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의 꿈은 고작 자전거 뒤에 신애를 앉히고 푸르른 숲길을 도는 것뿐이었다. 동생에게 세고비아 기타를 사 주고 동생을 뒷바라지 하는 일이 민우가 꾼 꿈의 전부였다. 이 주일이 나오는 <한 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영화를 보러 극장 가던 날, 민우가 택시를 몰던 푸르른 숲길의 정적이 깨지고 화려한 휴가의 꿈도 박살나기 시작했다. 공수부대가 극장 안으로 도망친 학생을 곤봉으로 개 패듯이 패고 최루탄이 극장 안을 뒤덮던 날, 민우, 진우, 신애의 운명 또한 연기에 휩싸였다.
민우의 화려한 휴가가 군부의 짐승같이 잔인한 휴가에 의해 송두리째 날아가기 시작했다. 푸른 숲길은 전남대 정문 앞 팍팍한 아스팔트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도청 앞 피비린내 나는 길거리로 변했으며, 최음제를 먹고 개처럼 날뛰는 공수부대의 곤봉 밑에서 머리 터지고 살점이 찢기고 터져 나갈 정도로 얻어맞는 광주 시민들의 주검이 쌓이는 핏빛 거리로 변했다. 27년 전,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 세력은 정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광주를 거대한 공동묘지로 개장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우와 먹으려고 깍두기를 버무리던 민우의 벌건 손에 진우의 몸에서 터져 나온 빨간 피가 묻을 줄 누가 알았으랴. 신애의 손 한 번 만져 보지 못한 민우의 손에 군부의 총구에 저항하는 총 자루가 쥐어질 줄 누가 예감했을까. 신애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 본 민우가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줄, 신애의 몸 한 번 껴안아보지 못한 민우의 몸을 군부의 총알이 작열하듯 관통할 줄 어느 누가 예측이나 했을까.
군부 세력은 민우의 화려한 휴가를 탱크로 밀어 버렸다. 광주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던 80년 민중들의 평범한 인생의 꿈들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 세력은 <일해공원>에 살아 있다. 푸른 숲길을 민중들의 빨간 피로 물들인 그들이 푸른 숲의 공원을 군부세력 기념공원으로 탈바꿈 시켜 버렸다. 세월이 너무 흘렀다. 너무 빨리 흘러가 버렸다. 민우가 화려한 휴가를 채 떠나 보기도 전에, ‘데리러 와 주실 거죠’라며 울부짖던 신애의 말을 채 지키기도 전에, 진우랑 대장이랑 결혼식 사진 한 장 박기도 전에. 아니 그것이 아니다. 군부의 곤봉과 군화 발과 총구의 폭력 밑에 스러져 간 민중, 학생, 시민들의 한이 채 풀리기도 전에 세월은 야속하게도 너무 빨리 흘러간다.
난, 화려한 휴가나 떠날란다. 난 미치도록 화려한 휴가가 그립다. 총구의 폭력, 군부의 폭력이 이랜드를 덮친 물대포의 폭력, 자본의 폭력으로 변신한 지금, 정말 죽을 만큼 화려한 휴가가 그립다. 총구의 폭력보다 잔인하고 질긴 유연한 폭력이 지배하는 파업 현장에서, 농성 현장에서 화려한 휴가를 꿈꾸고 싶다. 울면서, 광주를 잊지 말아달라며 차 타고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던 신애의 얼굴이 페이드 아웃되는 자리에서, 비정규보호법안의 희생양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지금, 폭음을 피해 나도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화려한 휴가를 떠나고 싶다.
- 덧붙이는 말
-
이득재 님은 대구카톨릭대 교수로,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