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섬, 활화산을 보셨나요?

[인터뷰] 현대차지부 비정규지회 경남산업 해고자들

이 길을 끝까지 내달리면 태화강이 동해에 이르러 마침내 태평양과 한 몸이 되는 바다의 시작이 펼쳐진다. 그곳에서는 오늘도 수출 선박이 큰 입을 벌리고 해외로 팔려 나갈 자동차들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을 것이다. 공장 출고에서는 내수용으로 팔릴 자동차들이 트레일러에 실려 나와 해안도로를 따라 서울로 부산으로 사방팔방으로 팔려 나간다. 막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린 공장 안, 사람들은 다시 수백 동의 공장 안으로 들어가 정해진 부품처럼 제 자리에 서서 일을 하고 있다. 오후 한 시, 수 만 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는 공장이지만 바깥에서는 사람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공장 안에서 정확히 컨베이어 돌아가는 속도에 맞추어 들숨과 날숨을 쉬는 사람들. 사람들은 모두 공장 안에 갇혀 있고 완성된 차들만이 공장 밖으로 나온다. 사람은 없고 자동차만 보이는 현대자동차 공장.

섬이었다. 파란 섬.

공장 정문을 들어서고서도 한참을 차를 몰아 찾아간 곳. 세 명의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가 머물고 있는 천막은 오후의 눈부신 햇살 아래 파란 섬처럼 둥둥 떠 있는 듯하다.

‘끈질긴 투쟁! 원직 복직’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시리도록 파란 천막의 함성을 담고 있는 구호가 이곳이 세 명의 해고 노동자가 머물고 있는 곳임을 알려준다. 아스팔트 바닥까지 굳게 잠겨있는 지퍼를 열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세 명의 노동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조재현, 임태현, 신대운.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경남산업의 해고 노동자들. 이제 갓 세상 밖으로 나온 딸아이의 아빠이거나, 고향 어머니의 목을 메이게 하는 그리운 아들들. 그저께가 설날이었지만 겨우 전화로만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는 가슴 무너지게 아픈 청년들. 달려가 와락 안아 주고 싶다. 뜨끈한 멸치 육수에 떡국을 끓여 한 그릇, 아니 두 그릇 온몸이 다 차도록 먹이고 싶은 착한 아이들. 막내 동생 같고, 조카 같고, 천진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아들 같은 놈들.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전기장판을 깐 천막 안은 생각보다는 따뜻했지만 바람 펄럭이는 소리가 드세고 오고가는 바깥의 차들 소리에 마음이 불안하다. 보온병에 담아간 꿀차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어색함은 오래 갔을 것이다. 단맛이 진하도록 듬뿍 꿀을 넣은 꿀차를 한잔씩 돌리고야 조금씩 말문이 열린다. 달콤한 맛은 때로 힘든 생에 위안이 된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그 지랄같은 비정규직 보호법만 아니었어도 멀쩡하게 공장 잘 다니고 있을 텐데, 비정규직 보호법이 발효되던 지난해 여름, 역설적이게도 육, 칠년간 열심히 공장일 하며 근실하게 살아가던 젊은 노동자들이 하루 아침에 공장 밖으로 내몰렸다. 몇 번의 명의 변경이 있었지만 늘 그 자리에서 일을 하던 노동자들에게 새로 회사를 인수한 경남산업은 그동안의 근속연수를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쓰기를 요구했다.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이다. 근속연수를 인정한다는 건 회사 측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간 근무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보호법이 실행되기 이전에, 이전의 장기간 근무한 노동자들의 근속 경력을 없애고 새롭게 단기 계약을 맺는 것이 비정규직 보호법이 실현되고 있는 공장의 현실이다. 당장에 날아 가버린 근속수당의 문제뿐만 아니라 삼 개월, 육 개월, 심지어 하루짜리 계약직 인생으로, 하루아침에 삶이 난도질당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 지랄같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공장을 덮치던 그 순간에.

우린 해고당할 이유가 없다. 아니다. 해고당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 했다는 것, 회사의 부당한 대우를 바로 잡으려고 했다는 것, 안전사고에 대비한 대책마련을 요구했다는 것 등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고당한 이유라는 것을 도장3부에 모르는 노동자가 있을까? 아니 회사도 잘 알 것이다.

