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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서평] 장애인운동 최초의 진보적 분석 입문서

장점 몇 개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김도현, 2007, 메이데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반가웠다. 이 책은 현 시기 장애인운동에 꼭 필요한 내용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세상에 나오길 무척 소망했다.


필자는 2004년 한국장애인운동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쓴 적이 있다. 그 때 장애문제 및 진보적 장애인운동에 관한 입문서 하나 없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장애인의 현실처럼 변혁운동 내에서도 장애인운동에 대한 고민과 이론적 연구가 없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장애인운동뿐만 아니라 진보적 사회운동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을 몇 가지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0여 년 이상 장애인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현장활동가의 치열한 고민과 열정이 살아있는 장애문제 및 장애인운동에 대한 최초의 입문서라는 점이다. 현장활동가답게 장애인운동 내부의 구체적인 쟁점 및 문제를 세심하게 정리하고 있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장애문제 및 장애인운동의 현실에 천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현장보고서이다.

둘째, 저자는 현장활동가에 머무르지 않고 문제의식을 이론적 영역으로 확대하여 끊임없이 장애인운동에 대한 과학적 이론을 마련하고자 한다. 실천과 이론의 변증법적 발전처럼 투쟁에 대한 분석과 이론의 확대를 끊임없이 통일시키려고 애쓴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현 시기 한국장애인운동에서 꼭 필요한 작업이라는 장애인운동가로서의 사명감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한국장애인운동의 현 단계는 처절하게 투쟁해온 장애인운동의 성과를 조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적으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라는 전국적 규모의 진보적 장애인운동 조직이 있다. 물론 조직적인 성과도 중요하지만 장애문제 및 장애인운동에 대한 좌파 이론이 부재한 상황에서 장애인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쟁점들을 정리하고 과학적 이론의 토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론적 정립과정이야말로 향후 운동의 실천방향을 제시해주며 장애인 대중의 치열한 투쟁의 성과물을 장애인 대중에게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장애인운동이 또 하나의 무기를 갖기 위한 작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장애문제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장애인이 처한 현실이나 장애인운동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장애문제를 인간학적, 사회.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거꾸로 서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상식을 바꾸게 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

이 책의 다양한 사례와 문제인식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우리들의 삶을 훨씬 깊이 있게 하는 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필자 역시 장애인이다. 그리고 지금은 진보적 사회운동에서 한 발 비껴나 있지만 오랜 시간 변혁운동의 중심에서 진보적인 사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인간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내고자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애문제에 대한 현실과 이론을 접하면서 참으로 부끄럽고 놀라웠다. 그동안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너무도 당연시 여겼던 것, 또는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소중한 변화를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볼 때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그리고 장애인운동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며 세상을 바꾸 나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운동이나 개인의 삶에서도 틀림없이 경이로운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피하기 어려운 질문들

1부에서는 장애의 개념에 대한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장애에 대한 시혜와 동정, 봉사, 극복 이라는 주류적 시각, 장애에 대한 의학적, 비정상성에 대한 정의를 비판하면서 장애를 사회적인 것이자 사회적 억압의 한 형태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사회의 성립과 발전과정에서 장애문제가 어떻게 극대화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1부의 장애문제에 대한 개념정리는 3부의 진보적 장애인운동이 반자본운동의 한 형태일 수밖에 없다는 이론적 토대를 만들고 있다.

2부에서는 장애인운동의 구체적인 사례 및 영역에 대해 서술하는데 현장활동가의 장점이 충분히 돋보이는 부분이다. 2000년 이후 장애인운동의 투쟁전선이었던 이동권투쟁, 교육권, 장애인노동권, 탈시설과 자립생활운동, 장애인부모운동과 당사자주의에 대한 시각, 농(聾)문화의 독자성 등 장애인운동 내의 쟁점과 장애인문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해왔던 문제같지만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시각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생각해 볼 문제가 많은 영역이다.

3부에서는 먼저 보수관료화되어 있는 주류장애인계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1, 2부에서 장애의 개념, 장애문제, 장애인 권리투쟁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고찰을 토대로 핵심적인 주제인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현실과 향후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진보적 장애인운동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념규정과 장애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왜 기존의 사회체제와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장애인운동이 왜 반자본운동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신과 수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수화는 독자적인 언어인가?’
‘인간의 가치중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평균, 표준 이데올로기에 얼마나 젖어 있었나?’
많은 질문을 하게 되고 이러한 사색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피하기가 어렵다.
더 나아가 장애인의 현실, 장애문제, 진보적 장애인운동에 대한 총괄적인 정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책머리에 이렇게 쓰고 있다

"… 장애문제를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관점과 고민을 던져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거리에서 자신의 삶을 걸고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장애대중과 활동가들에게는 술 한 잔하며 이야기 나눌 때 좋은 안주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진보를 고민하며 이론적 실천을 수행하고 있는 지식인들에게는 장애문제에 개입하여 연구하고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작은 자극제가 되기를 바란다."

저자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장애인으로서, 그리고 차별없는 평등세상을 소망하는 개인으로서도.
자신의 삶을 건 장애인 대중들의 치열한 투쟁의 성과가 제도 내에 안주하여 소수 주류계 장애인집단에 돌아가지 않고 고스란히 장애인 대중에게 돌아갈 수 있기 위해, 그리고 진보적 장애인운동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사회 곳곳의 작은 힘들이 보태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말

고춘완 님은 아산외국인노동자센터 이주여성분과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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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둥이

    저도 이렇게 거침없이 읽히는 책을 오랫만에 접했습니다. 김도현 동지가 그간 현장에서 활동하고 익히고 얻은 모든 것이 이 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더군요. 발상이 확 바뀌는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표지도 제법 이쁘군요. 진보적 사회 운동을 고민하는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 ????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이 저도 반가웠습니다. 허나 한편으로는 책을 읽고 나니 더 무거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편견들...
    칼럼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더 깊은 삶의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같이 나누었으면 하네요..

  • 프락시스

    너무나 꼼꼼하고 세심한 서평 감사드립니다.
    많이 부족하고 거친 책인데, 과분한 평가를 해주셔서 많이 쑥스럽군요.
    오래전 여의도에서 집회때 뵌게 마지막인거 같은데.. 잘지내고 계시죠?^^
    활동하다 보면 또 뵙고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늘 건승하시길!!

  • 처음처럼

    서평이 올라왔군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우총평이라는 이가 '식당가를 전전긍긍하며 어렵게 밥을 사먹었지만, 주변시선으로 주눅들었다'는 말을 지난 90년대에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이는 그나마 다닐 수는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말한다면 괘씸할런지요. 지난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투쟁 결의대회에서 한 지체장애인 연설자는 "시해와 동정으로 우리를 대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 그래서 이렇게 거리로 나섰습니다"며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에 날카롭게 성토했습니다. 40만이 넘는 중증장애인을 문밖으로 나오게 해야겠습니다. 장애운동이 부문운동을 뛰어 넘어 전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일을 해내는 중요한 한권의 책이 된다면 참 좋겠어요. 고생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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