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수] 민주노동당

베네수엘라는 거뜬히 제헌의회

[특별기획 : 개헌,반신자유주의 정치논쟁으로](3) - 베네수엘라 제헌의회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에 대한 헌법개정을 의미하는 소위 원포인트 개헌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을 때 민주노동당 및 진보진영 내부는 혼란에 빠졌다. 적극적으로 개헌논의에 참여해서 판을 주도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개헌논의 자체가 기만적이기 때문에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측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문제가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서 이러한 당 내의 논란은 수그러드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개헌문제는 향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정치개혁의 과제로서 어떤 후보도 제시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이다.

필자가 보기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이 개헌문제로 우왕좌왕 했던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기존의 헌법에 대한 진보세력의 합의된 입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제시할 정치개혁안이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헌법에 대한 입장, 그리고 대중들에게 제시할 정치개혁안이 존재했다면 개헌국면은 우리가 주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들이 소위 기만적인 ‘원포인트 개헌안’을 제시할 때 우리는 민중적이고 변혁적인 정치개혁안을 제시하여 민중들에게 판단을 받아야 한다. 지금의 헌법이 민중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헌법이 아니라는 것은 변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과연,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이 제시해야할 민중적 변혁적 정치개혁안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 과정은 우리에게 큰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의 변화발전에 조응하지 못하는 과거의 헌법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한 베네수엘라의 제헌의회 소집 과정을 돌아보자.

베네수엘라의 제헌의회 추진과정

차베스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가 어떤 방식으로 국가권력을 잡으려 하는지 확실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지지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더라도 차베스는 각기 다른 것들을 약속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한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차베스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그 사안은 베네수엘라를 위한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이었다.

1989년 베네수엘라의 수도인 카라카스에서 일어난 폭동 “카라카소”에서 수천 명의 사람이 학살됐는데, 차베스가 만든 군부 내 혁명운동 세력인 MBR-200은 “카라카조” 이후로 베네수엘라 사회를 완전히 개혁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토론하기 시작했다. 차베스가 1992년에 좌익 쿠데타를 일으킬 준비를 했을 때, 그들은 제헌의회 소집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차베스는 마르타 하르네케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과거와 단절하는 방법, 과두지배세력의 이익에만 복무하는 이따위 민주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극복하는 방법, 부패를 없애는 방법에 대해서 토론했다. 우리는 항상 기존의 군사독재나 임시군사정권 방식을 거부했다. 우리는 제헌의회가 있었던 1990~1991년의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일들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제헌의회가 기득권 세력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콜롬비아의 제헌의회를 고안한 것은 기득권세력이었고, 그 때문에 상황을 바꿀 수 없었다.”

차베스는 1992년 쿠데타 실패 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새로운 혁명적 기초를 건설하기 위해서 안토니오 네그리(“제헌적 권력”과 제헌의회의 필요성에 대해 쓴 저명한 현대 좌파 이론가) 등의 정치이론가들을 연구했다. 1998년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차베스는 지속적으로 제헌의회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러한 계획은 차베스의 정당이 “제5공화국운동”(Movimiento Quinta Republica, MVR 여기서 V는 로마숫자 5를 뜻함)인 것에서도 명백하다. 1811년 베네수엘라 건국 이래 새로운 헌법을 가지고 5번째 공화국을 시작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헌법을 개정하거나 새로 쓰려는 노력이 베네수엘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811년에서 1961년 사이 베네수엘라에서는 26번이나 헌법을 바꾸었다. 1961년 헌법이 가장 오래 지속되서 1999년까지 남아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도 여러번의 개헌논의가 있었다. “카라카조” 이후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즈 대통령은 주지사와 시장을 직접선거로 선출하도록 헌법을 개정했고, 이것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것을 통해서 AD와 COPEI 이외의 정당들도 주(州), 혹은 지역 차원의 정치에 더 많이 진출하게 되었다. 더 많은 변화를 계획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차베스가 1992년에 좌익 쿠데타를 일으킨 후에 새로운 헌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몇 달 만에 흐지부지 되었다. 1994년 대통령 선거기간에 라파엘 칼데라는 새로운 헌법에 대한 필요성을 얘기했지만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1998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된 차베스는 제헌의회 소집을 위한 국민투표 일정을 잡았다. 37년간이나 지속되온 1961년 헌법에는 제헌의회 소집에 대한 어떠한 내용도 없었다. 일부는 1961년 헌법을 개정해서 제헌의회 소집에 대한 조항을 넣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인권기구인 Fundahumanos는 1998년 12월 16일에 베네수엘라 대법원에 제헌의회 승인을 위한 국민투표의 위헌여부를 가려줄 것을 요청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약 한 달 뒤인 1999년 1월 19일에 법원은 차베스가 추진하는 제헌의회를 소집에 대해 우호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부의 판결은, 법원이 결국 차베스가 독재를 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반대파들 사이에서 아직도 논쟁이 되고 있다.

