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수 세력들이 탱크를 앞세워 당장이라도 북으로 쳐들어갈 듯 한 기세 속에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지난 4월 중순에 방문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그 보다 좀 늦은 5월 3일 사상 여섯 번째로 중국 땅을 밟았다.
역시 김 위원장에 대한 국제사회 특히 동북아의 관심은 남다르다. 이번에는 기차를 이용하지 않고 승용차를 이용하면서 가는 곳마다 화제만발, 인증 샷 작렬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관심과 억측이 난무하면서 미국, 일본, 남한 등 강호의 고수들이 일합을 겨루는 무림을 방불케 하였다.
지난 5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중정상회담은 두 나라간의 돈독한 우의를 재확인하면서 6자회담 재개 문제와 경제협력 방안을 주로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문제와 관련해서는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이행 의지를 표명하면서 중국 주도의 6자회담 추진을 위해 참여 의사를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후진타오 주석은 대규모 식량지원과 투자를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원과 투자가 단순히 6자회담 참여에 대한 대가성으로 단순화시키면 곤란하다.
대규모 식량지원에는 1997년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잇는 북한의 현재 식량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금년에 부족한 식량만 100만t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는 가운데 6월을 전후로 해서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당장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이 기댈 수 있는 곳은 현실적으로 중국뿐이다.
더욱이 지난해 11월 단행한 화폐개혁은 실패라고 단정 짓기는 곤란하지만 아직까지 나타난 성과가 없다. 이로 인해 물자난은 더욱 심해졌다. 이는 후계문제까지 확산될 소지가 크다. 그래서 중국이 개발권을 따낸 나진항 개발이 우선 거론될 것이고, 패키지로 동북 3성의 중국 물류를 나진항 쪽으로 돌릴 수 있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3일 중국이 김 위원장 방중에 맞춰 북한과의 변경무역에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보면 예측 가능하다. 또한 김 위원장의 다롄시와 톈진시 방문은 북한의 방중 포인트가 경협과 투자유치에 맞춰져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나진 선봉 특구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로써 북한의 외화 부족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김 위원장의 방중은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현재의 북한이 처해있는 대내외적인 상황과 관계 깊다. 그래서 정상회담 결과가 그리 새롭지는 않다. 국제사회가 김정일 위원장을 주목하는 것 중의 하나는 그의 통 큰 결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것은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이 자초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은 북한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옥죄면서 기다리면 무장해제할 줄 알았겠지만 이번에 오히려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북한이 김 위원장 방중 직전에 금강산 부동산을 동결 몰수하고 개성공단 통행 차단 가능성을 시사한 것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천안함 사태의 범인(?)으로 북을 압박하는 우를 범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절단냈다.
여기에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대해서 서운함 감정을 표시하는 등 정말 유치하고 졸렬한 외교적 행태를 보여 망신을 당했다. 이명박 정권은 한중관계가 북중관계를 뛰어넘었다고 자만했는지, 아니면 미국의 중국 견제 역할에 지나치게 의존했는지 모르지만 국제정세에 대한 안일한 인식과 판단능력을 보여주었다.
반면 북한은 이번 북중정상회담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의 동요를 방지하고 사회적인 통합을 제고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혈맹’으로 표현되는 북중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다시 한번 국제사회에 과시되었다. 중국은 이명박 정권의 반발을 사면서도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철저히 함구에 붙여 의리를 지켰던 것이다.
당분간 경직된 남북관계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 오류가 명료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획기적인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국제적인 망신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한반도 정세를 미국의 힘에 의존해서 자신들의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천안함 사태로 인해 반북 정서를 고양시키고 안보 정국을 주도했지만 그 결과는 그들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힐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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