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내리는 비만큼 무거워진 마음을 조금 비워 보려고 절에 갔다.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곳, 절이 절이 아니다. 절은 온갖 욕망들이 모여 들끓었다. 그걸 노리고 복을 파는 호객 행위로 절이 시끌시끌하다.
절 집 안 한 편엔 커다란 독재자의 영정이 걸려 있고, 그 맞은편엔 왕 회장의 영정도 그 만한 크기로 걸려 있다. 사람들은 무얼 빌면서 그 사진들 앞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걸까?
일엽초가 자라던 축대는 헐리고 대신 그 자리엔 십이 지신을 새겨 넣은 돌로 꾸며져 복을 바라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중대가리풀이 자라던 절 가장자리도 파헤쳐져서 동전을 던져 넣는 연못 따위로 바뀌어 버렸다. 한 치 틈도 없이 여러 가지 맞춤형 '복' 상품들이 빼곡히 들어찬 절은 백화점과 다를 바 없었다. 마음이 더 무거워져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길가에 중대가리풀이 소복소복 자라고 있다. 중대가리풀은 길가에서 자라나 사람들 발에 밟히며 살아왔다. 전엔 중대가리풀이 절 둘레에도 많이 자랐다. 들이나 길가에 자라던 것들이 사람 발길에 묻어서 절 마당에 들어가 자라났던 것일 게다. 이제 깨끗하게 정리된 절 둘레엔 중대가리풀이 자랄 여유가 없다.
중대가리풀 잎 겨드랑에 스님 머리 같은 꽃이 한 개 두 개 피어나고 있다. 그걸 보니 이제 확실히 여름인가 보다. 중대가리풀 꽃은 말이 좋아서 꽃이지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볼 수조차 없다. 지름이 3∼4㎜쯤 되니까 정말 코딱지 뭉쳐 논 크기다. 그런데 이것도 여러 개 꽃이 뭉쳐서 이루어진 꽃송이다.
중대가리풀은 국화과에 속하는 꽃이다. 국화과 식물은 작은 꽃들이 뭉쳐서 한 송이 꽃처럼 핀다(두상꽃차례). 대개 가운데 피는 꽃에는 꽃잎이 없고 둘레에 피는 꽃에 혓바닥 같은 꽃잎을 한 장씩 달고 있다. 하지만 중대가리풀은 둘레에 피는 꽃에도 꽃잎이 없다. 중대가리풀 하나하나 낱낱 꽃은 거의 먼지만한 것이다.
어떤 이가 하는 이야기다. 절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서 중대가리풀을 보고 있는데 스님이 다가와 그게 무슨 풀이냐고 물어서 대답을 못하고 당황했었단다. 중대가리풀은 '너 중대가리 풀이지?' 하고 놀려도 '나를 알아줘서 고마워!' 하며 소박하게 웃을 거 같은 꽃이다.
중대가리풀은 가난한 풀이다. 그렇지만 궁색하지 않다. 한여름 더위에 커다란 가로수 잎사귀가 축축 늘어져 있지만 그 아래 중대가리풀 싱싱한 잎사귀는 당당하기만 하다. 세상엔 하찮은 것이란 없다. 단지 서로 다를 뿐이다.
절에서 중대가리풀 찾기가 어려운 만큼 절에서 중 찾기가 어렵다. 되레 길에서 만나는 노숙자가 중 모습이다. 중대가리풀을 보고 있자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