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 계급투표의 반영

[발행인 칼럼] 민주노동당, 문제는 패권주의가 아니라 계급적 기초에 있다

대선은 끝났다. 대체로 진보에 대한 보수의 승리 또는 좌파에 대한 우파의 승리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진보라 함은 노무현이 얘기하는 좌파신자유주의부터 민주노동당까지를 포괄하는 의미인 듯 하지만 실제 진보가 있었는가 되물어보자. 역대 최저의 투표율은 아무리 악취가 진동을 해도 경쟁자 없이 초지일관 압도적 선두를 유지한 선거흐름을 경마레이스 중계하듯 여론조사 중심으로 보도한 미디어선거의 결과로만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만인가? 오히려 많은 이들이 찍을 진보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나 싶다.

이명박과 경제살리기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단연 ‘경제살리기’였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시대에 보기 드물게 5%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고 무역액이 사상 최고치인 7000억 불을 넘어 세계 10위권에 있으며 주가는 2000을 오르내린다. 노무현의 억울함이 묻어있는 강변 그대로 실물지표는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경제가 어려운가. 경제에서 수출이 80%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이러한 무역지표를 가지고도 경제가 어렵다고 하고 경제살리기라는 슬로건이 대중적인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업들이 수출을 많이 해서 돈을 벌어와도 없는 사람들 수중에는 돈이 없다. 이미 2000년 초반부터 수출과 내수가 분리되어 수출이 잘 된다고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장을 해도 고용창출 효과가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80%에 달하니 노동비용은 절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 좌파정권이라는 오명(!)을 덮어썼지만 노무현대통령 집권 이후 법인세는 오히려 2%나 줄었다.

50대 재벌들의 유보자금이 300조를 넘어선다고 하고, 500조가 넘는 돈이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부동산에 들어가 있다고 하고, 500조가 넘는 돈들이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을 넘나들며 장난을 치고 있어도, 수출만 잘 되면 나아진다는 경기가 나아질 리 없다. 청년실업으로부터 시작하여 비정규직과 실업을 넘나드는 대다수 국민들은 절대적, 상대적 빈곤에 찌들 뿐이다.

이 지경까지 오게 한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통합신당에 대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CEO 출신임을 앞세워 7%의 성장으로 국민소득 4만 불을 달성하고 세계 7대 경제대국으로 들어서겠다는 ‘747공약’이라는 이명박의 슬로건은 주효했다. 빈곤을 들먹여 그들 논으로 물꼬를 트고는 표를 가져간 것이다. 더구나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전략에 맞서 케인즈주의적 대안으로 목소리 높인 사람은 많았으나, 산에 실업자들을 끌고 올라가 댐을 건설하면서 준 노임으로 돈이 돌게 해보겠다는, 과잉생산 공황을 일시 연장해보겠다는 케인즈식의 발상에, 죽은 경제를 살린다고 운하 파고 제2 경부고속도로 건설하여 온 천지를 삽질하고 공구리치겠다고 덤비는 이명박이 오히려 닮아있다.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 그리고 문국현

창조한국미래구상은 최열의 녹색정당, 정대화의 민주노동당이 아닌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는 정치세력화의 꿈이 묻어있다. 결국 오충일, 최열, 정대화 등은 통합신당으로, 이수호, 지금종은 진보대연합을 통하여 대선이후 진보신당을 창당할 계획으로 새진보연대로 갈라졌으나 창조한국미래구상은 창조한국당으로 세력화했다. 선거막바지에 정대화는 통합신당과 단일화 하라고 천막치고 난리를 죽여도 문국현은 제 갈길을 갔다.

숨어있던 강호의 고수가 등장했다. 그간 시민운동의 후원자에서 대선후보로 등장한 문국현은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구호 대신 ‘2년 내지 3년을 넘어 장기간 계속 비정규직을 쓰는 일자리는 정규직화 하도록 해서 850만 비정규직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아울러 ‘500만 개의 일자리 창출로 고용률을 현재 64%에서 70%로 높이고 청년실업률은 8%에서 4%로 줄이겠다’고 했다. 그간 시민운동이 내놓은 정책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들은 예상했던 두 자리 득표는 못했지만 민주노동당 권영길은 넘어섰다. 선거 직전에 등장한 그것도 비정규직과 실업은 인정하면서 중소기업을 살리겠다고 나선 문국현에게도 권영길이 뒤진 것이다. 민주노동당 내부 평가도 그러하듯 권영길의 표가 시민운동의 정책을 이어간 창조한국당 문국현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간 한국사회의 정치 지형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비정규직 철폐와 양치기소년

