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기고] 촛불을 든 대중들이 맞닥뜨린 딜레마

컨테이너 장벽이 쳐지고, 그 앞에서 장시간 시위대 사이에서 토론이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컨테이너를 넘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결국, 컨테이너 위로 깃발들을 올리는 것으로 타협이 이루어졌다고 하더군요.

  2008년 6월 11일 새벽 컨테이너 벽 앞에 즉석 자유발언대가 세워졌고 시민들은 논쟁을 벌였다. / 사진: 김용욱 기자

사실 이 토론은 폭력의 수위를 어느 정도로 사용할 것인가를 대중들이 스스로 논의하고 결정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유의미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싸움을 둘러싸고 대중들이 맞닥뜨린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유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컨테이너가 정확히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곧바로 알아챘습니다. 그것은 바로 "소통의 거부", 시위대의 의지에 대한, 국민의 의지에 대한, 이명박의 인정 거부의 선언이었지요. 아무리 시위대의 규모가 크다고 할지라도 이명박은 눈과 귀를 막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시위대는 결국 지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결국 반격의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것. 컨테이너는 바로 이러한 이명박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히 컨테이너 장벽은 대중들에게 또한 자신들의 무기력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컨테이너를 넘어가려고 했던 사람들도, 그것 너머에는 사실 청와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로 진격해 들어갈 수 없음이, 즉 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의 무기력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요. 기어코 넘어가 봤자, 결국 상징적인 의미밖에는 없다는 것,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컨테이너가 아니라, 도전할 수 없는 권력의 (거의 정신적인) 철벽이었고, 단지 컨테이너는 그것을 아주 효과적으로 물질화해서 보여줬다는 사실.

따라서 컨테이너 앞에서의 토론은 유의미했지만,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전선이 정확히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전히 문제는 힘이고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힘이지만, 이 힘은 결코 컨테이너를 넘어가거나 바로 그 앞에서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는 힘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촛불시위가 일찍이 지금처럼 노동자들의 투쟁을 필요로 하는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싸움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6월 10일이 지난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시민"과 "민중"의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민중운동 진영에 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시민"이 스스로의 힘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까지 그들은 이미 갔기 때문입니다. 이제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를 시민으로 선언하고 이 싸움에 얼마나 폭발적으로 융합해들어오는가가 우리의 싸움의 향방을 결정짓게 될 것입니다. 촛불시위가 이명박을 퇴진시키고 발본적인 더 많은 민주주의의 제7공화국을 수립할 수 있는가는 노동자 민중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는 마치 프랑스 혁명의 상황, 프롤레타리아트 없이는 부르주아지가 귀족계급을 물리치고 혁명을 달성할 수 없었던 상황과도 같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그 이전의 혁명과 현격히 달랐던 것은 바로 그것이 2원 대립이 아니라 3원 대립이었다는 점, 즉 귀족,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립이었다는 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바로 이 때문에, 부르주아 공산주의가 가능했다는 것, 프랑스 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무제약적인 평등-자유의 심오한 선언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과연 노동자 민중 진영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모든 사람들은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대중파업'을 만들어 내는 데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컨테이너를 현실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더 이상 기가 죽을 필요 없습니다. 당당히 노동자가 시민이 아니라면, 노동자가 해방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시민일 수 없고, 어느 누구도 해방될 수 없음을 선언합시다!

* 이 글은 최원씨가 현장기자석을 통해 본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덧붙이는 말

최 원 씨는 미국 뉴스쿨大를 거쳐 현재 시카고의 Loyola University Chicago 철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태그

노동자 , 폭력 , 민주주의 , 민중 , 시민 , 촛불집회 , 이명박 , 대중파업 , 비폭력 , 촛불문화제 , 컨테이너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최 원 (美 로욜라대학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그럼

    지금 모인 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란 말입니까?
    시민이라 딱지 지우고 능력의 한계를 개념지우는 것이야말로 소위 운동을 한다는 자들이 민중을 상대로 지운 딱지에 불과한 거 아닙니까?
    현재의 모인 자들이 시민이니, 국민이니 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가장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이미 민족주의도 국가주의도 없습니다.
    그들의 힘이 마지막까지 갔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여기서 마지막이면 이 싸움은 이미 끝난 겁니다.
    그들이 세운 매일 10만이상 꼬박꼬박 모여 시청앞에 자리잡은 촛불이야말로
    무엇으로도 변질될 수 없고 언론의 왜곡에도 한계를 느끼게 하는
    가장 기반적 전술이자 명박산성을 쌓을 수 밖에 없게 만든 가장 원초적 물질입니다.
    그 기반 위에 현재 이 기반이 없다면 무엇을 도모할 수 있을까요?

