들을 위해 귀한 지면을 요청했다.

닫혀있는 공장 문이 열려지다

"저~ 죄송한데 저희 사업장은 외부사람에게 현장순회를 한 적이 없어요. 국회의원 선거때도 못 들어가요" "이번 선거는 금속노조 선거입니다. 조합원들이 후보들 얼굴이라도 봐야됩니다. 외부사람이 아니죠. 하나의 조직입니다" "여기는 기밀부서입니다. 빨리 나가세요. 사람들이 예의가 없군..." "우린 회사기밀을 보러 온 게 아닙니다. 한 사람의 조합원이 있더라도 만나야 합니다"

기밀부서의 문도 열리고, 극심한 현장통제 속에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조합원들에게 많은 후보들의 방문은 의외의 사건이였다.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지만 사용자측은 단일조직이 되어버린 금속노조 선거를 방해할 근거를 찾지 못했고, 사측의 눈치를 봐오던 집행부 역시 선거운동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산별노조는 조합원들에게 선거를 통해 다가갔고 결국 공장의 문이 열려졌다. 조합원들의 삶이 보였다.

위험한 현장, 죽어가는 노동자

금속을 이용한 가공과 절단, 조립은 녹스는 것을 방지하고 마찰을 줄이기 위해 기름 속에서 이루어진다.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맑은 기름속에 손을 담그고 손톱만한 금속덩어리를 이리저리 어루만진다. "장갑 안끼세요?", "장갑끼면 일을 빨리 못해서..." 손에 기름이 묻어서 악수를 못하겠다며 웃으신다.
"여긴 안전화 안 신으며 못 걸어 다녀요. 미끄러우니까 조심하세요"
"프레스부서는 한 눈 팔면 사고나거든요. 떨어져서 큰 소리로 인사만 하세요"

어느 사업장, 어느 부서를 가든 위험해 보였다. 작은 조립품 공정에서는 움츠린 자세로 바짝 댄 시선, 주물공정은 불덩이들이 튀고, 기계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은 냉방병에 노출되어 있었다. 안전한 현장은 과연 있을까? 높은 음의 기계소음, 기름에 절여진 손과 미끄러운 현장, 숨 쉴 수 없는 화학약품 냄새, 게다가 심야노동까지... 우리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비정규직 사이에서 조합원 골라내기

"안녕하세요. 현장과 함께하는 후보 최윤정입니다" "전 직영 아닌데요?" "네?" "저 분은 조합원 아니예요" "아~네~, 금속노조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습니다. 꼭 조합에 들어오세요" "노동조합 싫습니다. 지난번 비정규직 투쟁 때 너무 실망해서요. 다 자기만 살자고 하는데 그게 무슨 노동조합입니까?"

비정규노동자와 조합원을 구분해 내는 일은 쉽고도 어려웠다. 외견상으로는 이름표 색깔이 다르거나 작업복이 달랐다. 젊은 사람들이 많은 라인 속에서는 나이 많으신 노동자가 직영, 즉 우리 조합원이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눈길을 마주치는 것도 싫었는지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다. 악수도 하지 않는다. 많은 후보들 방문에 '난 비정규직입니다'라고 얘기하는 것도 지겨웠을 것이다. 소위 빡센 업무는 대개가 비정규직이었다.

한 지회 간부가 말했다. "비정규직이 라인에 같이 들어와 있으니까 파업이 안되요. 조합원은 라인에 몇 명 안되니까 파업해 봐야 생산에는 전혀 지장이 없어요" 큰일이란다. "다른 동종업종 사업장은 비정규직이 별로 안보이던데요?" "거기는 부서 전체를 아웃소싱해서 그래요" 맞다. 아웃소싱한 부서는 후보에게 안내를 안하기 때문에 난 알지 못했다.

조합원들에게는 비정규노동자들의 무게가 느껴졌고 비정규노동자들에게는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우린 모두 갇혀 있었다. 이 갇힘을 열어제끼는 것은 차별철폐가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임은 분명하다.

