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은 마침내 철거되는가

[최인기의 사노라면] 동대문운동장 소회

같은 공간 같은 장소라 할지라도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인식의 편차는 천차만별이라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령 어느 공간의 거대한 바위에 대하여, 고고학자의 눈에는 수천 년 선인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역사적 유물인 고인돌일수도 있고, 개발업자에게는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뚫는데 방해물이거나 부숴 버려야 돌덩어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역사문화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와 단순히 바위덩어리로 보는 이들의 인식의 차이로 지금도 서울 곳곳에서 공간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대립의 칼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곳 중의 하나가 바로 동대문운동장 부지를 둘러싼 보전이냐 개발이냐의 대립이다.

한국의 기형적인 도시화는 과거의 흔적들을 파헤쳐 해체하거나 난개발로 지워나가는 것이어서 장소의식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듯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 본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를 통해 로마라는 도시를 상상하고, 프랑스 연인의 멋진 로맨스가 돋보였던 ‘퐁네프의 연인’을 통해 프랑스의 세느강가를 상상한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소위 눈부신 한국의 개발과 도시화는 우리에게 어떤 추억과 기억을 남겨 주었나?

과거의 흔적이 미끈하게 지워진 서울을 거닐면서, 오늘의 서울 사람들에게 이곳은 더 이상 과거를 회상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집과 도시, 그리고 공간은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대표적인 주거공간인 아파트만 하더라도 1970년엔 단독주택과 아파트의 비율은 88.4% 대 4.1%였으나 2005년엔 단독주택 19.8%, 아파트 54.3%로 역전됐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아파트와 단독 주택의 비율만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교류가 차단되어가는 소외의 공간구조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의 또 다른 얼굴이 비율로 표상화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서울을 국적 없는 도시, 회색빛 도시로 이야기 한다.

골목길 구석구석 터져나오는 아이들의 함성소리, 동네 어귀마다 마실 나온 할머니들이 주는 옥수수나 감자 같은 것들, 지나간 기억을 끈질기게 더듬는 것은 구시대의 통념에 갇힌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새롭게 지어진 고층빌딩과 건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단독주택 규제방안을 실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늦었지만 잘 한 일이다. 주택 유형의 다양화를 통해 구릉지가 많은 서울의 자연 경관을 보호하고 다양한 계층이 어울려 살도록 하면서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에 공감을 하면서도 같은 시간에 무차별 공사와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덧붙여 중단을 해야 할 것이다.


가령 동대문운동장 철거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청계천 주변에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동대문야구장과 축구장 사이를 가로질러 가면 그곳에는 서울 4대문 안에서 가장 크다는 멋진 수영장이 언덕 위 포플러 숲속에 버티고 있었다. 지금도 그곳에 솟아있던 거대한 다이빙 틀을 잊지 못한다.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롯데월드 수영장이나 캐리안베이의 다이빙대도 이보다도 더 멋지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유년 시절의 추억은 무엇 보다고 대체 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그런 것이다.

한 가지 더 소개를 하자면 경기가 끝나갈 후반전 무렵에는 축구와 야구경기를 공짜로 관람이 가능했다. 나보다 세 살 만은 친형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축구장에서는 연고전을 구경할 수 있었고, 고교야구경기는 단골로 관람을 했다. 축구경기나 야구경기 못지않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익살스러운 응원과 구경꾼들의 만담이 더 재미난 구경거리였다.

이 모든 유년기의 추억들은 이곳은 고스란히 동대문운동장을 지날 때마다 회상되어 입가에 웃음을 짓게 만든다. 야간에 불을 밝힌 거대한 경기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 사이로 아이스 바나 냉차를 파는 노점상들을 보며 형의 손을 잡아끌었던 기억을 비단 나만 가지고 있을까? 얼마 전 한 일간지의 칼럼에서는 공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로만 인가르덴’이라는 서양의 철학자는 실존적 장소의식이라 명명한 바 있다.

며칠 전 동대문야구장에서 마지막 청룡기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제 이곳을 철거 한다고 한다. 만약 이곳이 철거가 되면 우리들의 기억도 철거가 되는 것일까? 새롭게 지어진 패션타운은 우리에게 또 어떤 것들을 우리에게 물려줄까?

동대문운동장 풍물벼룩시장의 노점상들에게는 비공식적으로 몇 차례 만남을 통해 숭의여중 자리를 물색해 놓았다는 소식도 있다. 투명행정을 해야 할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 철거반대를 위한 기자회견을 가진 지 불과 24시간 만에 언론을 통해 그동안 뒷거래로 만난 사실을 공개를 한 것이다. 몰래 노점상을 만나 대책이라고 던져 놓고 또다시 동대문운동장을 철거 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

수십 년 전 청계천 복개공사로 밀려난 도시빈민들, 3년 전 청계천 변에서 노점상 단속 반대를 외치며 당시 이명박 서울 시장에게 유서를 써놓고 분신해 돌아가신 박봉규 씨, 그리고 수많은 노점상들과 철거민 세입자들의 삶에 터전의 박탈, 공간은 또다시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냐를 놓고 한판 승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노점상들은 철거해야 할 바위덩어리에 불과 하지 않다. 우리의 자손들에게 이곳의 역사상과 잘 보존된 근대 스포츠 문화유산을 물려주는 것도 당면 임무인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을 추억 속으로만 기억할 수 없는 이유인거다.
덧붙이는 말

최인기 님은 전국빈민연합 사무처장으로,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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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 서울 , 동대문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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