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시크릿가든, 판타지도 허용못한 계급을 넘어선 사랑

길라임 앞에 무릎 꿇은 자본가 어머니의 계급성

자본가의 혈통 계승 본능은 대단했다. 수차례 복선을 통해 암시했던 김주원(현빈)과 길라임(하지원)의 아버지와의 관계가 드러났지만 자본가는 흔들리지 않았다. 1월 2일 밤 방영한 SBS 시크릿가든(김은숙 극본, 신우철 연출) 16회는 각 인물들이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과거 속 인간적 관계와 계급적 역할, 그 역할 속에 살아온 주인공들의 성격을 폭풍처럼 버무리며 이야기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출처: SBS 시크릿가든 화면 캡쳐]

애초 재밌는 이야기들은 주인공들이 하고자 하는 욕망(쾌락원칙)을 방해하는 요소(현실원칙)가 적절하게 나타나야 하듯이 가장 강력한 방해요소가 내면적 갈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길라임과 주원의 욕망은 밤 12시를 맞은 신데렐라가 왕자와의 재결합 열쇠인 구두를 흘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점에 왔다.

그런데 시크릿가든의 김은숙 작가는 길라임 아버지라는 현실원칙에 ‘신데렐라의 12시’와 ‘신데렐라의 구두’라는 두 가지 장치를 동시에 넣었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복잡한 서브텍스트(subtext)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길라임 아버지의 숭고한 희생은 길라임이라는 신데렐라가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만든 원인인 동시에 길라임과 주원의 계급을 넘어선 사랑을 이어줄 신데렐라의 구두가 될 수도 있다. (10년 전의 한국 드라마 였다면 길라임 아버지와 얽힌 과거사는 해피엔딩적 요소가 됐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사소한 외적 요소들과 사회적 관계 등이 두 주인공이 하고자 하는 욕구를 방해하는 현실원칙으로 작용했다면 16회 마지막에선 과거의 사건과 주인공들의 계급적 토대를 바탕으로 한 심리적 갈등이 절대적인 방해요소로 드러날 것임을 암시했다. 이야기는 절대적인 방해요소가 드러났을 때 더 흥미진진해진다. 특히 이 방해요소가 인물 사이 관계와 사회구조를 깔고 있다면 극적 긴장감은 더 강해진다.

아들 생명의 은인이어도 신분을 넘을 수 없다는 자본가의 눈빛

[출처: SBS 시크릿가든 화면 캡쳐]

드라마는 주인공의 몸이 뒤바뀌는 초자연적 현상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 계급을 넘어선 사랑이 현실화 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

이날 방송 최고의 명장면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주원의 어머니 문분홍(박준금)이 길라임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했던 대사와 눈빛 연기야 말로 자본가의 복잡한 내면의 감정상태를 외면화 한 장면이다. 소방관이었던 길라임의 아버지가 자신의 어린 아들을 구하고 죽었다는 사실은 자본가 문분홍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문분홍의 욕망에 대한 방해요소였다. 분홍은 라임에게 "돈으로 보상하마 어마어마하게 보상하마 얼마가 됐든 다 보상하마 그러니 이걸로 우리 주원이 발목 잡지마"라며 그 캐릭터의 성격을 더 강고하게 드러냈다. ‘자본가 계급의 강한 욕망에 내재 된 폭력성’ 대 ‘인간의 존엄성이 불러온 고뇌’와의 심리적 투쟁에서 자본가의 욕망이 이긴 것이다. 사회적 관계와 개인적인 고뇌를 단순히 세 번의 눈 연기로 표현한 문분홍은 명장면을 만들어 냈고 자본가가 무릎을 꿇었다는 통쾌함과 동시에 누군가는 다쳐야 한다는 현실을 예감하게 해 줬다.

그 섬뜩한 자본가의 눈은 여기서 가난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따위에게 밀리면 내가 죽는다는 자본의 본능이었다. 분홍은 눈을 감을 땐 잠시 망설이는 빛이 보였지만 눈을 치켜 올릴 때 보여주는 투쟁심은 자본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여기에선 자본가들의 폭력성조차 엿볼 수 있었다.

