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선관위 디도스 토론회서 검투사 김종훈을 보다

[기자의 눈] 서버장애 토론회, 김종훈 식 대응한 선관위에 시민사회 석패

한미FTA 토론회도 이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라우터, BGP, IPS 웹로그, VPN, 메가비피에스, 데스티네이션 라우터, 리퀘스트 도달, 로드밸런싱” 등과 같은 알 수 없는 전문용어들이 쏟아졌다. 격한 발제와 의혹 담긴 질문, 매끄러운 답변이 오가는 동안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굳이 토론회의 승자와 패자를 나누라고 한다면 선관위가 근소하게 이겼다. 무식해서 용감하다고 할까. 전문 지식이 없는 기자가 보기엔 그랬다.


전문가들끼리 주고받은 전문 용어들의 공방을 정확히 전달하기에 기자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토론의 결론도 나지는 않았다. 의혹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토론회를 취재한 경험을 살려 그날 토론회의 느낌을 말해보라 한다면 시민사회진영은 일단 아까운 패배를 했다. 어쨌든 선관위가 여러 가지 의혹과 질문에 또박또박 잘 대답했기 때문이다. 살짝 미소를 머금기도 한 채.

그런데 선관위 직원의 보일 듯 말 듯한 미소에서 검투사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미소를 봤다면 너무 과도한 것일까. 기자에겐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과 한미FTA 범국본 소속 전문가들이 갖가지 문제를 지적할 때마다 김종훈 전 본부장이 살며시 보여줬던 미소가 그들의 얼굴에 겹쳐 보였다. 김종훈 전 본부장에게 검투사란 별명이 붙은 것은 6년 동안의 공방에서 한미FTA의 수많은 의제 영역에서 특유의 화법으로 반FTA 전문가들의 의혹제기를 받아쳤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이 끝나자 “ISD, 역진방지, 네거티브 리스트, 허가-특허 연계, 금융 세이프가드” 같은 지난 6년여 동안 듣고 또 들어온 어려운 단어들이 떠올랐다.

  LG엔시스 보고서

한미FTA처럼 부족한 정보에 따른 불공정한 게임

지난 2월 23일 오후 2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는 ‘10.26 재보궐선거시 중앙선관위 인터넷서비스 장애 어떻게 볼 것인가’란 토론회가 참여연대 주최로 열렸다.

2월 15일 선관위가 부분 공개한 LG엔시스의 ‘재보궐 선거 서비스장애 분석 보고서’를 놓고 IT 전문가과 네티즌들이 선관위 직원들과 여러 의혹을 풀어보는 토론회였다.

전문가들과 네티즌들은 그동안 나온 여러 자료와 공개된 데이터만 가지고 선관위에 의혹들의 해명을 요구했지만 선관위 담당 사무관은 말 한마디 막히지 않고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결론은 선관위에 의혹을 제기한 전문가들과 네티즌의 아쉬운 석패(惜敗)였다. 하지만 이제 1차전일 뿐이다.

전문 지식이 충돌한 한미FTA, 천안함 논란은 1-2년으로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 선관위 서버 장애 문제도 배후 뿐 아니라 기술적 논쟁에서 그럴 소지가 커졌다.

이날 선관위는 다른 전문가들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중요한 새로운 자료를 자신들의 주장을 근거 삼기 위해 살짝 공개했다. 그러니 LG엔시스 보고서와 기존에 공개된 데이터만 보고 의혹을 제기한 전문가들에겐 불공평한 게임이 됐다.

서버를 관리한 선관위의 담당 실무자들은 이미 ‘나는 꼼수다’가 가장 최근에 제기한 새로운 의혹들부터 조목조목 반박하는 A4 13쪽 분량의 ‘DDOS 관련 새로운 의혹제기에 대한 설명자료’란 것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이 자료에서 기존에 공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데이터를 근거로 댔다.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던 국회와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를 외면하다 공격적인 여론 작업에 나서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료를 내놓은 것이다.


이는 노무현정부에서 이명박정부까지 이어지던 대한민국 통상교섭본부가 한미FTA 관련 여러 토론회와 끝장 토론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이다.

정부는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쇄국으로 몰아가고, 엄정 대처 같은 방식으로 분노하게 만든다. 이렇게 쟁점을 흐리고 나면 여러 의혹제기나 부실 협상 얘기가 나와도 한미FTA 안에 담긴 암호 같은 국제통상 용어들을 쏟아내며 “이미 다 검토했고, 앞에서 말씀드린 바 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답변한다.

국회에서 구체적인 협상 자료를 내놓으라고 하면, 국민에겐 공개할 수 없으니 국회의원들이 필요하면 비공개 장소에서 잠깐 볼 수 있도록 한다. 자료는 복사를 할 수도 없고,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필기도구 몇 개 가져가서 1,000페이지가 넘는 자료를 넘겨보다 이상한 부분은 잠깐 필사할 수 있을 뿐이다.

정부, ‘의혹 제기자들 책임’부터 거론...참가자들 감정 흔들어

선관위도 그랬다. 토론 시작부터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의 평정심을 흔들었다. 송봉섭 중선관위 의정지원과장은 “선관위가 2011년 12월 8일 학계와 업계 정보보호 전문가 7인을 초빙해 ‘통신밀보호법’에 위반되지 않는 방법으로 로그기록과 트래픽을 공개하였고, 서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였음을 확인하였음에도 일부의 터무니 없는 주장에 편승하여 이를 확대, 재생산한 사람들은 DDOS 공격에 사용된 좀비PC의 역할과 무엇이 다른지, 또 선관위를 흔들어 과연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이제는 답해야 할 때”라고 비난했다.

