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방통위, 방송독립성.공공성 후퇴

[특별기획 : 이명박정부와 진보](2) - 방송통신기구 개편 논의의 쟁점과 전망

한나라당은 21일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함께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운영의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위원장 1인과 4명의 상임위원 등 5인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국회의 인사 청문 절차를 밟도록 했다. 위원의 자격으로는 방송 및 통신 분야에서 15년 이상 재직한 자 등의 기준을 마련하고, 방송 및 통신 관련 사업 종사자는 위원이 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위원장은 위원회를 대표하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사무를 통활 수행하며, 국무회의 발언권을 갖고 국회 탄핵소추의 대상이 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소관사무는 방송과 통신, 전파연구와 관리 업무로 하고, 위원회의 심의.의결이 필요한 사항으로 정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제출한 방통위 설립법은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후퇴시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효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현재 방송위원회에 대해 "방송의 독립과 공공성을 위한 정책기구로서의 본연의 역할에 얼마나 충실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방송위원회의 합의제 시스템이 방송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제도라는 시민사회의 평가는 호의적"이라고 평가한 반면, 참여정부에 이은 이명박 정부의 방송기구 개편의 정책적 기조는 궁극적으로 방송을 정치권력의 유지.보호 수단으로, 또는 산업적 이해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특히 이명박 정부는 더 강한 톤의 사유화 정책을 펼쳐 방송의 독립과 공적 기능의 무력화를 꾀할 것으로 내다봤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이같은 움직임을 주시하는 가운데 오는 1월 24일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 구성을 위한 언론사회단체 대표자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대응을 준비중이다.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방통기구 설립법이 미디어공공성을 크게 훼손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언론노조와 언론단체들의 반발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 [편집자 주]


방송통신기구 개편 논의의 쟁점은 크게 2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하느냐의 문제와 방송의 공공성.공익성에 대한 논쟁들이 그것들이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은 방송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정치구조의 후진성에 따른 국민적 저항을 경험한 시대적 배경이 우리 나라 방송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키워왔다. 언론관련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은 군사독재의 암울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장 장치로서의 이러한 열망을 담은 방송정책규제 기구의 탄생이 현재의 방송위원회이며, 1999년 방송개혁위원회의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방송위원회는 애초에 방송통신 통합기구 설립을 전제로 설립되었으며, 방송위원회 설립을 위한 기본 원칙에도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2000년 방송위원회 설립 이후 통합기구의 필요성이 몇 차례 제기되었으나, 정치적 이해관계와 부처 간 알력 등으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1999년 방송개혁위원회는 시민단체, 정책당국, 국회(야당 불참), 노동조합, 학계 등이 참여한 대통령 직속의 범사회적 기구로서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기구 개편 논의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각 단체 간 수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일치된 의견을 도출했으며, 정부로부터 독립된 순수 민간합의제 위원회의 탄생을 가져왔다.

본격적인 방송통신기구 개편의 논의는 노무현 정부의 출범 때부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인수위 활동 때에도 대통령 직속의 방송통신기구 개편 논의를 위한 범사회적 기구를 설립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 쟁점화된 IPTV 도입 논의가 방송통신기구 개편 논의와 중첩되면서, 대통령 직속의 범사회적 기구 구성 논의는 국무총리 산하의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라는 ‘자문기구’로 격하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보장의 논의는 2차 과제로 후퇴시키면서, 산업활성화 등의 논의를 일차적 과제로 가져가면서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줄이자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결국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는 ‘자문기구’로서의 제한된 역할만을 했을 뿐 실질적인 ‘언론의 자유와 독립’. ‘방송의 공공성’에 관한 어떠한 논의도 진전시키지 못하고 ‘들러리’ 역할로만 끝이 났다.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의 항의 사퇴가 조용히 이루어지고, 정부안으로서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하 ‘방통기구법’)이 요식적인 행위로서의 공청회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국회에 제출되었다. 방통기구법은 예측한대로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부차적 과제로 담은 내용들로 채워진 법안이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산업활성화’를 위한 기구의 성격을 규정했는데, 이른 바 ‘독임제를 가미한 합의제 위원회’라고 포장된 방송통신기구 개편 방안을 들고 나왔다. 산업활성화를 위한 기구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임제 성격이 가미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과거 독임제 정부기관인 ‘공보처’로부터의 악몽을 기억하는 언론시민단체들은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하는 방통기구법에 대해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산업활성화에 필요한 기능들은 독임제 정부부처에 이관하고 합의제 위원회 구조로 방송통신위원회 법안을 개정하도록 촉구했다.

