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야 할 올바른 일이라면 언제 죽든 후회 없어”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17)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 하는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희망뚜벅이 3일차 이야기

몸은 치료 중단하고 나온 거니 나도 몰라요

1월 1일 오전 11시, 경상남도 밀양시 삼량진읍 삼랑진역 앞. ‘해고자 복직, 고용안정 없는 매각반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김진숙 희망 뚜벅이’ 3일 차 일정이 시작된다.

“출발하겠습니다!”

밀양강과 낙동강, 바닷물이 부딪혀 일렁인다는 115년의 역사를 간직한 삼랑진역. 그 이름답게 전국에서 50여 명이 모여 ‘김진숙 복직’ 등이 써 있는 몸자보를 하고 깃발을 들고 걷기 시작한다. 한파 예보가 있었지만, 바람이 없고 따스한 햇볕이 비치니 이른 봄날 같다.

  희망뚜벅이 3일차 일정에 함께 하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참가자들 [출처: 연정]

“작년에도 걸었던 길인데 첫날은 걸음을 못 걸을 정도로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다들 고생했지. 계속 맞바람을 안고 가는데... 어제도 조금 추웠는데, 오늘은 한결 낫네.” (김진숙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맨 앞에서 성큼성큼 걷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걸음에서 당당함과 굳은 결기가 느껴진다. 김 지도위원은 걷는 내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라는 문구를 직접 쓴 부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김 지도위원에게 하필이면 이야기하지 말자 다짐했던 “몸은 어떠세요?”라는 말이 나온다.

“몸이요? 몸 얘긴 하지 마. (웃음) 몸은 뭐 그냥 치료 중단하고 나온 거니까 나도 몰라요. 어떤 상태인지.”

김진숙 지도위원이 불편한 내색 없이 내가 무안하지 않게 답변을 한다. 휴대폰 단말기로 엉성하게 사진을 자꾸 찍는 게 성가실 수도 있을 텐데, “연정 동지 고생 많다!”며 부채를 들어 올려 주거나 손가락 V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밀어~ 밀어~”

김 지도위원은 중간중간 행진에 참여한 이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흔쾌히 응하며 장난기 어린 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과 글로 그이를 기억하지만, 정작 김진숙이라는 이름을 가슴 속에 품게 하는 건 그이가 가진 낮은 곳 약한 것에 대한 존중과 겸손이다. 조직에서 흔히 말하는 ‘급’이 있거나 적극적인 ‘팬’들이 다가올 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시 뒤 저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동지, 잘 지냈어요?” “○○동지, 와줘서 고마워요!”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마음이다.

  3일차 도보행진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 [출처: 연정]

이 걸음으로 복직이 될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정년이 되는 전날까지 복직 소식을 기다렸으나 결국 김진숙 지도위원은 길 위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또 많은 동지가 새해 첫날 그 길 위에 함께 섰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도보 행진을 시작한 날, 한진중공업 사측은 갑자기 다급해졌는지 금속노조가 신규채용과 임직원 모금을 통한 위로금 제안을 거부했다는 보도자료를 회사 출입 언론사들에 보냈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과 울산 대우버스(자일대우상용차) 해고노동자들, 쌍용자동차·부산 철도 노동자들, 성주 사드배치반대대책위, 대구에서 온 시민과 활동가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금속노조 임원 등이 함께한다. 중간에 계속 합류하는 참가자들이 있어 걸을수록 희망뚜벅이는 점점 늘어난다.

“김진숙 동지가 걷는다고 하셔서 연대하려고 참석했습니다. 아프신데, 저리 걷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네요. 저희는 거의 전체가 대량해고가 되다 보니 많은 노동자가 함께 하고 있는데, 김 동지는 혼자서 그렇게 투쟁해온 게 참 대단합니다.”

지난해 10월 4일 356명 정리해고로 공장 재가동과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울산 대우버스(자일대우상용차)의 한 노동자는 김 지도위원이 울산 대우버스 공장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다며, 건강 꼭 챙기면서 투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12월 4일 울산지방 노동위원회에서 대우버스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했지만, 사측은 아직도 정리해고 철회를 하지 않고 있다.

