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 인권단체연석회의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바로 평화

[기고] ‘평화시위집회문화 시민모임’에 대한 우려

최근 교통방송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시내 교통 정보 중 하나는, ‘시내 주요도로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어 교통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등의 멘트일 것이다. 교통방송에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에서도 ‘***집회 때문에 **도로의 교통이 몇 시간동안 마비되었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집회=교통체증’이라는 공식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지난 4월19일 명동에서 열린 첫번째 '집시법 불복종 행동' 에서 집시법에 반대하는 인권단체들이 저마다 피켓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참세상 자료사진

이와 비슷한 공식으로는 ‘집회=불법집회=폭력시위’가 있을 것이다. 한미 FTA 협상 진행과정에서 이택순 경찰청장은 수차례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 엄정히 대처하겠다’고 했으며 한덕수 총리는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수호하는데 앞장서야할 경찰과 정부가 열리지도 않은 집회에 대해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한미 FTA 반대 집회는 모두 불법, 폭력집회일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각인시키는데 앞장 선 셈이다.

그러나 집회 시위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사망한 고 하중근, 고 홍덕표, 고 전용철씨의 사례처럼, 폭력을 쓰며 살인까지 저지르는 쪽은 시민들이 아닌 경찰과 정부이다.

하루 세끼를 라면으로 때우면서도 오늘 내일 직장에서 잘려나갈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는 비정규직들, 하루 살기도 빠듯한데 올라가는 집값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리는 하는 빈민들,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버스에 몸을 묶고 외치지 않으면 평생 집밖에 나와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을 가진 장애인들. 이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거리밖에는 없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립되었다고는 하지만 정책결정자들의 책상은 여전히 멀고 높으며 ‘못 배운’사람들에게 세련되고 어려운 언어로 정리된 권리 조항들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인 거리에서 경찰과 정부는 목소리를 듣기보다는 방패로 찍고 곤봉을 휘둘러 그들의 입을 막기에 정신이 없다. 그들의 평화는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가 아닌 공적인 권력을 남용해 시민들의 권리를 짓밟는 행위일 뿐이다.

  참세상 자료사진

그래서 이번에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는 ‘평화시위집회문화 시민모임’에 대한 우려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작년 1월 정부와 공동으로 구성한 ‘평화적 집회시위문화정착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에 참여했던 일부 민간위원들로 구성될 이번 모임은 이 사회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에 힘쓰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교통체증을 없애기 위해 시민의 기본권을 가로막는데 급급한 정부와 경찰의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참세상 자료사진

앞서 말했듯 그간 집회시위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집회, 시위가 이뤄지는 사회 정치적 상황을 무시한 채 불법, 폭력집회라는 딱지를 붙이기에만 급급했다.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집회는 집회당사자인 시민들과의 연대와 실천, 토론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시기 민관공동위원회에서 발표했던 ‘평화적 시위’를 위한 대책들은 실상 경찰과 정부의 폭력적인 ‘평화’의 의미를 그대로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집회 당사자들을 배제한 채 ‘평화적 시위’를 말하는 것은 인권과 생존,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시민들에게 또 다른 폭력의 굴레를 씌우려는 행태와 다름 없을 것이다.

진정 이야기해야 할 것은 ‘평화적 시위’가 아니라 ‘평화적 사회 구성’이어야 한다. 60만명의 비정규직과 안정적인 노동환경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36만명의 이주노동자, 소위 민주사회에서도 아직 차가운 감방안에 수감되어 있는 양심수들을 생각해볼 때 우리에게 필요한 ‘평화’는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레이 님은 인권단체연석회의 경찰대응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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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 집회 , 폭력시위 , 불법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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