예를 들면 2007년 5월, 도장3부 실러장에서 스키드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분명했다. 센서 오작동으로 인한 기계결함이었다. 그러나 사측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의 부주의로 인한 오작동이라고 우겼다. 우리들은 기계오작동임을, 작업자가 다칠 수 있음을 되풀이해서 설명했다. 그러나 사측은 노동자 잘못으로 일축해버렸다. 결국 작업자가 다쳤다. 우리는 라인을 정지시키고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그제야 센서오작동에 의한 기계결함을 인정했다. 그리곤 안전장치를 설치했다. 감히 비정규직들이 라인을 세우고 안전장치를 요구했으니 원청과 하청 사측 모두 벼르고 별렀을 것이다.

해고당할 당시를 돌아보면 기가 막힌다. 업체 변경되고 나서 1주일은 아무 문제없이 일했다. 그 당시 우리는 근속년수 보장을 새 사장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하청사장 뒤에 버티고 서있는 원청 사측의 벽에 가로막혔다. 근속은 포기하더라도 일자리는 지키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곤 집단적으로 근로계약을 작성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원청과 맺은 도급공정이 줄어서 7~8명은 받아줄 수 없다며 5명을 해고시켰다. 그러나 사측은 부산지노위 부당해고 심리 자리에서는 그런 얘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직 ‘사업을 새로 시작했고 이들과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 해고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다. 사측과 노동자에겐 서로 다른 상식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사측에게 통하는 상식이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가진 자의 세상이다. 그래서 하루에 수십 번 포기하고 싶어도 이를 악문다. 억울하고 더러워서 끝까지 싸울란다.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노동자의 상식이 옳다는 것을 보여 줄란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경남산업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 기록글 中


지난해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비정규직지회는 경남산업 노동자들의 해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 협상을 무분규 타결로 끝내 버렸다. 노조가 무분규 타결로 협상을 끝내 버리자 조합원들 사이에는 많은 동요가 일었다. 노조가 협상을 타결해 버린 상황에서 하청업체가 계속 싸움을 끌고 간다는 건 무모한 싸움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조합원들은 많은 우려와 혼란 속에 빠졌다. 그러나 누구 하나라도 해고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일단 근로 계약서 작성에 동의를 하고 그 이후에 다시 싸움을 준비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새로 업체를 운영하는 경남산업은 근속연수 인정과 근로 계약서 작성 거부 투쟁을 주도한 다섯 명의 노동자들에게 계약을 거부했다. 명목상의 이유는 여유 인원이 많아서 사람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동료들에게 핸드폰 문자로 근로 계약서를 쓰러 오라는 문자가 회사에서 날아가는 동안에도 다섯 명의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오질 않았다. 내심 불안했지만 그래도 연락이 오겠지 오겠지 하며 묵묵히 일을 하던 이들에게 9월 10일, 드디어 회사로부터 처음으로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000씨 경남산업과 근로관계가 없기 때문에 임금미지급은 물론 안전상의 문제, 생산 작업에서 나가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요청합니다. -경남산업 김문상” 문자를 받고도 삼사일을 계속 일을 다니고 있으니 이번엔 같은 내용의 내용 증명이 날아들었다. 더 이상 공장에서 일을 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어요.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자, 하지 말자, 곧 추석도 다가오는데 그러면 이대로 물러서고 묻혀 버릴건가. 추석 연휴면 공장에 아무도 없는데 일단 급한 건 그 이전에 이 사실을 공장에 알려야 하지 않느냐하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죠. 그래도 이대로 물러서는 건 너무 억울하니 이런 사실이 공장안에서 벌어졌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기로 하고 천막을 쳤죠.”

지난 해 9월 26일 처음으로 공장 앞에 천막을 쳤지만 나흘 후 회사 측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물건 집어내듯 강제로 노동자들을 들어내고 천막을 부숴 버렸다. 추석을 보내고 와서 다시 시월 초 두 번째 천막을 쳤지만 이번엔 하루 만에 뜯겨 버렸다. 두 번째 천막까지 허망하게 뜯겨 버리고 나자 같이 투쟁하던 조합원들도 조금씩 힘이 빠지고 지쳐 나갔다.