또 “로그기록을 공개할 경우 위변조 시비로 새로운 논란이 촉발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자부심과 긍지에 큰 상처를 입고도 적극적인 대응을 자제하며 인내해 왔다”며 “특별검사의 수사가 종결된다면 헌법기관인 중선관위에 대한 DDOS 공격을 한 관련자는 물론이고 전혀 합리적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도 응당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관위가 따로 내놓은 설명자료엔 기존에 민간 전문가들이 전혀 몰랐던 BGP up/down 자료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데이터를 토론 과정에서 살짝 드러내고, 각종 의혹과 질문에 선관위만 알던 데이터 량이 선관위 서버로 흘러 들어왔기 때문에 디도스 공격으로 인한 장애라고 반박했다.

새로운 데이터가 뜻하지 않게 공개되자, 전문가들은 다시 의구심을 드러내고 그 사실에 대한 질문과 새로운 의구심을 쏟아낸다. 그러면 선관위 담당 사무관은 ‘제가 이미 이랬다고 대답했습니다’라는 식으로 강조점을 두지 않았던 이전 답변들을 상기시키며 다른 토론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질문한다는 식으로 정리한다.

새로운 자료에 대한 다른 질문에, 비슷한 답변이 반복되면서 전문가들은 새로운 데이터를 공개해야 검증이 가능하다며 추가 자료를 요구해 보지만 자료는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되돌아온다. 대신 의구심을 풀기 위해 전문가들이 찾아오면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만 공개할 수 있다고 한다. 검투사 김종훈 식 한미FTA 토론법의 전형을 선관위가 구사한 것이다.

국민들이 그 어려운 한미FTA의 독소조항에 공감하기 시작한 것은 6년여가 지나서였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소속 전문가들의 6년여에 걸친 문제제기 때문이었다.

이런 전법에도 선관위가 완전한 승리를 이루진 못했다. 전문가들은 선관위의 답변에서 새로운 의구심을 가졌다. 선관위의 승리는 국민이 납득해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선관위 서버 장애 초기부터 나꼼수와 야당, 시민사회단체들이 요구한 선관위 서버의 로그기록과 디도스 공격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의구심이 사라진다. 그것도 기존 서버에 새로운 조치를 하지 않은 적절한 시기에.

다음 시나리오를 예상해보자면 불합리한 조건에서 공격을 취하던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은 새로운 자료공개를 통해 반격을 기대해 보겠지만, 정부는 또 애매한 자료만 살짝 공개하고 예상 가능한 반박을 완벽히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날 주 발제자로 나온 김기창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자문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Openweb 대표)의 마지막 정리 발언을 곱씹어 봐야 한다.

“선관위 대응 중에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오늘 주신 이런 자료 같은 것이다. 여태까지 아무도 6시 46분경 KT 회선 넘버1을 (먼저) 차단함으로써 넘버2를 통해 공격이 왔다는 정보는 접해보지 못했다. 이제까지는 6시 58분에 KT 회선 두 개를 한꺼번에 잘랐다고(차단) 알았는데 이런 정보를 난데없이 내놓는 식의 대응은 의혹을 증폭시킬 것이다. 이것도 KT선 차단인지 라우터 업다운으로 인한 차단인지 불분명하다.

또한 KT 두 선이 차단된 다음 라우터 오작동으로 어떤 트래픽도 DDOS 방어장비까지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이 모든 기술보고서의 일치된 견해다. 쉽게 말하면 7시 직전 두 개를 잘랐는데 양쪽 라우터와 교신장비가 엉망진창이 돼서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떤 트래픽도 못 들어왔다. 결론은 7시 이후로는 처음부터 DDOS는 이슈도 아니었던 거다. 그런 의구심을 확인하기 위해 각종 라우터 관련 로그기록을 좀 투명하게 공개해 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특검 관련해서는 조사 범위가 DDOS에 관한 것으로 국한된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LG엔시스 보고서에서 드러난 부분은 7시에 KT회선을 자른 이후 라우터 문제이기 때문에 자른 결정을 누가하고, 어떤 프로세스에 따랐고, 그것이 타당했는지, 과실이 있는 건지에 대한 수사는 전혀 안됐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경찰 수사부터 새로 시작하고 검찰이 만족스럽게 하면 특검도 상관이 없다. 라인을 3개 사용하다 트래픽이 많이 들어오니 2개를 자르는 결정을 해놓고 그게 비상상태에서 최후 긴박한 조치라고 하셨는데 그 뒤에 1시간 반은 어떻게 설명을 하실지 궁금하다. 그런 수사는 새로 해야할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부에서 송봉섭 중선관위 의정지원 과장, 박혁진 중선관위 정보화 담당관, 유훈옥 전산 사무관이 참석했으며, 민간 전문가 중에선 진보네트워크센터 서버관리자인 황규만 씨가, 시민 네티즌의 입장에서 IT전문가인 ‘아고라 샤’ 씨와 ‘동네북의 난’ 씨가 토론에 참여했다. 참여연대에선 김기창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자문위원과 김유승 정보공개센터 이사(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참가했다. 사회는 장유식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부소장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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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vertree

    참여연대 토론회 중 김기창 교수님의 설명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gb=3&aircd=0000003658&CNTN_CD=ME000067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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