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 ‘축제’에 대한 유감

[3·8 100주년][기자의 눈] 함께 싸울 수 있는 여성의 날을 기대하며

강산도 열 번은 족히 변했을 시간,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들

딱 100년이다. 100년이면 강산이 열 번은 족히 변했을 시간이고, 보통 사람이라면 삶에서 겪을 수 없는 기간의 시간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다.

100년 전, 미국 트라이앵글이라는 피복회사에서 불이 났다. 146명의 여성노동자가 불에 타 죽었다. 그녀들은 거리로 나섰으며 “임금을 인상하라”, “하루에 10시간 만 일하게 해 달라”, “노조를 결성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를 외쳤다.

100년 후,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은,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70%를 차지한다는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라”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100년이 지나도 그녀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인간’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다. 변한 것은 없다.

  참세상 자료사진

국제노동기구(ILO)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의 취업 여성 수는 지난 해 12억 명으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0년 전에 비해 2억 명 이상 늘어난 수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일자리는 안정성이 떨어지고 급여가 낮은 직종에 몰려 있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국제노조연맹(ITUC)의 보고서에 따르면 동일노동 하에서 여성의 임금 격차는 세계적으로도 한국이 가장 컸다. 노동부의 ‘2007년도 사업체 근로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의 64.8%의 임금을 받고 있었으며, 같은 정규직의 경우에도 남성 정규직의 66.5%의 임금만을 받는다. 빈곤을 탈출하기 위해 여성들이 취업전선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100년 전과 변한 것은 없다.

‘축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축제’를 즐길 수 없다

변한 것 하나 없는 여성의 삶을 변화시키겠다며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준비되는 행사의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한 쪽에서는 ‘축제’를 벌이고, 한 쪽에는 ‘투쟁’을 준비하고.

[출처: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기념 3.8 여성 축제 조직위원회]

주류여성운동이라고 불리는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67개 단체는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기념 3.8 여성 축제 조직위원회’(3.8축제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8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축제’를 벌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이들과 함께 한다. 이들은 “여성, 새로운 공동체 세상을 열자”라는 제목을 걸었다. ‘새로운 공동체’의 가치는 “사람, 돌봄, 상생”으로 설명된다.

이윤이 아닌 사람을,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화를 이를 통해 모두가 함께 사는 ‘상생’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주류여성운동이 제시한 가치 하나하나를 두고 논쟁할 거리는 너무나 많지만, 왜 ‘축제’여야 하는가만 살펴보려 한다.

3.8축제조직위원회가 요구하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철폐, 최저임금 현실화 △성평등한 가족정책 실현, 보육의 공공성 강화 △통합적 인권교육 실시, 차별금지법 제정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반대 △여성장애인 고용할당제 강화 △식량주권 실현, 여성 농민의 사회적 지위 보장 등은 축제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명한 김미화 씨와 김성주 씨가 사회를 보고, 파랑, 보라, 녹색, 빨강으로 꾸민 퍼레이드 카를 앞세워 거리를 행진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투쟁도, 집회도 즐겁게 진행되어야 한다. 축제처럼 되어야 한다. 시민들과 함께 소리를 지르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함께 외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주류여성운동이 준비하고 있는 이번 ‘축제’는 참가하는 단체들의 요구를 쭉 늘어놓고 유명한 연예인들 불러서 노는(?), 1908년 방직공장 여성들의 아픔과 2008년 비정규직 여성들의 싸움을 살아있는 기억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투쟁을 빛바랜 사진으로 액자 속에 넣어 ‘기념’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편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는 “돌봄 노동자로 일하는 한부모 여성인 극중 주인공 강화자가 겪는 돌봄 노동의 스트레스, 한부모로서의 어려움,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어려움을 겪다가 투쟁으로 ‘무기계약’을 쟁취 한다”는 내용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마당극을 벌인다니 황당하기까지 하다. 무기계약은 정부에서는 ‘정규직’이라 떠들고, 노동계는 계약을 ‘무기’로 할 뿐 오히려 비정규직을 고착화시키는 수단이라고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참세상 자료사진

