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2008.1.4)에 필자가 “5년 금방 간다, 폼 잡지 마라”고 이명박 측에게 경고한 적이 있다. ‘국민을 잘 섬기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기에 그들이 귀담아 듣든 말든 상관없이 좋은 충고 하나 했는데, 역시 전혀 귀담아 듣지 않는다. 여전히 천박하다. 역사 발전의 원동력과 원칙을 모르는 자들과 소통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
허접한 고객감동 고객만족 서비스
국민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자는 제안을 했다. 내부에서는 정말 바람직하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자평하면서 공식적으로 제안하면 “정말 대통령 하난 잘 뽑았다”는 희망 섞인 소릴 듣고 싶었던가보다. 고객감동 서비스 정신의 발양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민심은 매우 싸늘했다. 아니 여론의 직격탄을 맞아 하루 만에 철회했다. 무슨 동원체제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도 아니고. 이런 제안을 하기까지 무자년에 걸맞게 무자게(무지하게) 고심했단다. 노무현 정권이나 전·현직 서울시장 모두 숭례문 화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정말 철없는 철부지(삼척동자)요 개념 없고 판단능력 부족이다.
당초 정부조직 개편안에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 등을 통합하여 ‘인재과학부’로 명칭을 정했다가 교육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교육과학부’로 수정하였다. 여론의 향배가 불리하니 잽싸게 꼬리를 내렸다. 또 기러기 아빠를 없애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 일반교과목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겠다고 하였다. 앞으로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할 때도 “How much?”를 해야만 할 것 같다. 정말 끝내주는 발상이요, 최고의 히트작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직인수위의 상실된 현실감각이야 말로 ‘개콘’ 보다 더 개그스럽다. 정말 그들의 고객을 감동시키고 만족시키겠다는 고뇌에 찬 결단에 대해서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전봇대 뽑듯이 돌쇠처럼 밀어붙이는 정부조직개편안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승자독식의 원칙(winner take it all)은 기본 원리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가능하면 승자들의 결정에 대해서 일반 대중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수용하려는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승자독식의 원칙 아래 다수의 횡포와 전횡이 그대로 관철되어 수많은 독선과 독단을 양산했음에도 누가 곰의 자손이 아니랄까봐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측의 조직개편과 인사 문제에 대해서도 굳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간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갈등은 아무리 대의제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정치의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해도 해석불가 납득불가다. 오늘날 이 승자를 만들어준 유권자들의 시각에서도 최소한 납득할 만한 수준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함량 미달인 것이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은 양자 간 협상의 극적인 타결을 원해서 계속 결렬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몇 가지 재미있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청와대의 외형은 줄었지만 이것이 오히려 대통령의 위상과 역할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의 등장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며, 앞으로 소수의 측근들하고만 정책을 결정할 가능성이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둘째, 효율성과 실용성을 빙자한 숫자의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개편안에 의하면 공무원이 7000여명 감축되고 예산이 연 4900억 원 정도 절약된다고 한다. 사람과 예산이 줄어드는 것이 반드시 효율적이고 작은 정부는 아닐지 언데, 인수위는 조직 축소와 사람 축소로 작은 정부를 말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17일 박재완 한나라당 의원이 KBS1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6951명 감축과 연 4900억 원의 절약을 통해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서 같이 출연했던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협조를 부탁하고 청취자들에게 까지 이해를 구한바 있다. 현실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숫자의 정치학이라는 통념을 새삼 입증하고 있다.
셋째, 마구잡이식 통폐합이다. 정보통신부, 통일부, 해양수산부, 여성가족부, 과학기술부 등 통폐합 대상 부서가 대부분 미래지향적이고 첨단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였다. 이들 부서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전봇대 뽑듯이 그냥 뽑아버린 것이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부처를 신설했다가 시대적 소명을 다하면 폐지하는 것이 순리라고 한다면, 과연 그 소명을 다했는지 궁금하다.
