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만 보이고 북은 안보이는 대외정책

[특별기획 : 이명박정부와 진보](7) - 한미동맹은 있고 대북정책은 없고

이명박 당선인은 2월 1일 한미일 대표신문 공동 인터뷰에서 북핵 및 남북관계 문제에 대한 개괄적인 윤곽을 밝혔다. 이명박 당선인은 한국의 대표신문으로 응당 동아일보를 지목했다.
공약으로 내걸었던 비핵개방3000의 전략적 목표와 전술적 수단 등을 다룬 이날 인터뷰 내용은 서재진 인수위 자문위원이 주도해 만든 보고서로, 1단계 비핵화, 2단계 개방 및 정상국가화, 3단계 3000 공약 실행 등으로 요약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첫째, 한미동맹 등 주변국 공조 강화, 둘째, 우월한 체제인 한국이 북을 견인하도록 남북관계 교정, 셋째, 북 인권 증진을 통한 북 내부 변화 추구 등을 꼽았다.
이런 흐름과 관련 배성인 편집위원은 아래 글에서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에 대한 전술적 접근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 유연한 상호주의, 실용주의, 그럭저럭 버티기, 낚시질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상호 연계되어 있다"고 짚는다.
나아가 비핵개방 3000 구상에 대해 "이전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과 유사하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할 가치는 없다"고 일축하고, "기본적으로 자본의 대북진출을 통한 개방 전략과 흡수통일을 바탕에 깔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기존 정부의 정책과 비교할 때 근간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 [편집자 주]


실용주의 정부의 등장

“이명박 정부는 북핵폐기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추구해 나갈 것입니다.”(인수위 브리핑 보도자료, 2008.1.17).

아직까지 이명박 당선자의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과 판단, 외교 정책에 대한 철학과 원칙, 북한 및 미국에 대한 인식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어서 향후 행보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가 실용주의적 외교를 강조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현재의 국제정세를 고려하면 혼란스럽기도 하다.

과연 북에 대해서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 당내에서의 지지기반이 취약한 그가 한나라당의 인식 및 정책과는 차별성은 있는지, 그의 실용주의가 남북관계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표출되는지, 그의 언급처럼 한미동맹을 강화하면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등등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의문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단정적으로 결론짓기 어렵지만 미리 조심스럽게 예단을 해본다면, 큰 틀에서는 기존의 대북정책인 평화번영정책, 햇볕정책 등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것 같지는 않다. 북한에 대해 상호주의를 요구하되 원칙적인 수준보다는 유연한 상호주의를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측면에서 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한나라당의 기존 상호주의를 융합한 정책이 될 것이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실용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원칙과 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갈지자’ 행보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미동맹 강화는 이들의 성격과 체질에 맞게 본능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무조건 실용만 강조하는 외교안보

