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자, 더 크게! 소리치자, 더 크게!

[기고] 118주년 메이데이, 그 길에 서서

이랜드 ‘새벽’ ‘신화’, 뉴코아 ‘활화산’, 코스콤비정규 ‘한길’...

현장에서 일하며 투쟁하며 만들어왔던 율동패가, 파업현장에서, 거리에서 빛을 발한다. 하루의 투쟁일정 뒤 녹초가 된 몸으로 땀 흘렸던 시간, 투쟁에 대한 괴로움을 눌러가며 혹은 풀어가며 이어온 날들. 쌓아온 시간과 땀이 반짝인다.

지쳐가는 동지들 모습에 힘은 빠지고, 버겁게 이어가는 살림살이도 모자라 평생 만져보기도 어려운 억대의 손배와 벌금은 늘어가고, 이가 빠진 듯 비어버린 동지의 자리를 보며 쓰린 마음과 머리도 공허하게 울린다. 길어져가는 시간만큼 무겁다. 동지들의 고통은 모든 노동자들의 현실인데...

거리로 나온 투쟁사업장의 싸움이 길어지지만, 점점 전체 노동자들의 눈에서 벗어나면서 고립되고 있다. 비뚤어진 자본의 세상에서 소외를 끊어내기 위해, 지금의 전선을 총노동의 것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비정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이 꾸려졌다. 원하는만큼의 확고한 투쟁을 만들어내지는 못해도 ‘공동투쟁’의 의미를 안고 움직인다.


‘그래, 이 전선을 제대로 만들어내자. 선두에 있는 동지들이 다시금 힘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전선을 확대하면서 총노동 대 총자본의 제대로 된 전선을 만들어내야 한다.’

투쟁사업장의 율동패를 포함해 함께 해왔던 수도권지역의 율동패들과 힘과 뜻을 모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연합문선을 제안했다. 우리부터 공동으로 실천하고, 공동전선의 의미를 말하자. 동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연출안을 고민했다. ‘노동자 계급의 투쟁, 공동전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파업투쟁의 일정으로 지친 동지들은 귀한 휴식시간을 반납하고, 현장에서 일하면서 연대하고 있는 동지들은 조퇴를 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피멍이 들고, 지쳐 쓰러져가면서 동의하고 결의한대로, 그렇게 준비해갔다.

우리의 얘기를 풀어 낼 공간을 찾았다. 공투단의 4월 중순, 투쟁일정 중에 문선을 올리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4.30 투쟁문화제에서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투쟁하는 메이데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문화제는 어디서, 또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논의의 흐름에 맞춰 우리 역시 고민하며 문선을 준비했다. 문선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고민, 그 시작점이 중요하다. 어떤 판이 되든, 공연을 하지 못해도 투쟁으로 우리가 가져왔던 고민들을 실천하자.

여러 논의들 속에 4.30 문화제는 상암으로 결정되었다. 고민했던 만큼의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해 안타깝지만 냉철한 평가와 정리가 필요하리라.



문선의 실현 가능성보다는 투쟁하는 날을 사수하기 위한 결의들로 고민하다 갑작스레 무대에 오르게 돼서 얼떨떨함도 있었지만, 그간 고민하고 준비했던 내용들을 말하고 싶었다.

피멍이 들어왔던 투쟁의 과정과 맞고 쓰러지기를 수십번 반복했던 연습의 과정을 녹여냈다.

‘다했냐’ 노래 가사에 따른 영상이 나온다.

“ 정리해고, 깡패, 폭력, 가압류, 발목을 자르고, 폐업, 고소고발, 감시카메라, 외주용역...
그러나 너흰 우릴 죽이지 못했다, 이제는 우리가 돌려준다“

영상이 끝나고 스머프 음악에 맞춰 율동패가 밧줄을 메고 무대에 신나게 올라간다. 흥겹게 걸어가던 노동자들은 강고한 자본의 벽에 부딪친다. 이리 저리 피해갈 구석을 찾아보지만 결국 자본의 일격에 쓰러진다. 한 노동자가 쓰러지자 같이 줄을 들고 있던 모든 노동자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진다. 일어나려고 버둥대보지만 같이 들고 있던 줄에 더 엉킬뿐이다. 아, 같이 줄을 잡고 있으니까 쓰러지는구나... 노동자들은 함께 들고 가던 밧줄을 한 명씩 버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밧줄을 버리고 자유로워진 순간 자본의 무차별적인 폭력이 가해진다. 그렇게 모두 밧줄에서 멀어져 쓰러진다.

