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있는 북의 초청과 자신감있는 뉴욕 필의 공연

[칼럼] 뉴욕 필의 평양 공연 의미

평양에 휘날리는 성조기는 김정일 음악정치의 결정판이다

이북에서 무언가 새롭고 획기적인 행사, 즉 자본주의 국가와 관련된 방식의 다양한 교류와 협력이 전개되면 많은 이들이 역사성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강한 기대심리를 표출하곤 한다. 이는 그 만큼 북을 둘러싼 정세가 급박하고 역동적이며 ‘동토’ 또는 ‘은둔’으로 표현되는 폐쇄적인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러한 기대심리는 지금까지 대부분 무너져버리기 일수였다.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 북과의 소통에 있어서 일방향적인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출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엊그제(26일) 평양에서 공연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 역시 과거와 동일한 반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진행되었다. 사상 처음은 아니지만 평양에 성조기를 휘날리며 미국 국가가 연주되었다는 것은 분명 역사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곤란하다. 사상 처음이 아님에도 사실 확인도 생략한 채 오보를 남발하는 다수 언론들의 호들갑이 오히려 그 의미를 반감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내한 했던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북행이 이뤄지지 않았던 점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지만 교착상태에 있는 북핵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연 불참 역시 이를 확인케 하는 증좌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북미 간 우호적인 관계증진과 상호 신뢰구축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임에는 이의가 없다.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에 의해서 적성국인 미국의 교향악단을 자국의 심장부인 평양으로 불러 오케스트라 선율에 자신의 메시지를 실어 전 세계를 향해 날려 보냈으니 말이다. 역시 김 위원장의 배짱과 인민들을 향한 선동은 대단하다. 북에서 음악은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대중교양의 훌륭한 수단의 하나’로 간주되어 인민들의 결속을 다지는 주요 통치수단으로 삼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뉴욕 필의 공연은 음악정치의 결정판이라 볼 수 있다.

선군정치의 중심 평양에서 쇼스타코비치가 울려 퍼졌어야

한편 이번 공연의 취지와 의미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연주 곡목 선정에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이번에 연주한 곡은 미국의 색채가 강한 작품들로서 독일출신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3막 서곡, 체코 출신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그리고 뉴저지 태생 거쉬인의 ‘파리의 미국인’을 연주했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3막 서곡은 ‘결혼행진곡’으로도 유명한 ‘혼례의 합창’에 앞서 연주되는 전주곡으로 결혼이 의미하는 것처럼 북미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염원하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은 ‘동토의 땅’인 이북에 미국으로부터 희망의 씨앗을 뿌리겠다는 의도로 읽혀진다. 마지막 곡 ‘파리의 미국인’ 역시 미국의 시선으로 폐쇄적인 이북을 바라본다는 일종의 ‘문화 충격’의 산물이다. 북의 정치적 판단과 선택에 의해서 추진된 공연이면서 미국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공연이기도 한 것이다.

드보르자크와 거쉬인의 경우 공연의도에 적합한 음악가이기에 별다른 설명이 불필요해 보이지만 바그너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바그너는 익히 알려진 바대로 1848년의 혁명에 참여한 혁명가이자 염세적, 탐미적 그리고 게르만주의적 경향의 음악가이다. 바그너가 반유태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로 왜곡되어 확대 재생산된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그너의 가장 대표적 작품인 ‘니벨룽겐의 반지’가 게르만 신화에 심취한 히틀러에 의해 “전형적인 독일음악”으로 평가받으면서 제3제국의 상징적 음악으로 내세워진 것이다. 그리하여 바그너의 음악이 유대인들에게는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아직도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금기시 되고 있다고 한다.

[출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러나 이번 뉴욕 필 지휘자인 로린 마젤이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지휘를 하면서부터 그 금기가 깨졌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이스라엘이 바그너를 받아들일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로린 마젤의 바그너 작품 선정과 연주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북에서도 자본주의 문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바그너와 그의 음악에 상당히 익숙한 편이다. 비록 모차르트와 베에토벤보다는 못하지만. 그의 음악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헬리콥터 공습장면의 ‘발퀴레의 기행’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로엔그린’에 나오는 ‘혼례의 합창’이 유명하다. ‘니벨룽겐의 반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야기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바그너가 사회혁명 한 가운데서 음악과 사회 전반의 혁명에 힘을 기울여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공연에서 뉴욕 필은 곡목 선택에 있어서 정치적인 고려가 전제되었어야 했다. 초창기 스탈린의 심기를 건드려 눈 밖에 났다가 절치부심 끝에 1937년 교향곡 5번 ‘혁명’을 작곡하여 명예를 회복한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연주했으면 더욱 의미 있는 공연이 되었을 것이다. ‘선군정치’의 핵 평양에서 ‘혁명’이 울려 퍼진다면 북측에 대한 배려와 함께 명분을 심어줌으로써 북미 관계 개선에 한층 더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국가관에 철저히 반항했던 아방가르드의 면은 철저히 무시되어 스탈린 시대의 희생양이 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스탈린주의를 한껏 비꼬았던 혁명 음악이었다.

