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내희]의 문화사회를 꿈꾸며

좌-좌연대 쉽지 않지만, 변혁정당 내다봐야

[기고]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 단상

강내희 연구자는 대선 후 진보정치 주체들의 상태를 짚는 가운데, 좌파를 가로지르는 좌-좌연대가 중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난 18일 '진보정당운동의 위기와 변혁적 정당운동의 전망' 토론회 제안자 중 한 명이기도 한 강내희 연구자는 대선 이후 좌파가 새로운 회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보고, 솔직한 모습으로 주어진 희망을 자신의 계획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내희 연구자는 대선 이후 한국 사회 정치지형에 구조적 변동이 시작될 조짐이 일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보는 가운데, 보수진영 안, 진보진영 안, 자유주의 세력 내부, 민족주의와 사민주의의 연대 틀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동요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내희 연구자는 이 조짐들에 대해 좌파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어떤 행동을 하느냐,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역사의 새로운 벡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한국의 좌파가 만들어야 할 정당은 변혁적 계급정당이어야 할 것이지만 성차와 성애, 인종/민족, 생태, 인권, 평화 문제를 다루는 운동들의 변혁적인 분파와도 함께 할 수 있는 포용성이 있어야 한다"며 현 시점에서 좌-좌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좌파적 정치조직들의 연대와 함께 사회운동 내부의 다양한 좌파들과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언이다.

아래는 강내희 연구자가 1월 19일 사회실천연구소 주최의 이론정세토론회에서 발표한 수정본 전문이다.
- [편집자 주]


2008년 1월 현재 한국의 좌파세력은 새로운 희망의 국면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오랜만에, 모처럼 맞은 기회이다. 물론 이 국면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국면은 장기적 구조에 해당하기보다는 단기 지속할 분기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기점인 만큼 그것은 한국 좌파세력의 중장기적 모습을 결정지을 공산이 크다. 어떻게 이 국면을 맞이하고 보내느냐에 따라서 좌파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을 수도, 그동안의 관성처럼 모처럼 찾아온 희망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여기서 ‘희망’은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좌파세력이 변혁적 진보정당, 다시 말해 자본주의 극복을 자신의 분명한 목표로 삼는 정당을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리킨다.

한국에서 좌파세력은 정당을 만들만큼 힘을 가진 적이 없다. 국내 정치지형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헤게모니를 갖지 못한 것이다. 특히 지난 10여년 좌파는 자신의 입지가 극도로 위축되는 것을 경험했다.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지향하는 세력, 현재의 상태로서의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대안적 사회를 위한 코뮌주의를 실천하려는 좌파가 힘을 발휘하려면 정치지형의 일정한 파열이 발생해야 하나 그동안 이 지형은 견고한 구조적 한계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넓게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헤게모니가, 좁게는 민노당으로 대변되는 민족주의+사민주의가 한국정치의 민주적 대안임을 참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가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구조는 지배와 피지배의 구도를 재생산하고, 그로부터의 이탈을, 그것의 변혁을 꾀하려는 사회적 흐름을 변수 아닌 변수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지난 기간 좌파는 자유주의 세력과 그 종속 세력인 민족주의 및 사민주의 세력이 대안적 정치지형을 장악한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도 어려웠다. 지난 대선에서 좌파들이 아무런 선거 전략을 세울 수 없었던 것도 한국정치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만큼 힘을 갖지 못한 탓이다.

대선 이후 좌파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좌파는 솔직해야 한다. 지금의 희망은 자신의 능력으로 획득한 성과가 아니다. 자유주의 세력의 몰락, 그에 동반한 민족주의+사민주의 세력의 몰락에 뒤따라 그저 얻은 선물이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부지리에 해당한다. 지금 좌파 가운데 현 국면을 희망의 그것으로 보면서도 그 속에 선뜻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스스로 그 희망을 쟁취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좌파가 희망을 갖지 말 일은 아닐 터이다. 아니 오히려 현재 국면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세적 국면은 구조의 견고함을 드러낼 수도, 탈구조화의 징후를 보일 수도 있다. 지금은 (맑스의 말을 맥락을 바꾸어 말하면) “모든 견고한 것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시점이다. 좌파는 이에 따라 자신의 입지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비록 자유주의 세력과 민족주의+사민주의 세력의 붕괴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이 국면을 놓칠 수 없다. 이번 기회를 놓쳐버리면 언제 다시 좌파에게 비슷한 기회가 올는지 모를 일이다.

