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암울하다. 기름 값과 장바구니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경기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죽지도 않은 경제를 다시 살리겠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첫 번째 거짓말이 죽지 않은 경제를 죽었다고 한 것인데, 집권과 동시에 진짜로 경제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이명박 정부는 MB물가라는 이름을 지어내면서까지 물가를 잡는다고 난리를 치면서도, 성장에는 고환율이 최고라며 원 달러 환율을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썼다. 그 덕에 물가 난은 더욱 심해지고, 올해 10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하였던 흑자시대가 막을 내릴 모양이다.
금융시장의 분위기도 흉흉하다. 주가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고, 두 자리 수 시중금리가 코앞에 와 있다. 고물가 폭탄에 이어 이자폭탄의 위협이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참여정부 시절 한껏 부풀어 올랐던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신호탄까지 울리고 있다. 소위 ‘버블 세븐’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수억 원대까지 내려가고 있고,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파리를 날리고 있다고 한다.
뒤늦게야 정신을 차린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슬그머니 포기하고 외환보유고의 달러를 정신없이 내다팔았지만, 시장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외환보유고를 풀어 억지로 환율을 끌어내려 놓자마자 용수철처럼 다시 튀어 올랐다. 정부는 한동안 뭘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릴 뿐이었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기준 금리를 올릴 수도, 경기후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내릴 수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환율을 끌어내리기 위해 계속 개입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시장에 그냥 맡겨 두어야 하는지 오랫동안 헤매더니, 드디어 결심을 한 듯하다.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를 성장에서 물가안정으로 고쳐 잡고, 환율을 잡아 물가를 잡기로 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임기 중에 애초 성장목표치인 연 7%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거짓말을 한다.
창피하지만, 그동안의 환율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며 최중경 재정부 1차관 목을 자르고, MB노믹스의 상징이자 747 정책 입안자인 강만수 장관을 살려두었다. 원하는 수준의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그래서 물가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달러를 더 풀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작년 말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한 이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미국경제에 첫 펀치를 날리고 그 파장이 세계 금융시장 전체로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있을 때, 한국은 대통령 선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모든 후보자들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언을 날리는 가운데, 성장률 높낮이를 놓고 입씨름이 벌어졌고, 그 가운데 가장 높은 7% 성장률을 약속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인수위가 신정부 이름을 이명박 정부라 못 박고 한반도 대운하를 핵심으로 하는 '747' 대약진 구상에 나섰고, 이어 실행된 총선은 온 국민에게 부동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위험천만의 헛꿈을 심어주었다.
그 사이 국제 금융시장을 엄습하고 있던 먹구름이 국제유가 폭등이라는 태풍으로 돌변해 세계경제를 강타하고 있었다. 세계 금융시장이 초토화되어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고, 국제유가 폭등의 원인조차 밝히지 못한 채, 전 세계가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경제에게는 최악중의 최악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마치 이웃집 불구경하듯 나 몰라라 하며, "747"이 만병통치약이라 억지를 부릴 뿐이다.
강만수 장관, MB위해 한국경제에 미필적 고의
이 지점에서 747 수장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강만수 장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김영삼 정부 시절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던 강만수 장관이 2005년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발간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외환위기 직전인 96년, 정부가 성장률 7.5%, 물가 4.5%, 경상적자 60억 달러의 3마리 토끼를 잡는다고 큰소리쳤으나 이는 헛소리에 불과했고, 한국개발연구원의 ‘21세기 장기구상’, 즉 2020년에 캐나다, 스페인, 영국을 제치고 세계 7위 경제 대국이 되고, 1인당 GDP 8만 달러를 달성한다는 경제구상은 헛소리의 백미였다”고 쓰고 있다.
강 장관은 “역사의 진실은 밝혀져야 하고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회고록을 썼다”고 하고, “정부의 대응만 차분하게 이뤄졌어도 국가적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런 그가 지금 "747" 공약을 주문처럼 되뇌고 있다. 이게 무슨 역사의 장난인가 싶다. 그 회고록을 발간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다시 재정부로 복귀하자마자 그 기억이 일거에 다 사라져버렸단 말인가. 아니면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한국경제에 대해 미필적 고의의 범죄행위까지도 자행하겠다는 것인가. 아마도 후자가 맞을 듯싶다.
이명박 정부가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 앞에서 허둥대면서도 "747" 허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태생적 한계와 이데올로기적 독선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촛불저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를 안절부절 못하게 만드는 것은 집권과 함께 단번에 밀어붙이려고 했던 747 대약진 계획이 촛불저항에 부딪혀 일단정지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을 필두로 한 보수 세력이 국회의석의 2/3를 차지하고 있어 정부의 모든 개혁은 이미 시작 전부터 따 놓은 당상인데, 느닷없이 촛불이 등장한 것이다.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정부가 촛불에 경제맞불을 놓기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박정희 시절의 경제신화 재현을 여전히 목말라 하는 한국 국민의 가장 약한 고리를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며, 촛불이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는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조중동은 역시 조중동스럽게 촛불책임론을 떠들어댄다. 그리고 국민의 대다수는 촛불이 아니라 경제횃불을 선택할 것이다.
무디스 조차 우려하는 앞뒤 안 맞는 정부의 경제정책
얼마 전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다. 일개 민간업체에 불과한 무디스가 자기네들이 뭐라고 한 국가의 신용등급을 좌지우지하는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어쨌거나 무디스의 평가는 중요하니 한번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무디스는 촛불시위가 단기적으로 한국경제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 이유는 이번 시위가 이명박 정부를 압박해서 정부소유 금융기관의 부분적 사유화를 지연 혹은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란다. 거기에 더해 한국사회에 만연한 민족주의적 정서가 외국인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판에 박힌 소리를 덧붙였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 국가신용등급에 대한 무디스의 견해이다. 무디스는 단기 외채 급증, 큰 폭의 경상수지 적자, 앞뒤가 안 맞는 정부의 경제정책, 대외경제여건의 악화가 함께 어우러져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에 우려를 낳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보수언론은 앞 뒤 말은 다 생략하고 자기들이 필요한 말만 골라 보도 했다. 하지만 정말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것은 무디스가 마지막에 언급한 국가 국가신용등급에 대한 걱정이다. 그리고 그 걱정은 촛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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