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레짐의 해체와 최민희

[특별기획 : X맨은 바로 너!](4) - 최민희라는 민주언론

최민희 방송부위원장에 관해 글을 한번 써보란다. 망설여진다. 작년 한참 방송위원과 KBS 이사, EBS 사장 선임 과정을 둘러싸고 내 나름의 목청을 높일 때라면 그렇게 주저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를 위한 시청각미디어분야 공동대책위원회 구성을 서두르면서 본인이 속한 문화연대가 최민희 씨가 속한 민언련과 나름의 시각적 차이를 드러내고 일정한 긴장 국면을 형성하고 있을 때라면 더욱 흔쾌히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글을 쓸려고 하니, 대체 그놈의 ‘각’이 잡히지 않는다. 과거의 원망을 늘어놓을 수도 없고, 현재 맡고 있는 공적 직책의 수행성에 관해 평가하기도 그렇다.

대체 이 망설임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문제없는 데 괜히 문제 삼아야 하는 곤혹함인가, 아니면 문제 많은데 말하기 불편하다는 것인가?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대로 적어 보자.

지금까지 최민희 씨는 언론개혁, 나아가 사회운동 진영의 최고.최대의 브랜드였다. 포스 많고 카리스마 넘치는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민언련이 제3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은 2004년, ‘한겨레21’이 그녀를 ‘언론운동의 투사’라고 이름 붙인 것도 결코 과장은 아닐 성 싶다. 20년에 걸친 결코 녹녹치 않은 운동의 이력은 충분히 평가 받을 만 하고 본 받을 가치가 있다. 아무튼 민언련의 ‘대모’라는 평이 결코 낯설지 않았으며, ‘민언련=최민희’라는 등식도 별반 이상하지 않았다.

민언련이 언론운동을 대표해 온 최근까지의 상황에서 결국 최민희 씨는 미디어운동권의 대모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리라. 문제는 그 모권적 권위의 균열, 해체로부터 비롯되었다. 아버지 질서에 대한 아들의 반역에 버금가는 딸들의 어머니 권위에 대한 의미심장한 위반이 시작되었다. 전혀 다른 결의 젊은 활동가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 반대, 반자본 대안세계화 투쟁의 강도가 심화되면서 본격화된, 큰 이가 더 이상 통제 못하는 작은 이들의 출현이다.

이 새로운 변종의 청년 활동가들은 명성 높은 아버지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다. 명망가 어머니의 가르침에 대해 쉽게 순종적이지도 않다. 고분고분하지 않고, 한마디로 발랑 까졌으며, 무례하기조차 하다. 그렇지만 발랄하고 창의적이며 구태의연하지 않아 보기 좋은 면도 많다. 또박또박 말대꾸하며,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는 데 결코 주저함이 없다. 위의 지시를 기다리기보다는 아래로부터의 활동을 만들어내는 만듦의 선수들이다. 국가와 자본, 시민사회의 모든 권력에 삐딱한 시선을 던지는 래디칼들이며, 질서 순종적이기보다는 질서 이탈적인 좌파들이다.

이들은 일 점 중심의 체제에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인다. 기본적으로 분자적이고 리좀적인 성향을 지닌 탓이고, 근본적으로 평등하고 민주적인 방식의 연대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신문’ 사태가 이를 입증한다. 시민사회 내부 소위 ‘어른들’이 대충 사태를 해결하려고 해도, 이들은 끝까지 정리할 것을 고집한다. 이들은 정치적 타결, 절충을 혐오한다. 내가 봤을 때 그렇고, 내게 대해서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일관된다.

나는 이들 젊은 활동가들의 등장이 언론개혁운동 레짐에 중대한 단절의 시간을 가져왔다고 본다. 전국언론노조와 민언련, 과거의 언개련을 지도하는 소수의 대표를 중심으로, 개혁적인 정치권 일각과의 끈에 기초해, 세미나와 토론회 등의 조직화된 담론체인을 통해 재생산되어 온 ‘앙시레짐’의 종말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수 독점적 지도체제의 민주적 종식이다. 다중적 개방화다. 특정 단체, 특정 계보, 특정 인물 중심의 운동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모든 게 연대와 교통․교제의 대상일 따름이고, 모두가 활동가 집단 중 한 명일 따름이다. 해당 조직에 대한 평가, 해당 활동가에 대한 평가는 그/녀가 보여주는 운동의 목표와 과정, 성과에 의해 이루어질 뿐이다. 그가 어떠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지, 그녀가 운동권 안팎에서 어떠한 힘을 발휘해 왔는지, 그 단체의 정치적 위력은 어떠한지 여부는 전혀 의미가 없다. 과거기록이 아닌, 진보구상이 관건이다. 문화연대, 본인의 활동도 이런 공통된 잣대에서 평가되는 게 단연한 일. 선생의 거세, 대모의 죽음, 말씀의 위축.