이명박 측은 신정부의 외교기조에 대해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실용주의적 외교’라고 밝혔으며,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용과 국익의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전통적인 동맹외교와 다자간 협력외교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며, 더불어 에너지 외교에 대해서도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완된 한미동맹의 강화를 통해 국가안보의 초석을 다지고 다자 공동안보의 구현과 튼튼한 국방으로 ‘이명박식’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3월이나 4월 미국을 방문해 부시 미 대통령과 첫 한미정상회담을 갖고, 7월 일본에서 열리는 서방 8개국(G8) 회의를 계기로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는 등 한미동맹의 의미를 재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이명박은 아시아 외교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인도, 일본, 아세안 등과의 우호관계를 구축해 외교적 위상을 다져나가고, 이들 국가와의 FTA 추진 의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U.S. Friendly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크게 세 가지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북핵과 한미동맹, 평화체제인데, 이들 세 가지 정책의 우선순위는 한미동맹-북핵-평화체제의 순서로 정책의 순위를 부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 정부의 등장으로 한미 양국은 동맹을 강화하고 북핵 폐기 및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의제에 대해서 양국간 협력을 더욱 긴밀히 할 것이다. 이는 매우 당연하며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한미동맹의 수준과 내용이 6자회담의 다른 참여국들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한 것인지, 또한 기존의 프로세스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균형적인 자세를 유지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한미동맹이 남북관계에 어떠한 변수로 작용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정말 이명박 당선자의 발언대로 한미동맹 강화가 남북관계 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일까.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에게 한미동맹 강화는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이들에게 미국이란 존재는 은혜롭고 자비로운 어버이와 같은 존재이며, 한미동맹은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가치나 다름없기 때문에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명박 측은 미국 특사단(단장 정몽준 의원)을 통해 ‘한미일 삼각동맹 협의체 복원’을 추진하기로 미국 측과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그 동안 미국에 의해 수차례 제안된 것으로서 이명박 측 역시 적극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새 정부가 한미일 협의체 복원에 적극적인 이유는 강한 동맹이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추진동력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동맹국가인 세 나라가 대북정책과 관련한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소통을 활성화하면 6자회담의 순항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북한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하지만 이미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6자회담이 가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일 협의체를 통해 북핵문제를 다루게 되면 북한, 러시아, 중국을 자극하여 동북아 정세가 경색될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를 둘러싼 갈등으로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굳이 지금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 또한 북핵 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 가운데, 중국과 북한을 제외하고 분명한 선을 긋는다면 새로운 단층선(fault line)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실용적인 외교를 추구한다면 한미일 삼각동맹 협의체가 무엇을 논의할 지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며 협의체의 유용성에 대해서도 올바른 판단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새 정부가 이명박 당선자의 ‘비핵·개방 3000’ 구상에 따라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에 ‘선핵폐기’를 요구하고 그것을 남북관계 발전과 연계할 경우, 이는 곧 남북관계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곧 한반도 비핵화는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 2007 남북정상선언에서 합의한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제4항이 무력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수위가 미국 주도의 PSI와 MD참여를 검토하거나 시사하고 있다는 것도 커다란 문제이다. 이명박 측의 입장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를 감안해 MD와 PSI 전면 참여를 거부하면서 미국의 한국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깊어졌다고 판단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정책 방향 선회에 대한 합당하고 뚜렷한 원칙 제시 없이 가능성을 흘리고 다니는 것은 여론 몰이를 통해서 참여하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할 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합참 등 군부 일각에 미국 매파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려는 ‘맹목적 친미’ 기류가 강하며, 인수위 일각에도 이명박 당선자의 4월 방미때 미국과 관계개선을 위해선 적극적으로 MD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섣부른 PSI 참여와 MD 가입은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북아 긴장관계를 촉발시키면서 북핵 해결 등에도 악재로 작용할 소지가 다분하다. 게다가 이명박 측과 부시 행정부가 코드가 잘 맞는다는 자의적 판단 하에 임기가 1년 밖에 남지 않은 부시 행정부와의 관계를 과잉의욕과 자발적 복종을 통해 오류를 범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의 MD 참여가 미국에게는 사활적인 이해에 손실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게는 사활적인 이해를 크게 침해하게 된다. 부시 행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이하면서 외교적 성과물에 조급하겠지만 이명박 측이 그 조급함에 말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 다음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던 부시 행정부만큼 MD에 열성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명박 측이 서둘러 MD 참여를 검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이명박 측의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접근은 정세에 대한 올바른 인식 및 세밀한 판단 부족, 외교안보에 대한 원칙과 철학의 부재, 맹목적인 접근 등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손상을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것은 한미일 동맹을 축으로 동북아 정세를 주도하고 지형을 이끌려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 외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시기의 재조정, 주한미군 주둔문제 등이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미국 측에 제안할 쟁점으로 예상되는 바,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한미동맹 강화에는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이명박 측의 대미인식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과거와 같이 한미관계를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관계로 회귀할 것 같지는 않다. 실용주의를 표방한다면 변화된 현실에 걸맞은 능동적인 자세와 접근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최근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위기,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미국 소비자본주의의 몰락이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로 전화될 수 있다는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정세는 한미관계가 이제 진정한 국가대 국가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스스로의 전략과 비전을 만들고, 능동적으로 미국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실용주의적 자세가 아닐까.

대북정책, 선핵폐기가 전제조건

이명박 당선자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비핵화, 정략적 대북 접근의 배격, 철저하고 유연한 대북정책, ‘비핵개방 3000’ 구상, ‘나들섬’ 구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대북정책 공약인 ‘비핵·개방 3000’ 구상은 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복지 등 5개 분야로 추진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비핵개방 3000’ 구상의 경우, 한마디로 ‘북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0년 안에 일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한반도 비핵화’이며, 모든 대북 협력과 지원에 ‘북한이 핵폐기의 결단을 내리면’이라는 조건을 앞세우고 있다. 전제조건이 대북지원과 연계되어 있고 비현실적이다. 또한 3000불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이 없이 경제적으로만 치우쳐 있다. ‘비핵’과 ‘개방’은 그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대북정책의 주요 목표였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 접근법과 해법이 취약하다는 것이 이 구상의 한계이다.

