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을 잃을 것

[기자의눈] 투자·서비스 분과 ‘태풍의 눈’.. 민중생존권 파탄 예고

7차 협상 이후 한미FTA는 ‘3월말 타결’에 이르는 탄탄대로에 들어서게 되었다. 양국 수석대표는 “협상장에 봄이 왔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타결에 대한 확신을 보였다. 이번 7차 협상에서 양국은 무역구제-자동차, 의약품 등 핵심 쟁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분과에서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남겨진 쟁점들은 고위급 협상의 ‘정치적 시나리오’에 따라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측 협상단의 ‘빅딜’ 전략은 ‘퍼주기 협상’을 은폐하기 위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7차 협상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무역구제 분과에서 우리 측의 핵심 요구사항인 ‘비합산 조처(여러 수출국별로 피해를 모두 합산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 업체만 제외시키라는 요구)’는 미국의 법 개정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포기 상태다. 섬유 분과에서 관세 조기 철폐, 원산지 규정 기준 완화 등 우리 측 요구 사항에 대해서도 별다른 성과가 없다.

반면 무역구제의 ‘공식적’ 빅딜 대상인 자동차, 의약품과 섬유의 빅딜 대상인 농산물에서 우리 측의 일방적인 양보가 이루어졌다. 자동차 배기량 기준 세제 개편, 자동차 환경 · 안전 관련 기술표준제도 수립 시 미국 업체 의견 반영, 약값 산정 시 미국 업체 의견 수렴 절차 마련, 신약 특허권 연장, 농산물 민감 품목 100여개로 축소 등 미국 측의 요구가 거의 그대로 관철되고 있는 실정이다.

‘퍼주기 협상’은 빅딜 분야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 7차 협상에서 대부분 합의가 끝난 것으로 알려진 투자 · 서비스 분과 역시 미국 측의 요구에 따라 여러 쟁점이 타결됐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공개하고 있지 않은 데다, 언론 보도 역시 빅딜에만 집중하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사항만 보더라도 민중의 삶에 파란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간접 수용' 의 괴물 앞에 예외란 없다

투자 · 서비스 분과 중 가장 문제시되는 내용이 투자자 국가 소송제다. 특히 ‘간접수용’ 조항의 경우 정부의 공공 정책이 미국 기업의 이익 활동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에 제소당할 수 있는 정책이다. 정부는 협상 초기 간접수용을 채택하기로 합의했다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일어나자 부랴부랴 예외 조항을 얻어내기 위한 노력을 펴고 있다.

7차 협상에서 정부는 “간접수용을 구성하지 않는 정당한 규제정책의 예시에 부동산정책, 일반적 조세조치 등을 포함하는 방안을 계속 협의 중”이라고 밝혔지만, 미국 측이 요구를 받아들일 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그러나 부동산정책과 일반 조세에서 예외를 인정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원희룡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지난 14일 투자자 국가 소송제 관련 토론회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과 일반 조세 정책이 현재 정부의 부동산 관련 공공정책을 모두 포괄하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내 보건 정책, 금융 정책도 제소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비아그라 등 제약 특허로 독점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 제약회사들이 국내 약값 적정화 방안 등 약가 정책에 대해 제소할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 또 미국 측은 단기 세이프가드(외환위기 시 국가에 의해 자금의 유출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제도)를 허용하는 대신 1년 뒤 제소 권한을 부여해달라며 한국 측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희룡 국회의원은 “정부 내에서도 법무부, 건교부의 경우 투자자 국가 소송제를 협상에서 제외시킬 것을 강력히 주장해왔다”며 “간접 수용 관련 분쟁은 국내 사법절차에서 해결하자는 우리 측 제안에 대해 미국이 거부하자, 정부는 3차 협상에서 부동산 계획, 조세, 반독점, 소비자 보호를 예외 조항에 넣어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 제안도 미국이 거부하자 4, 5차 협상에서 정부는 일보 후퇴해 토지 관리와 이용, 일반 조세, 반독점만을 요구했지만 역시 거부당했다. 그러자 6차 협상부터는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과 일반 조세 두 가지 항목으로 대폭 축소한 요구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원희룡 국회의원의 설명이다.

원희룡 국회의원은 “간접 수용에 대한 보상이 한미FTA에 의해 강제되는 결과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예외 조항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어떻게 법률적 해석으로 제소를 피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금융서비스, 전자상거래, 지적재산권...준비없는 개방

커틀러 수석대표가 “7차 협상 기간 중 가장 진전이 있었던 분야”라고 밝힌 전자상거래 분야는 사실상 이번 협상을 통해 타결됐다. 정부는 협상 결과에 대해 △영화나 음악 등 디지털 제품의 온라인 전송 시 무관세 합의 △CD, DVD 등 오프라인 디지털 제품의 공산품 분류(공산품 관세 적용) 두 가지 사항 외에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중 디지털 제품의 온라인 전송 시 무관세 교류 허용은 논란이 예상된다. 향후 전자상거래 시장이 어느 정도로 성장할 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래유보(개방했던 분야에 대해 필요에 따라 규제를 추가할 수 있는 것)조항을 걸어놓지 않은 무관세 합의는 위험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미국문화에 의한 획일화도 우려된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14일 기자회견에서 “전자상거래를 통해 영화와 음악의 한미간 무관세 교류를 허용하는 것은 국내 영화, 음악 산업의 사망 판정과 같다”고 주장했다.

금융서비스 분과에서 한국 측은 금융정보 처리의 국외 위탁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정보 처리의 국외 위탁이란 국내에 진출해 있는 미국 금융기관 지점이 가지고 있는 고객 정보를 미국 본사로 가져가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국회 한미FTA특별위원회 소속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금융노조와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 프라이버시정보, 기업의 기밀정보 유출 △금융불안 증대 △일자리 외국 이전 및 비정규직 양산 △금융 양극화 현상 및 금융 배제화 현상 심화 등을 금융정보 처리 국외 위탁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심상정 의원은 “금융정보 처리를 국외 위탁키로 허용함에 따라 한국 국민의 개인정보와 기업 비밀이 미국 자본의 손에 넘어갈 위험이 크다”며 “금융불안 가능성까지 높이게 될 금융정보처리 해외 위탁은 전면 철회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한미 양측은 쟁점 사항에 대해 대부분 합의한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지성 정보공유연대IPLeft 운영위원은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 외 모든 사안이 통과되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는 저작권 연장 방안 역시 현재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성 운영위원은 “저작권은 교육, 인터넷, 국가 연구개발 분야 등 알게 모르게 다수의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분야인데, 정부가 중요성에 대한 인식 없이 다른 협상에 대한 끼워넣기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협상 마지막까지 쟁점으로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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