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참여 배제 원포인트 개헌

[특별기획 : 개헌,반신자유주의 정치논쟁으로](8) - 개헌 논의의 허실

“원 포인트 개헌”에서 “멀티플 개헌”으로

노무현이 제기한 “원 포인트 개헌”으로 인해 촉발된 개헌논쟁은 사실 처음부터 영양가가 없는 것이었다. 남한 헌정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정권의 이해에 의한 개헌의 전철을 다시 밟는 수준 이외에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원 포인트 개헌”의 형식이 가지는 이러한 한계와 더불어 그 내용적 측면에서도 노무현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었다.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킴으로서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이 구상은 전형적인 승자독식의 발상이었다. 더불어 인위적으로 양당구조를 형성함으로써 군소정당의 정치적 위상을 흔들어버릴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양가 없는 노무현의 발상은 제도정치권 안의 정치인들은 물론이려니와 장외의 대중들과 각 단체들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개헌이 가능하냐 그렇지 않냐부터 시작해 왜 하필 노무현이냐, 시기가 좋지 않다, 내용이 없다는 기본적인 논쟁은 물론이려니와 개헌논의에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그냥 묻어버리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일각에서는 소위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하기도 했고, 또다른 일부에서는 이 개헌정국을 맞아 ‘급진의제화’전략으로서 개헌론에 가세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원 포인트”가 아니라 다층적인 개헌의제를 제시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와중에 노무현 발 개헌론에 휩쓸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미련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비판받기도 했다.

이렇게 난리가 나 설왕설래가 이루어지는 동안 노무현은 극단적인 몰아붙이기를 통해 한미FTA를 타결했다. 개방을 통한 경쟁력 우위의 확보를 주장하면서 민중들의 입을 봉쇄한 채 진행된 한미FTA 협상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사회적 충격이 되리라고 전망된다. 한미FTA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단지 국가 간 통상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매우 복합적인 한미FTA의 의미 중 주요하게 바라보아야할 것은 바로 이것이 또다른 의미의 개헌이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투자자 국가제소권’을 보자. 분분한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투자자 국가제소권’의 개념만 이해하고 있다면 이 권리가 사실상 헌법에 대한 자본의 우위를 인정하는 것임을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구조에 대해선 “원 포인트”를 운운하면서 개헌을 주장한 노무현이 한미FTA를 통해 새로운 경제헌법구조를 창설한 것이다. “좌파 신자유주의자”의 “유연한 진보”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합헌적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87년 헌법의 그 허술한 체계 안에서조차 이 행위는 명백히 위헌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한미FTA 반대투쟁의 목소리를 공권력을 통해 제압한 것은 또다른 의미의 헌법체계 형성이었다. 새만금 사업 반대투쟁, 평택 미군기지 이전 저지투쟁, 농민집회와 건설노동자 집회를 무차별 공격한 공권력은 집시법이라는 현행법의 조문을 법집행의 근거로 제기한다. 각 집회시위는 개최되기 이전부터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고, ‘불법’의 원인은 경찰의 집회불허에 있었으며 무소불위한 경찰의 집회허가는 그 근거를 집시법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현행 헌법은 조문에 선명하게 집회시위가 허가의 대상이 아님을 천명하고 있다. 결국 집시법은 헌법 상위의 법률이 되었고, 경찰은 헌법을 무시해도 되는 국가기관이 되어버린다. 이런 예를 들자면 한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정권과 자본은 이미 헌법의 틀 안에서 새로운 헌법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매우 주도면밀한 방식으로 헌법해석투쟁을 전개함으로써 헌법현실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맞게 재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원 포인트 개헌”이라는 수사는 단지 노무현 자신이 정국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용도만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다했다. 그러면서 노무현은 뒤쪽에 앉아 이미 새로운 헌법현실을 창출함으로써 문리적인 헌법 자구의 수정보다도 훨씬 강력한 개헌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멀티 포인트 개헌”으로 말이다.

