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선영] 이주노조

당신의 시선, 어디에 있습니까?

[고용허가제3년의 진실](4) - ‘아이 러브 코리아’를 강요하는 씁쓸한 자화상

정부에서는 8월부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합동단속에 들어간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안정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8월 17일이면 고용허가제 3년이 된다. 고용허가제 시행 3년이라는 시점과 집중단속이 8월에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듯 하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고용허가제 3년을 맞아 고용허가제가 과연 이주노동자에게 '약'이 되고 있는지, '독'이 되고 있는지 그 진실을 따져본다. 이번 글은 그 마지막으로 한국 및 운동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살펴본다. - [편집자 주]

중국 사천에서 온 N씨, 그는 한국말을 참 잘한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상도 탔고, 지금은 한국어능력시험 6급 준비에 바쁘다. 얼마전 N씨를 처음 만난 내가 누군가에게 그의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이야기하자, “나는 (이주노동자 중에) 그런 사람 보면 좀 무섭더라!” 는 대답이 돌아왔다.

태국에서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이곳에서 살고 있는 G씨, 쌍둥이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어 한국말 배울 시간이 없었던 G씨는 “한국말 몰라서 나 바보같아.. 바보!”라면서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걱정하며 한국어 공부에 열심이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G씨에게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한국 사람들, 한국말 너무 잘하는 외국사람 별로 안 좋아해요”.

한국에 온지 8개월된 베트남 친구 T씨, 회사에서 한국어를 할 기회도 별로 없었고 마땅히 배울 곳도 없어, 늘 영어로 대화를 시도한다. 그의 영어는 유창하지만, “여기는 한국! 한국에 왔으니까 한국말로 해야죠! 한국어 배우세요~”라는 처음 본 한국어반 선생님의 가르치려는 듯한 말 한마디에 어색한 침묵으로 굳어진다.

올 여름 우연한 기회에 만난 세 친구와 함께 있으면서 듣게 된 이야기이다. 말한 이들의 개인적인 의도와는 별개로, N씨와 G와 T씨를 향한 말들은 그 자체로 2007년 8월, 한국이란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를 향한 시선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왔으니 한국식으로 따라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조금은 어눌한 모습과 서툰 언어의 이방인 이주노동자. 이곳은 원주민의 땅이다.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

이주노동자 관련 법안의 논의가 활발히 시작된 2000년 이래로 고용허가제 결사반대를 외치던 변방의 목소리는 2003년 여름 무참히 짓밟혔다. 그리고 어느새 고용허가제는 시행 3주년을 맞이했다. 십몇년을 대책없음으로 일관하던 한국정부, 특히 법무부는 고용허가제의 시행과 함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향해 아주 노래를 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빰빰빰 빰빰빰 빰빰빰빰 빰빰빰...

음악이 흐르는 속에서 누군가의 팔은 꺾이고, 허리춤이 잡히고, 손에 수갑이 채워지고, 출입국관리소의 5층 유리창이 깨지며 사람이 떨어진다. 아무일 없다는 듯 음악은 계속 흐르고, 그 사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잡혀갔다. 해가 바뀔 때마다 고된 노동의 그늘이 하나둘 늘어가던 사람들이 사라진 자리에 이제 막 스물을 넘긴, 반질반질 윤이나는 피부의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왔다.

고용허가제가 만들어준 찬란한 합법의 목걸이는 공장 기둥에 묶여있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인의 일자리를 침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나면 돌아가야 한다. 이주노동자는 정착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목줄을 단 채 하루하루 어떻게 일하며 살아갈까? 또 3년이 지나면 어떤 얼굴로, 어디에 있게 될까?

“우리는 이제 김치도 잘 먹어요. 한국말도 잘합니다. 한국경제를 위해 일했잖아요? 왜 이렇게 쫓아내려 하는거죠?” 라고 한 이주노동자가 집회에서 발언을 했다. 돼지고기 안먹으면 회식자리에서 왕따되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힘들지만 ‘동화’되었고, 열심히 노동했지만, 주어진 역할은 거기까지. 자본이 필요했던 건 잘 적응하는 노동력이었지 함께 살아갈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거대한 착취구조 속에서 저개발국 출신의 이주노동자는 언제든 갈아끼울 수 있는 부품이다.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노동력이 베트남에 필리핀에 인도네시아에 널려있는데, 쓰던 부품 버리고 새 부품 들여오면 되는데 합법화가 왠 말이고, 영주권이 왠말이냐 이거다.

