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수] 민주노동당

베네수엘라 제헌의회 소집이 시사하는 것

[기고] 차베스와 아옌데, 우리에게 주는 교훈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이 두 명의 현직 및 전직 대통령은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다. 차베스와 아옌데, 이 두 명의 혁명가는 선거를 통해 집권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선거전선체 인민연합으로 단결한 칠레 진보진영의 힘이 1970년에 선거에서 아옌데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면, 우고 차베스는 역시 선거전선체인 애국기둥을 통해 베네수엘라 진보진영의 힘으로 1999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 두 대통령이 다른 혁명가들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유 중의 하나는 영상매체의 힘이 크다. 1970년대 칠레 아옌데 정권을 다룬 다큐멘터리 3부작 <칠레전투>는 이남의 진보진영 내에서는 매우 유명한 작품이다. 차베스가 이끄는 베네수엘라의 혁명과정을 다룬 <볼리바리안 혁명> 또한 최근에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적으로 본 다큐멘터리다. 좀 생뚱맞지만 영상매체를 통해 잘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와 칠레는 모두다 중남미 국가들이다. 중남미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었으며, 베네수엘라와 칠레 모두 차베스, 아옌데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에는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1970년 당시 칠레 아옌데의 집권은 세계사적으로는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세력이 집권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 당시 사회주의 세력의 집권이란 무장투쟁을 통해서만 이뤄진다는 것이 진리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1998년 당시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대통령 당선은 미제국주의가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의 최대 피해지역인 중남미에서 제국지배의 첫 파열구를 만든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와 칠레, 차베스와 아옌데의 혁명과정은 이후 완전히 다른 경로를 거치게 된다. 1973년 9월 11일, 친미 보수 군인인 피노체트가 아옌데 정권을 전복하는 쿠데타를 감행하게 되고, 아옌데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피델 카스트로에게 선물 받은 기관총으로 끝까지 저항하다가 사망한다. 이후 피노체트 친미 군사괴뢰정권이 수만 명의 진보적 인사들을 살해하면서 독재의 광풍이 몰아치게 된다. 반면, 차베스 대통령은 2007년 현재 세 번째 대통령 당선을 통해 빈민을 위한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강화하고 혁명을 심화시키는 여러 조치들을 추진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두 정권의 이후 행보가 이렇게 극적으로 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두 정권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베스 정권과 아옌데 정권의 차이점을 고찰해보고 그것이 혁명과정에서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일 것이다. 12월 19일 선거투쟁에 나서고 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의 입장에서도 차베스 정권과 아옌데 정권에 대한 고찰은 향후 집권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군대에 대한 장악력의 차이

두 정권의 운명이 크게 갈린 중요한 지점중 하나는 바로 군대이다. 다큐멘터리 <칠레전투>에서도 잘 나오듯이 칠레의 진보세력들은 보수반동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군부의 불온한 움직임에 대해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보진영 내의 일부세력들은 정부에게 노동자들이 스스로 무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옌데 정부는 군부 내의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세력들과 연합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도를 했다.

하지만, 1973년 9월 11일, 대통령궁은 경찰과 군 병력, 장갑차, 탱크 등에 완전 포위되었고, 공중에서는 전폭기들이 선회 비행을 하고 있었다. 피노체트는 아옌데에게 해외 망명을 승낙할 테니 항복하고 떠나라고 했다. 사실 쿠데타 세력은 아옌데의 망명 비행기를 격추시킬 계획이었다. 결국 아옌데는 쿠데타 세력과의 전투 중에 사망하고 피노체트 군사괴뢰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아옌데 정권은 군부 내에 혁명을 지지하는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에, 차베스는 그 자신이 군대의, 그것도 공수부대의 중령 출신이다. 1992년 2월 4일에는 자국민 수천 명을 학살한 페레스 정권에 맞서 좌익 쿠데타를 감행할 정도로 군 내부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다. 1999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차베스는 개혁적 조치들을 실행하였다. 그리고, 2002년에는 베네수엘라의 핵심자원인 석유를 통제하는 국영석유회사 (PDVSA) 에 대한 개혁조치를 감행한다. 이 조치에 반발한 보수반동세력들이 2002년 4월 11일에 차베스 정부를 전복하려는 쿠데타를 감행하게 된다. 칠레의 1973년 9월 11일처럼.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칠레와 달랐다. 군부 내에 혁명을 지지하는 세력들, 특히 공수부대를 중심으로 48시간 만에 역쿠데타를 일으키고 여기에 대규모의 민중들이 차베스 지지시위를 벌임으로써 보수반동세력들의 정부전복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이러한 점은 이남의 진보진영에게도 시사 하는바가 크다. 주한미군이 대규모로 주둔하고 있는 남쪽의 현실은 칠레와 베네수엘라 이상으로 어려운 상황일지 모르겠다. 최근에 북이 핵실험을 성공하면서 평화협정, 정전협정 등 평화통일의 정세가 급격하게 실현되고 있다. 테러지원국 해제 등 가시적 조치들이 얘기되고 있다. 평화통일의 정세가 진전될수록 주한미군과 보수적 군부의 입지가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정세는 남쪽의 진보진영에게는 매우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는 것이다. 평화통일 정세를 더욱 진전시키는 실천에 나서면서 그에 알맞은 준비들을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위의 베네수엘라와 칠레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제헌의회 소집을 통한 기존 국가기구의 해체

