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건 선진화.. 한미FTA 협상 결과 낙제"

[한미FTA 정리](2) - 이해영 범국본 정책기획단장

한미FTA 협상 타결 소식 이후, 협상을 놓고 평가가 분분하다. 48시간 연장에, 극적 타결 드라마를 연출했던 협상에 모든 언론이 들떠 올라 연신 ‘장밋빛 미래’가 도래했음을 설파했다.

사그러 드는 환상을 비집고 다양한 논란이 안팎으로 제기되고 있다. 쇠고기 수입, 개성 뿐만 아니라 LMO(유전자조작생물체)의 거래 문서까지 폭로됐다. 과연 한미FTA 협상을 둘러싼 진실은 뭘까?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는 한미FTA 협상 결과에 A+를 주고, 김종훈 수석대표는 ‘수’를 받고 싶다고 했다. 이해영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단장에게 물었다.

“만약 한미FTA 협상 결과를 점수를 매긴다면?”

“당연히 낙제죠. 이렇게 처참한 성적표가 있을까요”


이하는 인터뷰 내용의 전문이다.

한미FTA 협상 타결 됐다. 결과에 대해 총평 한다면

정부가 지난해 8월 제출한 쟁점자료에 이어, 최근 80여 페이지가 넘는 협정 결과문을 발표했다. 재밌는 것은 일반적으로 협상단이 밀리고, 미 측의 요구를 수용한 부분들은 ‘선진화’라고 표현돼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전 자료와 비교해 보면, 쟁점도 조금 늘어났고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장하고 반대해온 논거들도 일정 부분은 반영됐고, 역이용한 것들도 눈에 띈다. 그렇지만 협상 결과는 말로 주고 되고 받은, 전형적으로 현찰주고 어음 받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명백히 손해 본 협상인데, 오히려 지금 대중적 이미지는 협상 타결 과정에, ‘내용’ 보다는 드라마적인 흥미를 끌었다. 그 때 형성되고 각인된 이미지들에 의해서 대중들의 의식이나 판단이 점령되어 있는 것 같다. 이것을 다시 이성의 언어로 설득해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신화화 된 부분들의 진실을 알리고, 사실을 통해서. 국민들의 반대에 대한 동의를, 저항의 의지들을 재집결시킬 긴급한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

좀더 구체적인 협상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사실상 협상이니 만큼 내주면 안 되는데 내준 것도 있고, 예상치 못한 건데 얻어온 것도 있을 것 같다

[%=사진3%]물품 취급 수수료 같은 경우는 우리가 받아온 내용이다. 우리가 수출 상품을 미국에 내보낼 때 미국 항만이나 공항에서 지급 수수료를 받는데 그것을 미국이 내 준 거다. 물론 물품 취급 수수료는 미국이 FTA 체결 할 때마다 주는 것이다. 심지어 물품 취급 수수료와 항만 유지 수수료 둘 다 제거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미국 협상단이 하나만 들어준 셈이다. 그것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떼 준 것은 아니고, 그 대가로 과연 무엇을 내줬는지 확인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정부는 한미FTA 협상 성과로 이 수수료를 꼽고 있는데, 수수료 떼려고 FTA를 했는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또 우리가 관철시킨 것이 있다. 협정문 한글본을 정본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뤘고, 정부 조달에서 정부 예산으로 조달하는 학교급식은 예외로 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근데 이 학교급식의 경우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휴먼피딩프로그램(human feeding programmes)을 그대로 받은 것이니 미국이 내 주는 건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도 정부는 큰 성과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설사 관세 2.5%가 철폐된다 해도 3년 지나면 어차피 미국 현지 생산 비율이 상당해 진다. 어차피 현지에서 생산된 부품을 가지고 만드는 미국차라는 얘기다. GM대우는 이미 미국회사이고, 미 협상단은 그 계산에 준거해서 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보다 한국 자동차 내수 시장의 구조 개편을 강제할 수 있는 비관세 장벽 철폐 패키지가 중요하다. 결국 미국이 2.5% 자동차 관세와 우리 쪽 비관세 장벽하고 바꿨다고 보면 된다. 아직 내용이 공개 안됐지만, 여기에는 자동차 번호판 크기부터 엔진 교체 시에 드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 자동차 할부 금융, 차와 관련된 우리의 기존 제도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예측 된다. 일단 그것은 협정문을 봐야 최종 확인할 수 있다.

