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민택] 참세상 논설위원

“핵심은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진보전략회의 토론회 기고] 고민택 사회주의노동자정당준비모임 활동가

진보전략회의는 오는 24일 오후 3시30분 부터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진보좌파정치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나(1)’를 토론한다.
주된 토론 지점으로는 △민주노동당 분당의 의미와 진보신당 △사회주의노동자당준비모임의 행보 △진보좌파 이념의 재구성 △진보좌파운동의 혁신과 현재 요구되는 최소한의 ‘공동행동’ 등이다.
이날 토론에는 고민택 사회주의노동자당준비모임 활동가, 김인식 ‘레프트21’ 발행인, 김현우 진보신당 정책위원, 박영균 진보평론 편집위원, 박진희 진보정치포럼 대표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민중언론참세상’은 발표자의 견해를 미리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으며, 아래는 고민택 사회주의노동자당준비모임 활동가의 글이다. 발표자의 글이 도착하는 대로 게재한다.
- [편집자 주]


들어가는 이야기

1. 민주노동당 분당의 의미와 진보신당에 대한 생각들
1-1. 분당의 원인에 관한 평가


밖에서 볼 때, 분당이 ‘필연적 과정’ 또는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보지는 않았다. 지난 10년의 역사 속에서 그럴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형성되었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신당 세력이 내세웠던 ‘종북/패권주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문을 들게 한다. 하나는 ‘정치적 과정’에서의 정당성 문제이고, 또 하나는 ‘정치적 내용’에서의 올바름 문제이다. 둘 모두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이 대응했던, ‘분열/기회주의’라는 제기 역시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그건 일종의 ‘인상(이미지) 대응’에 불과하다. 분당을 막기 위한 ‘적극적/현실적’인 정치력 발휘나, 내용 대 내용으로 쟁점화를 시키는 데 모두 실패했다.

두 세력 모두 예나 지금이나 ‘의회/개량주의’ 정치활동과 ‘민족/사민주의’ 정치노선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가치와 기준을 공유하고 있다. ‘의회/개량주의’는 단순한 방법론상의 문제가 아니라 ‘대리/엘리트주의’와 직결된 근본적 문제이며, ‘민족/사민주의’는 ‘국가주의’를 공동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분당은 결국 그 과정과 결과 모두에서 정치적 불신과 허무를 낳았다는 점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다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의도/의지와는 무관하게 부분적으로 ‘새로운 정치 공간’을 촉발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만 의의가 있다.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이, 그 이전의 노동자의힘이 민주노동당의 분당에 대해 핵심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단지 ‘실패’했다는 사실 또는 결과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지난 역사 속에서 노동자정치에 대한 심각한 ‘왜곡’을 광범위하게 유포/정착시켰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명백히 부르주아 정치의 한 구성 부분이다. 진보신당 역시 이 점에서 더욱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한편 다함께는 민주노동당 분당 과정에서 가장 일관된 입장과 태도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다함께는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 가장 원칙적이고 올바른 입장을 취했으며, 심상정 비대위가 제출한 ‘혁신안’에 대해서도 의미 있고 정당한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다함께는 딱 거기까지만 정치적 행보를 진행시켰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회당은 항간의 ‘기대와 우려’(?)와는 달리 ‘진보신당’과의 합당으로 나아가지 않았으며, 그를 중심으로 사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포지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당의 일부가 ‘진보신당’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치적 행보를 진행시키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말해 둔다.

1-2. 진보신당의 재창당에 관한 평가

민주노동당 분당, 즉 진보신당의 창당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어떤 진보적/진취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한다. 일부에서는 진보신당이 민족주의 계열과 분명한 정리를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인정하거나 또는 기존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한 정치 활동의 한계를 넘어 서고자 한다는 점에서 기대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옆걸음을 한 것에 불과하며, 나아가 그 옆걸음조차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 심히 우려스럽다. 서구의 집권 사민주의 정당들도 이미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집행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노동자 민중을 정치의 주체로 상승시키기 위한 정치 활동을 포기한 지는 훨씬 오래된 사실이다. 한국의 진보신당이 이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에는 그럴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

진보신당이 나열하고 4대 가치, 즉 평등/생태/평화/연대 그 자체 하나하나는 ‘좋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철학과 정치활동이 전혀 그를 뒷받침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이는 재창당 과정과 내용에서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다만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입장에서도 그러한 의제와 관련한 판단과 활동양식을 ‘내재화’시키고자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얼마간의 토론은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진보신당이 준비모임과의 협의를 ‘성의 없이’ 한 것이 문제라는 것은 완전히 사태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그것은 ‘성의 문제’로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진보신당과 준비모임은 서로 하나의 조직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사안별 공동전선을 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는 것과 하나의 조직 또는 정치를 공유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이 점에서 두 조직 사이에는 만리장성이 가로 놓여 있다.