  3일차 도보행진 일정에 참여하고 있는 전국에서 모인 참가자들 [출처: 연정]

“항상 똑같아요. 해고자 없는 세상을 위해 걷는 거죠. 정년이 되기 전에 복직을 해야 했는데, 안 돼서 마음 아파요. 몸도 안 좋은데 걷는다니까 마음이... 할 수 있는 게 이런 거밖에 없어 참 답답해요. 그래도 지난번에 걸어서 박문진 동지 문제가 해결됐잖아요. 이 걸음으로 김진숙 동지 문제가 마무리되고, 밝은 모습으로 한진중공업 가서 동지들 만나고, 아픈 몸 치료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쌍용자동차 창원공장에서 근무하는 윤충렬 씨가 울먹이며 이야기한다. 11년간의 힘겨운 투쟁으로 마지막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한 지 6개월 만인 지난해 말, 쌍용자동차는 다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을 했다. 윤충렬 씨는 한진중공업과 대우버스, 쌍용자동차 모두 특혜받고 들어와 땅을 비싸게 팔아 이윤 챙기고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며 나라 전체가 투기화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아사히글라스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해고돼 올해로 8년째 투쟁하고 있는 남기웅 씨는 공장 앞에 있는 천막 농성장에서 농성을 하고 바로 밀양에 왔다고 했다. 피곤하지 않냐고 묻자 농성장이 추워서 잠을 잘 못 자기는 했는데, 아직 젊어서인지 괜찮다고 한다.

“철농하고 3일을 쉴 기회이긴 한데요. 별 약속 없이 그냥 쉬는 것보다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좋지 않나 싶어서 여 왔는데 아는 동지들을 만나니 반갑고 기분도 좋습니다. 해고되고 35년 투쟁하셨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투쟁하고 계신 것 자체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어요.”

이날 도보 행진에는 지난 연말 문철상 지부장(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과 함께 김 지도위원 복직을 요구하며 27일간의 단식농성을 했던 심진호 씨(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가 보식 기간임에도 함께 했다. 체중이 12kg 감량됐다는 심진호 씨는 아직 밥을 먹지 못해 힘이 없을 텐데도 걷고 있다. 청와대 앞 희망버스 기획단 활동가 등 7명의 단식농성은 어느덧 11일째를 맞이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함께 사진 촬영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과 박문진 지도위원 [출처: 연정]

걷다가 죽을 수도 있는데 김 지도는 가장 약한 투쟁이라고

“그냥 답답해서 나왔어요. 병원에 있는 것도 답답하고. 더군다나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고, 세월호 유가족들도 농성하시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유가족들이 단식한다는 게 참 말도 안 되는 얘기잖아요. 문제들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심각해지고 누적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래서 제가 좀 걸을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특히, 한진중공업이 지금 또 매각 앞두고 다시 고용 위기가 닥치지 않겠는가 하는 위기감들도 있고.”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매각과 관련해 고용 문제를 알리는 것도 이번 도보 행진의 주요한 목적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한진중공업 매각 우선협상자로 동부건설과 한국토지신탁 등으로 구성된 동부건설컨소시엄이 확정됐다. 한진중공업지회와 부산지역 노동·시민단체는 동부건설컨소시엄을 부지 매각을 목적으로 하는 투기자본으로 규정하고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도보 행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지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긴장감 어린 눈빛으로 암 재수술 치료를 중단하고 나온 김 지도위원의 상태를 매 순간 주시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에서 42년간 근무하고 2년 전에 정년퇴직한 차해도 씨(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전 지회장)도 그중 한 명이다.

“저희는 말리고 싶었죠. 걸어가다가 죽을 수도 있는데... 간부들 와가지고 울고불고하고... 그런데 김 지도는 이게 가장 약한 투쟁이라고 보는 거죠. 이걸 못하게 하면 더 심한 투쟁을 본인 혼자서 결정할 수도 있다. 2003년도 (김주익 열사) 같은 선택을 하시면 안 되니까 노조 사람들이 고민했어요.”

고민 끝에 그래도 도보 행진은 여러 사람이 함께 할 수 있고 중간에 이상이 있으면 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보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했다.

차해도 씨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에는 개인적인 이유보다 사회적인 이유가 더 많을 거라며 김 지도위원이 개인적으로 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언제 죽든지 후회 없다. 정말 이게 올바른 일이고 해야 할 일이라면 죽음 정도는 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비참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 당당하게 살고 싶다. 오래오래 투병하다가 죽느니 차라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서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고... 이렇게 이야기하실 때 저도 울컥하더라고요. 그것도 맞겠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과 관련해 정부와 경총·전경련은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해고 기간의 임금을 국민 모금을 통한 위로금 방식의 선례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했다. 차해도 씨는 회사와 정부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이러한 선례를 절대로 만들게 해서도, 받아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차해도 씨는 청와대에 도착할 때까지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할 예정이다. 현재는 김 지도위원이 부산에서 오가는 차량 운전을 하며 함께 걷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대구 이후부터는 해당 지역에서 숙박하게 되는데, 목적지인 청와대에 도착할 때까지 김 지도위원의 건강을 관리하는 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삼랑진역에서 밀양역을 향해 걷고 있는 희망뚜벅이들 [출처: 연정]

암환자가 투쟁에 나서야 하는 무자비한 세상

박문진: 깃발, 깃발 어딨어? 깃발 들고 사진 찍어야지~

김진숙: 아 좀 들고 다녀~ 사람이 진정성이 없어~

박문진: 산티아고는 다 이렇게 걷는 거거든.