국민투표는 4월 19일에 있었고 두 가지를 물었다. 하나는 제헌의회 소집에 대한 찬반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차베스 대통령이 발표한 제헌의회 소집과정에 대한 찬반여부였다. 투표자의 92%가 제헌의회 소집에 대해 찬성했으며 86%가 차베스 대통령이 제기한 제헌의회 소집과정에 찬성했다(기권율은 63%였다). 2달 뒤인 6일 25일에 제헌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가 열렸다. 전국구에서 24명이 선출되고 선주민 대표로 3명, 지역구(주(州)대표)에서 104명을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모두 131명이며, 전원이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차베스 진영에서 131명 중 125명이 당선되는 압도적인 결과를 얻었다. 차베스 반대파는 6명 뿐이었다.

제헌의회 의원들이 즉시 헌법 제정 작업에 들어갔다. 오래지 않아 전원회의 방식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 현실화되었다. 차베스가 6개월 안에 제헌의회의 헌법 제정 작업을 끝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22개의 위원회에서 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또한, 차베스 반대파와 다수의 제헌의회 의원들 사이에 제헌의회가 통상적인 입법권을 가지는 지 그렇지 않은 지에 대해서 논쟁이 벌어졌다. 차베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제헌의회가 최고 주권기관이기 때문에 제헌의회가 입법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부는 차베스 측의 입장을 인정했다. 12월에 헌법이 준비되고 12월 15일에 국민투표에 들어갔다. 투표자의 71.8%가 새 헌법을 승인했으며 기권율은 55.6% 였다.

베네수엘라 제헌의회 전술의 의미

첫째,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한 민주적 체계를 세우는 의미를 가진다. 개혁적 법안 하나 통과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커녕 개정조차 안되고 있는 현실이나, 사학법 개정에 대해서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서는 1999년 제헌의회를 소집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였다. 헌법 자체를 새로 제정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낡은 헌법과 법률들은 한꺼번에 무력화 되었다. 제헌의회 의원 대부분이 진보적 인사들로 구성되었고, 제헌의회를 통해 새로 제정된 ‘볼리바리안 헌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보적인 내용을 담게 되었다. 이렇게 제정된 민주적 헌법은 나중에 49개의 개헉적 법안을 낳는 토대가 되었다.

