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선거 주인공은 선관위와 경찰

[기고] 선거법과 정보인권

예상이 틀렸다. 올해 선거에서 가장 맹활약을 한 것은 네티즌도, UCC도 아닌 선관위와 경찰이다.

지난 6월, 대통령 선거 180일 전을 기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소위 ‘UCC 지침’을 배포하였다. 인터넷에 이용자가 올리는 UCC가 정당 혹은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거나 추천하거나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UCC 뿐만이 아니다. 이용자가 자기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이, 선거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 그리고 정치인을 풍자한 패러디가 선거법 위반이라며 삭제하라는 선관위의 요구가 잇따랐다. 대형포털 네이버에서는 이용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정치 기사의 댓글란을 통째로 폐쇄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경찰은 경찰대로 앞다투어 네티즌을 소환하고 있다. 관할이 분명치 않은 사이버 공간을 두고 전국 각지의 경찰서가 출두하라고 요구하면서 피의자나 참고인의 마땅한 권리인 사건이송요청도 받아주지 않는다는 네티즌의 하소연이 계속되고 있다. 10월 30일을 기준으로 선관위가 인터넷의 글 삭제를 요청한 건수는 5만5842건에 이르고, 그 중에서 대선관련 글이나 동영상이 선거법을 위반해 수사 대상에 오른 경우는 561건(618명)으로 전체 선거법 위반 사건(827건)의 68%에 해당한다.

선거 시기에 수많은 국민이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엄포 효과는 확실했다. 2002년에 비하여 2007년 대통령 선거는 지나치게 조용하게 치러지고 있다. 제도언론이 입조심을 할 때도 과감한 비판과 후보자 검증을 멈추지 않았던 인터넷이 크게 위축되었다.

위축된 인터넷

선거법의 인터넷 규제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첫째, 선거운동기간 전. 일명 사전선거운동 금지 조항이다. 선거일 180일 전부터 후보자등록마감일(올해의 경우 11월 26일)까지는 누구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선거법 93조) 둘째, 대통령 선거운동기간 중(올해의 경우 11월 27일부터 12월 18일까지). 대부분의 국민은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만, 신원을 밝히고 해야 한다.(선거법 82조의6) 허위사실 공표나 후보자비방은 선거운동기간과 상관없이 언제든지 할 수 없다.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이어 보인다.

문제는 선거법과 우리 선관위가 인터넷에 올라온 정치적인 견해를 대부분 ‘선거운동’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후보를 지지하거나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기색이 있으면 선거운동이며, 결과적으로 그런 효과를 낳아도 선거운동이다.

선거법으로 처음 일반인이 구속된 것은 1995년 지방선거 때이다. PC통신 ‘천리안’에 개설된 ‘온라인 선거운동광장’에 당시 정원식 민자당 서울시장후보를 비방하였다는 혐의로 한 네티즌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컴퓨터 통신에 선거법이 적용된 첫 사례이자 ‘일반인’이 처음으로 구속된 사례로 알려졌다. 즉 컴퓨터 통신의 발전과 더불어 일반국민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반 국민이 선거에 참여하는 방식이란 ‘선거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전엔 표현의 자유가 말뿐이었다. 언론에 발표하거나 출판할 수 없는 일반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자기 주변의 사람들, 즉 가족과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정도가 자기 발언이 미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널리 전달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과거에는 술집에서 선거에 대해 대화하고 자신의 견해를 토로했다면, 지금은 인터넷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토론할 수 있다.

우리 선거법은 이런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본래 선거법은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과 선거운동을 규제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선거법을 일반 국민에게 마구 적용하는 것은, 일반인의 정치적 표현을 선거운동으로 간주, 규제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독재 정권 시절에도 술집에서 정당과 정치인을 거론했다고 해서 처벌하진 않았다. 선거 시기에 유권자인 국민이 선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견을 갖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선거법도 ‘단순한 의견개진이나 의사표시’는 정당한 국민의 권리로서 보장하고 있다. 문제는 선관위가 이를 다른 불법 선거운동과 구분하기 어렵다며 매우 폭넓게 규제하고 있는 점이다. 과연 유권자가 문제일까, 아니면 선거법이 문제일까?

인터넷 길들이기

더 나아가 선거법은 다분히 편의적으로 인터넷을 규제하려고 한다. 선거 시기 인터넷 실명제가 그것이다. 선거운동기간 중 일반 국민은 언제 어디서 후보자를 비방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할지 알수 없으므로 인터넷언론을 이용할 때 주민등록번호를 밝히고 신원을 확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후보자를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실명을 확인받아야 한다는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이다.