운동진영의 조급증

자본과 정권이 이처럼 지능적으로 헌법해석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동안 좌파 혹은 진보세력은 확실히 자신의 입장정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의외의 현상이 아니다. 약 1년 전부터 촉발된 ‘87년 체제’에 대한 비판의 와중에 ‘87년 헌법’의 구조에 대한 문제가 묻어서 제기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진보진영의 입장에서 ‘87년 헌법’에 대한 입장은 제대로 정리되어있지 않았다.

87년 헌법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 그리고 새롭게 정립되어야할 헌법구조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세기를 거치면서 쌓여왔던 남한 진보진영의 역량과 좌파적 입장을 동원한다면 그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헌법의 법문을 구성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러한 ‘논의’가 현실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데에 있다. 이 문제 역시 매우 간단한 해법이 가능할 수 있다. 그들이 정권을 획득하면 된다. 헌법은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정권을 어떻게 획득할 것이냐다. 이건 답이 없는 문제일 수 있다. 그들에겐 쿠데타를 일으킬만한 군부의 지지도 없고, 무장혁명을 준동할 수 있는 총칼도 없다. 물경 20년에 걸쳐 실체도 없는 소위 ‘중산층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대중들은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이해에 일정정도 양보를 요구하는 변혁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노동자계급은 계층적으로 분화되었고, 농민과 빈민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누가 붙인 것이냐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이 와중에 ‘투쟁’의 구호는 남발되고 ‘혁명’의 이상은 키보드 위를 달린다. 한미FTA 반대집회에 나온 군중들은 ‘정권퇴진’을 주장하기는 해도 ‘체제변혁’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운동진영이 주장하는 헌법의 내용을 성문화하는 작업은 요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이 조성한 개헌정국에서 본격적으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일부 운동진영의 주장은 유효하다. 당연히 끼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어떻게 되어야할 것인지에 대해선 재고가 필요하다. 특히 이때가 아니면 개헌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어진다거나 협소해질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개헌론에 뛰어들자는 주장은 운동진영의 조급증을 여지없이 반영한다.

예를 들어 노무현이 개헌안을 보류하거나 개헌안 발의를 철회할 경우 운동진영의 전술적 공간이 없어지므로 당장 “개헌 의제화 국면에 급진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 조급증의 증상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현재 논의되는 개헌론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즉, 이 관점은 결국 개헌으로 정리되는 사회적 의제화의 작업을 노무현이 깔아놓은 “원 포인트 개헌론”에 의지하여 풀어나가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와중에 남미에서 불고 있는 좌파정권의 출현과 개헌현상이 논리의 근거로 동원되기도 한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제헌의회와 관련하여 차베스의 개헌전술을 분석함으로써 전범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이 분석들은 정권의 획득이 없이는 원하는 헌법의 성문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헌에 대한 논의는 누가 정권을 잡고 있든 언제나 불거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헌법 자체가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때 이 현상은 당연한 것이다. 지배집단은 더욱 강력한 체제안정을 구축하기 위해 보다 체제에 유리한 헌법을 요청하게 되고 피지배집단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헌법체계에 원천적인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을 바꾸자는 논의는 그래서 “급진적 개입”이니 뭐니 하는 수사를 동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개헌논의는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누가 정권을 잡든 정권의 입장에서든 정권을 뺏긴 입장에서든 계속 꺼내들 수 있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헌정사의 9번에 걸친 개헌 중 이승만과 박정희가 개헌을 한 횟수가 5번이다. 이들은 항상 정권의 안녕을 위해 헌법을 개정했다. 제헌헌법을 제외하고 정권의 성격 자체를 바꾼 개헌만도 5회에 이른다. 헌법 개정 과정에서 어느 정도 민중의 입장과 이해에 의하여 개헌이 이루어진 것은 4·19의거로 인해 만들어진 제2공화국 헌법과 87년 민중항쟁을 통해 구성된 현행 헌법 둘 뿐이다.

그나마도 제2공화국 헌법은 시행 후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쿠데타세력에 의해 형해화 되었다. 이러한 헌정사를 돌이켜 볼 때, 그나마 헌법다운 헌법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헌법이 현행 87년 헌법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무슨 의도로 개헌을 주장하느냐 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개헌논의가 어떤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가이다. 개헌 주장의 시기는 이러한 요건 이후의 문제다. 장판 깔아 놨을 때 해야 한다는 사고는 주체적 역량의 부족을 드러낼 뿐이다. 더불어 급진적이니 뭐니 하는 수사는 불필요한 장식이자 알맹이 없는 조급증을 보여주는 민망한 표현이다.