미국에게 통일성을 중요시하고 감정이 배제된 무감각의 국가를 정상 국가로 앞당기기 위해서 이 정도 수준의 노력은 필요조건인 것이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정세가 복잡해 보이지만 그리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문제 해결의 열쇠가 북에게로 넘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북은 다급해 하지 않는다.

과거를 묻지 말고 윈윈(win-win)으로

핵을 둘러싼 북미 양측의 입장은 팽팽하다. 미국이 요구하는 신고 내용은 세 가지이다. 그것은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 시리아와의 핵 커넥션, 플루토늄 총량 및 사용내역 등이다. 우라늄농축 프로그램 문제는 북이 미국에게 신고 의무를 이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리아와의 핵 커넥션은 “현재 안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안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과거의 핵 협력설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플루토늄 신고는 미국이 40㎏~50㎏까지 확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반면 북은 현재 플루토늄 총량 30㎏을 제시하고 있어서 추정치의 오차범위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완전한’(complete) 신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며 얼마든지 타협이 가능하다. 한미 간에 북한의 완전한 핵 프로그램 신고 대신 부분·단계별 신고 방안을 추진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요 내용은 북한이 신고서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과 (시리아) 핵 확산 의혹은 비공식(private) 채널에서 계속 논의한다’는 주석(footnote)을 명기하는 데 동의한다면 북한이 지금까지 신고 내용으로 주장해 온 플루토늄(약 30kg) 신고만으로 신고서를 받아들여 돌파구를 여는 것이다(중앙일보, 2008.1.29). 즉 북한이 이 같은 주석을 단 신고서를 제출할 경우 미국은 즉각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과 적성국 교역 제재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북핵 폐기를 위한 최종 협의에 들어가면 된다.

현재 북미간 기싸움이 팽팽해서 성과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지만 양측 모두 대화의 틀을 깨기는 원치 않고 있는데다 뉴욕 필의 경우처럼 비공식적 문화교류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회담의 동력은 여전하며 이번 공연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구체적인 문안을 표기하지 않고 ‘앞으로 핵 프로그램 신고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문구로 협상 카드를 제시한다면 (이미 지난 합의문에 모두 명기된 내용이기 때문에 사실상 동어반복이더라도) 북한이 스스로 성실한 태도를 한 번 더 확인하는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미 의회와 워싱턴 강경파의 반발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말이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1월 30일 미 의회조사국이 <북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제하 보고서에서 3가지 정책대안을 소개했는데, 그 중 두 번째 대안으로 단계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이 영변 핵시설 불능화를 완료하면 미국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나 적성국 교역금지법 해제 중 어느 한 가지 조치를 위한 절차에 착수하고 북한이 핵프로그램 신고를 마치면 나머지 조치를 취하는 단계적 해법을 강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방안 중 어느 방안을 선택해도 북미 양측에게는 윈윈(Win-Win)이 될 수 있다. 뉴욕 필의 오케스트라 선율이 평화를 타고 흘러 아름다운 코러스가 되어야지 레퀴엠(장송곡)으로 남은 방북 보고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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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인(편집위원, 한신대)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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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

    지랄을 하네요
    북한의 문화란 소설 1984년에서 독재자처럼 단지 흉악한 목적으로 쓰일 때만 존재하는 그 ‘문화’에 불과하다.

  • 지나가다

    참세상에서 '김정일 음악정치'과 관련된 칼럼을 뉴스레터 메인을 뽑은 것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한가지, 내용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군요. 영화를 통해서도 대중화된 툴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과 지그프리드의 영웅담을 담은 니벨룽겐의 반지는 제가 알고 있기론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쇼스타코비치까지 거론하며 훈수를 두기엔 칼럼 저자의 자의식 과잉이 너무 두드러져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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