김진숙: 산티아고 갔다 온 것처럼 얘기하네요~

박문진: (웃음)

김진숙: 이래서 싸우는 거예요. 맨 날. 난 잘못된 걸 정정해주고 오류를 바로잡고. 30년째 이러고 있지.

필자: 박 지도위원님이 싸운 걸 깜빡하신다면서요?

박문진: 제가 성격이 되게 좋아요~

필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함께 걷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박문진 지도위원 [출처: 연정]

나란히 걷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박문진 지도위원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웃느라 정신이 없다. 두 사람은 이틀 전에도 전화 통화 하다가 싸웠다고 했다.

“왜 싸우셨어요?”

“(청와대에서) 절 안 하고 여기 온다고 하는 거야. 야, 거기서 절 하라고. 지금 절 하는 게 중요하냐고. 절 하는 게 중요하지 걷는 게 중요하냐고. 그래서 싸웠어요.” (김진숙 지도위원)

예전에 인도로 첫 해외여행을 함께 떠나던 날 박문진 지도위원이 늦어 ‘여행가는 자세가 안 되어 있다고 열나게 싸웠다’는 김 지도위원에게 들은 일화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박 지도위원이 싸운 과거를 금방 잊어버린다는 이야기도. 이날 박문진 지도위원이 행진에 늦었는데, 김 지도위원에게 또 한 소리 들었으려나. 박문진 지도위원이 만화영화 <톰과 제리>의 톰 같다는 생각이 들자 살짝 웃음이 나오려 한다. 언젠가 반전의 날을 기대해볼 수 있을지. 영남대의료원 고공농성장에서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울다가 “버선발로 뛰어나오지 않고 앉아있었다”는 김 지도위원의 말에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어버렸던 두 사람. 그들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힘이 되고 희망의 길을 내는 따뜻한 오후다.

길 위에서 만나 위로받는 마음들

“작년에 제 고공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암 투병 중에 이렇게 힘들게 걸었겠구나 싶어 마음이 많이 짠해요. 지금 몸 상태가 작년보다 더 안 좋은데, 그런 몸으로 청와대까지 간다하니 마음이 그렇죠. 이건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암환자까지 투쟁에 나서야 하는 무자비한 세상에 분노도 하게 되고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움직이지 않고 투쟁을 조직하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에도 죽비가 돼서 잘했으면 좋겠어요.” (박문진 지도위원)

김진숙 지도위원은 2019년 박문진 지도위원을 만나러 가는 이 길을 걸으면서 2011년 85호 크레인 고공농성을 하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평택에서 부산까지 걸어왔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1년 뒤 박문진 지도위원은 그 길을 걸으며 자신을 만나기 위해 걸어오던 김 지도위원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길을 그때도 지금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포함한 투쟁하는 이들이 묵묵히 걷고 있다. 그렇게 길 위에서 서로의 아픈 시간과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받는다.

  3일차 도보행진 일정을 마치며 밀양역 앞에서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출처: 연정]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5시간을 예상했던 도보 행진이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한 시간 일찍 밀양역에 도착했다. 밀양역에 도착하자 참가자들이 뛰어간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박문진 지도위원도 뛴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다. 삼랑진역에서 걸어오는 4시간 동안 공중화장실이 한 개도 없었다. 날씨도, 화장실도, 김 지도위원의 체력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최소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일정인데, 매주 월요일은 쉰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후 김진숙 지도위원과 희망뚜벅이들이 가는 일정 내내 따뜻한 햇볕과 가는 걸음마다 많은 화장실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박문진 지도위원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발 치수를 확인한다. 2019년 이 길을 걸었던 김 지도위원에게, 혹시 박 지도위원에게 할 말이 있느냐 물으니 운동화나 한 켤레 사달라고 할 거라고 했었다.

화장실 간 사람, 담배 피우러 간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밀양역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며 3일차 희망뚜벅이 일정을 마무리한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빨리 오이소~”

“자 찍습니다. 하나둘 셋 하면 투쟁할게요. 하나둘 셋.”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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