1970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아옌데 정권은 행정부를 장악했다. 하지만, 당시 입법부인 의회는 보수양당이 절대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칠레전투>에서도 잘 나오듯이 보수적 의회는 행정부에서 제출한 개혁입법안 모두를 부결시켰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아옌데가 임명한 모든 진보적 장관들을 한명도 남김없이 탄핵시켰다. 선거를 통해 행정부를 장악하긴 했지만 국가권력의 일부만 획득한 결과는 너무나도 뼈아팠다. 브라질의 룰라정권이 신자유주의 쪽으로 경도되고 있는 것도 의회에서 PT당이 20% 정도의 의석만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크다.

차베스는 1970년대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이 대통령 선거 승리로 행정부는 장악했지만, 보수적 의회에 발목잡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결국은 피노체트의 반동 쿠데타에 의해 실패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 차베스는 1999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주요한 공약사항이었던 제헌의회 소집을 실행한다. 131명 중에서 대부분이 진보적 인사들로 구성된 제헌의회는 민중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헌법을 제정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헌법이 발효되면서 기존의 헌법은 폐기되고, 옛 헌법에 의해 구성되었던 국가기구들(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도 해체된다.

2000년에 새로운 헌법에 따라 새로운 국가기구를 구성하기 위해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새로 치른 베네수엘라의 혁명세력들은 대선, 총선, 지방선거 모두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함으로써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를 장악하게 되었다. 선거공간에서 제헌의회 소집을 함으로써 혁명의 주요한 목적중 하나인 국가권력 장악을 실현해 낸 것이다. 만약 제헌의회를 통해서 의회 및 사법부 등의 국가기구를 접수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보수 양당이 과반을 점유하고 있는 보수적인 의회가 사사건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고 결국 혁명은 제대로 추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제헌의회 전술의 핵심은 선거공간을 혁명적 공간으로 바꾸어내는 도구로써 제헌의회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차베스와 아옌데의 차이는 국가권력을 어떻게 전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천에서 갈렸다. 베네수엘라 제헌의회 소집은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에게도 큰 가르침을 준다.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대통령 선거만 승리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선거 승리는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뿐이다. 차베스와 아옌데의 사례는 선거승리가 전투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민주노동당 및 진보세력은 선거승리 이후에 곧바로 국가기구를 어떻게 판갈이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을 고민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의 제헌의회 소집 전술은 이 문제에 대한 중요한 모범을 제시한다.

12월 19일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여러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단순히 선거운동 잘해서 당선이 되면 만사가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당선 이후의 계획까지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칠레의 아옌데 정권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권력을 내주어야 하는 상황에 올수도 있다. 우리는 선거 이상의 기획을 가지고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기획, 우리에게는 이것이 절실한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말

임승수 님은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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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옌데 , 베네수엘라 , 차베스 , 차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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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곴

    지지율3퍼센트도 안되는 상황에서. 맥락도 없고~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립니다. 그리고 선행관계의 우선을 '오직 당선'으로만 보고 당선에 목매다는 것도 참 어불성설이고. 헛짓거리 안하고 민중들의 삶의 현장 곳곳에서 투쟁을 전개하고 북돋는게 민노당 선거운동의 가장 좋은 길이라고 봅니다.

  • 급진

    지지율이 기껏해야 후보는 2%, 당은 6%정도인 한국의 진보정당에게 어울리는 글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어쨋든 말하고자 하는건 각 분야에 걸친 전면적인 영향력의 확대, 뭐 이런걸 말하고 계시군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꼬집고싶은건, 북한의 핵무기가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평화국면을 가지고 왔다는 헛소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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