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값이 올라 운행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는, 말이 파업이지 화물연대와 건설노조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기에 이르렀다. 물동량이 10% 전후를 밑돌면서 수출은 물론 생산에도 차질이 오기 시작하고 건설현장이 서고 있음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안드로메다 별에 앉아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관계장관들을 직접 불러모아 내놓은 대책이라곤, 과잉상태에 있는 화물차를 떨이 값에 사들이고, 연료를 LNG로 바꿀 경우 정부에서 보조 하고, 심야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차량 폭을 늘리겠다는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대안에다, ‘엄단’, ‘구속’, ‘처벌’만을 강조하고 있기에.
요즘은 이 정도 기름 값이야 하고 차 몰고 다니는 사람들에겐 교통체증을 모르는 최고의 호시절이다. 유가 인상으로 기름 값만으로도 생계비의 20%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단지 차량 운행에 제한되지 않고 농사를 지으려도 물고기를 잡으려도 그렇고 생산은 물론 유통 및 서비스 부문까지 기름과 연관되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다. 이처럼 유가 인상은 곡물가 인상과 함께 물가인상을 촉발하는 만악의 근원이 되고 있다. 화물연대, 건설노조 노동자들의 파업은 단지 그들만의 외침이 아니라 국민적 아우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촛불 정국이라고는 하지만 그간 몇 차례 파업 때와는 달리 국민적 지지가 남다른 것도 그 반증이다.
유가 급등에 따른 국민이 겪는 고통은 차치하고, 취임하고 소위 747로 폼도 제대로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유가급등의 일차적 원인이 이라크전쟁을 비롯한 중동전쟁이라, 그렇게 좋아하는 부시 대통령을 타박할 수도 없는 처지이고 보니. 미국도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진 결정적 계기가 유류가 인상이라고 하니 오히려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기도 하고.
한편 지금의 유가급등이 소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이라는 부동산시장 붕괴에 따라, 갈 곳 몰라하는 뭉칫돈이 석유와 곡물시장에 들어가 장난친 결과이고 보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다. 미국 석유시장의 첫째 둘째 큰 손이 투기적 금융자본 모건 스탠리와 골드만 삭스라고 하는 사실에, 게다가 미국 의회에서 원유 투기의 뿌리를 뽑는다고 제재법안을 추진한다고 해도 금융상품과 실타래처럼 얽혀 끄떡도 않는 이 현실을 누구에게 대고 원망을 할 것인가.
그렇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책임을 모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유가가 급등함에도 불구하고 지식경제부는 지난해 12월 이래 지속하던 무역수지가 6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고 발표했다. 수출기업에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급등하는 환율을 일부러 방치한 결과인데 석유, 곡물을 그만큼 높은 가격에 사들여야만 했다. 결국은 전 국민이 석유와 곡물 값이 올라 손해를 본만큼 수출기업에 보조해 준 격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재벌들이 안쓰러웠는지 국회가 개원하면 법인세까지 낮춰준다고 나서고 있다.
근원적인 문제는 기름 값 자율화
더 근원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지금은 기름 값을 정유사가 자율적으로 책정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이를 바로 국내 유가에 연동하여 정유사가 기름 값을 자율적으로 책정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국제시세가 오르더라도 이를 국내에 가져오고 정제하여 팔아치우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정유사는 항상 현 시세를 실시간으로 반영하여 기름 값을 올려왔다. 그리고 경유에 관한 한 대부분 국내에서 원유 정제과정을 거쳐 생산하기에, 최근 경유의 국제시세를 그대로 반영하는 데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다. 그 결과 2004년 한 해 정유 4개사는 4조 원 이상의 이득을 남겼고 유가인상의 고통은 고스란히 없는 백성의 몫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설상가상이라고 해야하나 정부가 걷어간 유류세도 26조 원이 넘는다.
입에 발린 말이 되어버렸지만, 노무현 정권 시절 부동산 시장이 춤을 추면서 아파트와 토지 공급 원가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선 후 수입물가가 비싸다고 일부 상품의 원가를 공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사회의 동력이자 국민 원성의 대상인 기름 값에 대해서만은 원가공개를 하지 않고 정유사의 폭리를 보장하고 있다.
한편 원유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생색도 못 내보고 지나갔지만, 전 국민이 신음 해도 유류세를 10% 인하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한미FTA에서 합의한바 배기량이 큰 미국 자동차 수입의 좋은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세금체계를 바꿔 세금을 더 많이 낮추는 걸 보면, 유류세를 낮추거나 없애지 못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정부는 국민이 아직은 참을만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가 어렵다. 국제 정치경제의 변수에 따른 원유가 폭등은 항상 전문가의 예상을 뛰어넘어왔다. 게다가 전문가들이 이래저래 지표를 들이대고 있지만 원유생산의 정점이 대체로 2010년 전후로 하여 지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원유 가격이 더욱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릴 전망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찌 될 것인가. 물론 국내 정치경제적 조건과 변수에 규정 받기는 하지만 최근의 버마 폭동이나, 1989년 3,000명 이상이 사망한 베네수엘라 폭동이 기름 값 상승에 따른 교통비 인상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역사적 경험이 과연 우리와 무관할 수 있겠는가.
국영 정유사 통해 가격 통제해야 경제 안정 가능
정유사의 독점이윤을 보장하는 현재의 체제가 지속하는 한, 화물, 건설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간 그 자리를 버스, 택시노동자가 메우게 될 것이며 다수 국민이 최소한의 생계조차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나서서 기름 값을 통제하여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과 생산 활동을 보장하는 낮은 기름 값 정책을 펴야 한다.
가격이 비싸다고 달리 대체할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닌 현실에서, 시장 그것도 독점적인 시장체제에 맡겼을 때 가격통제 등의 자원관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정유 독점기업의 반발로 정부가 고시가를 책정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가능하다면 지금처럼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정유 4개사가 가격 담합했다고 벌금 몇 푼 때리고 흐지부지 해버리는 정도일 것이다. 현대문명사회에서 누구나 다 써야 하는 것으로 따지자면 기름도 물과 다를 바 없어서 탈 시장의 영역인 국가의 자원관리 수준에서 관리되는 것이 사회 전체 공리증진에 부합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기름 값 통제에 필시 저항하고 나설 정유사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국영 정유사를 설립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것이다. 아니 더 좋은 방안은 1980년 민영화로 선경에게 매각된 대한석유공사를 되찾는, 즉 SK(주)를 재국유화하는 방안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원유가 180달러가 된다면 고려하겠다는 유류세는, 인하에 그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없애고 오히려 국고를 보조하는 기름 값 통제정책으로 여타 정유사들의 독점이윤을 깸으로써, 그야말로 국민을 위한 생산체제로 바꿔냄으로서 정치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국민이 그렇게 바라는 사회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재국유화가 단지 급진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내팽개칠 건가. 민영화 한 후 사고가 빈발하는 등 문제가 있거나 경제적인 위기에 처하여 재국유화한 사례는, 세계화와 민영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그리도 칭송하는 전범국가 영국에도 얼마든지 있다. 최근 미국에서 출발한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에 따른 금융위기에 가장 먼저 유탄을 맞은 영국의 노든뱅크를 어쩔 수 없이 국유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의 근간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유가인상과 유가인상에 따른 물가인상에 맞서 국민적인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화물연대, 건설노조 노동자에 화답하고 춧불의 열망에 부응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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