패러다임의 변환이 이렇게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달리 평가코자 했던 ‘중앙일보’는 절대자본의 매체로 확고히 자리를 자리 잡았으며, 단어를 폐지할 것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던 조.중.동은 신자유주의의 삼각동맹체제로서 한 치 흐트러짐 없는 단결력을 보인다.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은 불행하게도 공적영역으로서의 그 어떠한 힘도 못쓰고 있으며, 대통령과 정권은 바로 지금도 ‘언론과의 전쟁’이라는 정치로 바쁘다. 언론노조는 내부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한 휴지기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언론개혁운동’이라는 기존의 한계를 넘어 ‘미디어진보운동’으로의 재구성을 꿈꾸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발칙한 상상력과 엽기적 운동성의 선수들이다. 미디어를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자본의 공격 속에서, 선전국가의 통제 속에서 혁신을 통해 구제코자 욕망하는 좌파 진보적 운동가들의 시대다. 되돌아올지 모를 최민희 씨가 이 새로운 지대, 변화된 조건, 새로운 주체들과 어떻게 대면할지 그것이 궁금하다.
덧붙이는 말

전규찬 님은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으로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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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 , 개혁언론 , X맨 , 최민희 , 미디어진보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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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

    짱입니다~ 짝짝짝짝
    모자도 참 멋지시고 ㅋㅋ

  • 선생

    역시 학생들은 세상을 몰라~~~
    교수들이 공부하고 글 쓰는 것 봤냐?
    모자 멋지면 다냐?
    교수 직함 달고 이런 쪽 팔리는 글 썼는데도 손뼉 쳐주는 멍청한 학생이 있으니 쯔쯧~~ 대한미국에서 교수노릇 해먹기 정말로 식은 죽 먹기네.

  • 재구성

    '재구성'...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 지 기대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aimar37

    X맨은 바로 너,1-3은 노무현, 4는 최민희..이게 대체 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런 글들이 운동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인가요? 노무현은 그렇다치고 최민희는 정말 쌩뚱맞네요. 운동 내 주도권 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요. 전 선생님의 활동에 지지를 보내지만, 이 글은 아닌 듯 합니다. 돌아오게 될지도 확실치 않은데, 운동판 변했으니 각오하라는 것도 아니구..도대체 이런 글이 한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거 외에 어떤 도움이 됩니까..이건 적에게나 쓰는 글인거 같은데, 문화연대와 민언련은 적이 되었나요? 슬프네요.

  • ???

    1. 노무현 다음에 최민희가 나온 것 자체가 왜 생뚱맞은 거지요? 혹시 내용이 생뚱맞나요?

    2. 왜 주도권싸움으로 보인다는 건가요? 최민희의 활동에 대해 현재 운동의 상황과 맥락을 바탕으로 평가하면 각오하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나요?

    3. 서로 평가하고 문제제기하면 적이되나요?

    4. 왜 슬프세요?

  • aimar37

    전규찬 선생님의 활동에 대해 지지를 보낸다는 전제하에서 슬픕니다. ???님은 제가 막연히 민언련 편이나 드는 것처럼 느끼실 수 있겠지만,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위의 글은 꼭 최민희를 지목하지 않았어도 되는 글입니다. 최민희에 대한 님의 평가와 제평가가 다를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 X맨은 바로 너에서 꼭 최민희를 겨냥해야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저는 문화연대와 민언련의 운동 스타일이 다르고, 역사도 다른만큼 서로 연대를 잘하면 언론운동, 미디어 운동이 한층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보이는 바로는 그런 거 같지 않습니다. 민언련이 미디어운동 판에서 독점권력을 행사하려 했다면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걸 발전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상대를 견인하지 못하는 운동도 좋은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좌파(세밀한 의미는 아닙니다)의 민언련 비판은 과한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민언련도 지금의 틀을 깨고, 혁신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위 글은 변화하는 미디어운동의 흐름을 다룬 글인데, X맨으로 최민희를 겨냥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노무현, 정치권386과 최민희 (더불어)민언련을 등치시킬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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