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의 NLL 논란

[기자의눈] NLL, 청산해야 할 분단모순의 산물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11일) 5당 원내대표 오찬 간담회 자리에서 "처음에는 우리 군대(해군)의 작전 금지선이었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출입기자들과 간담회 중 "우리한테 유리하든 불리하든 객관적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남북 간에 합의한 분계선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해 NLL에 대한 입장을 거듭해서 피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NLL에 대한 '도발적' 발언을 거듭한 것을 두고 두 가지 배경이 제기된다.

하나는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이 "대선을 이념 대결로 끌어가려고 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노 대통령이 복선을 깔고 작심한 듯 도발적인 발언을 한 것 같다"는 발언과 연관된다. NLL 발언으로 한반도 평화 논쟁을 부각하면 경제를 앞세우는 이명박 후보의 대선 이슈가 희석될 수 있다는 계산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다.

또 하나는 11월 평양 국방부장관회담에서 NLL 의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예정인만큼, 회담을 앞두고 사전 여론 포석작업 효과를 노리며 제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두 판단 모두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보니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토끼눈을 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던 보수세력은 물을 만났다. 강제섭 한나라당 대표는 "충격이다. NLL에 대한 대통령의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영세 의원은 “노대통령이 임기가 몇개월 남지 않았다고 해도 그런 발언을 해서는 안된다”면서 “4년간 그런 인식을 갖고 안보를 책임지면서도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거들었다. 조중동은 일제히 비난 사설을 썼다.

중앙일보는 오늘 사설에서 "특히 2002년 우리 해군 장병이 순국한 서해교전 이후 NLL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영해’로서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했다. 이 선을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과 교전하다 전사자가 생겼는데, 이 선이 해상경계선이고 그 이남이 우리의 영해가 아니라면 장병들은 왜 목숨을 바친 것인가"라고 썼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양보해서 그은 선이 NLL이다. 당시 바다를 나누는 선은 NLL이 유일했고, 그 후 북측은 20년간 단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1963년 군사정전위에선 이를 해상분계선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북측이 NLL 도발을 시작한 1970년 이후에도 북측이 이를 사실상 해상분계선으로 인정한 사례는 적지 않다."며 NLL을 해상군사분계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보수세력이 NLL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갖는 데 비해 그동안 참여정부는 부처별로 여러 스펙트럼을 보여왔다.

가령 이재정 장관은 "NLL은 영토개념이 아닌 안보개념"이고 "서해교전도 방법론에서 반성해봐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고, 천호선 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 전에 "NLL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입장은 50년간 지켜온 해상경계선"이라고 말 한 바 있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정상회담 전 "NLL은 영토주권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나 10월 8일 "NLL은 영토가 아니라 경계선, 영토라는 개념으로 사용하면 복잡해진다"고 말을 바꾸었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NLL에 대해 참여정부 내의 울퉁불퉁한 견해들을 하나로 간추리는, 못을 박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노무현의 NLL은 타당한가, 정당한가의 문제가 남는다.

NLL은 분단모순의 산물

NLL 논란은 불행한 분단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이 사실을 환기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에서 서해5도 도서군은 국제연합군총사령관 군사통제 하에, 기타 모든 섬들은 조선인민군총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 통제하에 둔다고 규정했다. 협정 체결 당시 해상군사분계선을 두지 않았다가 한 달 후 클라크 국제연합군총사령관이 서해에 일방적으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한 것이 현재의 선(LINE)이 된 것이다. 이후 수차례의 해군 수송선과 꽃게잡이 어선 나포가 발생했고, 1999년 연평해전과 2002년 서해교전에서는 모두 6명의 군인이 숨지고 26명이 부상당하는 비극이 초래됐다.

그러니까 NLL은 영토논란과 사실관계를 따지기 이전에 한국전쟁 이후 분단모순이 함축된 역사적 산물로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로 인해 고통받은 남북 어민과 해군의 희생을 잊지 않아야 한다.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의 원인을 제거하고 분단모순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남북의 분단고착 세력과 분단모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책임을 짚고 가야 한다.