문분홍은 계급적 지위를 망각하고 흔들리는 아들이 자본가 계급으로 각성하도록 하기 위해 비열하고 폭력적인 자본가의 본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다. 문분홍이라는 캐릭터가 구축하고 있는 토대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드라마가 흥미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이 캐릭터는 두 남녀 주인공의 몸이 뒤바뀌는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는 판타지 안에서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와 부유한 재벌가 3세 청년 자본가의 계급을 넘어선 연애는 어려운 일임을 시청자들에게 재차 각성하게 해줬다.

이렇게 길라임의 아버지라는 존재는 시청자들에겐 일종의 서브텍스트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됐다. 서브텍스트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과 실제로 그들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길라임은 주원을 피하거나 거짓말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시청자들에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갈등을 이어갈 것이다.

계급을 넘어서려는 연인과 비극적 결말

이런 서브텍스트에 나타난 갈등은 계급을 넘는 사랑은 현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더 섬세하게 그려낼 것이다.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각각이 속한 계급 진영에서 종종 희생을 요구했듯이 작가는 이미 여러 차례 두 사람의 계급적 토대가 어떻게 둘의 의식을 규정하는지 서로의 대화에서 계속 드러냈다. 이것은 둘의 사랑은 한쪽의 희생을 통한 기득권 또는 꿈의 포기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이상의 비극적 결말로 가는 듯하다. 16회까지 이어진 판타지 속에서도 리얼리티를 담보 할 수 있었던 것은 충실하게 계급적 기반위에서 이야기를 이어갔기 때문이며 16회에선 계급적 타협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또 이 드라마가 비극적 결말이 날 것이라는 암시는 너무 많다. 주원은 자신이 인어공주 이야기의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두며 자신이 속한 계급의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기득권을 버리는 주원에 조금씩 마음을 열던 길라임은 자신의 가장 큰 욕망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버금가는 영화 오디션을 주원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 이런 타협과 희생이 가능한 것은 길라임과 주원의 몸이 뒤바뀌면서 서로의 계급적 조건을 이해하고 타협하는 방식을 익혀갔지만, 그 타협의 결말이 주원의 병과 길라임의 욕망을 가로막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많은 시청자들도 비극적 결말을 감지하고 있다. 지난 6회 방송분인 서로의 몸이 뒤바뀐 계기가 된 제주도 신비가든 시퀀스에서 라임의 아버지가 등장해 주원에게 ‘미안하네. 이렇게라도 내 딸을 살리고 싶은 못난 부정을 이해해주게"라고 말한 장면이 16회에서 어느 정도 의문을 풀리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6회를 두고 이때 길라임은 이미 죽었고 그 이후는 모두 판타지라는 해석도 있다. 만약 그런 결말이 아니라면 6회에 나온 길라임 아버지의 대사는 앞으로 길라임이 출연할 영화에서 길라임이 스턴트를 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암시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목숨을 빚진 주원과 몸을 뒤바뀌게 했다는 설도 상당히 많다.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가든 둘은 신분상 차이를 이제 깨달은 상태다. 사랑의 물거품이 되겠다던 주원은 아직까지 자신의 기득권을 크게 포기 하지 않은 채 자본의 힘을 통해 길라임의 꿈을 향한 행보에 함께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기득권에 안주하며 적당한 타협이 가능했다.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계급적 룰을 따르라는 식은 아닌 것이다. 길라임은 주원과 아버지의 과거사를 알게 된 분홍의 더 강력한 저지를 받을 처지다. 그 와중에 스턴트 배우로서 자신의 꿈을 이뤄야 하는 과제에 놓여 있다. 그런 면에서 길라임이 출연하고 싶은 영화는 두 사람의 계급 타협의 산물이다.

신분의 차이를 넘어 이미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꿈을 한 번 놨던 길라임이 예정된 죽음을 맞이 할 지, 길라임과 그 아버지에게 목숨을 빚졌던 주원이 길라임을 대신해 죽음을 맞이할지가 새로운 관심으로 떠올랐다. 가혹한 계급적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고 참을 것인지 그 운명을 뚫고 나갈 것인지 작가의 선택은 무엇일까. 이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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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 계급 , 시크릿가든 , 길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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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이승원

    너무재밋어요
    그리고슬프기도해요
    너무두분어울여요

  • 기범

    글 잘쓰셨네.