세력들의 관계는 구조화되어 있으면 좀체 변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정치세력 판도는 너무나 뻔했다. 정치 구도의 예측가능성도 너무 높았다. 그러나 대선을 거치며 기존의 세력 구도는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 와해는 향후 정치지형의 예측불가능성을 높인다. 이 예측불가능성이야말로 변화, 자본주의 구조의 변혁을 추구하는 좌파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고 기회이다.

물론 판도 전체가 깨진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헤게모니도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의 당선은 정치권력의 이동 아닌 이동, 즉 하나의 자유주의에서 또 하나의 자유주의로의 이동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만으로도 한국 범 진보세력의 구도는 격변이 일어난 듯하고, 진보와 개혁을 내세우며 좌파들을 뒷전으로 밀어 넣은 제 세력은 와해의 위기를 맞은 듯하다. 통합신당, 민노당은 이제 다시 세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출범은 이전의 정권들이 시행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이고 이로 인해 사회적 배제를 당하는 인구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지난 10년 같은 자유주의이면서도 개혁을 자칭하는 세력에 의해 관리되어 왔으나 이들이 지난 대선에서 정치적 심판을 받아 패배함으로써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의 관리 체계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개혁적 자유주의가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그리고 이 세력의 2중대 역할밖에는 하지 못해 민족주의+사민주의 세력이 덩달아 패배한 것은 일단 남한 민중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 이 반대가 왜 더 강한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는지는 좌파가 풀어야 할 숙제이지만 ― 를 의미한다.

좌파에게 현 국면이 희망인 것은 개혁적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민주의 세력의 전면적 위기 속에 보수적 자유주의가 집권하면서 좌와 우가 과거 어느 때보다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는, 좌파가 우파에 맞서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대안으로 떠오를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능성은 어느 틈엔가 불가능성으로 바뀔 수도 있고, 희망도 아지랑이로 사라질 수 있다.

지금 한국 정치는 혼돈에 빠진 상태이다. 보수적 자유주의 또는 보수우파 세력은 현재 이명박+박근혜와 이회창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한나라당에서 박근혜가 뛰쳐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고, 개혁적 자유주의는 통합신당과 창조한국당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동안 민노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민족주의와 사민주의도 분리 직전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정치적 분열의 시대이다. 정치세력들이 이런 이합집산을 보이는 것은 사회 제 세력의 정치적 관계를 규정하는 구조가 더 이상 이전의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구조의 변동, 그것은 새로운 구조로의 전환이 일어남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역사의 분기점이 생긴다는 말이다. 분기점에 가까워지면 구조 속에서 서로 대립하던 극들이 비평행 상태에 이르게 되고, 구조 전체는 극들 간의 긴장에 따른 동요를 겪게 된다. 러시아의 기호학자 유리 로트만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순간에는 “개인과 집단의 행위는 자동 예측이 불가능해지고, 결정성이 뒷전으로 물러난다.” 예측 불가능한 행동, 선택, 결정들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분기점이 분기점인 것은 그 지점에서 운동의 요인들이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서로 교점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운동의 새로운 벡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요인들의 교점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점, 그것은 “혁명의 시대, 또는 다른 극적인 역사적 변화의 시기이다.” 앞에서 “2008년 1월 현재 한국의 좌파 세력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예측 불가능성의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고 느낀 때문이다.

희망은 분수처럼 솟구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포말(泡沫)이다. 구조가 변동의 분기점에 이르면 그 다음에 어떤 형태의 구조가 만들어질는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다만 변화를 유발하려면 구조를 동요시키는, 그리하여 구조가 더 이상 재생산되지 않고 변화를 향한 분기점으로 나아가게 하는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역사적 구조의 변화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주체들의 능동적 행위이다. 오늘의 지배적 구조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좌파의 의지, 선택, 실천, 참여가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런 행위로 구조 변동의 방향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변동이 일어나는 시점에 변화를 촉발하는 행동들이 집적되면 주체들의 행위에도 변화가 발생하는 법이다. 사회적 구조가 평행상태에 있을 때에는 사회적 주체들의 행위는 늘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이루어지지만 구조가 변동을 겪는 순간 그 행위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지극히 보수적이던 개인이 갑자기 진보적 행위의 주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지금 한국사회에 일어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에 없던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적 세력의 판도가 새롭게 짜이고 있다는 것, 보수진영 안에서도, 진보진영 안에서도, 자유주의 세력 내부에서도, 민족주의와 사민주의의 연대 틀 안에서도 동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구조적 변동이 시작되는 조짐인지도 모른다.