선후가 바뀐 논쟁

한 때,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를 헌법에 규정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특히 좌파진영에서 이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었고 급기야 이 제도들이 좌파적인 제도라고 선전되기도 했다. 민주주의 체제의 한 요소로서 사회구성원의 직접 참여는 절대 불가결의 요소다. 대의제가 되었든 간선제가 되었든 제도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사회구성원의 직접 참여가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안제는 좌파의 이념이라기보다는 직접참여를 통한 민주주의의 구조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할 제도이다.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진보진영이나 좌파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엄밀하게 이야기할 때 그랬으면 한다는 바램일 뿐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이 제도들은 단지 그 사회의 역학관계를 표명할 수 있을 뿐이다. 절차적인 측면에서는 민주적일지 몰라도 내용적인 측면에서까지 제도 자체가 민주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행 헌법의 각 조문들 역시 마찬가지다. 헌법 제18조가 통신비밀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과 정보기관들은 언제든지 모든 사람들의 통신비밀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법제화하고자 한다. 그것이 헌법 제37조제2항 후단에 있는 “본질적인 내용”으로서의 권리일지라도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같은 조문의 전단, 즉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부분만 유효하다. 같은 조문에 대해서도 이렇듯 다른 입장의 전개가 가능한데 종국에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누구의 힘이 더 강한가에 달려 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통신비밀에 대한 의지가 더욱 강하게 자리 잡혀 있다면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의 의지는 무력화된다. 반대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통신비밀에 대한 의지보다는 장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위협에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면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의 의지는 법률을 통해 날개를 달게 된다.

장황하게 이런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현행 헌법을 두고 해석투쟁을 알차게 벌여왔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헌법의 조문은 결과물일 뿐이다. 근래 들어 자주 거론되는 남미의 경우를 보더라도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의 제헌의회는 해당 국가의 지배집단이 완전히 교체되는 변혁을 거친 후에야 결성되었다. 이전 지배집단에 의해 논의되던 개헌은 종래 한국사회에서 있었던 이승만, 박정희식 개헌과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었다.

차베스나 모랄레스가 추진했고 꼬레아가 추진하고 있는 제헌의회는 그 의회를 소집할 수 있었던 집권세력이 바뀜에 따라 가능했다. 차베스나 모랄레스, 꼬레아는 단지 그들 한 개인의 의지에 따라 헌법구조의 일대 혁신을 도모했던 것이 아니다. 남미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헌의 물결은 일부 지도자들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집권을 위해 싸워왔던 민중들의 역량이 결집된 결과다.

물론 투쟁의 과정에서 개헌의 필요성은 얼마든지 주장될 수 있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개헌은 결과물일 뿐이지 그 자체가 원천적인 운동의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가 대변해야할 계급의 이해를 명확하게 반영하는 간결한 구호다. 그리고 그 구호가 헌법의 체계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토지를 농민에게, 주택을 빈민에게, 권력을 민중에게”라는 어느 민중가요의 선창구호를 보자. 이처럼 간결하고 선명한 구호가 우리 헌법에는 어떻게 담겨 있을까?

헌법 제121조는 명문의 규정으로 “경자유전”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 헌법 제1조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되어 있다. 주택에 대한 부분은 현행 헌법에서 보이지 않는다. 명문에 규정된 “경자유전”의 원칙은 현실에서 적용되고 있는가? 적용되고 있지 않다면 왜 헌법이 정한 원칙이 적용되고 있지 않은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법률의 문제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개헌을 하는 것이 중요할까?