이주노동자들을 돌려 보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귀환 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에서도 드러난다. 90년대 중후반, 홍콩 AMC(Asia Migrant Center)의 지원으로 한국에서는 외노협을 중심으로 시작된 귀환프로그램이 고용허가제 시행 후 정부의 지원 속에서 탄력을 받아 새롭게 부활한다. 몇몇 지자체에서도 아주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돌린다. 계속되는 ‘이주의 악순환’을 막고, 본국에 돌아가서도 잘 적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말 그대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듯 이주노동자들에게 저축을 하게 하고, 기술을 배우게 하고, 고향에 땅을 사게한다.

‘이주’라는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과 ‘악순환’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는 논의는 뒤로 놓더라도, 귀환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배경에는 이주노동자의 장기체류와 한국 땅에서의 정착을 부정하는데 있고, 고용허가제와 같이 단기로테이션 시스템의 유지를 위한 장치 즉, 보내야 할 사람들의 ‘귀국 촉진’ 에 있음은 너무나 확연하다. 결국 당신들은 “우리”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다가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에서 귀환해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한국에 온지 10년이 넘은 나의 오랜 친구 몇몇은 해 마다 몇월달에는 나라에 간다고 선언한다. 그 때 마다, 또 그 얘기야? 이젠 안 믿어! 라며 농담을 던지지만, 해마다 짙어지는 눈 밑의 다크 서클이며, 잘 되지 않는 연애 이야기, 지독한 외로움, 높아만 지는 유흥비 그리고 점점 더 설 땅이 없어지는 미등록의 현실을 생각할 때면 ‘정말 이젠 가야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속으로 한다. 그리고 나라에 돌아가서도 또 유럽의 다른 나라에 가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야말로 ‘이주의 악순환’이 떠오른다. 하지만 사람이 나라를 떠나 이주를 하고 또 이주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악순환’이나 고통이 아니다. 일자리를 찾아, 살고 싶은 곳을 찾아 이주를 해서, 이주한 곳에서 일한 만큼의 댓가를 얻고, 애인도 만나고, 가족들과도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국제 이주는 고통이 아니라 먼 거리의 이사일 뿐이다.

문제는 이사한 사람이 아니라 이사한 동네에 있다. 극악한 노동조건이, 인종주의가, 온갖 법적인 규제와 장벽이 이주자의 몸뚱이를 갉아먹고, 십수년을 애인없이 살도록 만들고, 가족과 단절된 고통 속에서 방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주노동자 스스로 자신을 돌아가야 할 사람으로 만든다. 요즘 세상에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법이 어디있나? 지구촌 가족이 어쩌구, 세계화가 어쩌구 하면서 왜 이사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나? 마음 같아서는 절대로 자발적으로 나라에 돌아가지 말고, 이곳에서 터를 잡으라 이야기 하고 싶지만, 그러기에 지금의 현실은 참 척박하다.

안타까운 사람들 그리고 아,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들 한다. 고용허가제도 시행되고 말이다. 그런데 고용허가제와는 별개로, 한국에서 오래 산 이주노동자들도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면서 좋아졌다고 한다. 90년대 초중반에는 지하철에 앉아 있으면 아무도 옆에 앉지를 않아 민망하기 이를데 없었고, 술취한 아저씨들은 무조건 시비를 걸고, 폭언,폭행은 기본에다가 옵션으로 임금체불, 산재는 다반사인 작업현장. 그 때 생각하면 지금은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도 많이 알려졌고, 공장에서도 일상에서도 그래도 좀 살기가 나아졌다는 것이다. 일면 맞는 말이다. 억압이 있는 곳곳에서 온몸으로 저항했던 이주노동자들이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 수는 없다. 누가 프레스가 앗아간 뭉뚝한 팔뚝을 카메라 앞에 드러내고 싶어하겠는가? 어떤 사람이 그것도 다 큰 어른이, 짐승처럼 얻어 맞았다며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겠는가? 그런데 수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그렇게 했다. 자신의 분노와 아픔이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 카메라 앞에 섰고, 거리에 나와 고통을 호소했다. 그래서 20년이 지난 이제는 좀 나아졌다. 낯설고 꺼림직하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이상한 존재에서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람들로.