공장 안 사차선 도로를 달리는 트럭들의 묵직한 소리와 겨울바람 소리가 요란하게 천막을 때리며 우리들의 절실한 인터뷰를 자꾸만 삼키려는 듯하다. 지금 오랜 날들을 싸우고 있는 이들을 향해 날아드는 감시와 폭력, 간신히 실업 급여에 버티고 있는 생존이 언제 가뭄에 바닥 드러내듯 말라 버릴지도 모를 위기감, 처음엔 따뜻했던 조합원들조차도 거미줄처럼 조이는 감시망에 이젠 공장안에선 눈길 한번 편하게 던질 수 없다는, 이 차가운 현실이 버티고 있는 그 자리에서 이들은 지난 1월 22일 세 번째 천막을 쳤다. 겨울의 혹한에 잘 버틸 수 있도록 더욱 굳세게 천막의 끈을 바닥에 단단히 묶어 두었다.

“우리가 해고되었으면 그냥 가버리면 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이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해고 문제는 울산, 크게 보면 전국 비정규직 노동자들 전부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싸우고 있다는 걸 전국에 알려야 합니다. 처음엔 우리가 되었지만 우리뿐 아니라 누군가 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전국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고향이 가까운 부산이지만 설날에 집에도 못간 노동자 조재현. 스스로는 나이가 많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제 서른 네 살의 나이인 젊은 노동자의, 세상을 다 안은 듯한 무겁고 아픈 다짐이 가슴을 때린다. 그 울림이 하도 커서 위태롭게 천막 벽을 쳐대는 바깥 소리도 내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외롭고 고단한 섬 같아만 보였던 천막 안에 이토록 무겁게 세상 밑으로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있었다니, 바위들이 있었다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마음이야 이 자식 놈 잘 되길 바라시겠지요. 다 큰 자식이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도 아직 결혼조차 안하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일 테지요. 자식 놈의 사회생활 역시 어머니 입장에서는 많이 부족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안에서나 밖에서나 한시라도 쉴 틈이 없을 테지요.

이런 와중에 자식이 회사에서 해고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복직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시고 “지금이라도 당장 고향에 내려와서 다른 직장으로 취업 준비하는 것이 어떠하냐”고 말씀하십니다. 저 말고도 지금 같이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의 부모님 또한 어머니처럼 말씀하실 겁니다.

하지만 이 나라 이 땅 어딜 가도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곳 역시 비정규직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아무런 이유 없이 또 해고가 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그냥 조용히 살면 안 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어릴 때부터 “잘못한 것은 용서 빌고, 뉘우치며, 바르게 살아야한다”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착한 사람을 이용하고 바르게 살면 빙신 취급 합니다. 법대로 죄 짓지 말고 살라고 가르쳤지만 나쁜 놈들은 그 법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나쁜 놈들이 항상 승리합니다.

어머니, 가진 것 없고 물려받은 재산 없고 그 잘난 빽도 없는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제가 성인이 되고 난 지금 어머니는 그냥 적응하라고, 부당한 것을 잘못된 것을 모른 척 넘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억울하고 부당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행동이 어머니 가슴에는 못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항상 눈물이 앞섭니다. 자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저와 여동생뿐인데...... 자식된 도리도 못하고 있고, 장남된 도리 역시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생각하시는 만큼은 아니지만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어머니 곁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곤 합니다. 잘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어머니께 효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습니다. 2006년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께서는 엄청 후회하시며, 3일 밤낮동안 두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외할머니를 성심을 다해 모셨음에도 효도를 다 못하셨다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셨다는 걸 말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 살아생전 성심을 다해 모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 한 곳이 아립니다. 이번 설에는 어머니께 내려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집안이 썰렁할 것이란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쁜 놈입니다. 죽일 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복직을 하면 꼭 내려갈 것입니다. 그러니 그동안 몸 건강하십시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경남산업 해고 노동자 조재현의 편지글 中