IMF를 겪은 전례를 볼 때 금융세이프가드는 우리에겐 필수이다. 미국이 전례 없이 이를 허용했다고 하지만, 역시 문제는 그 조건에 있다. 만에 하나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 가운데 미국의 사전동의나 미국 유입자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식자금이 제외되고, 이를 투자자-정부제소권(ISD)의 대상으로 했다면 사실상 이 조항은 무의미 하기 때문이다.

‘개성’ 대표적인 빛 좋은 개살구

한미FTA 협상의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빛 좋은 개살구가 바로 '개성'이다. 중요한 점은 ‘개성’이라는 표현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전세계약서에 집 주소와 번지수가 없다. 과연 이게 유효할까? 두 번째는 역외가공지대 설정(OPZ)을 위한 요건으로 명시된 것들이 거의 실행 불가능한 요건들이다. 예를 들어 비핵화의 개념을 보면,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다른데 여기에 어떠한 명시적 기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성공단은 양국 협상대표가 한 말부터 다르고 한쪽은 했다고 하고 한쪽은 아니라고 하고. 이런 식으로 간다면 그나마 북미간 조성된 긴장완화 흐름이나 남북 관계 새로운 흐름들이 스스로 오히려 새로운 남북 관계의 짐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면 개성공단 특례인정의 문제는, FTA에서 빠져야 된다.

무역구제를 ‘전략적 과제’로 설정했던 것은 정부였다. 그러나 실효성도 없는 ‘무역구제위원회’ 하나 달랑 남고 전멸했다. 철강 업계가 요구한 ‘다자간 세이프가드’ 적용 배제에는 심지어 ‘재량적’ 배제라는 이상한 조건도 달려있다.

투자부문은 최악이다. 처음 우리가 반대하던 투자자-정부제소권(ISD) 자체와 위헌적인 간접수용은 인정됐다. 부동산 가격, 조세를 예외로 했다고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간접수용에 관한 것이다. 그 자체로 ISD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다. 사실상 미국계가 대부분인 국내 투기자본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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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막판까지 각계에서 ‘결렬’을 선언 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양한 실천이 계속됐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행 유보로 확정 돼 버린 ‘스크린쿼터’의 경우는 전형적으로 뒤통수 맞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스크린쿼터는 WTO GATT에 나와 있는 것처럼 자국 영화의 의무 상영 비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스크린쿼터는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로, 기본적으로 현재의 변화된 디지털 환경에서, 예를 들어 위성에서 쏜 영화 같은, 변화된 디지털 환경에서 문화의, 자국 영화의 보호막으로 그 자체로 한계에 봉착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기능하고, 매우 유력한 하나의 방어막이었는데, 각종 해괴망측한 논리를 다 동원해서 스크린쿼터 때문에 한국 경제가 망할 것처럼 얘기했다.

장르를 초월해 상업영화가 예술영화를 압도했고, 그래서 스크린쿼터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제도가 필요한 시점에 스크린쿼터를 반토막 내버렸다. 경제논리로 볼 때 산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현재도 3편 중 1편이 손익 분기점을 넘고 있다. 한국영화를 경제논리로만 보면,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로만 보면, 한국 영화의 3분의 2가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것이다. 엄청난 이야기이다.

그나마 스크린쿼터가 있어서 이 정도 수준인데, 그것마저 없으면 한국영화는 앞으로 훨씬 더 실현실적 구조조정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된 것 뿐만 아니라, 한미FTA 협상에서 현행유보, 즉 문제가 발생해도 73일에서 앞으로 단 하루도 못 늘린다. 계속 줄일 수밖에 없다.

투자가 줄고, 투자가 줄어들면 제작 편수가 줄어들고, 제작편수가 줄어들면 거기에 고용되어 있는 영화 노동자들의 처우가 나빠질 것이고 악순환은 이미 시작됐다. 그리고 미국은 스크린쿼터의 완전철폐가 목표이니 어떤 형태로든 압박은 계속될 것이다.