2007 남북정상선언의 합의사항 중 일부를 보류한 것은 이명박 당선자의 평소 소신답게 경제적 타당성을 고려하여 남북경협을 북핵에 맞춰 속도 조절하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 조사 그리고 부가가치 창출 등을 고려하여 시간을 조절하면서 북과의 관계를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실리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북과의 한판 실리 전쟁이 흥미를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들섬’ 구상은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된 정책적 필요와 전시행정용 한건주의가 결합된 결과로 여겨지며, 한반도 대운하 및 개성공단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쉽게 추진될 정책적 과제는 아니다.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는 현재 6자회담 10.3합의에 따라 작년 말까지 신고 및 불능화를 끝내야 했지만, 신고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문제와 시리아 핵확산 의혹 등으로, 불능화는 (표면적으로는) 기술적 문제로 각각 이행시한을 넘긴 상태다.

가장 커다란 쟁점은 10.3합의의 한 축인 핵 프로그램 신고를 이행하는 일이다. 현재 북한은 농축우라늄프로그램(UEP)의 존재와 핵확산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다만 플루토늄 문제에 있어서 미국 등이 상정한 추출량(최대 50㎏)보다 적은 약 30㎏을 제시하면서 특별사찰도 받을 수 있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미국은 현재의 상황을 ‘중대 국면’(crucial step)으로 규정하고 10.3합의 이행의 시한을 이명박 정부 출범 즈음인 2월 말로 연장하며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 28일 부시 미 대통령의 마지막 연두 국정연설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한 핵 문제를 지속적인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뜻이며, 현재 진행 중인 불능화 작업을 일단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여전히 6자회담의 10.3합의를 이행해 빠른 시간 내 미국의 경제제재를 해소시키고 4자 정상회담 통해 북미관계를 완전 정상화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불능화 완료와 핵 프로그램의 신고 등이 지연되고 있지만 북미간 대화기조는 아직까지 흔들리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이명박 측은 한미동맹의 강화를 내세워 북미 대결 구도에서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치우치는 불필요한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10.3합의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균형 잡힌 시각과 중간자적인 역할을 다할 때 그들이 좋아하는 실용성을 띠게 될 것이다.

임기를 1년 남짓 남겨둔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이 아닌 중동으로 자신의 외교 역량을 돌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부시는 올해 초부터 대규모의 중동 순방에 나서면서 오랜 분란거리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 정착 문제 해결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이란 핵 문제 역시 주요 의제로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경제 상황이 대단히 심각하기 때문에 경기 부양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가 임기 말에 국내 경제살리기와 중동 문제에 몰두하게 된다면 북핵 문제는 다시 한 번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다.

유연성과 낚시질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에 대한 전술적 접근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 유연한 상호주의, 실용주의, 그럭저럭 버티기, 낚시질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상호 연계되어 있는 접근법이다.

대북정책의 상호주의 원칙이 남북관계를 경색되게 만들 우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유연성의 발휘로 인해 기본 틀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핵 6자회담의 지속성을 중단시키는 변수로 작용해서는 안 되며, 6자회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한국이 적극 관여해 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유연한 상호주의와 실용주의가 결합된 대표적인 예이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은 ‘비핵개방 3000’ 구상에 있는 전제조건인 한반도 비핵화에 따라 북한이 행동하면 이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경제살리기를 위해서 남북관계나 평화체제를 진전시키거나 후퇴시키지 않고 그냥 지체시키는 버티기 작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선택이야 말로 진정한 ‘이명박식’ 실용주의라 할 수 있다.

한편 인수위에서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PSI 참여나 MD 가입에 대해 처음에는 참여의지를 높였다가 당장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며 한발 물러선 것을 보면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결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즉 여러 의제를 던져보고 그중 여론의 지지가 높으면 선택하고, 낮으면 버리는 수법이 낚시질과 유사하다. 그냥 Fishing도 문제이지만 대통령의 이름으로 외교안보 문제를 제목으로 하여 무차별적으로 메일을 보내듯이 여론을 조작하는 Phishing은 정말 ‘세련된(sophisticated)’ 수법이 아닐 수 없다. 뭐야! 이건.