독자가 일반 언론에 투고할 때 행정자치부에 들러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본인 확인을 받아오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표현의 자유 탄압이자 국가에 의한 언론 통제라는 비판이 일 법하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인터넷에서는 가능하다. 기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단 한 번만 실명 인증을 받으면 언제든 로그인 후에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로그인한 아이디와 실명을 기준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글을, 어떻게 썼는지가 시시콜콜히 기록이 된다. 기술은 표면적으로 이용자 친화적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철저한 감시가 이루어진다. 권력자들의 입맛에 매우 맞을 수 밖에 없다.

실명제가 낳는 효과는 명백하다. 실명제는 인터넷 이용자가 표현 행위를 하기 전에, 감시의 시선부터 느끼게 한다. 포스팅을 할 때, 댓글을 달 때, 채팅을 할 때, 글을 퍼갈 때, ‘민증부터 까도록’ 하는 것. 특히 비판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거나 신원을 밝히기 어려운 소수자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이는 명백한 사전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한다. 선거법 뿐 아니라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 실명제가 실시된 후로, 정치 관련 댓글이나 비판이 실제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민주주의 위협

작금의 현실은 국민의 정당한 표현의 자유와 유권자로서의 정치적 권리가 중대한 위협에 처해 있음을 방증한다.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과정에서 후보자와 정당과 그 정책에 대해 충분히 검증하고 공정하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다면 우리 사회 민주주의는 큰 위기에 처할 것이다.

정보화로 인해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 관료에 의한 정보 조작과 왜곡의 위험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경고가 요즘처럼 현실감 있게 느껴진 적도 없다.

아테네와 같은 직접 민주 정치에서는 면대면으로 직접 접촉하여 토론하였다. 그러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전자적으로, 즉 비대면으로 참가하면, 이면에 있는 정치 관료들이 권력을 쥐고 정보를 조작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정보화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좇는 정책의 집행에 이용하거나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지한 정책 논쟁 보다 정치가의 외양이 부각된다. 정치 정보가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 오락적으로 구성되고 정치인은 연예인화하는 것이다. 그 결과 *사모, **사랑과 같은 정치인 팬클럽의 경쟁이 게시판마다 넘쳐나고 있다. 팬덤 문화 속에서는 정치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 특정 정치인에 대해서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만큼, 반대편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증오를 표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왜곡된 정치과정은 다른 한편으로 유권자의 경멸과 냉소를 불러와 정치적 무관심이 증가할 수 있다.

또한 원격으로 이루어지는 정치 과정에서 사람들의 개인정보, 의견이나 성향이 수집되면서 그에 따른 전제 정치가 등장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정부나 정치 관료에 의한 감시와 차별이 교묘하게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실명제는 사람들의 정보를 은밀하게 수집할 수 있는 뛰어난 기술적 수단이다. 이런 과정은 기득권의 권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정치적 권리 회복해야

결국 현행 선거법과 선관위는 인터넷 내용 규제와 실명제를 통해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개인정보 수집을 통해 국민을 감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점차 잠식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규제 중심적인 선거법의 태도는, 19세 미만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고로 청소년은 인터넷에 선거에 대해 글을 올릴 수도 없다. 입시 정책의 당사자가 각 정당과 후보자들의 입시 정책에 대해 입도 뻥긋 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의 정치적 권리는 선거날 당일에 투표소 앞에 줄을 서서 도장 찍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선거에 출마하고 투표를 행사하는 참정권은 좁은 의미의 정치적 권리일 뿐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적 권리는 참정권 외에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정당을 결성하고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할 권리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결국 전자적인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는 단순히 인터넷의 기술적인 확산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정치적 활동이 얼마나 자유롭게 이루어지는가, 이를 위해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권을 비롯한 정보 인권은 어떻게 보장되는가에 달린 문제이다.

공정한 선거를 치르자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대의제에서 금권과 관권의 개입을 막고 선거운동을 공정하게 감독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치 참여 또한 중요한 민주주의 근간이다. 실명제와 UCC 규제를 비롯한 선거법의 인터넷 규제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선관위는 선거법 핑계만 대지 말고 변화한 시대에 일반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게 본래 선관위가 할 일이다.
덧붙이는 말

장여경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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