좌파는 이 조짐을 기회로 포착해야 한다. 모처럼 찾아온 이 기회가 어떤 미래를 가져올는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지금 좌파가 할 일은 역사의 흐름이 구조적 평행상태에서 비평행의 분기점에 도달하도록 구조를 동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의 분기점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어떤 행동을 하느냐,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서 좌파는 역사의 새로운 벡터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지금의 정치적 구도, 구조가 재생산되는 흐름의 지속 저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다.

오늘 좌파에게 주어진 과제, 좌파가 취해야 할 행위는 무엇인가? 나는 한국 좌파의 당면 과제는 변혁적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일이라고 본다. 정당 건설이 필요한 이유는 너무나 많다. 좌파가 역사의 주체로 서려면 대중과 만나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대중과 만난 적이 없다. 좌파가 결집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고, 뒷목에만 앉아 있었기 때문이고, 특히 정당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정당 건설에 나서려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혁적 정당을 건설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정당 건설은 많은 에너지,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요구한다. 힘의 결집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정당 건설을 위한 범 좌파 또는 범 진보 세력의 연대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민노당에서 활동하다가 지난 대선에서의 패배 원인을 민족주의 세력의 종북주의에서 찾으며 당의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제2 창당파 또는 민노당 밖에서 새로운 당을 만들고자 하는 신당파, 지난 대선에서 민노당 못지않게 죽을 쑨 사회당, 그 밖의 많은 다양한 정파와 세력을 포함하는, 범진보 범좌파 세력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다.

좌파들 간의 연대가 필요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연대의 방식이다. 일각에서는 좌파는 수가 적기 때문에 세를 불리기 위해 연대를 하자고 한다. 좌파가 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좌파가 언제 다수였던 적이 있던가. 좌파는 숫자라기보다는 입장이다. 이론적, 정치적 입장은 정확함, 분명함, 열정, 용기 등에 의해 가늠되는 것이지 숫자 크기에 의해 가늠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좌파는 블랙홀 같아야 한다. 블랙홀은 커서 우주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좌파도 블랙홀 같은 흡수력을 가지려면 크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연대를 하더라도 새로운 연대가 필요하다. 좌파 간의 연대가 그것이다. 좌우 합작이 아니라 좌-좌 연대이다. 좌우 합작의 통상적인 모습은 진보진영에서의 사회주의, 사민주의, 민족주의의 연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연대와 합작의 결과가 무엇인지 민노당의 실패를 통해 이미 확인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좌우로 가는 것이 아닌 좌파들을 가로지르는 좌-좌 연대이다. 좌파는 이 새로운 연대를 통해 변혁적 진보정당을 만들어내야 한다.

통상 변혁 정당은 맑스주의 지식인과 선진노동자의 결합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들 지식인과 노동자의 결합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필요조건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좌파가 만들어야 할 정당은 변혁적 계급정당이어야 할 것이지만 성차와 성애, 인종/민족, 생태, 인권, 평화 문제를 다루는 운동들의 변혁적인 분파와도 함께할 수 있는 포용성이 있어야 한다. 이는 변혁정당 건설 운동이 지향할 좌-좌 연대가 좌파적 정치조직들의 연대와 함께 사회운동 내부의 다양한 좌파들과의 연대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좌-좌 연대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10년 좌파 정치조직들이 연대를 모색했으면서도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증거이다. 게다가 지금 요구되는 좌-좌 연대는 정치조직들 외부에 있는 운동단체들 ― 그 일부는 정당운동에 대해 적잖은 회의를 지닌 ― 과 나아가서 다양한 성향을 지닌 개인들까지 포괄할 필요가 있다. 변혁 정당 건설에 대해 기대가 많은 만큼 의문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 하겠다.