    치밀한 목표도, 전략도, 전술마저도 없다면 괜히 어설프게 변질이나 시키시지 마십시오. 명박이와 같은 취급받을 뿐입니다.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회와 민중의 변화를 학습하는 일입니다. 머리가 아니라 생활로 말입니다.

  • 넘어가고있나

    허허...현재 모인 분들이 프롤레타리아트라구요? 이건 좀 억지스럽네요.
    지금 운동한다는 사람들이 어디 "시민"이라는 딱지 지운다고 말이 먹히겠습니까? 대중조직이라는 민주노총은 현장 파업에도 짱만 보면서 "정치"라고는 할 줄도 모르는 상황이고 말만 많은 정치조직들은 지켜만 보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제 코가 석잔데, 변질시킬래야 시킬수 있는 실력이 없다고 생각되네요.

  •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지금처럼 노조와 일부 노동단체가 나서서 판을 깰까봐 우려스러운 상황이 없다. 민중과 시민을 가르기 전에 지금의 노동자, 농민들이 자신들의 조직적 결의 없이, 시민으로, 개인으로 광우병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에 참여해서 행동할수 있는지 부터 먼저 따져봐야 한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다 성숙한 시민은 아니지만, 당신들이 애써 민중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그런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 그럼님

    이글의 맥락은 노동자투쟁과 시민들을 분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의미로 쓰고 있는겁니다. 촛불을 든 시민 속에는 당연 노동자도 있고 학생도 있고 주부도 있습니다. 다만 실제 자본과 권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현장파업을 조직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건 민주노총이 실력이 있건 없건 상관없는 문제지요.

  • 최원

    제가 위 글에서 "시민"과 "민중"을 따옴표로 묶은 것은 그것이 그렇게 불리고 있다는 뜻으로 그런 것입니다. 민중을 시민 아닌 어떤 다른 집단으로, 심지어는 이익집단으로 표상해온 담론들이 많은 "시민운동" 단체 내에 있어왔고, 그 효과로 시민과 민중을 갈라 놓은 오랜 역사가있었습니다. 지금은 민중이 스스로 자신을 시민으로 호명함으로써, 그것도 능동적 시민으로 호명함으로써 이 민주화 운동에 동참해야 할 것 이라는 취지로 글을 쓴 것입니다.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 지금 노동자 민중들이 '대중파업'을 만들 실력이 없어 보이지만, 시민들 또한 컨테이너를 넘을 실력이 없어 보였던 건 마찬가집니다. 컨테이너 앞에서 벌어진 딜레마는 지금까지의 실력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계기였고, 이 딜레마는 '넘느냐' '안 넘느냐' 를 결정하지 못한 여전한 딜레마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절묘한 타이밍이라 볼 수 있는데, 남은 문제는 실력이겠죠...

  • 가자

    오늘의 촛불투쟁의 구성은 '민중'이라고 보기보다는 '다중'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 weepingcat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나참

    도대체 언제까지 입맛에 맞춰 대중,민중,시민,다중...
    계속 딱지 붙이기 놀이만 할 건가?

  • 바람은불고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6.10이후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할 문제가 뭔지, 현재 생겨나는 무기력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알려주는 글인 것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된 노동이 현재 보이는 굼뜬 모습은 실망스럽기까지 합니다. 또한,조직 노동이 현재의 정세에 전방위적인 개입이 되지 않았을때, 올바른 물질화가 되지 않았을때, 저 개인적으로는 그 후과가 두렵기까지 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