개헌을 한다면 도대체 어떤 형식으로 “경자유전”의 원칙을 다시 써야할까?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권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 국민은 이 땅 모든 권력의 원천일까? 노무현은 무슨 권력으로 국민이 부여한 권력 이외에 개헌에 대한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을까? 더불어 왜 “공화국”의 이상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이 “국민”으로부터만 나올까? 이 사회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국민”이 아니므로 권력의 행사로부터 배제되어야 하는 것인가? 왜 권력이 “인민”에게서 나오면 안 되나? 그게 사회구성원 일반의 보편적 행복과 연대를 추구하는 “공화국”의 이념에 적절한 것일까? 주택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헌법에 주거권에 관한 규정을 삽입하면 주택문제는 해결되나? 아파트에 국한된 주택논의로 인해 제외된 산골 어느 자락의 초가삼간은 헌법문제가 될 수 없는가?

개헌을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발상은 자칫 헌법 만능주의, 곧 법률지상주의의 다른 형식으로 전락할 수 있다. 남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개헌작업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개헌작업은 바로 이처럼 집권의 과정에서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각종의 사안들을 법문의 형식으로 정립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대중들의 지지와 신뢰가 가능한 것은 바로 개헌의 내용들이 평소 자신들이 주장해왔던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헌법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뀜으로서 개헌이 가능했던 것이다. 법은 “뒷북”일 뿐이다. 그것이 헌법일 경우에도 전혀 다를 바 없이 그렇다.

헌법전공자가 노무현에게 감사할 수 없는 이유

헌법을 전공한 입장에서 “참여정부”는 헌정사를 통해서 보더라도 매우 흥미로운 정권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사회구성원들의 “참여”라고 할 때, “참여정부”는 “민주주의정부” 혹은 “민주정부”의 다른 말일 뿐이다. 이들이 계속해서 주장했던 “참여 민주주의”는 그래서 “민주주의 민주주의”라는 동어반복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의 기본적 구성원리를 강조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쓴 것인지, 아니면 “참여”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중층적 의미를 수사적 차원으로 이용한 것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구호에서부터 뭔가 범상치 않은 냄새를 풍겼던 이 정권은 현란한 수식어 뒤로 썩은 냄새를 풍기며 침몰해가고 있다.

헌법전공자가 흥미를 가지게 되는 이 정권의 특징은 단지 “참여정부”라는 조어능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헌정사가 시작된 이래 대중들로 하여금 이토록 헌법에 관심을 가지게 했던 정권이 또 있었던가? 이 질문에 대해 즉각적으로 돌아올 수 있는 답변은 제5공화국일 것이다. 체육관 안에서 호헌을 결의했던 그 비장하고 왜곡된 군인정신은 민중의 개헌에 대한 열망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군사정권이 의도하지 않았던 개헌정국을 불러 일으켰다. 서울역 앞으로 시청 앞으로 몰려들었던 그 수많은 군중들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면서 거대한 물결이 되어 정권의 심장을 강타했다.

그러나 제5공화국 말기에 일어났던 헌법에 대한 주권자의 의지는 불행히도 개헌의 목적의식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구정치세력 간의 야합으로 종결된다. 개헌의 장은 민중이 만들어놨으되 정작 그 민중들이 개헌의 요구 속에서 바랐던 것은 더 이상 군사정권, 살인정권을 용인할 수 없다는 딱 그 차원의 수준에서 종식되었다.

87년 헌법이 가지고 있는 그 무수한 허점에도 불구하고, 7,8,9투쟁이 보여줬던 노동자 계급의 전복에 대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87년 헌법 체제”는 성립되었다.

군사독재체제의 존립이냐 패퇴냐 라는 갈림길에서 헌법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던 5공화국과는 달리 참여정부 하에서의 헌법에 대한 논의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불거져 나왔다. 탄핵정국 당시를 돌이켜보자. 과연 언제 헌법학자들이 이처럼 언론의 다양한 조명을 받아본 일이 있었던가? “친노=민주, 반노=반민주”라는 기가 막힌 공식이 횡행하는 와중에 갑자기 주가가 치솟은 헌법학자들은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엄청난 대우를 받았다.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사건은 그동안 음지에서 고생하면서 언젠간 양지가 도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헌법학자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심어준 일대 사건이었다.

