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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 유감

[칼럼] 4.20, 4.30은 5.1에 없었다

제자들과 함께 4월 실천단을 꾸려 4.20, 4.30 그리고 5.1 메이데이 집회에 참가하였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등록금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한신대에서만 100명 가까이 참가하였고, 특히 새내기들의 참여도가 높았다. 촛불을 경험한 세대인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올해에는 특별활동 주간 프로그램으로 학교에서 채택되어 지도교수로서 공식성을 띄고 참여하였다.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결의대회는 매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 관련 요구들이 제시되는 집회이고, 4.30은 노동 관련 투쟁 사안들 중심으로 열리는 집회로 메이데이의 전야제 성격을 가져 왔다. 4월 말에 잡혀 있는 집회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메이데이 집회로 연결되는 사전 집회들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올해는 어떤 연유인지 4월의 집회들과 메이데이 집회는 마치 별개인 것처럼 진행되었다. 4월의 집회에서 제출된 다양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 요구들과 무관하게, 메이데이 집회는 노동절 기념식장에서 진행된 야당들의 선거집회처럼 바뀐 것이다.

4.20에서 4.30까지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결의대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요구들이 제시되었다. 1. 장애등급제 폐지하고, 보편 복지 제도화하라. 2. 부양의무제 폐지하고 국민기초생활법 개정하라. 3. 장애인활동 지원법 개정하고 자립생활권리 보장하라. 4. 장애아동복지지원법 개정하라.

지금 복지관련 담론이 무성하지만, 장애계의 요구는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등 매우 구체적이다. 과거에도 생산적 복지, 참여 복지, 능동적 복지 등 거창한 구호 속에 복지가 국정지표의 수준에서 제시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거꾸로 가기 십상이었다(예컨대 국기법의 제정 이래 전국민복지시대를 열었다고 선언되었지만, 비정규직의 증대로 복지사각지대는 늘어 났다). 지금의 보편 복지 논쟁도 거창한 수사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진전이 중요할 것이다. 장판(장애인판, 장애인계)에서는 비리시설 척결,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활동 보조인 제도 도입 등 처절한 투쟁들을 통해 실질적인 진전을 끌어내왔다. 올해에도 장애인들의 집회는 열기에 가득 찼으며, 가두 시위에 나선 휠체어 부대는 마치 소형 탱크들처럼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나갔다. 과거 역사에서 문민정부, 참여 정부 시절의 개혁의 실패, 그리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투쟁, FTA 반대 투쟁에서 촛불에 이르기까지 운동의 패배가 도처에서 보고되는 와중에 유일한 승전보는 장판에서 들을 수 있었지 않았는가. 누가 장애인을 장애인(장애가 있는 사람)이라 하였는가.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에게 배워야 한다.

4월 29일과 30일에는 다양한 집회들이 있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였다. 29일에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경투쟁이 있었다. 오후에 정부종합청사 앞 규탄집회에 이어 저녁에는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투쟁문화제를 가졌다. 현대차 비지회는 작년도 파업투쟁 시에 야4당과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파업을 접도록 유도하여 파업을 접은 후 협상에 들어간 바 있다. 그 이후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징계, 손배소 등 사측의 탄압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도, 투쟁의 의지가 꺾이지 않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기세를 몰아 30일에는 서울역에서 최저임금 쟁취,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투쟁대회가 있었다. 사납게 몰아치는 황사능비에도 서울역 광장을 가득 채운 대오는 흐트러지지 않고, 쌍차, 현차 등 투쟁 단위의 목소리를 경청하였다. MB와 보수 세력의 기도발이 폭우를 불러와 투쟁 대오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 아니냐는 누군가의 농담이 있었다.

30일 저녁에는 4.30 정치대회와 학생들의 집회가 있었다. 사노위 주최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정치대회는 수십년 만의 공식적인 사회주의자들의 공개 집회였다. 아직도 살아 있는 국가 보안법에도 400~500명의 활동가들이 모여 주로 비정규직 문제와 사상의 자유 관련 발언을 하였다. 고려대에서 있었던 학생 집회에서는 현안이 되고 있는 등록금 문제와 서울대 법인화 문제가 거론되었다. 올해에는 5~6년 만에 처음으로 16개 대학에서 학생 총회가 성립되었다고 들었는데, 학생운동이 다시 활기를 찾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년에 투쟁 승리를 끌어내었던 동희오토의 이백윤 동지가 연사로 올라와 비정규직 투쟁과의 연대를 호소하였고, 몸짓 선언의 무대가 있었다. 몸짓 선언은 그렇다고 해도, 이백윤 동지의 인기는 연예인 수준이어서 의외였다. 전철연 동지들이 남경남 의장 면회 기금 마련 주점을 하고 있어서, 남아 있는 어묵을 모두 사서 집회 참여한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남 의장은 4.27 재보선 다음 날 대법원에서 5년 징역형을 선고 받은 바 있다.

