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건 향상을 요구하고 스스로를 대표할 권리

[기획연재] 비정규직 사회헌장(18) 교섭, 이제는 우리가 한다

[편집자주]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이하 비없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무시되고, 기업의 이윤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에 문제제기하기 위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법적인 권리를 뛰어넘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는 길에 함께하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참세상과 함께 사회헌장의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하면서 그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17조. 비정규직도 스스로를 대표할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의 향상을 요구하고 우리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교섭하는 모든 권한은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에게 있다.”

비정규직은 사회적 약자가 아닙니다.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해서 스스로 일어서는 이들입니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비정규직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비정규직이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고 정규직 혹은 누군가가 비정규직을 대신하여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권리는 그 권리를 찾기 위해서 애쓰는 자의 것이며, 그렇게 투쟁하는 자들에 의해서만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리를 이야기하고 교섭하는 권한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에게 있어야 합니다.

진짜 사장인 원청회사는 하청노동자들에게 ‘너희와는 교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버팁니다.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판정이 나도 하청노동자와의 교섭자리에 제대로 나오지 않고 원청노조를 통해서 교섭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은행권에서는 산별교섭을 하면서 교섭위원 중 한 사람인 비정규직 교섭위원에게 사측교섭위원들이 나가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이가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또는 누구의 입을 빌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스스로가 조직되고 대표하고, 발언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경기도 임시강사들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전교조의 지지가 아닌 반대를 무릅쓰고 도교육청과 투쟁을 했고, 결국 우리의 사용자인 도교육청과 노조의 이름이 아닌, 우리 임시강사의 이름으로 교섭을 했고, 결국 계약서와 고용안정을 위한 지침을 받아냈다.

1991년도부터 임시강사라 불리우는 우리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비정규직 교사들이다. 2002년에 임시강사들 90% 이상이 고용불안을 느끼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거의 매해 여름·겨울 방학 때 도교육청 앞에서 전교조 깃발을 앞세워 고용보장과 처우개선을 위한 투쟁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5년, 후덥지근함을 밀어내는 서늘함이 찾아올 즈음, 그런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없게 만든 학교로 날아온 공문 한 장이 있었다. “임시강사에서 기간제 교사로 명칭 변경 후 2년 고용 보장, 명칭 변경에 동의하지 않으면 해임”이라는 공문이었다.

임시강사들은 그해 12월 중간을 넘긴 어느 날, 기간제로의 전환을 거부하고, 방학과 동시에 도교육청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아침·점심·저녁 시간을 가리지 않고, 도교육청, 교육감 공관, 교육부, 당사무실, 교육부 장관이 다니는 교회, 국회의원 사무실, 교육위원 사무실 등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곳을 찾아 우리는 치열하게 투쟁하고 또 투쟁했다. 전교조 지부장이 농성에 합류하고, 지역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20여 명의 삭발과 20명의 단식, 한겨울 매서운 한파 속에서 도교육청 정문 앞에서 여러 겹의 비닐을 두른 노숙투쟁 등 투쟁이 점점 더 치열함을 더해가던 중 갑자기 임시강사 투쟁의 끝을 알리는 마무리집회가 있었다.

천막을 치기 전부터 마무리 집회를 하기까지 도교육청과 몇 번에 걸친 교섭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를 들고 교섭장에 들어가는 것은 정규직인 전교조 경기지부장과 전임자들뿐이었다. 우리 임시강사는 우리의 문제를 논하는 그 교섭 자리에 한사람도, 단 한 번도 함께 하지 못했다. 점점 투쟁이 치열해져가는 중 지부장은 교섭장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우리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도교육청이 제시하는 안을 받아라. 임시강사들이 받지 않는다면 전교조 경기지부는 더 이상 임시강사의 투쟁에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임시강사들은 그 안을 받아들이면서 도교육청보다도 우리의 노조를 더 원망했었다.

우리는 교섭 자리에서 어떤 말들이 오고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투쟁이 치열해져가면서 투쟁 주체들의 참여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강고해졌다. 그리고 지역 동지들이 함께하는 공동대책위원회도 며칠 전에 구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최저요구를 쟁취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를 대표하는 지부장이 이 투쟁을 여기에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충분히 설득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갑자기 투쟁을 접고 현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투쟁은 승리한 투쟁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장의 임시강사들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예전에는 정규직과 동일하게 오전반을 담당해서 아이들을 가르쳐왔는데 이제는 그렇지 못하게 되었다. 유치원의 더 열악한 다른 비정규직 종일반 보조원의 일을 임시강사들이 맡아서 하게 되었다. 치열한 싸움 뒤에 우리는 더욱 열악해진 조건과 환경에서 육체적으로 피로했고 정신적으로는 교사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빼앗겼다. 우리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은 채 진행된 교섭의 결과에 대해 좌절한 나는 더 이상 노조를 신뢰하지 않는 조합원이 되었다.

[출처: 뉴스셀]

2009년 김상곤 교육감이 취임하면서 임시강사들은 고용보장을 위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교조는 임시강사들에게 자신들의 결정에 따르기를 요구했으나, 임시강사들은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투쟁을 시작한다. 노조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독자적인 임시강사의 이름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역의 여러 연대하는 이들과 함께 도교육청을 상대로 투쟁을 시작했다. 전교조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외면했던 투쟁이기도 했다. 2009년에서 2012년까지 길고 힘든 싸움이었다.

방학 때만 하던 길거리투쟁,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가정에서는 엄마로의 역할을 하면서, 도교육청 앞에서는 비정규직노동자로, 경기도 전역 곳곳에 몇 명씩 있는 임시강사들이 천막을 치고 뜯기고, 노숙하고, 천막치고, 유치장에 잡혀가며 그렇게 힘겨운 투쟁을 이어나갔다. 어려움에 부딪쳐 깨지고, 흩어지고, 다시 뭉치기를 여러 번, 죽고 싶을 만큼 외롭고 힘든 투쟁을 접고 싶을 때도 여러 번, 2012년 드디어 우리가 만든 지침과 계약서를 손에 받아 들었고, 4년간의 우리의 투쟁은 그렇게 끝이 났다.

2005년에 시작했던 투쟁을 되돌아보면 교육청을 상대로는 끝없이 집회하고, 교육감에게, 교육부장관에게, 정치인에게 우리 문제를 해결하라고 쫓아다닌 기억뿐이고, 우리의 조합 전교조에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애원하고 애걸했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하지만 2009년에 시작한 투쟁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고 한 것이었다. 정규직의 힘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가 투쟁할 수 있고, 투쟁할 힘이 있다면 그 철옹성 같던, 그리고 정규직이 아니면 절대로 상대하지 않을 것 같던 도교육청과도 교섭할 수 있음을 알았다. 투쟁과정과 합의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모여서 결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웠으며, 투쟁의 결과물이 얼마나 소중하고 소중한지 가슴깊이 새기며 살고 있다.

2006년, 투쟁을 마무리하려고 했던 정규직노조의 판단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정규직 임시강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문제가 새기면 노조에서 알아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해결해달라고 매달리지도 않는다.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직접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그 방법을 찾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좌절한 조합원이 아니라 당당하게 나의 목소리를 내며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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