미친 듯 일하는 노동자, 그러나 뒷덜미엔 고용불안

휴게시간이 임박하면 후보인사가 어렵다며 동지들이 재촉한다. 라인과 라인사이는 뛴다. 휴게시간 20분 전, "안녕하세요" 볼트박는 동지 뒷통수에 대고 횡설수설 떠들었다. 그래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왜 저래요? 다른 후보를 지지해서 그런가요?" "아니요. 휴게시간이 다 되서 그래요. 미리 빼놓고 더 쉬려구요" 그러나 휴게시간만 그런 건 아니었다.

엔진조립부서가 나란히 있다. 한 라인은 농담도 하고 웃기도하고 선전물도 읽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옆의 라인은 눈 마주칠 시간도 없다. 인사하는 사람이 무안하다. "왜 분위기가 다르죠?" "지난번 피치교섭을 대의원이 다르게 해서 여기는 좀 힘들어요" "왜 다르게 했어요?" 명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물량이 없다는 거예요" "요즘 토요일 특근이 없어요. 잔업도 점점 줄고... 조합원들이 계속 물량 건을 얘기하는데 ... 회사는 납품단가인하 때문에 남는 게 없다고 지원부서들은 외주로 넘기자고 하고, 사람 줄이라고 하고..." "힘든 부서는 다 외주화되거나 자동화가 돼요. 거기 있던 사람들 전환배치를 해야 하는데 기존 부서들은 물량 나누는 것은 싫어하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요"

하루 8시간, 주 5일 노동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가 없다. 먹고 입는 것이야 어찌할 건데 아이들 학원은 보내야 한다. 잔업과 특근이 줄면 불안해 진다. IMF이후 우리 노동자들은 하루살이로 전락했다. OT를 한 대가리라도 더 하려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 열심은 일자리를 줄이는 칼로 되돌아온다. 이 사이클을 무엇으로 끊어내야 하나?

걸어도 걸어도 끝없는 현장, 자본의 거대함이 숨막히다

오전 7시, 어둠이 걷히고 있다. 파도처럼 사람들이 출근하고 퇴근한다. 허리를 굽히고 목소리를 높여 지지를 호소한다. 오전 8시30분 아침식사를 했다. 잘 먹어둬야 걸을 수 있다. 오전 9시 현장으로 들어간다. 중식과 석식시간에도 인사는 이어진다. 저녁 7시 저녁을 먹고 다시 야간조 순회를 시작했다. 새벽 2시, "이제 그만하세요" 얼마나 반가운지, 그러나 내색은 안했다. "다 했나요?", "아니요. 한 3분의 1쯤 했어요"

쇳덩이가 주물을 거쳐 차체가 되고, 조립을 거쳐 완성차가 되었다. 거대한 시스템, 기계설비의 놀라운 재주, 거기에 노동자의 생산력이 보태져 물건이 만들어졌다. 수천 수만의 노동자를 기계처럼 움직이게 하는 이 자본의 힘, 가도 가도 끝이 안보이는 공장의 거대함이 목을 죄여왔다.

'노동해방 세상은 어디쯤 있을까?, 아니 그건 나중 일이고 이 거대한 자본을 당장 금속노조 중앙교섭에 끌고 나와야 하는데... 수많은 정보들이 재벌자본 수중에 들어가고 정보에 따라 돈이 흘러다니고, 노무과의 분석에 따라 당근과 채찍을 골라 사용하겠지... 그래도 주눅들면 안돼! 악수를 해도 해도 끝없이 많은 우리 노동자들이 힘을 모으면 이 거대한 공장은 금방 녹슬어 가. 공장이 멈추면 물건도 부가가치도, 권력도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지.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고, 함께 행복한 세상은 우리가 뻗는 손 바로 앞에 있을 거야'
덧붙이는 말

최윤정 님은 금속노조 전 정책국장이며 임원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한 후 현재는 조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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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 금속노조 , 금속선거 ,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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