둘째,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의 국가기구를 한꺼번에 접수하고 세력관계를 단번에 역전시키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헌법을 만든 후, 이 헌법에 의거해서 2000년에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주지사 선거 등 모든 선거를 한꺼번에 새로 치렀으며, 사법부도 새로 구성을 하게 되었다. 헌법을 새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전의 헌법기관들은 사실상 무효가 되고 모두 새로 구성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차베스 진영에서 모든 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고 차베스는 다시 임기 6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국회의원의 과반을 차베스 측에서 장악하게 되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제헌의회 전술의 진정한 위력이라 할 수 있다. 1999년에 차베스가 대통령이 됐을 때는 이미 한 해 전인 1998년에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상황이었고, 보수세력이 절대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제헌의회를 통해서 의회 및 사법부 등의 국가기구를 접수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1998년에 형성된 보수적인 의회가 사사건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고 결국 혁명은 제대로 추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차베스는 1970년대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이 대통령 선거 승리로 행정부는 장악했지만, 보수적 의회에 발목잡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결국은 피노체트의 반동 쿠데타에 의해 실패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제헌의회에 대한 고민이 나오게 된 것이다. 차베스는 1992년 자신이 만든 군부내 혁명조직 MBR-200을 통해 좌익 쿠데타를 일으킬 때도 제헌의회를 소집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쿠데타는 실패하고 감옥에 갇혔지만, 감옥에서 학습하고 연구하면서 선거참여를 통한 제헌의회 전술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렇듯 제헌의회 전술의 핵심은 선거공간을 혁명적 공간으로 바꾸어내는 도구로써 제헌의회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베네수엘라의 혁명과정에서 제헌의회를 통한 새판짜기가 어려움 없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낡은 헌법을 새로운 헌법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저지하기 위한 보수반동세력들의 반대 또한 만만치 않았다.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제헌의회가 기존 사법부와 입법부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과정에서 기존 사법부와 입법부 내의 보수 인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제헌의회 소집을 위한 국민투표에 대해 위헌소송을 내기도 하고 차베스를 반대하는 대단위의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차베스 진영에서는 제헌의회가 모든 국가기관 위에 존재하는 최고 주권기관임을 명뱅히 하고 이러한 공세들을 물리쳐 나갔으며, 대중들도 기존의 부패한 입법부와 사법부를 한꺼번에 청소하는 시도에 지지를 보냈다. 그리고, 제헌의회를 지지하는 대단위의 집회를 조직해서 차베스를 엄호했다. 차베스가 대통령 선거시기에 제헌의회 소집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이러한 문제를 이미 예상하고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제헌의회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았다면 사실상 제헌의회를 추진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제헌의회가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베네수엘라에서,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대통령 선거 승리를 통해 제헌의회 소집을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단결된 민중들의 강력한 대중투쟁이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미제국주의와 국내 과두지배세력에 복무하는 페레스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군부의 혁명조직을 일으켜 목숨을 걸고 항쟁을 시도했던 사람이다. 이러한 진정성이 민중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그는 감옥을 나와 “제5공화국운동”을 통해 혁명적 군부와 민간운동진영을 하나로 묶고 광범위한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어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게 되었다.

볼리비아에서는 노동자운동과 농민운동이 강력한 대중투쟁을 통해 제국주의와 국내매판자본가들에 부역하는 대통령 두 명을 연이어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강력한 연대를 구축했다. 그러한 대중투쟁의 성과로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06년 8월에 제헌의회를 소집했다. 에콰도르에서도 대통령을 여러 번 갈아치우는 대중투쟁의 변혁적 열기를 안고 라파엘 꼬레아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제헌의회 소집을 추진하고 있다. 제헌의회는 이러한 대중들의 투쟁역량이 선거공간에서 혁명적으로 승화될 수 있는 제도적 틀로서, 위력한 도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볼리바리안 헌법

성경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구절이 나온다. 새로운 내용을 낡은 형식에 담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는 사람들에게는 새 술에 맞는 새로운 부대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헌법인 것이다. 350조에 이러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헌법은 새로이 만들어야 할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