‘여성의 정치세력화’ 초점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또 결론은 ‘여성의 정치세력화’이다. 물론 4년 마다 한 번씩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라는 중요한 정치 일정이 있기 때문에 이는 반드시 짚어야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류여성운동을 통해 나타난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여성이 국회에 들어가는 것, 정치에 입문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대선 박근혜가 유력한 후보로 떠오를 당시 이를 지지해야 하는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주류여성운동 내부에서 벌어진 논란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물론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기에 정치든 무엇이든 간에 절반을 여성이라는 성이 차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를 가로 막고 있는 장벽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판검사가 되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느니, 알파걸이라느니, 골드미스라느니, 여성상위시대가 왔다느니 세상은 떠들지만 여성의 삶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정치세력화 된다는 의미는 단순히 많은 수의 정치인을 여성으로 배출한다는 의미를 넘어 정치를 ‘여성주의’로 재구조화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여성들의 투쟁력을 확인하는 ‘세계 여성의 날’

1920년, 러시아 혁명가인 콜론타이가 쓴 글에서는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 행사는 1911년에 열렸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여성의 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쏟아져 나와 바다를 이루었다. 작은 도시 곳곳에서 회의가 열렸고, 마을의 강당을 가득 채운 여성들은 노동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을 요구했다. 이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력을 확인시켜 준 첫 계기가 되었다”

  참세상 자료사진

그렇다.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력을 확인하는 날”이다. 돌봄 노동을 사회화 한다면서 이를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로 채우고 있는 세상에 맞서, 일과 가족을 양립시켜야 한다면서 여성에게 일과 가족을 모두 책임지는 슈퍼우먼이 될 것을 강요하는 세상에 맞서,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을 마치 국가를 망하게 할 범죄자 취급하는 세상에 맞서 여성들의 투쟁력을 확인하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08년,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축제’가 아니라 함께 싸우면 바꿀 수 있다는 용기를 확인하는 ‘세계 여성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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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삶 , 축제 , 여성의 날 , 100년 , 축제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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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부탁을 받게되어 카 퍼레이드 진행요원으로 참석하게 되었는데,
    기자분의 관점을 통해 새로운 고민거리를 가져가게 되네요.

  • 독자

    이 기사는 한마디면 족하다 "나는 축제가 싫어". 게다가 축제를 이미 다 봐버린 것처럼 얘기하면서 '놀고 있네'라고 말한다.

    또한 주류운동이 아닌 다른곳(?거기가 어딘지 얘기도 안하고 있다)에서의 투쟁이 마치 100년전 사회주의운동의 불꽃이 점화되었던 당시의 행사만큼 그 열기가 대단할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지금 시기에 축제가 섣부르다면, 차라리 속내를 털어놓고 비판을 해라. 잘 아는 것처럼 비아냥만 하지 말고. 또한 가열찬 투쟁을 원한다면 왜 지금은 100년전처럼 그렇게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지 않고, 피켓든 몇명만 사진 찍고 가는 시위가 되고 말았는지 한번이라도 고민을 해라. 사실 뒤에 숨어서 아는 것처럼 비아냥만 하지 말고

  • dd

    저도 오늘 여성의 날 행사 참여하려고 자료 찾던 도중에, 이 기사 보고 마음 한구석이 뜨끔해졌네요. 기자님의 문제의식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대중적인 주류 [축제]와 비정규직 여성들의 [집회]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 아쉽군요

    축제를 보시고나서 이런 글을 쓰셨으면 좋았을 텐데..
    시민들과 함께 어우러지고, 우리의 구호를 알리는 데에
    축제라는 형식을 빌리니 더 좋았습니다.
    '축제'가 꼭 '즐기고 노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령, 노는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여는 집회를 그런 노는 형식(?)으로 하면 어떻습니까?
    남미에서 데모를 할때는 정말 흥겹게 춤도 추고, 구호도 외치고
    한다던데요.? 우리는 꼭 경직되고 투쟁적인 것만 해야합니까?