5월1일 노동절

메이데이 집회는 4월 집회들과 사뭇 달랐다. 물론 4월 실천단이 모든 집회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다 본 것이 아니고 다를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집회들은 가능한 한 참석했고, 우리가 참석한 집회들 중에는 보도된 것들도 있었기 때문에 의아했다. 4.20, 4.30은 5.1 메이데이 집회에 없었다.


무대 위에서는 야3당 대표를 위시해 명망가들이 발언하였는데, 4월 집회에서는 보이지 않던 분들이었다. 야3당 대표들의 발언이 중심이었다. 분당을 당선자는 감사 인사를 오랜 시간 했는데, 왜 노동절 집회에 와서 분당을 당선 인사를 하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분당을 주민 같아 보이지는 않는 사람들이 군데 군데에서 박수를 칠 뿐, 학생들은 지루해하였다. ‘선거 유세장에 온 것 같아요’, 이것은 대학 새내기가 한 이야기였다. 야당연대가 제대로 되려면 당 대표들이 무대 아래 앉아서 노동현안들에 대해 듣는 제스처라도 했어야 했는데... 물론 연세대 청소 노동자분도 발언했는데, 마치 양념처럼 끼어 있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불쌍한 분이 계시고, 그 문제 해결은 야당연대, 이런 포맷이었다. 노동절 집회 참여자 가운데에는 야4당 지지자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주변 동료에게 물어 보니, 야4당은 올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저렇게 되었다고 한다. 하긴 야4당은 안 올라왔지, 야3당이니까(국참당은 오지 않았다).

무대 위의 연사들만 바뀐 것이 아니라 구호도 바뀌었다. 최저임금제 쟁취와 노동법 개정이 주된 슬로건이었다. 노동자 집회이니만큼,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핵문제나 4대강, FTA, 론스타, 등록금 등의 쟁점까지 다루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하더라도 노동계 현안조차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최저임금제는 말 그대로 임금의 최저선을 설정하는 문제로, 소득의 기본선을 제시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문제는 그것의 가장 래디칼한 버전인 기본소득제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적인 착취를-그것의 신자유주의적인 전략에 이르기까지-건드리지 않고 도입될 수 있다. 즉, 지금 현안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나 정리해고제 등 신자유주의적 축적 전략과 충돌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자들도 수준의 문제에 있어서는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최저임금제를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최저 임금의 기준을 정하는 문제는 노동 사안의 하나의 꼭지를 이룰 수는 있지만, 비정규직 문제를 대체하거나 총괄할 수 없다.

야권연대의 성과물인 것처럼 메이데이 때 주 슬로건으로 제시된 노동법 개정안은 민주노총의 8개 요구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5개만 채택되고 (△타임오프 폐지 및 전임자 임금지급 노사자율 △복수노조 도입에 따른 자율교섭 보장 △노조설립 절차 개선(노동자 개념 확장) △단체협약 일방해지권 제한 △사용자 개념 확장 ) 민주당의 반대로 △필수유지업무 폐지 △산별교섭 법제화 △손배·가압류 제한의 3개 사항은 빠진 채 합의안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항의하여 진보신당은 빠진 채 합의되었다. 이미 민주노총 요구안에는 비정규직 악법 조항들이 빠져 있는데도-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정권교체가 되면 노동법, 비정규직법을 개정해 주겠다고 발언하였다-, 민주당은 이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최저임금제가 소위 복지동맹의 실체라면, 알맹이 없는 노동법 개정안은 4당연대의 현주소이다.

메이데이가 이렇게 된 데에는 반MB 정서에 기대어 집권하려는 민주당이 비정규직 문제, 쌍차 문제, 론스타, FTA 등 굵직한 사안들에 원죄를 저질렀고, 신자유주의적이고 친기업/반노동자적인 기본 입장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민주당에 기대어 제도권 진출을 도모하려는 민노당도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며, 단지 폐해를 어느 정도 약화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애매한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보다 정확히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미온적이며, 정규직 세습에나 신경 쓰는 현대차 정규직 노조 지도부와 같은 기득권 노동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노동자 민중 정치가 야권에서 빠져 있다면 이를 누군가 대신해야 하는데, 노동자 계급 정치, 좌파 정치를 표방하는 나머지도 힘이 있는 정치 세력으로서 흐름을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다. 메이데이에 뿌려진 각종의 주장을 담은 써클들의 유인물들은 실질적인 정치를 구성해 내지 못한 채 행사장에 쓰레기로 버려졌다. 노동자 민중의 직접 정치, 이를 모아내는 계급 정치, 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힘을 가진 정치만이 지금의 현실을 바꾸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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