그래도 지금은 정당 건설에 대한 의문이나 회의보다는 기대가 더 크게 지배하는 국면으로 보인다. 물론 그동안 서로 다른 입장들, 행태들 때문에 쌓인 불만, 불신을 없던 것처럼 털어 버릴 수는 없다. 좌파운동 내부에는 계급문제, 성문제, 생태문제 등을 놓고 적잖은 갈등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당 건설 과정에서, 강령의 채택 과정에서 토론을 통해 제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 과정을 얼마나 민주적으로 전개하느냐가 여전히 문제로 남겠지만, 동시에 그것은 당 건설 과정의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변혁 정당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좌파는 역사상 처음으로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의 기회를 맞았다. 그동안 좌파의 정치적 활동에 장애로 작용하던 구조가 처음으로 허물어지는 징조가 나타났다. 오래 지속되지 않을 절호의 이 기회를 구조 변동의 분기점 형성 국면으로 만들어야 한다. 희망의 이 국면을 열정적으로 끌어안고, 좌파적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의 새로운 벡터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변혁적 진보정당의 건설! 그것이 지금 좌파에게 주어진 정세적 의무이다.
덧붙이는 말

강내희 님은 중앙대 영문학 연구자로 일하고 있으며, 이 글은 1월 19일 2008년 제1회 사회실천연구소 이론정세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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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 민주노동당 , 진보운동 , 변혁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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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머리아파

    바로 이러구 있으니까 좌-좌 연대가 쉽지 않아지는겁니다
    강교수님!

  • 13시간노동

    민중 현실 삶과 결부된 치고나가는 정치세력화에 대한 의지박약, 진정한 고민 결여된 쁘띠적 무의식 발현인가요?

  • 13시간노동

    이미 좌파적 정치 공백, 결여 부르주아정치연합 대 승리 정치판에 대한 해석은 차고 넘쳤거든요. 더이상 뭐가 새삼스러울게 있나요?
    이미 오래전부터 민노당 탈당이라는 실천적 정치행위를 한 주체들도 다수 존재하거든요. 좌파적 정치구상 실 주체들이 존재한단 말입니다.

    어떻게 하는가! 만 존재하는 현실임을 알려드립니다.

  • 삶과희망

    참 글 읽고나니 역시나이다.
    좌파가 그동안 대중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굽쇼?
    노동현장 노동자 혹은 민중 서민들 중에는 좌파가 없다고
    단정하는 그 머리 속이 잘못되지 않았나 의심해 보시길

    대중이면서 항상 대중 속에 있은 좌파, 대중이 곧 좌파다!!!

    혹시 이들 중에 선진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할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 강교수 도대체 노동계급을 어찌보고
    저런 소리 하고 있는건가?
    뭐 이런 시건방진 지식인들이 변혁정당하겠다고 나선다면
    볼장 다 봤다는 것이다. 지겹다 지겨워...

    블랙홀처럼 좌파가 대중을 빨아들인다는 말은 곧
    엘리트적 발상, 스탈린이 따로 없군.

    좌-좌 연대, 연대 습관적으로 남발하면서
    그동안 연대 하지 않아 860만 비정규직 양산했더란 말인가?
    연대가 아니라 다른 글 13시간 노동님 말처럼
    함께여야 맞는 것 아닌가?

    누구를 대신해 정치하겠다는 말인가?
    자신이 곧 정치라는 것이 원칙이다.
    이 말단 노동자가 아는 사실을 배부른 지식인은 모른다.

    배부른 자들의 머리에서 변혁이든, 좌파적이든
    그 무엇 배고픈 자들의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삶과희망

    이 글에 대한 반론적인 응답 글 더 써야겠으나
    일이 바쁜 노동자인 관계로 이만 줄입니다.
    실망을 안고 다시 참세 홈피 뒤적거리는 일 없겠읍니다.

    노동계급 현실, 천박한 한국 자본 결과로 나타난 현실에 대한
    변혁 주체로 있었다는 운동가, 활동가, 조직노동자
    좌파연지식인 뼈저린 현실 인식 아직도 멀었다.
    이것 없이 거짓 성찰, 반성이 이어지는 한
    변혁적 정당이든 좌파적 정당이든 희망이 있던가?

  • 맞습니다

    신당은 좌-좌 연대로 가야합니다. 자주파+사민주의계와 그보다 왼쪽의 정파들은 어차피 언제가는 서로의 갈길을 가야만 합니다. 이왕지사 일이 벌어졌으니 민노당은 민노당대로 갈길을 가게 하고 지금 새로운 좌파정당을 만듭시다.

  • 현장노동자

    옳은 말 하셨네요.. 민족주의,사민주의,사회주의 이렇게 3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 이건

    뭐라 할 말이 없네요. --;

  • !!

    옳은 이야기인듯 하구만 뭘 그리 씹고 그러셔 들~~~
    역사적인 기회를 잡아라! 변혁정당 필요하다! 맞는 말씀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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