시청각 미디어 분야는 어떠한가. 사실상 한미FTA 협상 타결 이후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장밋빛 청사진을 강조했다. 사실상 그들도 당사자 아닌가

예를 들어 ‘중앙일보'를 보자. CNN 우리말 더빙을 허용해 달라했던 타임워너와 중앙일보는 합작회사이다. 중앙의 경우 70여개의 계열사를 지닌 그 자체로 재벌집단이다. 그런데 딱 하나가 없다. 공중파. 그래서 재벌 논리에 따라서 한미FTA도 그들의 이해와 요구에 맞다. 계속 추구해 가는 그림인 셈이다.

방송이 가지는 문화적 조건에서 보면 방송이 가진 위력에 비춰볼 때 방송쿼터도 축소가 되고, 방송광고공사도 직접 타격을 받고, PP사업자, 채널 사업자들의 직접투자는 제한되지만, 간접투자는 이번에 풀린 것이기 때문에 방송환경이 초국적 자본에게 공략하기 용이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고 본다.

특히 미국이 서비스 시장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재래시장 유통시장이 아니라, 방송, 영화, 통신, 전문직 서비스, 금융의 측면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예를 들어 초국적 자본이 우리나라 초중동 교육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갖기 보다는 서비스 중에서도 알짜배기, 블루칩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가 사실상 압권이었다. 반대 진영이 논리가 없다는 공격이나, 서비스 영역은 개방을 덜 했다며 오히려 협상단의 방어적 자세를 핀잔 주기도 했다

그런 담론은 노무현 대통령뿐만 아니라, 최근에 주류 경제학계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 주권론 내지 소비자 후생경제론의 한 맥이다. 이런 논리가 해괴망측한 형태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데, 그 근거는 FTA를 통해서 소비자가 이득을 보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생산자는 소비자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농민은 소비자이다. 학계의 학자들이 분석이나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만든 모델을 기계적으로 현실에 적용 해선 안된다. 현실에 존재하는 경제 시스템을 결국은 유통과 순환인데, 그것을 한 부분만 떼서 소비자에게 이득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쇠고기 가격은 떨어지고 쌀도 우리나라 쌀농사를 접으면 미국에서 5분의 1 가격으로 먹으면 된다. 그 대신 농업을 법률로 금지시키고 소사육도 불법으로 만들면 된다. 왜, 가격이 모든 것을 지배하니까. 그런데 다른 모든 문제에서 그게 그렇게 간단한가. 예를 들어 의약품이나 지재권을 대폭 미국 기준에 맞춘다, 아메리칸 스텐다드에 맞춘 것인데 그건 소비자에게 불리하다. 문화소비자나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을 늘리는 것이 지식 소비자에게 무슨 혜택이 있는가, 아무 혜택이 없다.

독일 법률시장의 경우 개방했더니 로펌 10개 중에 8개가 초국적 영미계 로펌으로 넘어갔다. 단계적으로 조심조심 개방한 일본도 20개 중 8개가 넘어갔다. 그렇다고 일본과 독일이 값싸고 질 좋은 영미계 법률 서비스를 향유 했느냐, 그렇지 않다. 영미권은 법률 서비스 대가로 지불할 때 시간단위로 개산한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대륙법 계통은 소송단가, 소송가액으로 변호사비를 지불한다. 결국은 소송비용만 늘린 결과를 낳았다.

더군다나 정부에서 항상 얘기하는 게 ‘경쟁력’이다. 경제적인 경쟁력이 절반도 안 되는 조건에서 개방을 하면 경쟁력이 배가 된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근거인가. 정부는 입만 열면 이마트가 월마트와 싸워서 이마트가 이겼다고 하는데, 이마트가 동네 상점인가. 동네 어디에서 볼 수 있는 마트가 갑자기 커서 월마트와 싸워서 이겼는가, 그렇지 않다. 이마트는 재벌 자본이다. 최소한의 자본력과 기술력 없이 개방하면 그 결과는, 뻔하다. 이마트가 들어가면 동네 반경 몇 키로의 상권은 초토화 되지 않는가.

예를 들어 현대차는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미국 법인이다. 우연찮게 그 고향이 한국인 것일 뿐이다. 현대 기아차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한국의 소비자들이 이른바 관세 80%라는 터무니없는 관세를 물어가면서 방어를 해준 국민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행태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수출차와 내수차가 다르고, 이런 반소비자적인 행동이 어디 있는가.

