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전신불수 투병 아들, 73세 노모 나선 사연

[기고] 매그나칩반도체서 일하다 쓰러져, 진상규명해야

김상우 씨는 충북 청주에 위치한 매그나칩반도체에서 가스엔지니어로 9년 동안 근무하다 2006년 쓰러져 8년째 전신불수 상태로 투병 중입니다. 병명은 ‘뇌염’입니다. 과로와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면역력이 저하되었을 경우 산재로 인정되는 병입니다.


김상우 씨의 어머니 김순옥 씨는 아들이 밤늦게까지 일한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산업재해 신청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회사에서 모범상장도 받고 열심히 일하던 노동자니 회사가 당연히 산업재해를 인정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프린터 인쇄물로 출력한 출퇴근기록을 제출했습니다. 밤늦게까지 일한 기록이 다 다 빠져있었습니다.

거기다 가스 업무도 거의 하지 않고 사무실에만 근무했다고 회사 관리자가 증인으로 나와 주장했습니다. 법원 소송 중 어머니는 출퇴근기록 원본인 ID카드 사용 내역을 제출하라고 그토록 애원했건만 매그나칩은 끝까지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대법원까지 가서 김씨는 재판에서 졌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그나칩반도체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하고 지역의 단체들을 찾아갔습니다. 소식을 들은 종교인들이 지난 7월 2일 매그나칩의 진실 고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어머니가 포기 하지 않은 끝에 지역단체들도 어머니의 손을 잡았습니다. 지역단체들이 매그나칩 정문 앞에서 매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피켓시위에 함께 했습니다.

9월 30일엔 매그나칩반도체 전신불수 노동자 출퇴근조작 의혹 진상규명 촉구대회를 열었습니다. 지역의 종교, 노동, 시민, 정당 등 다양한 분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 힘으로 어머니가 매그나칩 총무과장과 면담을 했고 총무과장을 통해 대표이사에게 진실을 밝혀달라는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총무부장과의 면담에서 대표이사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앞으로도 이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싸우시겠다고 합니다. 그 길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달라고 부탁한 김순옥 씨, 그를 만나보았습니다.


"재판이라도 다시 해봤으면...우리 아들 밤새 일한 진실 밝히고 싶어요"

김상우 씨 어머니 김순옥 씨 인터뷰

처음 아드님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겠어요
이런 벼락이 어디 있겠어요. 날벼락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었죠. 아들하고 떨어져 지낸지가 9년째예요. 우리 아들이 9년 동안 기숙사 생활하면서 현장에 무슨 일만 생기면 낮이고 밤이고 뛰어 들어가서 일을 했어요. 책임감이 강하고 착실한 우리 아들이 잘못한건 일 열심히 한 죄밖에 없는데 병이 났다고 하니 하늘이 너무 원망스러웠죠.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있을 때 얘가 경기가 너무 심해서 약이 많이 올라갔어요. 약이 올라가니까 호흡이 안 되서 인공호흡기를 찼죠. 병원에서는 자꾸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매일 매일 울지 않은 날이 없어요.

아드님이 어쩌다 그렇게 됐나요?
우리 아들이 처음에는 LG반도체에서 일하다가 친구 따라서 매그나칩반도체로 왔어요. 좋았지요. 대기업이니까 무조건 좋은 줄만 알고 위험한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았는데 우리 아들이 독가스를 다루는 일을 했더라고요. 다들 피해서 가기 싫어하는 일이었는데 우리 아들은 묵묵히 일했어요. 그러다 1공장 일하던 걸 1, 2공장 다 하게 됐죠. 일을 너무 많이 한 거예요. 전화를 하면 밤에도 늘 일하고 있다고 했었어요. 얼마나 일을 많이 했으면 쓰러져서 지금까지 못 일어나는지 너무 마음이 아파요.