2. 사회주의노동자당건설준비모임의 행보에 대한 생각들
2-1. 성격, 건설경로 등에 관한 평가


준비모임이 말하고 있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의 성격, 즉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현재까지는 준비모임 결성식에서 제출한 △사회주의 정당 △노동자정당 △생태, 여성, 소수자 등 21세기 사회변혁 과제 △사회변혁을 위한 정당 △민주적인 정당 △당원이 일상적으로 행동하는 정당 등을 토대로 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앞으로 더욱 구체화되고 현실화되어야 한다.

준비모임이 상정하고 있는 당의 정체성은 어떤 면에서 특별한 모델을 전제하고 있지 않다. 러시아 볼셰비키 정당이 주요한 참고가 된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오늘의 정세에서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 핵심은 ‘대중 자신의 권력화’, 준비모임의 용어/개념으로는 ‘대체권력’을 형성하기 위한 당의 임무와 역할, 활동과 사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재검토/재조직/재구성해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준비모임은 건설될 당의 활동을 통해 한편으로는 정치를 특정 제도나 장치 또는 권력 장악만의 문제로 단순화/협소화시켰던 이제까지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설정을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를 폐지하고자 하는 입장과 태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당 운동에 대해 비판/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세력에게 당 운동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가를 실천적으로 확인시켜 나가고자 하고 있다.

준비모임은 ‘노동자계급중심성’을 승인하고 있으며, 당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한 이는 너무나 당연하며 확고히 가져가야 할 ‘당파성’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된다는 것을 실현’하는 문제는 당위와 선언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은 노동자계급 전체와의 소통과 교류를 우선시해야 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개입이나 관계도 그 과정에서 배치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 당은 자본-임노동 관계로 묶여 있는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이 아니라 바로 그 관계를 강제/규정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와 부르주아 정치 체제 자체를 극복/돌파해 나갈 수 있는 정치활동을 세워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활동해야 한다.

준비모임은 지역운동과 사회운동에 대해 새로운 개척과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사고하고 있다. 다만 이를 기존 맑스-레닌주의 전통과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그것은 준비모임이 맑스-레닌주의 전통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서가 아니라 맑스-레닌주의 전통 속에 그와 관련한 자양분이 들어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건설될 당의 강령을 통해 최종적으로 확립할 계획이다.

준비모임은 당 건설 경로와 관련해서는 대원칙으로 개별 사회주의 정치 세력 및 그들 사이의 관계를 ‘정치적재조직화’하는 과정을 경유하고 동시에 특정 정파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 극복을 열망하고 있는 현장활동가/사회운동활동가/연구자/개인들을 당 건설 운동의 주체로 세워나가는 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고 있다.

지금은 아직 사회주의 당 건설 운동을 전면화/대중화하는 단계로까지 진전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 대대적인 정치캠페인(활동)을 벌여나가려는 구상과 계획을 갖고 있다. 준비모임이 제출한 ‘추진위원회’와 ‘일정’은 이를 위한 하나의 설정이다. 준비모임은 제시된 설정을 달성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진행 과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해 나갈 것이다.