‘합의제를 가장한 독임제 위원회’를 규정한 방통기구법(안)에는 △대통령 직속 방송통신위원회를 설립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5인을 전원 상임화하면서 대통령이 임명하고 △위원회 구조를 계서제 조직으로 운영하고 △위원장이 독단적으로 위원회를 운영할 수 있는 근거가 명시되어 있는 등 방송의 자율과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근거들이 마련되어 있다.

현행 방송법에는 △무소속 독립적 방송위원회를 설립하고 △방송위원회 위원은 대통령 3인, 국회6인(여당 3인, 야당 3인) 등 9인으로 구성하고 △위원회 위원장은 호선으로 선출하는 등 합의제로 운영하고 △방송위원회 위원의 직무상 독립을 보장하는 등 순수 합의제 기구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방송통신정책 기구인 연방통신위원회(FCC)도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합의제 기구로서 위원 5인이 의회 의석별로 구성되어 있다. 독일 또한 그 역사적 배경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언론통제기구로서 작동하지 않도록 방송정책규제 기구는 각 주에서 관할하며, 각 주의 방송위원회의 장들이 전반적인 방송정책을 규율하고 있다. 각 나라마다 방송통신정책 기구의 모습은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나타나며, 각 나라의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적 토양이 다르게 형성된 과정을 보이는 데 따른 것이다.

우리 나라 또한 민주주의를 말살한 엄혹한 유신시대로부터 이어진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명제에 몰두해온 만큼 언론의 정치적 독립은 그 어느 것보다 우선하며, 언론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데 모든 운동과 정책에 시민사회의 역량을 모아왔다. 언론노동자 또한 1987년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민중항쟁의 정점에서 언론의 자유를 쟁취하고자 투쟁했으며, 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시대적 소명이었다.

방송위원회의 합의제 기구로서의 성격은 1999년 방송노동자들의 파업과 언론관련 시민사회의 투쟁이 결합해 만든 ‘방송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산물이었다. 현재 방송위원회 무용론이 일부에서 제기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 중심의 집중화된 권력구조와 형식적 민주주의 초기 단계인 시점에서 방송의 독립성이라는 명제가 후순위로 밀려날 이유는 없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 '황우석 사태', '삼성X-File 보도', '한미FTA 반대 운동' 등 중요한 사회적 의제에 대해 정부의 노골적인 간섭이 있었던 현실에 비추어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의 문제는 여전이 유효한 사회적 과제인 것은 틀림없다. 방송위원회가 방송의 독립과 공공성을 위한 정책기구로서의 본연의 역할에 얼마나 충실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방송위원회의 합의제 시스템이 방송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제도라는 시민사회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한편으로 신자유주위로 일컬어지는 정치적 패러다임이 주류로 등장함에 따라 방송의 공적 기능이 무력화되면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또한 중요한 과제로 주어지고 있다. 정치적 권력과 자본 권력의 결탁이 상호 이익을 보장하면서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은 후퇴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MBC민영화’로 시작되는 방송의 사유화는 궁극적으로 방송에 대한 통제를, 자본에로의 종속을 통해 달성하면서 보다 강력한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의 동맹을 얻어내려고 한다. 방송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면서, 사회적 비판 기능을 강화하면서 시민들의 소통의 장으로서 사회적 의제를 설정해나가는 중요한 언론 매체라는 점을 그들은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다. 정치적 배경과 관계없이 또는 정치적 의도와 관계없이 방송이 사회적 공론 장으로서의 역할은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핵심적인 기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노무현 정부가 추구한 방송기구 개편의 정책적 기조와 이명박 신정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극히 우려스러운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두 정치권력 사이에 달라진 점은 없으며, 궁극적으로 방송을 정치권력의 유지.보호 수단으로, 또는 산업적 이해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명박 신정부는 방송통신기구 개편 방향의 그림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더 강한 톤으로 사유화 정책을 펼쳐나가면서 방송의 독립과 공적 기능의 무력화를 꾀할 것으로 예측된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 수호를 위한 범사회적 시민행동 기구를 묶는 작업을 지난해부터 추진해오고 있으며, 최근 그 작업들이 구체적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언론단체, 여성단체, 소비자단체, 노동계 등을 아우르는 언론의 자유와 공공성 수호를 위한 연대기구의 출범이 곧 가시화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운동을 통해 방송의 사유화를 저지하고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정책 개발, 시민미디어 활성화 등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칠 것이다. 방송통신기구 개편에 대한 논의에 적극 참여해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지키는 활동이 첫 번째 중요한 활동이 될 것이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대항해 시민의 미디어주권을 지키는 지난한 투쟁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덧붙이는 말

문효선 님은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 집행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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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 언론자유 , 방송위원회 , 미디어공공성 ,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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