공장 안으로 들어오기 전 밖에서 전화를 걸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 보았지만 별로 필요한 것이 없다고 해서 참말인줄 알고 집에서 겨우 꿀차만 끓여 왔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내 눈에는 필요한 게 천지다. 천막 안이 무척 건조한데도 당장 목을 축일 만만한 음료수가 없다. 바깥에서 들어 올 때 귤이라도 좀 사들고 들어올 걸 하는 후회가 인다. 전날까지 설 연휴 기간이라 구내식당도 문을 닫아 버려 며칠 동안 제대로 식사도 못 했을 건데 덜컥 빈손으로 들어와 인터뷰를 한답시고 이것저것 물어가며 또다시 노동자들의 아픈 가슴을 퍼 올리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해 잠시 원망이 인다. 한번 들어오기도 힘든 공장인데 왜 이렇게 준비 없이 왔을까. 긴 농성과 겨울 추위에 지친 이들에게 귤이라도 한 박스 사들고 왔더라면 오죽 좋을까. 밖에서는 지천으로 나뒹구는 게 귤인데...... 아, 나는 인터뷰라는 목적에만 급급했지 정작 이 사람들이 놓인 처지와 현실에 대해서는 무심했던 것이 아닐까. 인터뷰는 수단일 뿐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에 대해서 세세한 배려를 기울이지 못한 나의 마음 씀씀이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내내 마음을 눌러 온다.

이들이 천막을 치고 있는 곳 바로 옆에는 그들을 해고한 경남산업이 있다. 그리고 출퇴근 시간이면 동료들이 회사차를 타고 내리는 정류장이 앞에 있다. 공장으로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결의와 동료 노동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강렬한 소망이 이 자리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바람에 논밭이 쓸려 가버리듯 두 번이나 천막이 뜯겨져 나가고 투쟁하던 노동자들이 강제로 들려 나가는 동안도 조합원들은 고요하다.

“안에서 안 움직이니 회사가 무슨 반응이 있겠어요. 안에서 노동자들이 좀 움직여 줘야 회사에서도 반응을 할텐데......”

회사에서는 무슨 반응이 있느냐는 나의 물음에 인터뷰 내내 별말이 없던 노동자 신대운이 불쑥 한마디 내던진다. 그의 말은 지금 이 천막을 지키고 있는 세 명의 노동자들 모두의 염원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공장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마음인들 편하기만 하겠는가. 이쪽으로 발길 한번 했다가는 불이익을 받을게 뻔한 불안한 인생들에게 연대의 책임을 모두 넘기는 건 잔인한 일이다. 그러나 공장안의 그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마을 대장군처럼 우뚝 공장 앞을 지키고 있는 바깥의 이들로 인해 공장 안의 그들이 배추 속잎처럼 무사하다는 것을. 거센 풍파에 배추 겉잎이 찢겨져 나가면 안의 여린 잎들도 모두 찢겨 나가거나, 다시 누군가가 배추 겉잎이 되어 안으로 몰아치는 풍파를 막아야 한다는 것을.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을 물어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내용인데 경남산업에서는 삼 개월, 육 개월 단위로 기간을 명시한 다른 하청업체와 달리 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따로 나와 있지 않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부 하청업체에서는 언제고 일방적 해고가 가능하다는 걸 계약서에 명시해 두지만 경남산업의 계약서에는 그런 내용들이 없다. 인터뷰 도중 우연히 이 사실을 알고 나는 가슴 한 켠이 찡해졌다. 세 명의 노동자들 중 어느 누구도 이런 말들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끝까지 싸우는 또 하나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들이 천막을 걷는 순간 안에 있는 동료들의 삶도 풍비박산이 난다는 걸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노동자의 싸움이다. 자신의 이익을 넘어선 큰 마음. 나는 이 젊은 노동자들의 싸움 앞에서 몸이 작아지고 자꾸만 부끄러워졌다.

우리가 여기서 물러선다면 또 다른 임태현, 조재현, 신대운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쓰다 버리는 일회용품입니까? 우리 노동자들은 현대차와 하청 사장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회용품이 아니라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입니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투쟁하는 것입니다. 부당함에 맞서 생존권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경남산업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 기록글 中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많은 노동자들에게서 한결같이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들에게서는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이나 당장 눈앞의 안락을 걱정하는 이기심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도 사람인데 왜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과 걱정이 없을까마는 오랜 투쟁을 통해 오히려 마음이 많이 맑아지고 명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오랜 고난 속에서 해탈에 이른 부처님처럼 인간은 극한 고통 속에서 삶의 진리와 맞닥뜨리기도 한다. 대웅전 불상 앞에 쪼그린 가난한 중생처럼 겁 많고 번뇌 많은 나는 이 젊은 노동자들 앞에서 자꾸만 나 자신이 깨어지는 아픔이 인다.

