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철수 절차에 들어간 캐리어
캐리어 자본이 금속노조의 경고에도 희망퇴직을 거부한 40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했다. 캐리어는 지난 10월 14일 280명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였고, 노동자들에 대한 협박과 회유로 240명에 대해 희망퇴직을 이미 단행한 상태다.
한국 캐리어 자본의 정리해고 이유는 경제 위기로 말미암은 매출 감소이다. 하지만, 이미 노동조합이 여러 언론을 통해 폭로하였듯이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한국 캐리어 자본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한국 공장 철수를 준비했으며, 세계 경제 위기라는 명분을 가지고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 것일 뿐이다.
한국 캐리어는 2000년대 이후 시설 투자는 회피하고 오직 배당을 국외로 챙겨가는 것에만 혈안 되어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 중 하나이다. 캐리어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2001년 468억 원에 달했던 기계장치 자산(생산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기계 장치의 평가액)이 2008년 140억 원으로 추락했다. 신규 투자는 고사하고 기계 장치 감가 상각만큼도 투자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반해 캐리어 자본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64억 원을 배당으로 챙겨 국외로 나갔다. 여기에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한국 캐리어는 미국의 캐리어 본사의 부품을 수입하며 시장 가격 이상으로 가격을 치르는 방식으로 자본 유출을 해왔다.
먹튀 이상의 핏빛 자본, 캐리어의 모기업 유티씨(UTC, United Technologies Corporation)
한편 이익 감소를 이유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한국 캐리어의 모기업인 유티씨는 세계 경제 위기로 작은 감소는 있었지만, 여전히 큰 이익을 남기고 있다. 2008년 세계적으로 약 60조 원의 매출을 기록한 유티씨는 2009년 3분기까지 약 40조 원의 매출을 올려 2008년 3분기까지의 누적 매출액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당기순이익 역시 2008년 약 5조 원을 기록했으며, 2009년에는 3분기까지 3조 2천억 원을 기록하여 작년동기대비 80%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를 겪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규모라 할 것이다.
유티씨가 2009년에도 놀라운 이익을 낸 이유 중 하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유티씨는 2009년 전 세계적으로 유티씨가 고용하고 있던 22만 3천여 명의 노동자 중 8%에 해당하는 1만 8천여 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것은 물론 크게 임금을 삭감했다. 한국에서 유티씨가 오티스 엘리베이터와 캐리어에서 벌이는 구조조정 역시 이러한 글로벌 구조조정 하에서 진행 중이다.
이러한 비용 절감 계획 탓에 유티씨의 계열사 중 하나인 영국 오티스 노동자들이 20년에 만에 처음으로 파업을 벌이기도 했지만, 다른 대부분 사업장에서는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물론 이러한 성공은 유티씨의 철저한 반노조 정책과 강압적 노무관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티씨의 악명 높은 반노동자 작태 중 한 예로, 유티씨는 1996년 헝가리에서 노조를 설립하려고 했던 노조 지도부들을 모두 해고하고, 이들을 보안요원들을 동원하여 집에 감금하였다. 심지어 법원에서 유티씨에 노조설립을 허용할 것을 명령하였지만, 사측은 노조원들을 협박하여 희망퇴직을 하게 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유티씨 계열사의 보안 회사들이 파업 파괴 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티씨가 큰 이익을 올리는 또 다른 이유는 유티씨의 군수 사업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오티스, 캐리어 등의 모기업으로만 알려졌지만 사실 유티씨의 핵심 사업은 군수 사업이다. 유티씨는 블랙호크 헬기로 유명한 시코스키, 항공 엔진 제작사인 프래트 앤 휘트니, 군사용 전력 제어 장치를 생산하는 해밀턴 선드스트렌드 등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 기업이 그룹 전체 순이익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유티씨는 세계 군수 기업 중 9위에 오를 정도로 세계적인 군수 기업이다. 아프간, 이라크 등에서 세계 경제 위기와 상관없이 미국의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유티씨가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큰 이익을 올리고 있는 원인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유티씨는 부시의 테러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2년 이후 2008년까지 매출을 두 배 가까이 상승시키며, 전쟁 특수를 크게 챙겼다.
초국적 자본에 맞선 노동권 쟁취 투쟁, 이제 전민중의 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구조조정과 자본 철수를 일삼는 유티씨의 사례는 초국적 기업의 생리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초국적 기업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 전세계를 떠돌며 무한 이익을 추구하지만, 노동자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다. 초국적 자본이 만드는 거대한 이익은 국경을 넘어 자본을 이동하며 노동자들을 쥐어짜며 만들어 낸 것이다. 심지어 유티씨의 경우처럼 이윤이 있다면 전쟁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한다. 초국적 자본의 세계화는 노동자에 대한 수탈의 세계화이며, 동시에 전세계 시민에 대한 제국주의 전쟁의 세계화이다.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 외환위기 와중에 헐값에 기업을 사들여 투자회피, 본사와의 부당 거래, 기술 유출, 고액 배당 등을 통해 기업을 거덜내고 국민경제의 부를 수탈해가는 초국적 자본의 작태를 수없이 보아왔다. 최근 공장 폐쇄를 단행한 초국적 자동차 부품회사인 발레오의 한국법인인 발레오공조는 2006년 인수된 이후 3년간 투자 회피와 자본 유출만 일삼다 노동조합 투쟁을 빌미로 자본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2008년 말부터 자본 철수를 떠들며 노동조합에 정리해고를 강요해 온 만도위니아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상하이자동차가 자본유출, 기술유출을 대규모로 진행해 온 쌍용자동차 사례는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 밖에도 은밀하게 자동차 생산기지를 국외로 이동하고 있는 지엠대우 등 헐값에 기업을 인수하여 각종 정부 혜택 속에 부를 쌓아온 초국적 기업들의 먹튀 행각은 모두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초국적 자본이 파괴하는 노동권을 지켜내는 투쟁은 이제 해당 기업 노동자만의 문제일 수 없다. 이들 자본을 현재와 같이 내버려 둔다면 한국의 경제적 부가 유출되는 문제와 더불어 한국 노동자들의 전반적 노동권 수준이 하락할 수도 있다. 유로재단은 최근 초국적 기업들의 작태가 유럽의 여러 노동조합 교섭 구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초국적 자본의 고용 문제, 노동조합과의 교섭 문제, 자본 유출입과 관련한 통제 문제 등 다양한 방안들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40명의 노동자가 공장에서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캐리어 투쟁은 캐리어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 운동이 함께 연대하며 해결방안을 고민해 봐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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