‘다시 바리케이트 위에’ 전주가 흐르고, 한 명의 노동자가 힘겹게 기어가 밧줄을 움켜잡는다. 자본의 공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밧줄을 잡고 쓰러진다. 맞아도 또 움켜쥐고 쓰러져도 밧줄을 놓치 않는다. 한 명, 또 한 명... 밧줄을 잡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수해내는 우리의 투쟁전선. 모든 노동자가 밧줄에 붙어 다시 움켜쥔다. 노동과 자본에 전선이 형성되었다. 공동의 투쟁은 시작되었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투쟁해온 노동자들의 거대한 함성이 영상을 통해 전해진다. 그리고 그 영상을 온몸으로 받고 무대에 선 율동패들, 과거의 투쟁과 현재의 투쟁이 만난다. 그리고 우리가 가져가야 할 그 전선에 함께 서 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상징하는 적기가 등장한다. 휘날리던 적기는 꺽이고. 쓰러진 적기를 지나 노동자들이 하나둘 걸어나온다. 또다시 투쟁을 이어간다. 공동의 움직임을... 함께하는 동지들의 몸짓 뒤로 다시 적기가 세워진다. 펄럭이는 적기와 문선대가 다시금 꿈틀댄다. 노동해방의 염원을 담아.



갑작스런 제안을 받고 메이데이 집회 사전대회 때 다시 한 번 이 연합문선을 올리게 되었다. 총연맹 중앙메이데이 연합문선을 조직하는 과정에서조차 배제되어 있기도 했고, 투쟁사업장 동지들을 포함하여 많은 동지들이 그간의 총연맹의 투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처음엔 모두가 내키지 않아했다. 하지만 집회에 올 대오들을 생각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4.30과는 조금 다른 공간에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바리케이트 위에’와 투쟁사업장 동지의 발언으로 무대를 만들어보기로 결정했다.

준비해놓은 영상도 쓸 수 없고, 사전대회라 대오가 모이느라 어수선한 상황. 우리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전달하기에 조건은 나빴지만, 4.30 판에 급하게 수정을 가해 ‘다시바리케이트위에’와 이랜드 율동패 동지의 발언으로 내용을 채웠다

온 몸으로 소리쳤다. 그 곳에 모인 동지들에게 우리의 가슴 속 터질듯한 소리가 들리길, 우리의 몸짓이 실천으로 이어지길. 땀과 거친 호흡 속에 이랜드 율동패 동지의 발언이 이어졌다. 함께하는 투쟁을 호소하는 동지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함에 뒤에 서 있던 많은 율동패 동지들이 눈물을 삼켰다.

짧은 평가 속에 동지들이 울었다. 이틀간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슴 속 깊은 곳의 감정을 끌어내보였다. 진심으로 외치고 몸부림치면서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밑바닥까지 내려가 있는 나를 다시 추스르기도 했다. 긴 투쟁에 지친 마음들이, 연대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들이, 복잡한 우리들의 생각들이 하나의 몸짓으로 모아지고 표현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더 깊고 큰 울림이 되어 우리 모두에게 하나하나 돌아왔다.

각 단위로 돌아가 집회에 함께했다.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물을 팔기도 하고, 음료를 팔기도 하고 대오에 앉기도 했다.

청계광장까지 집회를 진행하면서 귀를 의심했다. 전체 메이데이 집회에선 공동투쟁의 흐름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투쟁단위들의 발언은 거의 배치되지 않았다. 시민과 함께하는 행진이 이야기되는 속에 메이데이의 계급적 의미들은 보이지 않았다. 집회의 끝까지... 그간 투쟁의 선두에서 힘겹게 싸움을 이어온 동지들의 투쟁과 공동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설마설마해서 이 동지 저 동지를 붙들고 물어보았지만 우리의 문선과 발언, 그것이 다였다.

청계광장에서 집회 마지막으로 부르던 ‘비정규직 철폐연대가’가 바람에 날렸다. 벌써 100일이 넘었던가. 인천, 다리조차 펴지 못하는 좁은 CCTV 탑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GM대우비정규직지회 동지에게 이 공허한 노래가 날아가지 않기를. 오늘의 투쟁에서 소외된 투쟁주체들이 허무해하지 않기를. 아니 허무하더라도 딛고 일어서기를.


행진대오를 보면서 작년 수도권율동패에서 진행한 선전전이 그리웠다. “투쟁은 패배할 수 있어도 투쟁하지 않는자, 이미 패배한 것이다”라는 플랭카드를 들고 열심히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외쳤던 기억.

올해는 투쟁하는 4.30, 메이데이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예년에 비해 더 투쟁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 메이데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일거라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새삼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에 비해 우리 율동패들의 작은 실천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힘을 내자. 쓰러지면서도 몸에 힘이 다 풀려가도 부들부들 떨면서 몸을 일으켜 기어이 붙잡고자 했던 공동투쟁의 전선... 다시금 만들어내고 세워내자. 투쟁하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움직이자, 더 크게, 소리치자, 더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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