한반도 평화는 머나먼 다리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를 달성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우리의 일차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2.13합의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북핵 문제가 교착 상태에 빠지고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그 향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의 한반도 평화체제 관련 정책은 ‘비핵개방 3000’ 구상 외에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한반도내 핵무기의 반입·이동·배치를 금하는 ‘한반도 비핵지대’ 선언에 반대하였고, 한반도 평화체제 하에서 유엔사를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종전선언과 관련해 뚜렷한 언급을 한 바 없고 한나라당 차원에서 2007 남북정상선언의 제4항에 있는 종전선언 노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해 왔다.

현 노무현 정부의 구상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중 핵폐기 일정에 합의하고 핵폐기 단계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지금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협상도 이 때 시작된다. 아울러 2007년 말 현안으로 부각됐던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작업도 급물살을 타 올 상반기 중에는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종전선언 문제와 관련, 북핵 폐기 개시시 종전선언을 포함한 4자 정상선언, 북핵 폐기 실현시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자의 구상에 의해 미국과의 ‘선비핵화’ 공조체제에 돌입하면 평화체제에 관한 논의는 커녕 북핵 문제 해결도 난관에 봉착할 위험이 있다. 이는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역에 긴장을 조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선비핵화 후평화체제’ 논의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기 때문에 결국 미국의 선택여하에 따라 결과가 상이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북미관계의 진전을 위해 이명박 정부에게 기대하기 보다는 주변국가들의 협조와 지원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는 논리와 상통한다. 이명박 당선자가 유연한 대북정책을 표방했지만 그 보다는 한미동맹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 노무현 정부에 의해 2월말까지 불가역적인 프로세스가 만들어지거나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의 회귀를 원치 않는 북미 양국이 대화로써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는 방법 이외에 다른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용주의의 패러독스가 작동할까

지금까지의 반응을 볼 때 북한은 한나라당이 북핵 폐기와 상호주의를 촉구하는 것에 개의치 않겠지만 북한의 개혁개방을 강하게 촉구하거나 최고지도자에 대해 거론한다면 강경입장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미일 동맹을 강화해 대북 압박정책을 펼 경우 북한은 ‘남북·북미관계 병행 발전 노선’에서 북미관계에 주력하는 통미봉남 정책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동맹 강화론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한국이 ‘테러와의 전쟁’ 참여나 이라크 파병 등으로 많은 공헌을 하면서도 한미동맹이 약화된 것은 북핵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보여준 모습 때문이라는 논리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핵심을 빗겨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한국을 우습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뼈 있는 쇠고기’ 수입 문제, 론스타 재판을 둘러싼 한국의 비우호적인 투자 환경에 대한 외국인들의 우려까지도 서슴지 않고 얘기를 하고 있다(김석한, “한·미 관계 격상의 조건,” <중앙일보>, 2008.1.30). 적반하장도 유분수요, 제 정신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 많다.

어떠한 정권이든지 실용주의 아닌 정권은 없었다. 다만 실용이 가지고 있는 내용과 성격 그리고 방향에 따라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상반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재 이명박 당선자 측의 ‘실용주의’ 콘셉트는 너무 허접하다. 이제 두 달이 채 안됐지만 벌써 이명박 측은 노무현 현 정권과 닮은 구석이 많다. ‘노무현 학습효과’가 너무 강했거나 아니면 이들의 내공이 부족해서 일까. 노무현의 독선과 아집 그리고 뚝심이 어찌 그리 비슷한지 앞으로 5년이 어떻게 지나갈지 눈앞이 선하다.

이명박 측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은 이전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과 유사하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할 가치는 없다. 기본적으로 자본의 대북진출을 통한 개방 전략과 흡수통일을(대외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측이 기존 정권과 다른 점은 전제조건으로의 비핵개방을 내세웠고 수용조건으로서 3000$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무슨 신종 복권 같다. 이는 북을 완전히 모르거나 무시하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구상이다. 이들의 구상에 구체성이 결여된 것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언급했던 불안감이 한낱 기우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명박 신정부가 한미동맹 강화로 인해 대미자율성이 약화되어 오히려 독자적인 행보를 걷기가 어려울지 모른다는 역설의 논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정말 흥미진진하다.
덧붙이는 말

배성인 님은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태그

진보 , 대북정책 , 북핵 , 상호주의 , MD , 한미동맹 , 6자회담 , 전시작전권 , PSI , 종전선언 , 비핵개방3000 , 이명박 , 실용주의 , 외교안보 , 아시아외교 , U.S. Friend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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