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은 아픔의 현장들, 희망의 얼굴들

[추모 글] 오렌지, 앞으로도 오랫동안

[편집자말] 엄명환(오렌지가 좋아) 님의 쾌유를 바라는 이 글을 받고 편집하던 중 엄명환 님이 오후 2시 40분경 영면했다고 반올림에서 알려왔습니다. 엄명환 님은 만성신부전증으로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받아왔습니다.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2009년부터 반올림 기자회견, 국제 워크샵, 추모 문화제, 1인 시위, 노동자대회 선전전 등을 사진으로 기록해왔습니다.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온 엄명환 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가 쓰러지기 얼마 전 5.14일 반올림에서. 사진 찍고 있는 오렌지가 우연히 찍혔습니다. 우리를 기록했던 오렌지, 정작 본인의 사진은 많지 않습니다 [출처: 권영은]

오렌지를 기억하고 싶진 않습니다. 엄명환, 오렌지와 함께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습니다. 오렌지는 얼마 전까지도 반올림 개소식 사진을 찍고, 반올림 활동을 얘기하던 친구입니다. 본명이 엄명환이라고 하는데, 그보다는 ‘오렌지가 좋아’, 그마저도 줄여 오렌지로 불렀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맛있는 거 먹으러 남산에 놀러오라고 연락했던 친구인데... 오렌지는 지금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 1인이 되었습니다.

오렌지는 갑자기 심정지가 와서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습니다. 중환자실에 다녀온 동료는 오렌지의 평소 모습과 달리 퉁퉁 부어 있어 가엽다 했습니다. 그가 영영 떠나기 전에 병문안을 가봐야 하는데, 아픈 모습을 어찌 기억해야 하나 싶어 마음이 쉬이 먹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쉬이 보낼 수 없습니다. 오렌지가 평소 조금 아프다고 느낄 단서는 부어있는 팔뚝뿐이었습니다. 만성신부전 증으로 오랫동안 투석을 해왔다는 것도 대부분이 몰랐기에 오렌지 소식에 많이들 놀랐습니다. 퉁퉁 부은 혈관을 아무렇지 않게 살짝 가리고서 반올림과 같은 아픔이 있는 곳을 씩씩하게 누비며 사진을 찍어온 오렌지였습니다.

2013년 겨울, 오렌지는 <또 하나의 가족> 이음갤러리에서 한 달 동안 '오렌지가 좋아' 사진전을 했습니다. 그간 반올림 활동을 찍어왔던 것을 갈무리하는 자리이자, 사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시간이었습니다. 삼성 LCD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 씨의 어머니는 딸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하던 오렌지를 흐뭇하게 바라봤습니다. “오렌지는 사진을 얼마나 열심히 찍는지 몰라요. 바닥에 드러누워서도, 자신의 호흡을 오랫동안 참고서는 (이렇게) 여러 번 셔터를 누르고 또 눌러요.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올 때까지!” 오렌지 사진전에 모인 삼성직업병 피해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오렌지가 그간 자신들을 기록해주고 세상에 알려준 사실에 무척 고마워하며 머리도 쓰다듬고 뜨겁게 박수도 쳤습니다.

  오렌지가 좋아 반올림 사진전. 오렌지가 열정적으로 사진 찍는 모습을 흉내내는 혜경 씨 어머니. [출처: 홍진훤]

‘불쌍해서 어째...’

오렌지 소식을 전해들은 혜경 씨 어머니는 전화기 너머로 흐느꼈습니다.

‘오렌지 프로젝트’ 페이지에는 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오렌지의 회복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오렌지가 그간 찍은 아픔의 현장들, 희망의 얼굴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오렌지가 눕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기록했던 오렌지 사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에 우리의 무심함을 자책해보기도 합니다.

오렌지가 기록하고 세상에 알려야 할 진실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아직 오렌지는 우리 곁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오렌지와 앞으로도 오랫동안 활동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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