NLL에는 남북 분단과 분단 고착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해온 지배세력 일반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투영되어 있다. 분단의 비극이 NLL을 생성했고, 분단모순이 NLL을 둘러싼 대립을 부추겼으며, 통일 노력 대신 분단 고착을 통해 권력을 유지해온 남북 역사의 불행이 오늘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함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NLL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NLL에 대한 보수세력의 생각은 분열적이다. 평화통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운 데다, 기득권도 생각하고 안보도 생각하다 보니 자신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거역하는 상황까지 연출한다. NLL을 해상분계선으로, 영토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이상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와 충돌한다. 헌법3조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라고 보는 것인데, NLL을 영토개념으로 보게 되면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영토도 인정해버리고 마는 모순을 발생한다. 국가보안법은 북을 반국가단체로 간주하고, 특수잠입.탈출을 금하는데, 북의 영토를 인정하는 순간, 국가보안법 상의 반국가단체 규정도 혼란스러워진다. 보수세력이 이런 딜레머를 안고 NLL을 영토개념으로 고집하는 데는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응당 분단고착을 통해 지배를 재생산하려는 계급속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NLL 인식은 어떠한가. 일단 역사적 사실을 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배경이야 어떠하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NLL에 대한 소신을 피력했다는 점 자체에 점수를 주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발언의 맥락으로 미루어 NLL이 남측 해군의 북측 수역 진출의 한계선이지, 남북 해상을 획정하는 경계선으로 보지 않는듯 하다. 조선일보 사설에서 말하는 북이 20년 이상동안 NLL을 인정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거니와 역시 그렇게 이해하는 맥락이다. 1957년 이후 북이 NLL에 계속 문제제기를 해왔으므로 남측이 단독으로 실효적 지배(principle of effective control)를 관철했다고 판단하지도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왜 NLL을 놓고 도발적 발언을 하는가이다. 이는 단지 역사적 맥락과 국제법상의 해석에 제한되지 않는데, 그 요체는 역시 '남북경제공동체' 문제와 직결된다. 아닌 말로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챙겨온 '보따리'가 썰렁했다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라는 획기적인 물건이 없었다면 NLL에 이만큼의 관심을 보이지도, 발언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개성공단을 잇는 남북경제공동체 구상의 핵심으로 평가된다.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 하구 공동이용 등 특별지대의 설치는 경제 선순환의 평화 실현 프로젝트의 시작인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NLL 등 군사문제를 군사적 방식이 아닌 경제적 공동 이익의 관점에서 접근했고, 따라서 NLL은 하찮고 부차적이고 걸리적거리는 것으로 이해할 개연성이 크다. 나쁘지 않다. 경제적 공동 이익의 실체가 무엇인가와 관계없이 NLL은 하찮고 부차적이고 걸리적거리는, 청산해야 할 역사의 과제임에 분명하고, 지금으로서는 칼이 아니라면, 경제로 녹이든 정치로 녹이든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 할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NLL 논란, 영토-체제-국가 논란으로 확대해야

다만 짚고 가야 할 것 한 가지로 이번 정상선언의 제2별항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둘러싼 해프닝이 있다.

북은 남북관계가 국가간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례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례화 제안에 "친척 집에 갈 때 정례적으로 가느냐. 수시로 놀러 가는 것이다. 국가 간 관계에서는 정례적이지만 북남 관계에서는 맞지 않다"고 답한 바 있다. 이것이 '우리민족'과 '아랫집 윗집'을 의미하는 순 호의적 취지라면 모르나, 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 적이 안타까운 일이다.

분단 이래 지금까지 북은 남을, 남은 북을 하나의 국가로 명시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북은 반외세 자주화 노선에 기반한 연방제 통일방안을, 남은 분단 논리가 온전히 반영된 영토조항에 기반한 남북연합 통일방안을 내놓았을 뿐이다. 6.15선언 제2항 합의는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지만, 지금 세상은 7년 전보다 훨씬 많이 바뀌었고, 이제 남은 북조선을 북은 대한민국을 호명하는, 국가와 국가를, 체제와 체제를 승인하는 진전된 남북관계의 형성이 평화체제를 앞당기는 지름길이 아닌지를 자문할 시점이 되었다.

여기에 남북 정상은 이번 선언에서 2000년 6.15선언 2항의 연장에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라는 파격적인 '경제'를 탑재했다. 따라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가로지르는 NLL과 그 NLL 논란이 영토, 체제, 국가 문제를 모두 건드리는 것은 필연의 수순이고, 그런 점에서 NLL 논란은 더 확대되어야 한다. 2국가2체제든 1국가1체제든, 아니면 또 어떤 것이든, 인민의 생존과 삶의 가치를 온전히 담는 그릇으로서 체제와 국가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고, NLL과 같은 분단의 산물은 서둘러 청산해야 마땅하다.

'영토'인가 '안보'인가.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민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이율배반적이고 초보적인 논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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