병간호도 힘들고, 회사랑 싸우는 것도 힘들 텐데 포기하고 싶진 않으셨어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순간이죠. 전 늘 어떻게라도 애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애가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13개월 있었어요. 우리 애한테 들어가는 약이 엄청 많았는데 아주 조금씩 그 약이 줄더라고요. 간호사들도 나만 보면 약이 내려갔다고 좋아했어요. 그때는 약만 줄면 다 나을 줄 알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오래 걸릴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우리 애가 일어나려고 이렇게 애를 쓰는데 내가 포기할 수는 없자나요. 그리고 우리 애가 자꾸 경기를 해서 그렇지. 머리만 더 나으면 환자치고는 건강한 편 아니에요? 간호사들이 중환자실에 있을 때 그러더라고요. 부모들이 포기한 사람들은 자식을 못 살리더라, 부모들이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살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병간호 하며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예요?
얘가 쓰러진지 몇 년 지나서 밥 먹을 때예요. 19개월 만에 콧줄을 빼고 죽을 먹다가 밥을 먹었거든요. 그때 그렇게 좋을 수 없었죠. 또 병원에서 깨어나는 약을 쓰니까 우리 아들이 정신이 조금 돌아오더라고요. 전화도 하고, 음료수도 따고. 저를 보면 그렇게 반가워할 수 없어요. 몇 년 동안 고생한 게 다 낫더라고요. 아들만 나을 수 있으면 내가 고생한건 아무것도 아니다 싶었어요. 그런데 다시 경기를 너무 많이 심하게 하더라고요. 약을 두 배로 주니까 또 의식을 잃고 잠만 잤어요.
우리 아들이 의식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한테 내가 결혼해야 하는데 도와달라며 한숨을 그렇게 쉬더래요. 정말 내 가슴이 아프고 미어졌어요. 아이 병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눈물이 말도 못하죠.

아드님을 고치기 위해 안 해 본 게 없으실 것 같은데?
아들이 아프고 나서 한참을 팔공산에 기도하러 다녔어요.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등산도 못하는 사람인데 아들 살린다는 생각에 매일 갔지요. 한 시간씩 산에 올라서 가야하는데 오를 때마다 땀이 줄줄 흘렀어요. 또 누가 산에 약초가 좋다기에 산에서 약초 캐는 사람한테 약초를 사다가 5년을 끓여먹였어요. 요즘은 관절이 안 좋아서 과일 주스만 해다 먹여요. 매일 약이랑 밥만 먹으면 안 되잖아요. 위장이 튼튼해야 머리도 나을 것 같아서 늘 주스를 먹여요.

뭐가 가장 억울하신지, 다시 돌아간다면 뭘 가장하고 싶은지?
정말로 재판을 다시 해봤으면 좋겠어요. 증인을 좀 더 세워서 진실을 밝히고 싶어요. 회사에서 출퇴근기록을 속이고 상사가 혼자 일한 걸 둘이 일했다고 속인 걸 증명해줄 증인을 세워서 다시 해보고 싶어요. 제대로 증언해줄 사람을 세워서 우리 아들이 밤새 일했다는 걸 증명 받고 싶어요. 만약에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되는 거라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행정재판 때 증인을 하나도 못 세우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게 너무 억울해요. 그 당시 사람이 죽네 사네 하니까 정신이 없고 회사가 다 해줄 거라고 생각해서 넋 놓고 있었죠. 그러다 뒤늦게 산재신청을 하니 뭘 잘 몰라서 제대로 못했어요. 지금까지도 그게 너무 억울해요.

매그나칩 사장을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일하는 사람들이 병이 나면 앞장서서 산업재해로 처리해줬으면 좋겠어요. 가뜩이나 자식들이 아파서 힘든 가족들을 이렇게 억울하게 만들면 안 되잖아요. 자기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와 가족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잖아요. 제발 진실을 밝혀달라고 말할 거예요. 즈그들도 사람인데 언제까지 속이고 편하게 살 수 있겠어요. 언젠가는 잘못을 느낄 날이 오겠지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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