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석을 얻은 한나라당은 친박 의원들의 복당을 통해 국회의 모든 상임위원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는, 절대과반인 168석 이상을 획득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반노동자 이명박 정부는 거칠 것이 없게 되었다.
반면에 민주노동당은 10석에서 5석으로 반토막났고, 진보신당은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이를 두고 언론, 여론은 진보의 위기와 몰락이라고 말하는데, 정작 주체 자신들은 나름대로 선전했다며 자족하는 듯하다. 이들의 생각처럼 부분적인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보진영에 있어 18대 총선의 큰 의미는 분명하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 실패의 최종확인이며, 진보신당이 그 대안이 될 수 없음의 증명인 것이다.
노동자대중이 처한 정치적 조건은 10년 전으로 후퇴한 것 같다. 상상 이상의 반노동 공세가 몰려오고 있고, 여기에 발이라도 걸어줄 노동자정치의 싹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여기서 주저앉거나, 이것이 싫으면 다시 시작해야 할 뿐이다. 제대로 된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말이다.
제대로 된 노동자정당을 건설하자
민주노동당은 이중의 의미에서 노동자정치세력화에 실패했다. 먼저는 노동자당원들을 정치주체로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돈만 내고 표만 찍는 존재쯤으로 대상화한 것이며, 또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능동적으로 대변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배신까지 자행하는 행태를 보여 왔던 것이다. 2005년 현대차 불파투쟁 방기, 2006년 노사관계로드맵 합의, 2007년 권영길 대선후보의 친기업당 발언, 한국노총 사과사태 등이 노동자정당의 정체성을 배반해온 역사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는 2008년 벽두부터 어김없이 반복됐다. 민주노동당 분당과정에서 노동자당원들과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문제의식은 철저하게 배제되었고, 대신 소모적인 종북논쟁과 권력투쟁이 횡행했다. 더욱이 신당파는 민주노총당, 데모당 탈피를 운운하며, 당의 근간을 부정했다. 노동자당원들은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당이 쪼개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만 했다.
총선과정에서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게서 노동자정당다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노동자당원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 노동자후보가 아닌, 전략공천이라는 명분으로 외부에서 영입한 불분명한 정체성의 인물들이 비례대표 후보의 면면을 이루었다. 특히 당선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의원 3인 중 2인은 정동영, 강금실 지지경력으로 논란을 산 이들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비정규직 공약에서는 가장 심각한 노동현안인 비정규직악법 폐기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한편 진보신당은 더 우경화화여 사회적 합의주의의 일종인 사회연대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게다가 그들은 창당과정, 총선과정에서 노동자정당,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말조차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이처럼 분당과 총선은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실패했으며, 진보신당은 그 대안이 아님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실패했다고 그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노동자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는 군사정권과 그 아류,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권 10년과 투쟁하며 성장해온 민주노조운동의 역사가 비추어주는 우리 노동자가 가야 할, 절대 꺾여서는 안 될 길이다. 노동자 잘 때려잡아 경제성장하겠다는 이명박과 10년 동안 민생을 파탄시켜놓고 뻔뻔하게 이명박 견제를 호소하는 민주당에게 노동자의 삶을 맡기겠는가? 그리고 다시 한 번 민주노동당과 그 아류(진보신당)를 믿어보겠는가? 대안은 제대로 된 노동자정당의 건설이다.
새로운 노동자정당의 내용은 반자본주의, 사회주의여야 한다
노동자정치에 대한 고민은 아예 실종된, 누구를 위한 분당이고 총선인지 알 수 없는 혼탁한 상황에서 지난 3월 3일 해방연대(준) 회원들은 민주노동당 탈당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해방연대(준)은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역사적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 창당”되었지만, 이처럼 “중대한 역사적 시도가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그러나 “노동자정치세력화는 현재의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새롭게 출발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탈당하고, 진보신당에도 불참한 단병호 전 의원도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패가 당 위기 본질”임을 지적하며, 자신의 탈당은 “민주노동당은 위기의 본질을 통찰하고 있지 못하고, 따라서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내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있지만 민주노총 내에 민주노동당 당원은 없었다”는 단병호 전 의원의 말은 노동자당원들을 정치주체로 세워내지 않은 민주노동당의 과오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해방연대(준)과 단병호 전 의원을 제외하고는 민주노동당을 구성했던 책임있는 주체들 중에 누구도 노동자정치세력화 실패와 새 출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병호 전 의원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단병호 전 의원은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왜 실패했는지, 그리고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앞으로 어떠한 이념적 내용과 한국사회 발전에 대한 전망과 함께 가야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특히 단병호 전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본인이 노동자정치세력화 실패의 큰 책임자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냉정한 자기반성 없는 민주노동당 평가는 그 진정성을 의심케 할 수 있다.
단병호 전 의원은 총선 직후 가진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새로 만드는 정당은 계급적 대중정당이 돼야” 하며, “당의 중심 활동 부분에 노동자 계급을 세워내”고, “사회적 개혁 의제와 정책들을 급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단병호 전 의원의 문제의식은 그 자체로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미 민주노동당 창당 이전에도 ‘노동자중심의 진보정당’, ‘변혁적 진보정당’ 등의 주제로 제기됐던 낡은 것이다. 우리가 지금 답해야 할 문제의 핵심은 진보와 급진성의 내용을 변화하는 정세에 맞춰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치세력화에 실패한 것은 비정규직 철폐, 질 좋은 일자리 등 오늘날 노동자대중이 직면하고 있는 절박한 과제의 해결이 심화된 자본주의 모순으로 인해 자본주의의 극복과 지양을 우회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체제안주적인 실천만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노동현안의 해결에 무능력한 세력, 노동자정당이라는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 진정성 없는 세력으로 전락했다. 또한 자본, 정권과의 정면대결과 이를 위한 대중투쟁의 조직을 회피함으로써 자연히 노동자당원들이 투쟁 가운데서 정치주체로 성장하고 당의 의사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기회도 봉쇄되었다. 창당과정에 헌신적으로 결합했던 노동자당원들은 점차 주변화되고, 대신 상층관료가 당을 좌지우지하는 상태가 강화되어 왔다.
따라서 이제 노동자정치세력화는 반자본주의 투쟁의 강화를 통해서만 온전히 실천할 수 있다. 반자본주의 투쟁을 통해서만 노동자대중의 삶을 진전시킬 수 있고,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진정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당원들은 단련되고 정치의식을 높여나가며, 이로써 스스로를 정치주체로, 당의 주인으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주체형성을 통해 당내 민주주의가 강화될 것이고, 당은 더욱더 노동자대중과 밀착할 수 있다.
반자본주의 투쟁 강화에 더하여 새로이 건설될 노동자정당은 한국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해서도 명백한 상을 제시해야 한다. 총체적인 대안과 전망이 없었던 민주노동당은 이명박과 전망투쟁을 벌려내지 못하고 성장주의, 시장주의가 대중을 장악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용인했다. 따라서 새로운 노동자정당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 대안을 과감하게 제시하며, 한국사회의 발전을 둘러싸고 자본가계급과 치열한 전망투쟁을 벌려야 한다. 그래서 고통받는 민중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의 투쟁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앞으로 논의하고 건설해갈 당은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이어야 한다. 사회주의 노동자정당만이 노동자정치세력화 실패라는 현 정세에 대한 올바른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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