넷째, 신자유주의를 더욱 심화시키는 개편안이다. 경제살리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에 걸맞게 재정경제부를 기획재정부로 개편하여 부처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기획재정부라는 공룡조직으로 복귀하는 바람에 신자유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청와대의 정책 주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섯째, 가장 자신이 없거나 가장 싫어하는 부서를 통폐합 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당선자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익히 알려진 일이고, 마사지걸 발언을 봐서도 알겠지만 여성에 대한 개념과 의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통일부와 여성부 폐지 발상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땅 파서 말뚝 박고 건물세우는 토목공사나 도로포장 등 아날로그식 개발을 좋아하는 사람이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을 좋아할 리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네티즌들의 안티가 무서운 줄은 알고 있으니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의 폐지 역시 현명한 선택인 것이다. 물론 바다보다 땅이 더 우선순위이고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해양수산부를 국토해양부로 통폐합하는 것도 순리인 것이다.
여섯째, ‘돌관정신’이 돋보임과 동시에 노무현 정권을 닮은 개편이다. ‘돌관정신’이란 바로 현대건설의 기업정신인데,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아도 목표점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돌진해, 원하는 바를 이뤄내는 것이 현대건설의 대표적 정신”을 말한다. 건설업계에서는 장비나 시설이 부족하더라도 ‘하면 된다’는 정신력으로 최대한 짧은 기간에 공사를 마치는 것이 돌관공사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청계천, 서울의 숲 그리고 멀게는 경부고속도로 공사를 들 수 있다. 용어에서도 막무가내식의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또한 그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독선과 뚝심은 어쩜 그렇게 노무현을 닮았는지 모르겠다.
노무현과 김정일 그리고 부시
1년 이상 준비한 개편안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허접하고 요즘 시쳇말로 정말 쩐다. 이명박 당선자의 스타일을 보면 여러 명의 지도자가 겹쳐진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닮은 꼴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결심하면 한다’는 굳은 신념과 소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닮아 보인다.
무엇보다 부시의 스타일과 많이 닮아 보인다. 행동을 우선시 하고 결과지향적인 스타일, 의회나 여론의 동향을 중시하면서도 그 필요성과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는 정책이 있으면 과감하게 추진하는 정책결정 방식, 자신의 보수적인 시각이 모든 가정을 번창하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는 투철한 사명감 등등.
이러한 스타일은 절차나 과정보다는 신속한 행동과 가시적인 결과를 선호한다. 그럼으로써 의회 내 야당과의 적절한 대화나 타협을 소모적인 것으로 파악하게 하고, 정책결정 방식을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방향으로 강화시킨다. 결국 결과지향적인 리더십 스타일은 대부분 대통령 자신과 여당의 정책적 입장이 집중적으로 반영된 정당편향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의회의 정책결정 과정은 정당 간 대립으로 귀결되게 만들 것이다.
처음느낀 그대로
사람은 누구나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중요시 한다. 물론 그 느낌은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인상이나 관상과 관계없이 상대방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는 데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일정 정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첫 느낌은 설레임과 두근거림이 없다. 항상 어색하다. 그에 대한 첫 느낌은 갖은 상상과 예측을 하게 했고 그 상상은 현재의 모습과 일치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세계 최초로 핸드볼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감독 특유의 인간적인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진정성과 울림이 있는 여성들의 연대를 그린 영화다. 그러나 영화만 인기있고 핸드볼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게 될 것 같다는 소박한 걱정을 해 본다.
이 영화가 임순례 감독이 주부 선수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반해서 만든 비인기 아마추어 스포츠에 대한 오마주(경의) 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관객들은 프레임 밖에서 핸드볼을 구경할 것이다. 그렇듯이 이명박 당선자의 인기는 일정 수준 유지할지 모르지만 그의 정책과 방향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 돌면서 주변에 머물 수도 있다. 예고편에 쓰인 ‘아무도 그녀들을 믿지 않았다’는 카피는 이명박 당선자를 향해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당선자가 이 영화를 보면서 흘린 눈물은 어떤 눈물이며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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