  • 흐흐흐

    요새 김용욱기자님이 시크릿가든에 꽂히셨나..기사 잘읽었슴당

  • 가끔

    김기자님. 김은숙 작가의 계급적 토대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문분홍여사의 갈등은, 자식 생명의 은인이라할지라도 계급적 타협은 없다에 있는게 아니라,
    라임으로 인해 잊었던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고 괴로워할까봐 이대로 묻고 가길 원하는 부모의 마음이지 않나 합니다.
    문여사가 라임 아버지를 13년간 기일때마다 찾았던 것은 계급적 분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요? 이 다양화된 사회에서도 가진자와 못 가진자의 양극 구도로만 분석하는 김기자님의 기사를 보면서 가끔 김기자님께 fact보다 중요한게 계급적 분노의 전달 아닐까 우려가 됩니다.

  • 채움

    기사 재밌어요.저도 주말농성장에서 열심히 시청하고 있습니다.새해 복 많이 챙기시길...

  • 턱스

    "아들 생명의 은인이어도 신분을 넘을 수 없다는 자본가의 눈빛" 이런 문구는 너무 전형적이지 않아요? 암튼 글 읽는 내내 너무 웃었어요. 땡큐.
    근데 그 보상이라는건 아버지가 죽었을때 이미 했어야 하고 이를 근거로 이제와서 발목잡으려 할때 과거에 다 보상했으니 더 이상 먹고 떨어질 것도 없다고 매몰차게 얘기하는 것이 더 자본가답지 않을까요?
    암튼 앞으로도 건필하세요~



  • 시크릿가든폐인

    그럼.. 주원이가 엘레베이터사고났을때 소방관한명이 주원이를구해줬는데 그소방관이 길라임아버지란말씀이에요???.. 점점 산으로 가는건 아닐까생각되네요.. 라임이는 어떻게할까요? 너무불쌍하네요,, 동화같은 이야기로 끝나길바랬는데..이제라임이는주원이를볼때마다자신의아버지를죽인원수라고생각할꺼아니에요..참..할말이없네요

  • 깜박

    기사보다 댓글이 더 재밌음 ^^

  • 시크릿가든빠

    정말 진지하게 읽었어요
    뭔가 내용이 정리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결국 16회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생각했던대로 되지않아 슬프네요....
    무릎꿇고 미안하다.. 사과할줄알았는데...
    그게아니었어..ㅠㅠ

  • 시청자

    둘의 사랑을 '허용'하면 그야말로 판타지니까, 작가분은 판타지의 옷만 입히고 '현실'을 얘기하는 셈인가요? 제목을 읽다보니, 그런생각도. 여튼 현실의 문제를 툭툭 던질때, 드라마 속에서 조금...촌스럽게(?) 등장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그럼 결국은 판타지란건지..ㅋ

  • 하나하나둘

    정말 맨마지막에 해피엔딩이 아니라 새드엔딩?

    제발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는데..




  • 하나하나둘

    풋 기대됩니다 맨마지막회!!!

  • 스밀라

    영화나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가 시대상을 대변하는 것은 사실이고 드라마에서 계급간의 갈등을 읽어내는 것도 드라마를 보고 분석하는 사람의 의지겠지만, 전 13년 동안이나 도도한 자본가가 자기 아들의 목숨을 구한 소방관의 영전에 꽃을 놓았다는 것-자신의 어떤 스케줄에도 선행해서 말이죠-에서 일말의 인간적인 그 무엇을 보고 싶네요. 각박한 현실에서 드라마에서나마 판타지를 갈망하는 서민의 마음입니다.

  • 시크릿가든에 퐁당

    그날 보기 말아야 할것을 보았지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느끼지 말아야 할것을 느꼈다고 해야겠네요~ 주원 맘의 눈빛 연기... 제가 봐도 느낌이 팍!! 본문기사에서 기자님이 읊으신 대목처럼 자본가로서의 물러설 수 없는 눈빛!!! 저도 그걸 느꼈답니다. 우째쓸까나~~~~ㅜㅡ
    난 요즘 시크릿땜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뎁....
    좀 더 연장해주심 안될까요? 안되겠죠? 그래도 소리쳐 보렵니다~~~ 100회 안될까요~~~^^;;;;;;

  • T

    아 참세상에서 이런 기사 보니까 재밌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크릿가든 오글오글하지만 보면 항상 빠져듦! 그냥 뻔한 신데렐라스토리의 타협(왕자님과의 결혼)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뭔가 다르긴 다를까요? 결말이 궁금합니다.

  • 최선이야?

    이상, 상상력 대장을 꿈꾸는 어느 기자가 한자 한자 직접 타이핑한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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