그 후속타로 이어졌던 것이 행정수도이전과 관련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었다. 헌법학자들로서도 생소한 “관습헌법”이라는 용어를 전 국민의 유행어로 만들어버린 이 사건을 통해 성문헌법을 가진 국가조차도 불문의 관습헌법에 얼마든지 몸을 맡길 수 있다는 기가 막힌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도 않은 사법집단이 정책결정의 행사권한까지도 쥐고 있음을 확인한 대중들은 헌법재판소 폐지론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노무현은 ‘원 포인트 개헌’이라는 이슈를 던짐으로써 또다시 헌법에 대한 대중의 지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 당시를 비추어보면 또다시 전국적으로 헌법에 대한 폭발적 관심이 솟구쳐 올라야 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리라고 예측하고 노무현은 개헌에 대한 구상을 꺼내놨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영 아니다. 춘삼월 꽃노래도 삼세번이라고 했던가. 국민들은 말이 없다. 오히려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까지만 해도 별로 말이 없던 정당조직과 운동조직, 전문가집단이 술렁거리면서 개헌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을 꺼내놓기 시작한다. 개헌론에 개입을 하니 마니, 원 포인트니 다포인트니 하는 말이 설왕설래 하더니, 드디어 “급진 의제화 전략으로 개헌론에 개입”하자는 주장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그동안 안 팔리던 헌법분야를 블루칩으로 승격시켜준 노무현에게 감사해야할까? 천만에 말씀이다. 노무현의 개헌론은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 추진했던 개헌전술의 21세기형 재현일 뿐이다. 노무현은 개헌을 하더라도 현행 헌법 상 자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정략적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개헌의 결과가 노무현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던 그렇지 않던 간에 노무현이 발의하겠다는 “원 포인트 개헌”은 집권세력의 정권안정을 위한 것이지 민중의 삶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헌법은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이라는 틀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그 헌법이 가지고 있는 일단의 보편성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이 발의하겠다는 “원 포인트 개헌” 안은 정치에 대한 민중참여를 배제하고 거대정당 위주의 권력체계를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보편성의 틀을 해하려 하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다.

더불어 이 기만적인 개헌론에 결합하여 헌법 제 몇 조 몇 항을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는 안을 내놓는 것 역시 별로 실익이 없는 행위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조문의 문구를 변경하는 논의는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아니, 지금이라도 당장 그런 안을 만들어내는 것은 문제거리도 안 된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상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구호로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그 이상에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 ‘급진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작업들이다. 여기엔 “개헌”이라는 말조차 불필요하다.

필자에게 맡겨진 원래의 주제와 관련하여

원래 필자에게 맡겨진 주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악움직임 등과 관련하여 헌법 제18조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 또는 “급진적 의제화”를 구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해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헌법 조문의 변경에 관해서라면 지금 있는 그대로도 유용하다. 다만 “국민”을 “인민” 또는 “누구나”로 바꾸는 정도면 충분하다. 이건 모든 기본권 조항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통신비밀보호를 규정한 헌법 제18조나 이와 관련되어 사생활 보호를 정하고 있는 제17조에 특정한 사항은 아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악은 이 사회가 아직까지 경찰국가의 구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결국 이것은 개헌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이며 남한 사회의 구성원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얼마나 관심과 신념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헌법 조문을 어떻게 바꾸든 사회의 역관계가 변화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계속 재발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급진적 개입”을 해야 할 것이 개헌논의인가?
덧붙이는 말

윤현식 님은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 집필 지연의 변 -
이 원고는 애초 정해졌던 마감일자를 훨씬 지나 작성되었다. 이미 작성한 원고가 있었지만 완전 폐기하고 새로 원고를 작성했다. 원고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간단히 변명을 하자. 우선 필자가 가지고 있는 개헌에 대한 입장과 본 기획특집이 가지고 있는 일단의 방향성에 상당한 간극이 있었다는 점이다. 필자에게 맡겨졌던 소재는 “통신비밀보호”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이 상황에서 “통신비밀보호”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논할 필요가 있는지 그 자체가 의문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한미 FTA의 진행추이가 이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간이 필요했다. 한미 FTA와 개헌이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는 다시 부연하겠지만, 일단은 중대한 사회적 의제가 어떤 형태로 일단락을 짓는지를 보고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점, 편집자와 독자의 양해 있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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