정부는 FTA 해야 한다고 하면서 계속 소비자 주권을 얘기하는데, 결국은 소비자 주권론이 부메랑이 돼서 그 쪽으로 다시 갈 것이다. 지나치게 특정 품목과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무역 통상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인데, 그런 조건에서 소비자 주권을 좀 더 밀어붙여 보라.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내수는 죽는다. 결코 누구에게도 유리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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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체결 이후 피해가 많을 부분으로 농업 얘기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피해의 순위를 매기라면, 농업-의약품-지재권-서비스 이런 순서 아닐까. 그것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 한미FTA는 전형적인 미국이 원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고리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FTA를 강요했다는 것은 아니다. 집회 슬로건에 자꾸 그런 게 나오는데, 그게 아닌건 분명하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자본의 국가에 대한 공격이다. 국가의 규제 권한을 시장이 박탈하겠다는 것이고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새롭게 재편하려고 하는 자본의 축적 전략으로 봐야 한다. 그렇게 보면 새롭게 조성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 조건 교역 조건을 자본에 유리하게 재편하는 과정이고, 초국적 자본의 이해는 한편으로 일치한다. 삼성, 현대, SK, 다 세계 굴지의 초국적 자본이다. 구조조정과 탈규제라는 신자유주의의 핵심 요구에 대해서는 이해를 같이 한다.

우리 경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 중의 하나가 내수와 수출의 분리이다. 옛날 같으면 수출이 늘면, 반사적으로 피드백 구조에서 거기에 상응해서 생산이 늘고, 생산이 늘면 고용도 늘고, 고용이 늘면 소득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있었다. 내수와 수출이 분리 이탈 되면서 이 연관 고리, 산업연관이 약화되고 부분 부분 파괴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신성장동력 성장잠재력 약화 이런 걸 얘기하는데, 신자유주의가 바로 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특히 FTA가 자리를 잡게 된다면 내수와 수출의 분리가 더욱 심각해 질 것이고, 한국 경제가 미국 경제에 더욱더 깊숙이 편입 시키는 것이다. 깊숙이 통합되면 될수록 국내 내수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이미 그러고 있다. 지금 내수와 수출의 비율이 3대 7인데, 앞으로 이런 경향은 더 심화될 것이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오히려 성장의 저해 요인으로 질적 변화를 이룰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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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에서 투자자-정부제소권(ISD)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높다. 정부는 환경, 안전,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 등 공공복지를 위한 정부정책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음을 명시 했다며 성과 있게 평가 했는데

IMF 직후에 영화인들하고, 그 때는 한미투자협정(BIT)를 놓고 쭉 이 문제를 고민해 왔다. 개인적으로 ISD 문제가 사회공론화된 것은 기쁘지만 결국은 미국 요구대로 결론이 난 것이라 착잡하다. ISD는 쉽게 말하면 일종의 국제법에 있어서 신자유주의 반혁명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것이 시장권력이 기존의 국가권력 내지 행정권력을 압도하게 되고 그리고 시장의 요구에 걸맞게 국가의 기능을 재편하라는 요구이다. 대표적 상징이 ISD이다.

비대해진 초국적 자본이 투자자라고 하는 가면을 쓰고 전 지구상을 곳곳을 다니면서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고 자신들의 기대이익이 침해받을 때 해당국 정부를 상대로 법률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발상이다.

기본적으로 미국 입장에서 투자 챕터는 의회의 공식 문서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에서 손댈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부동산과 일반 조세를 예외 조항에 추가해 달라고 했는데, 그것은 USTR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그러다보니 괴상한 모양으로 정리 된 셈이다.

협정문에 나와 있는 공공의료 부문과 환경, 안전 이런 부분의 간접수용 조항이 문제가 많아서 미국 민주당 쪽에서 문제제기를 해서 이미 확보된, 들어가 있는 부분이다. 예외조항에서도 부동산 보다 조세가 더 중요하다.