이 천막에서 공장 안쪽으로 좀 더 내달리면 동해바다가 시작된다. 태평양의 시작이다. 바다의 시작이자 한반도 동쪽 땅의 끝인 이 곳. 파란 섬처럼 천막을 띄운 노동자들. 그러나 이제 알겠다. 그들이 띄운 이 파란 섬은 작은 섬이 아니라. 동해바다 수 천 미터 아래 그 깊은 뿌리를 내린 화산섬. 뜨거운 용암이 아직도 끓고 있는 뜨거운 섬. 이곳은 활화산이다.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서민들입니다. 언제까지 이 소규모 사업장의 해고 문제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겁니까? 이제 앞으로는 점점 더 단기 근로 계약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대로 가면 점점 더 서민들이 밥벌이를 하고 살아가기가 힘들어집니다. 이 사실을 전 국민들이 모두 알아야 합니다. 자식을 낳아서 우리 자식들에게도 이런 현실을 되물림 해야 합니까?”

그들이 되묻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덮친 공장. 일 년에서 육 개월로, 육 개월에서 삼 개월로 한 달로 하루짜리로 점점 더 한 시간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삶으로 내몰리고 있는 이 순간. 과연 우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냥 살아가도 되는 건가. 내일이면 또 누구의 삶이 공장 밖으로 내몰릴지 모르고 또 누구의 목숨이 끊어질지도 모른다. 팔 개월 된 핏덩이를 바깥 집에 두고도 밤이면 천막 안에서 새우잠을 자야하는 노동자 임태현. 차마 무거운 입이 떨어지지 않아 집 이야기는 닫아두고 싶어 한다. 우유 값이며 기저귀 값은 어쩌냐는 뻔 한 물음이 혀 위까지 올라 왔지만 나는 이 방정맞은 물음을 접어 두기로 한다. 다만 그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 다닐 이번 여름에는 아빠가 꼭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염원만 가슴에 묻어둔 채.

욕심 같아서는 어둠이 내릴 때까지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곧 퇴근 시간에 맞춰 현장 투쟁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의 시간을 뺏기는 무리인 듯하다. 아쉬움을 담아둔 채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나는 또 습관처럼 뭐 필요한 게 없느냐고 묻는다.

“필요한 거요? 우리의 싸움을 밖에 꼭 좀 많이 알려 주세요”

아, 겨우 머릿속으로 다음에는 귤 한 박스를 꼭 사들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그들의 대답이 등짝을 내리친다. 간절한 소통, 그리고 연대...... 이 갇힌 공장안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인간의 삶을 부르짖고 있다는 이 사실을 알려 달라. 제발 우리가 여기에 살아 있음을. 이 절실한 외침을 알려 달라. 알려 달라.

회사 정문에 출입증을 반납하고 집으로 차를 몰아 돌아오는 길. 집 쪽으로 가는 길엔 홈에버 노동자들의 파란 천막이 있다. 지난 해 여름 이후, 그 지랄 같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덮치던 그 순간에 갑자기 파란 섬들이 도시에 떠다닌다. 온 세상의 저 바닥까지 뿌리를 내린 화산섬. 뜨거운 활화산들이.
덧붙이는 말

서해식 님은 르뽀 작가로, 울산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사진에 담듯 글에 담는 직업을 하고 있다. 15회 전태일문학상과 2회 민들레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글은 울산노동뉴스와 동시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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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 천막농성 , 해고자 , 경남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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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공공기관지부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농성 참으로 힘든 세상에 자본의수탈에 맞서 의연히 투쟁하는 노동형제들, 꼭승리하기를 바랍니다.

  • 울산공공기관지부

    고용은 줄고 경제는 성장하고, 왜?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여 자본가들이 먹었으니까 웃긴다.정치인들 경제를 살란단다,비정규직양산하고,해고하고 그래서 자기들만의(정치인,자본가) 경제를 살리면서 마치 그것이 노동자들의 경제를 살리는것처럼 사기를 친다 정말 나쁜 정치꾼들이다. 참으로 우리노동자들의 처지와 현실이 안탓깝다. 노동자들도 이제 제대로된 정치세력화를 해야 겠다. 사기꾼정치인말고 말이다.

  • 이선옥

    가슴을 아프게 하는 글입니다. 갑자기 파란 섬들이 떠다니는 도시......꼭 복직하시기를, 그리고 작가님도 계속 섬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해 주시기를....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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