준비모임은 기존 진보정당 또는 진보정치 운동에 대해 비판/부정하고 사회주의 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정하는 모든 부위와 함께 당 건설을 이루고자 하는 열린 자세로 임하고 있다. 준비모임은 이미 완성된 ‘특정 내용’을 일방적으로 규정/관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논의와 토론을 촉발하고 그로부터 활발한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방식을 통해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상호 침투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지금 시작한 당 건설 운동은 여하한 경우에도 중단 없이 기필코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본격적인 이야기

3. 진보좌파 이념의 재구성 문제
3-1. 평등, 생태, 평화, 젠더 등의 문제는 수평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것인가
- ‘노동자계급중심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위의 문제들이 수평적으로 연계될 수 없다면 왜 그런 것인가
- 위의 문제들이 수평적으로 연계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노동자계급중심주의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하나는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결코 다른 계급의 시혜에 의존하는 것으로는 해방에 도달할 수 없다. 오직 자기 해방 사상에 입각해 투쟁하는 것을 통해서만 자기 해방은 물론이고 인간해방을 이룰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극복은 최종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아래로부터의 직접 행동이 결합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객관적으로 자본과 국가에 대해 최종적인 적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타의 계급은 최종심급에서 이 양자의 힘 관계 사이에 놓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중심주의는 조직노동자, 즉 노동조합 중심주의와는 관련이 없다. 따라서 현실의 노동자운동 또는 노동조합 운동이 보이고 있는 양태를 근거로 노동자계급중심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문제제기다. 그것은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지 그것이 노동자계급중심주의를 부정해야 하는 이유와 근거는 될 수 없다.

노동자계급중심주의를 노동자계급‘만’을 배타적으로 특권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방향에서 이를 부정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노동자계급중심주의는 객관적으로 노동자계급이 감당해야 할 불가피한 현실적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특권이 아니라 그 측면에서만 보면 차라리 일종의 형벌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중심주의를 경제주의와 연결하여 부정하려는 것도 올바른 것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중심주의는 오히려 노동자계급이 계급화/정치화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이미 그 자체 속에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역으로 말하면 노동자계급이 계급화/정치화 하는 데 실패한다면 노동자계급중심성은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계급중심주의를 지역운동 또는 사회운동의 의의와 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차원에서 문제 삼는 것도 맞지 않다. 노동자계급중심성은 지역운동 또는 사회운동을 부정/거부하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다. 오히려 노동자계급이 계급화/정치화 되는 과정을 통해야 지역운동 또는 사회운동이 활성화 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물론 그 역의 과정, 즉 지역운동 또는 사회운동의 활성화가 노동자계급의 계급화/정치화를 촉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정은 충분히 가능하다.

평등, 생태, 평화, 젠더 등의 의제는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사상 또는 자본과 국가의 대 노동자계급 포섭/포위 전략과 맞물려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 의제가 온전히 또는 자동적으로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 의제는 근본에서 결코 부르주아 체제 아래에서 해소되거나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이들 의제를 쟁점화시키는 것을 통해 부르주아 정치를 폭로하고 해방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은 필요하다.

평등, 생태, 평화, 젠더를 등을 통할하거나 준거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계급 문제’다. 계급 문제를 비껴가거나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의제는 없다. 물론 계급 문제‘만’으로 현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모두 포괄하기는 어렵다. 계급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과 계급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전까지는 그들 의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거나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는 구별해야 한다.

평등, 생태, 평화, 젠더 등을 초역사적 의제 또는 보편적 의제로 상정하는 것은 문제다. 그것들 또한 언제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정세의 산물이며 정세 속에서 그 지위와 의미를 갖는다. 물론 평등, 생태, 평화, 젠더 문제가 궁극적으로 초역사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랄 수 있으며, 적어도 그들 의제를 중심으로 그 어떤 적대가 존재하지 않고 비적대, 또는 서로들 사이에 소통과 교류가 가능한 차이로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평등, 생태, 평화, 젠더 등의 의제나 그러한 운동을 노동운동과 대비 또는 대립시키는 의미에서 사회운동으로 독자/독립적인 영역/범주로 설정하는 것은 토론이 필요하다. 다만 그들 운동은 노동운동의 단순한 확장이나 연장 속에서 배치될 수 없으며, 독자의 활동양식과 존재양식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 여기서 이들 의제 사이를, 동시에 이들 의제와 노동운동을 접목 또는 접합시키는 역할은 정치운동이 담당해야 한다. 이들 의제 사이에, 또한 이들 운동과 노동운동 사이에 모순과 충돌이 발생할 수 있으며 발생하고 있다. 결국 이는 정치 영역에서 그 최종 갈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정치는 부르주아 정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3-2. 노동운동, 사회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3-3. 정치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3-4. 정치운동,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하는가


먼저 문제점과 관련해서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평가이다. 이들 운동은 그 동안의 투쟁과 활동을 통해 부르주아 정치 또는 자본운동에 대립되는 자체의 정치적, 전략적 근거를 형성하지 못했다. 대항적 차원에서는 개별적/사안별 평가가 가능하지만 대안적 측면에서는 하나의 세력으로 존재감을 확인시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부르주아 정치 과정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고 말았으며, 자본의 포섭 전략에 포위되고 말았다. 현실의 구체적 행태와 양상은 그 결과이다.