    결정적으로 드리고 싶은 얘기는.
    평소 다른 집회행진 할때는 그것을 지켜보며 불쾌해하고, 유인물도 안받으려하고, 두려워하고 다가오지 않는 시민들이,
    이번 '축제' 형식에서는 발걸음 멈추고 서서 보고, 어떤 시민들은
    보는 것에 그치지않고 그 자리에서 퍼레이드 대열에 들어오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의식화되고 조직화 된 사람들만 모여서 경직된
    구호외치며 행진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분의 문제의식도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주최 측이 왜 그런 형식을 하기로 했는지 좀더 취재해보시고
    그것도 말씀해주셨으면 좋았겠네요.
    그리고 이 행사를 보시고 나서, 현장의 느낌을 토대로 기사를
    쓰셨으면 좋았겠네요.

  • aDS

    축제를 옆에서 직접 본 사람으로서 한 마디 합니다.
    "놀고 있네"
    피켓 들고 가서 경직되게 투쟁해서 얻어내는 것보다 한심한 축제로 얻어낼 수 있는게 극단적으로 적다고 생각합니다아

  • 소로로

    이곳저곳에서의 여성의날 행사를 참석했던 저로서는 기자분의 기사에 여러가지 측면에서 함께하고 싶습니다. 다른 행사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8일 토요일 '여성노동자대회'라는 이름으로 시청에서 열렸던 집회에서조차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의 여성노동자들이 무엇때문에 얼마나 어떻게 싸워왔는지는 단지 몇 마디로 압축되었을 뿐입니다.
    여성노동자들의 , 레즈비언을 비롯한 성적소수자들의 , 이주여성들의, 여성장애인과 노인들의 , 기타 소외받는 여성들의 인권과 그 비루한 삶에 대해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했어야 했습니다. 그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어설프게나마라도 그 대안에 대해 모색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민주노총 높으신 어른들과 민노당 여성후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주가 되고 앞서 있어야 하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날 집회에 참석했던 분들께 그리고 제 자신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함께 투쟁해야 할 여성들에 대해 알고 생각했는지.. 작년 광주시청에서 열렸던 여성의날 행사장 밖에서 전경들의 거대한 벽에 둘러싸여 자신들의 투쟁에 대해서는 이야기조차 하지못했던 광주시청청소아주머니들이 떠오릅니다. 그녀들이 앞에 있는 행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들을 만날 수 있는 행사가 말입니다.

  • 오독금지

    다시 한번씩 읽어보시죠. 이 기사는 축제하지마라는 글 아닙니다.
    발랄한 축제vs 경직된 집회 라는 이상한 구도는 이 기자가 제기하고 싶은 바가 아닌것같네요.

    '상생,인간,돌봄'이라는 기치에 무슨 내용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건 어떤 정치도 자리할 여지가 없는 기치입니다. 여타 여성운동과 무관한 봉사단체나 종교단체가 걸었다해도 믿었을만한 기치네요.
    우리의 여성운동이 주류화되며 제기할 바를 묻어놓고, 인기끌 수 있는 장사하려다 보니 '노는 것'처럼 된것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민노당 의원들 모셔놓고 '뽑아라'하는 기획도 정말 화났지만,
    저 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 락이

    민노당 의원 모아놓고 뽑아라 하는 게 여성축제만이었나싶소
    "너무나 중요한 집회"에서는 하지 않는가봅니다만 그건 절대 아닌 것이고,
    정치에 대한 내용은 개인마다 다르기에 각 개인의 정치가 다를 수 있는 것이고 그것들은 집단의 성격에 운동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요. 단 하나의 절대 기준이 과연 있을까 싶네요.
    ktx 투쟁에서 과연 그 수뇌부들이 어떤 방식으로 투쟁을 접으려고 ktx노동자들을 배제하고 협상을 해버렸는지는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지금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역시 외면하고 있는 모습은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사람, 돌봄, 상생이 대체 뭐가 마음에 안들길래?? 순서를 가나다순으로 바꾸었어야 했을까요?
    성폭력적이고 여성비하적이고 장애인 비하적이고 호모포비아 발언으로 가득 차 있는 "투쟁의 불이 지펴지는" 집회가 아닌 점은 아쉬웠으리라 생각해봅니다.
    투쟁

  • 남성의날

    이날만들어라 남녀차별주장하면서 말야
    그릭 내용은 매춘 산후우울증으로 살인/낙태 등으로 퍼포먼스해야하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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