볼리바리안 헌법은 국명을 ‘베네수엘라 공화국’에서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으로 개칭했다. 국명개칭은 차베스가 줄곧 주장했던 것으로 차베스가 제헌의회를 설득하여 국명 개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새 국명은 베네수엘라가 시몬 볼리바르가 해방시킨 나라들 중 하나임을 나타내며, 미래에는 ‘볼리바리안 공화국 연방’에 속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헌법의 71조에서 74조까지는 다양한 형태의 국민투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았으며, 이는 새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 중 하나다. 새 헌법에는 자문, 소환, 승인, 폐지의 네 가지 형태의 국민투표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일반적으로 국민투표는 국회, 대통령, 10퍼센트~20퍼센트의 등록된 선거권자들의 서명 등의 조건에 의해 발의될 수 있다. 자문 국민투표는 국민들에게 FTA와 같이 외교적(국가를 초월한) 성격의 문제를 묻는 것이다. 소환 국민투표는 모든 선출직 공무원들에게–대통령, 주지사, 국회의원, 시장 등–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임기의 반 이상이 지난 다음에야 실행될 수 있다. 승인 국민투표는 소환 국민투표처럼, 중요한 법을 통과시키거나 국가 주권을 침해하는 협정을 실행하는 데 사용된다. 또, 이 국민투표는 헌법 개정의 승인에도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폐지 국민투표는 존재하는 현행법을 폐지하는 데 사용된다.

새 헌법에서는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에 선거관리위원회와 시민권력기구를 추가한 5권 분립구조를 명시하고 있다. 시민권력기구는 국가를 위한 고충처리원의 기능을 하며, 다른 4개의 권력들이 헌법에 정의된 기능을 따르도록 보장한다. 시민권력기구는 법무장관, 민중의 수호자, 감사원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앞에서 몇가지 예를 들었지만, 볼리바리안 헌법은 폭넓은 시민참여를 통한 ‘참여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볼리바리안 헌법은 세계 어느 헌법보다도 인권에 대해 가장 깊이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주변화되어 있던 여성이나 토착민, 환경 등에 대한 보호를 포함하고 있다. 볼리바리안 헌법의 제정으로 베네수엘라는 세상에서 가장 진보적인 헌법을 가지게 되었다.

베네수엘라 거리 곳곳에는 작은 책으로 만들어진 헌법 책이 팔리고 있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 작은 책을 그들 정당의 표식인 듯 흔들어댄다. 많은 친정부 정치연구모임에서는 헌법을 읽고 공부한다. 이러한 모습은 구 헌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일반 사람들은 구 헌법을 거의 읽지 않았다. 볼리바리안 헌법은 헌법 그 이상의 것이 되었다. 새로운 헌법은 차베스의 지지자들이 사회를 움직이고 싶어 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상징물이다.

이남의 진보진영에게 주는 시사점

우리 이남의 민중들은 지금까지 선거라는 공간에서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기만당해 왔다. 선거공간에서 개혁세력의 가면을 쓴 지배계급들은 민중운동진영의 모든 성과를 빼앗아 갔다. 지배계급들은 선거공간을 새로운 지배체제 형성의 공간으로 활용해왔다. 개혁세력의 가면을 쓴 지배계급은 더욱 악랄해져서, 벼랑 끝에 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기도록 몰아붙이고, 생존권을 외치는 농민들을 방패로 찍어 죽였다. 그마저도 모자라 나라를 미제국주의의 온전한 식민지로 팔아먹는 한미FTA 협상을 전력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 이남에서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개헌논의가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소위 ‘원포인트 개헌’ 얘기를 꺼냈지만,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개헌논의가 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개헌논의의 중심에 민중들은 없다. 개헌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기존의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법안 만들고 통과시킬 것이기 때문에 개헌이라는 상황조차 그들 보수 정치권의 손안에 있다. 그들은 2007년 대선을 이러한 기만적인 개헌논의로 판을 짜들어가면서 어떻게든 집권을 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있는 상황에서 민중운동진영은 새로운 선택의 가능성이 생겼다. 더 이상 선거공간이 지배계급들의 잔치판만으로 될 수 없다. 우리는 선거공간을 혁명적 공간으로 바꿀 주체로서의 진보정당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베네수엘라를 필두로 중남미에서 연이어 불고 있는 제헌의회 소집의 바람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배계급의 기만적인 개헌논의를 폭로하고 선거시기에 민중들의 투쟁역량을 혁명적으로 승화할 수 있는 도구로서 제헌의회를 소집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덧붙이는 말

임승수 님은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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