하지만 마음 착한 이들의 이주노동자를 향한 온정적인 시선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원주민으로서의 우월성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보낸’ 그렁그렁한 눈망울과 따뜻한 손에는 나보다 못한 이에 대한 시혜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위험하고 그래서 차별은 더 교묘해지고 있다. 마치 한 때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며 연약한 여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자 했던 남성이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권리에 대한 요구가 더 세밀해질 때, 강경한 안티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기득권자들의 시혜는 권력관계를 더욱 명료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더 이상의 시혜를 거부할 때, 권력은 위협을 느껴 그 본색을 드러낸다. 2000년, 고용허가제 반대를 외치며 이주노동자들의 주체 투쟁이 시작되었을 때, 이주노동자들의 대부로 군림하던(지금도 군림하는) 몇몇 종교인들이 투쟁하겠다고 나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보여준 아연실색과 강한 거부감이 그러하다. 불쌍한 이주노동자 돕기 캠페인을 주도적으로 하는 보수 언론이 이주노동자 노조결성은 이 사회를 위협하는 것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행태가 그러하다. 이주노동자가 ‘한국 사람’ 처럼 한국말을 잘하면 한국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우리” 밑에 있는 “다른 이들”로서의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갈 수록 안타까운 시선은 의심의 눈빛으로 그리고 이주민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날 위험을 가득 안고 있다.

비슷한 맥락 속에, 고용허가제 시행 후 문화관광부가 수억의 돈을 풀어 해마다 판을 벌리는 이주노동자 다문화 축제가 있다. 다문화 축제! 좋다. 한국사회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 대단히 업그레이드 된 듯 보인다. 그런데 왜 이름은 마이그런트 ‘아리랑’이지? 하루종일 각 나라의 문화와 음식을 알리는 부스에 있던 이주노동자들에게 ‘아이 러브 코리아’를 외치게 했던 다문화 축제의 밤이, 그 대단원의 막이 어찌나 씁쓸하던지. 자국의 문화를 한국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나라별 부스를 마련하고 뙤약볕 아래 땀 흘리던 이주노동자들의 소박한 바램은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에 동화 되기를 강요하는 그들의 아리랑 속에서, 한국 사랑의 외침 속에서 산산히 흩어진다. 그들의 다문화 축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출신국인 아시아 저개발국가에서의 팍스코리아나를 꿈꾸고 있는 것 아닌가? 아, 대한민국!

당신의 시선

비인간적인 단속추방 중단,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비자 쟁취 그리고 영주권, 시민권 쟁취. 이주노동자에게 빼앗긴 노동권과 인권을. 요구합니다. 동의하시나요? 이주노동자들의 문화과 음식과 언어가 이땅에서 오롯이 인정되고 어울어지는 다문화를 추구합니다. 맞지요?

운동진영에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이주노동자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연대해야 하는 당위성은 이제 낯선 이슈가 아니다. 또한 2000년부터 시작된 이주노동자 주체의 투쟁은 그 마디마디에 함께 했던 수많은 동지들의 지지와 연대로 척박한 조건 속에서도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여성과 남성은 평등해야 한다, 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위를 인정한다고 해서, 또 여성노동자 투쟁을 지지한다고 해서 운동권내 가부장주의나 운동권내 성폭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관계 속에서 여성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운동진영 안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시혜적인 시선, 인종차별주의적인 편견들 그리고 일상에서의 폭력은 심각하게 존재한다.

이주노동자 투쟁의 현장에는 언제나 함께 했던 한국인 활동가가 술이 취해 이주노동자들을 향해 반말과 욕설을 하며 폭행을 행사했던 적도 있었다. 처음 본 사람이 이주노동자에게 던지는 호기심 어린 질문들이 당사자에게 수치심과 불쾌함을 유발하는 것 정도는 다반사이다. 구호를 외치고, 당위를 인정한다고 해서 원주민의 땅, 대한민국의 한국인으로 자라난 사람들 깊숙이 박혀있는 편견과 차별의 시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누구도 예외는 될 수 없다.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나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이 갖게 된 기득권을 놓는 과정은 쉽지 않고, 사회적 포지션이 다른 문제는 끊임없는 일상의 성찰을 요구한다. 한국 사회에서 다수의 한국인에 속한 사람의 무의식적인 행동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되기도 한다. 인종차별주의자 되기는 남의 얘기가 아닐 수 있다. 이주노동자를 향한 시선, 이주노동자들과의 관계 맺음 그리고 일상의 언어와 행동에 대한 섬세한 고민이 없다면 말이다. 이제, 모두가 다 아는 타이틀과 구호에 머물지 말고 질문을 던져보자. 나의 시선은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덧붙이는 말

서선영님은 전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활동가이다. 현재는 서쎅스 대학에서 이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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