대중들은 그토록 불안정노동, 비정규직 철폐를 외쳐왔지만 양치기 소년을 믿지 않았다. 외환위기 직후 대의원대회에서 부결이 되어 비록 직권조인의 형태이긴 하지만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사정 합의로 정리해고와 파견제 입법을 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민주노총의 양치기파업과 민주노동당의 암묵적 묵인아래 비정규법안이 통과되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조직적 기반인 남성중심의 대공장 노동자와 넥타이부대는 많은 부분 이미 이 사회의 소득 20%안에 들어가 있으며, 민주노총이 완성하고자 하는 소위 산별이라는 조직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포괄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독자적인 조직화는 복수노조를 허용않음으로서 봉쇄되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민주노동당의 사회연대전략은 단순하게 보자면 비정규직을 인정하고 정규직의 소득을 나눠가지자는 정책이다.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산별체제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한 것이다. 이랜드노동자들의 투쟁이 한창일 때 마이크 잡고 사진 몇 방 찍어도, 비례대표 2번에 비정규직을 선출하겠다고 부랴부랴 규약을 바꾸면서 수선을 떨어도, 결과적으로는 지난 모든 과정을 함께한 민주노동당과 권영길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는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다. 비정규직 없애겠다고 말로만 난리죽이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대신 일자리를 늘이겠다는 문국현의 제안이 대중들에게는 더 설득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3자구도라 못 먹어도 5%라던 민주노동당의 실체가 대중적으로 확인되고 말았다. 대중운동에 기반한다던 민주노동당이 시민없는 시민운동이 정치세력화한 창조한국당에도 밀린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서로서로 계급투표의 실패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배타적 지지 정도도 아니고 이석행이 권영길이고 권영길이 이석행인 마당에 책임전가 말고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번 대선만큼 정치적 신념과 도덕성이 배제된 채로 투표가 이루어진 적이 있었던가? 대중들은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투표를 행사하였다. 문제는 민중경선 여부가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정책 프레임과 실력에 대한 불신과 냉정한 평가이다.

패권주의 그리고 또다른 패권주의

누가 권영길을 탓하겠는가, 스스로 자초한 일인데. 처음에는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두 번째는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을 위해서 출마한다는 신선함이라도 있었지만, 전혀 새로울 것도 내세울만한 것도 별로 없는 비인기 삼수생 대선주자가 지금과 같은 미디어 선거구도에서 어필할 근거는 처음부터 별로 없어 보였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결론은 오로지 정파 대립구도의 산물로써 다시 권영길이었다.

97년 ‘일어나라 코리아’의 후속편이랄까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기조와 구호가, 97년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내부의 동요만을 극대화시켰다. 스스로도 합의되지 않는 당의 정책을 무슨 수로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한방이면 간다’를 기조로 BBK사건을 비롯한 이명박과 관계된 모든 구린 것들을 쓰레기통에서 뒤져낸 정동영의 선거기조는, 촛불시위와 같이 소위 진보, 시민운동으로 일컫는 동네들의 뒷받침을 받아 민주노동당의 주요 선거기조의 하나로 매진해 왔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듯 싶다. 철학이나 비전은 둘째라 치더라도 표가 된다면 싫다는 한국노총 바지가랭이 붙잡고 늘어지는 것도 마다않는, 득표를 지고의 선으로 하는 선거회오리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다.

공적기금을 투여하여 살려놓은 우리은행은 물론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을 민영화하겠다는, 그리고 금산분리정책을 허물겠다는 이명박의 정책에 대해, 기존의 국유은행은 유지하고 민영화된 은행조차 국유화해서 산업을 통제하고 시장중심체제를 바꾸겠다는 공약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등으로 어느 누구나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는 투기적 금융자본과 다국적 기업의 권리를 제한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부담스러운가. 국민연금을 비롯한 제반연금이 금융부문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반대하고 사회연대전략을 폐기하는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되지않겠는가. 물, 전기, 통신, 도로, 철도와 같은 국가의 필수서비스를 국가가 유지하는 것은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제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경쟁이 아닌 상호 공존에 기반한 사회를 만들자는 제안이 어려운 일인가.