둘째는 지금 현재 상태에 대한 진단이다. 현재 놓여 져 있는 상태는 한마디로 기존 관성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경유하면서 운동의 치열함과 전투성이 심각히 저하되었다. 모든 문제가 부르주아 국가와 자본에 대항하는 주체 형성적 관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부르주아 의회에 야당식 압력을 가하는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운동 주기는 거의 국회 일정과 선거 일정에 맞춰져 있다. 투쟁도 그에 따르는 수준에서 관리/배치되고 있다. 그 결과 대중은 수동화 되어 있으며, 집단적 저항보다는 개별적 생존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셋째는 미래에 대한 정치적 전망 문제다. 모든 문제를 전망의 부재로만 돌리는 것은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운동이 의지만으로 될 수는 없지만 의지가 결여된 운동은 문제가 있으며 전망의 부재/불투명을 이유로 운동이 저하/타락하는 것까지를 용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망 자체를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것이 사실이다. 한마디로 운동의 목표가 상실되어 있다. 지난 20세기 변혁운동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제대로 진행된 바 없으며, 대부분의 청산주의와 일군의 교조주의로 나뉘어 있을 뿐이다.

준비모임이 당 건설 운동에 나선 이유와 근거도 여기에 있다. 운동의 목표와 방향을 명확히 세우지 않고 사안별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운동은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다. 오히려 대중에게 냉소와 불신만을 키울 뿐이다.

이들 운동의 관계가 어떻게 재편되어야 하는가에 앞서 정치운동, 즉 사회주의 운동을 독자적으로 성립시켜야 하는 일이 근본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당은 기존 운동을 재편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필요조건이다. 당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냐는 질문은 성립될 수 없다. 어떻게 당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출발 자체가 거기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당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선을 세우고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계의 재편을 말하기 위해서는 질의 재구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적어도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이 성립되기 전까지 재편을 논하는 것은 그 한계가 뚜렷하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 정치 세력에게 그럴만한 정치 능력과 컨텐츠가 준비되어 있는가에 대해 회의와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과거적/퇴행적 모습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거기에는 사회주의 정치 세력이 감당하고 책임져야 할 몫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준비모임도 지난 운동의 성과에‘만’ 기초해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난 운동의 한계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파(써클)운동 차원의 운동양식과 존재양식을 과감히 버리고 전체 운동의 한 부분으로 새롭게 자리매김 하고자 하는 의도와 의지에서 성립된 것이다.

당이 성립된다고 해도 한꺼번에 운동 재편이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사회주의노동자정당도 노동운동 또는 사회운동과의 관계 정립에 나서게 될 것이다.

마무리 이야기

4. 향후 진보좌파운동의 나아가야 할 길
4-1. 진보좌파운동의 혁신을 위해 가장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4-2. 지금 요구되는 최소한의 ‘공동행동’
- 다가오는 보궐선거, 2010 지자체선거에서의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 기타


혁신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부르주아 국가와 자본운동에 대항할 수 있는 운동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 핵심적 과제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이다. 물론 ‘공동행동’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 당의 주요한 역할이 되어야 하지만 대중과의 직접 대면을 위한 당의 직접적이고 독자적인 정치활동을 펼쳐나가는 것이 당의 핵심적 활동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정치 역량과 컨텐츠를 획기적으로 끌어 올려야 하는 문제다. 이 점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가장 뒤쳐져 있다고 보는 시각은 온당하지 않다. 정치를 정책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정치 프로그램과 정책을 개발하고 구체화해야겠지만 그를 위해서라도 그를 실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적 근거를 성립시켜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물론 물적 근거를 형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컨텐츠는 활발히 논의되어야 하며 논의할 것이다. 셋째는 세력의 재편이 뒤따라야 한다. 세력 재편은 적어도 3분립이 성립되어야 하며 작게는 사회주의 정치 세력 사이의 통합의 기운을 높여 나가야 한다.

