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삼, 하야토 그리고 이명박

[기고] 죽음과 삶을 모르면서 폼 잡지마라

죽음의 의미와 그리움

최요삼. 그는 죽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했다. 그의 생명을 지탱해온 인공호흡기는 꺼졌지만 그는 다시 태어났다. 그의 눈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 그의 심장은 강렬히 요동치면서 인생의 참 활력을 불어넣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막혔던 인생의 장막을 뚫고 참세상의 공기를 마시게 되었다. 국가에서 그에게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여한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요 영광이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단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아무나 받는 훈장이 뭐가 대단한지 모든 언론매체가 왁자지껄 떠들며 난리다. 감히 죽어있는 산 자들이 살아있는 죽은 자에게 그러한 평가를 내리다니. 정말 쩐다 ㅠㅠ.

맞는 게 두렵다던 그가 죽음으로 인해 맞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해서 삶의 존재가치와 교환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죽음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남은 것이라고는 절망조차도 버거울 정도의 인간들이다. 그들에게는 희망조차도 사치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최요삼의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를 통해서 무엇보다 값진 삶의 가치와 죽음의 의미를 배웠다. 그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타인에게 무언가 줄 수 있다는 즐거움만큼 즐거운 인생도 없다는 어느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는 진정한 사랑을 알고 나눔을 알고 인간을 아는 챔피언이다.

삶의 가치와 허무함

작년 12월 초 ‘유준인’이라는 18세의 청소년이 프로복싱 슈퍼플라이급 한국 챔피언에 올랐다. 우연히 재방송을 통해서 그 경기를 지켜본 필자는 오랜만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전광석화 같은 그의 레프트 더블 잽,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 듯 빠른 스피드와 정확성을 자랑하는 라이트 훅, 예리한 각도에서 나오는 어퍼컷 등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빡서(boxer)’였던 것이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가 한국프로복싱 사상 첫 일본인 한국챔피언인 ‘기무라 하야토’였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에서는 17세 이상이 되어야 프로가 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15세에 태국에서 프로복서 인생을 시작했으며, 자신의 꿈인 세계챔피언을 이루기 위해 2006년 한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를 보면서 한국이나 일본이나 인기가 시들해진 복서의 길이 정말 배고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한 그를 보면서 인간취급도 받지 못하며 항상 집중단속으로 인해 죽음의 행진을 벌이는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들은 절망 끝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하루하루를 모질게 이어간다. 그들에게는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이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살아있는 그들을 죽은 자로 대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자신들을 산 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자기기인의 시대, 폼 잡지마라

<교수신문>이 2007년의 사자성어로 ‘자기기인(自欺欺人)’을 선정했다. ‘스스로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한마디로 ‘거짓 세상’을 개탄하는 말이다. 이에 2008년의 사자성어를 ‘맑은 날의 바람, 비 갠 후의 달과 같다’는 의미의 ‘광풍제월(光風霽月)’로 정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는 의미의 ‘시화연풍(時和年豊)’을 새해 사자성어로 정했다. 중종 17년(1522년) 7월 11일 자에도 “조정에 잘못이 없고 백성에 원한이 없으면 자연 시화연풍하여…”라는 구절이 있단다. 정말 주옥같은 말이며 모든 국민들의 바람 역시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2008년 새해를 맞이하여 모든 언론매체에는 이명박 당선자에게 바라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실렸다.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소망과 기대를 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자~알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런 풍경이 반복되었지만 그 정부의 끝은 언제나 그렇듯이 술자리의 주요 안주꺼리요, 일상생활의 화풀이 대상이요, 뒤담화의 단골 메뉴였다.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과 한나라당. 그들은 과연 진정한 사랑과 나눔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그들이 최요삼의 두려움과 이주노동자의 공포를 안다는 것은 삼성의 불법행위 진상규명보다 어려운 일이요, 대학평준화보다 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의견을 겸허히 수렴하겠다는 그들이 그것을 아는 날 진정한 챔피언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거짓과 사기가 진실과 정의로 둔갑하고 속임수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을 잃어버렸다는 그들에게는 핵심권력이 전부이고 그것만 잃어버렸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바닥을 쳤기 때문에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벌써부터 한반도 대운하, 교육정책, 신불자 신용 회복 문제 등을 통해서 혹세무민하려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5년 동안 ‘자기기인’의 시대가 쭈욱~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5년 금방 간다, 폼 잡지 마라”.
덧붙이는 말

배성인 님은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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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미

    넘 재밌는 글이네요. "폼 잡지마라!"ㅋ

  • 복서

    다른건 모르겠지만 일본이 복싱이 인기가 없다는 정보는 어디서 얻었는지.. 우리나라만 제외하고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복싱을 왜 이렇게 매도하는지 정말 웃기네요!
    필자님 제발 알고 글이나 쓰시지요

  • 나그네

    노무현이든, 삼성이든, MB든, 권투라는 스포츠 자체를 폐지하는, 그것을 사회적 범죄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을지요? 아동노동을 범죄로 규정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 k

    맞는 말씀입니다

  • 김태완공공일

    최요삼 선수....안타깝게 죽었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 있을것십니다.
    근데 왜 이명박이라고 적혀있나요?????

  • 영자

    이명박죽여ㅋㅋ

  • ㅋㅋㅋㅋㅋ

    감히 죽어있는 산 자들이 살아있는 죽은 자에게 그러한 평가를 내리다니. 정말 쩐다 ㅠㅠ.


    오 ㅋㅋㅋㅋ 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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