이명박의 경제살리기에 맞서 부유세 풍선이나 날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사회화, 사회적 통제라는 실천적 제안을 비전과 정책으로 입안하기 어렵다면 애초 진보정당의 진보라는 수사는 빼는 게 맞다.

선거는 끝나고 여전히 민주노동당 안에는 패권주의만 남았다. 선거과정 내내 그러했듯, 정파 대립구도가 극단에 치달아 제상을 엎어야한다 아니다 하는 카더라통신은 많지만, 결국은 총선 비례대표라는 잿밥을 독식할 것인가 나눠먹을 건가에 따라 패권주의 논쟁은 수그러들 수도 확대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손호철 교수의 제안대로 노회찬, 심상정이 자주파와 갈라선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운동진영 전체에 만연한 자주파의 패권주의는 극으로 치닫고 있지만,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양날개론에 기초한 비정규직 대안과 사회연대전략을 입안 주도한 자들이 자주파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런 갈라서기가 대안이 될지도 심히 의심스럽다. 사실 패권주의에 좌우가 따로 있겠는가. 패배의 원인을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로 몰아붙이고, 정치적 면죄부를 얻으려고 하는 건 패권주의의 다른 모습이 아니던가. 문제의 핵심은 정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정파간 갈등 속에서 표현되고 있는 컨텐츠의 질 자체가 근본적으로 부실한 것에 있다.

패권주의 이면에 깔린 정파의 정치적 이념의 근본에서 출발해보자. 문제는 오히려 ‘배타적 지지’라는 주술을 외며, 실업과 비정규직을 넘나드는 불안정노동에 고통받는 자들이 나아갈 길목에 주저앉아 있는 패권주의가 더 큰 죄악일 듯 싶다.
덧붙이는 말

이종회 님은 민중언론참세상 발행인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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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 민주노동당 , 계급투표 ,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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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흐흐, 시원합니다. 발행인님 글도 자주 보고 싶어요

  • 웃기네

    이종회 디게 열내네... 구린데가 있나? 찔리는데가 있나? 뭐냐???
    대선 총평이나 하고 자빠졌나? 내 열나게 욕하는 이유를 쫌만 생각해 보면 이율 알 것이다. 결국 니같은 자들도 좌파 귀족주의냐? 다 필요없다. 숨통막혀 죽기 전 스스로 들고 일어나면 났지 니들 다 필요없다. 미친 귀족 군상들아.

  • 웃기네

    니같은 좌파 운동가(활동가)와 손호철이 다른 점을 이제 찾지 못하겠다. 새빠져라 투쟁 후 정리발언이나 하고 있는 귀족노조 집단. 부르조아 선거엽합과 대치해 밤잠 안자고 누군가 싸워 쌓아올린 성과, 총평이나 쓰고 있는 자가 계급정치를 논하고 있나? 고작 쁘띠적인 행위 뒷북이나 치고 있으면서 위장하려고 하면 소용없다는 것을 말하려고 이 글을 한 줄 남긴다.
    노힘이 한 것이 뭐 있나? 참세상 바닥 민중들 선거 돌풍 속에 휘말려 들어갈 동안 뭐 했나? 잠자고 있었나? 원칙과 진실은 결국 들통나게 마련이다. 정신차ㄹ려라!! 또 어느 누구를 호도하기 전에 말이다.

  • 웃기네

    계급 이해도 제대로 안 된 쁘띠가 계급투표를 말한다. 하긴 말할 수도 있다. 화려한 언설 속에 감춰진 두 얼굴은 확실하다.

  • 일리일리

    맞다, 맞어. 자신의 계급적 토대를 스스로 내던져버린, 민주노동당/민주노총과 한국노총/창조한국당/신당/민주당이 뭐가 다른가. 난 엔엘을 무지 싫어하지만, 모든 책임을 엔엘에다 다 전가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인가? 엔엘이나, 전진이나, 이용대나 심상정이나 진정성 없기는 마찬가지 아냐?!

  • 자자

    정치를 객체적으로 주무르기 한 변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 피곤하다.

  • 비정규직

    진정성있는 동지들은 대선시기에 책많이 읽는다하던데 정치평론 많이 읽었나 칼럼도 쓰고.. 대선이라 정치투쟁속에서 뭘했는지 당신은 평가 안하나!! 으이구 무책임한 사이비 좌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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