민주주의/코뮤니즘/코뮨주의 문제는 사회주의 운동 속에서 충분히 검토될 수 있다. 우리가 아직 사회주의를 말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반자본주의의 정세적, 상징적, 정치적, 역사적 표현이며 대중적으로 가장 일반화된 개념이라는 것을 일단 염두에 두고 있는 차원에서이다. 예컨대 ‘현실사회주의’가 끼친 악영향이 있으며, 사회주의 생산양식론을 부정하지만 이 조차 일단은 정면돌파를 해 나가는 과정이나 그 후에 해도 결코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준비모임이 ‘21세기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동행동’, ‘공동전선’은 불가피하며 필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를 절대화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운동은 관계 속에서 또는 관계를 경유해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독자적 정치활동을 통해서 더욱 성장할 수 있다. ‘공동행동’과 ‘공동전선’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일 수 없다. 또한 ‘공동행동’, ‘공동전선’은 단결과 행동통일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차이를 분명히 밝히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 노동자의힘은 주요 부르주아 선거 때에 ‘선거연합’의 문제를 대단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서 제기하고 성사시키려는 노력을 한 바 있다. 자체의 한계와 개량주의 정치 세력의 패권주의 때문에 한 번도 실행한 바는 없지만 이런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2010 지자체 선거를 기다릴 것도 없이 당장 4. 29 재보선 선거에 대한 ‘공동행동’도 성립될 수 있다고 본다. 울산 북구의 경우에 지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이에서 이른바 ‘후보단일화’ 문제가 얘기되고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 속에서 지금 그 어떤 진보적 논의나 정치 행위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일차적으로 혁신되어야 할 정치 행위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만약 울산 북구를 진정 반이명박 전선의 전진 기지로 만들고 운동의 혁신을 위한 계기로 삼고자 한다면 지금 제기되고 있는 차원의 논의는 전면 부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지금 반이명박 전선의 핵심이 되고 있는 용산투쟁을 전국화하고 나아가 세계대공황에 따른 노동자 민중 투쟁을 거기에서부터 형성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를 먼저 분명히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두 당은 그를 위한 구체적 계획과 구상을 먼저 밝혀야 한다. 후보단일화는 그를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배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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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 진보신당 , 사회주의노동자정당 , 진보의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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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적맑스주의자

    스탈린주의 = 유로코미니즘 = 사회민주주의..

    노동계급의 자주적 행동을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 ㅎ

  • ㅋㅋㅋ

    사노준의 사회주의는 너무 어려워...

  • 인천

    진보신당이 민족주의 계열과 분명한 정리? 속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인천같은 경우는 두 민족주의 NL그룹의 패권다툼속에서 패한 그룹이 진보신당쪽으로 올빵했다. 난 그 꼴을 보고 을매나 웃었는지.... 진보신당안에는 허다한 NL계 아해들이 득시글 거린다. 촛불때와 지못미 당원들안에도 있고, 시민단체 회원들이 다 그 종자들이다. 진보신당은 내가 그래서 진보신당은 걍 민주당과 합당하는게 최고라고 그게 안되면 창조한국당과 합당하면 더 나을것이라고 말하고 다니는거다.

  • 사실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을 주사파로 규정짓고 분당/기획탈당했듯이,사회주의정당도 진보신당을 '개량우파', 혹은 '사민주의'로 규정짓고 좌파의 이탈을 추진해야.

  • 개자식들

    시팔 빨갱이 색끼들

  • 참나

    자민통 세력의 변혁노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구먼. 무조건 민족주의/사민주의래. 어이없네. 민족민주주의혁명에서 민족이란 단어만을 보고 무조건 내뱉는 말들이군. 민족민주주의혁명이 변혁으로 자주적민주정부수립 후 진보적민주개혁(반독점민주개혁)을 거쳐 사회주의로 이행한다는 걸 모르는가? 80년대부터 사회주의정당운운하더니 아직 입으로만 사회주의 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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