현행 국제법에서 자연인이, 어떤 개인이 상대국, 다른 나라의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경우, 바로 인권 문제가 있다. 유엔 헌장에 나와 있는. 그래서 정신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그것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의해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에 승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ISD 같은 경우는 단지 그대가 돈이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돈이 인류 보편의 가치가 돼버린 것이다. 화폐가. 그리고 그 경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개 과정과 정확하게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협상 내용을 살펴 봤을 때, 협상 초기부터 ‘피해가 불가피 하다’는 농업의 경우는 굉장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척 했지만, 사실상 버리는 카드로 협상이 진행 된 게 아닌가 싶다.

정부는 어차피 그런 입장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농업은 이미 괄호 밖이었다. 어차피 농업은 안 될 테고, 구조조정이 당연하다는 식의 논리인데, 그런 논리가 전 사회적으로 확산 유포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착목해야 한다. 정부가 이를 부추기고 조중동이 주도하는 이런 분위기에서의 우리 사회에 퍼져 나가는 反농 정서가 매우 위험하다. 농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이지메, 특히 기득권 블록에서 일치단결해서 농업과 농민을 몰아붙이는 이게 도대체 누구에게 좋은 것이냐는 점이다.

그래서 일단 이런 것에 대해 시민 사회가 나서서 논리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분명히 잘못된 것이니까. 극단적으로 그것이 FTA에서 표현되고, 대통령이 농촌 지도자들 앉혀 놓고 염치없다고 하는 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얘기하는 소비자 후생론의 실질적인 근거는 농산품이다. 물론 FTA되면 값싸고 미국산 쇠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고 미국산 쌀도 5분의 1 가격으로 먹을 수 있고, 온갖 미국산 과일들, 땅콩, 버터, 기저귀 값도 싸진다. 소비자한테 이익일 수 있다. 그래서 일자리 날아가고 고용의 질이 악화되고 만성적인 구조조정 위협에 시달려야 되고. 쉽게 말하면 조금 싸게 먹는 대신 그 정도 고통의 평균 양은 감내하라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사는 것은 네가 못 나서 그런 거니까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았느냐, 탈락자는 이렇다. 이런 것들이 정치적으로는 뭐랄까 사회의 우익적 동원이랄까. 새로운 동원 기반이 될 것이다. 지금 재밌는 것은 FTA 지지를 계층별로 나눠보면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수도권의 고학력 남성, 40대 이상의 자영업자들이 많다. 상당수가 이미 IMF때 당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미FTA를 가장 열렬하게 지지하고 이게 되면 조금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룸펜 내지 몰락한 중산층은 언제나 독재 내지 파시즘에 동원 기반으로 이용되어 왔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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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미국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 의회에서 언론 플레이로 재협상 요구 하겠다는 것을 비롯해 거부권 행사까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 향후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협정문에는 기술적 수정은 가정하지만, 문구라던지. 내용적 변경은 불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상대가 미국이다. 만약 이걸 고치지 않으면 미 의회에서 통과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재협상을 해야 한다, 그게 확실하다고 할 때 노무현 정부가 어떻게 할까? 재협상 할 것이다. 또 끌려 나가서 자신들이 전리품으로 내세웠던 것들을 수정 변경하도록 요구받을 것이다. 물론 그 다음에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다. 또 진보진영이나 개혁진영은 뭘 어떻게 할 것인가, 난감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아무튼 문제의 핵심은 상대가 미국이라는데 있다.

미국은 현재 90일간의 의회 내 협의를 하게 돼 있다. 이해당사자, 행정부도 포함되고 각 당들, 각 그룹별, 서로 컨설테이션(consultation)을 하는 것이다. 청문회, 보고 설명회 등 이 과정에서 한미FTA 협상 결과를 우리가 받아들일 만하냐에 대해 협의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차에는 협의 뒤에 결론을 낸다는 것은 나와 있지 않다.

예를 들어서 미국하고 페루하고 FTA를 체결해서 다 정식조인을 했는데,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나서 재협상을 하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재협상 한다. 물론 한국은 페루와 경제적 정치적 조건이 다르지만 결국 재협상한다고 주장되면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사실상 한미FTA도 미국 내에서 보면 민주당과 부시 공화당과의 헤게모니 싸움의 연장이다.

향후 갖은 우여곡절이 예상이 된다. 모든 가능성이 다 열려있다고 봐야 한다. 6월 30일에 정식 조인을 하게 되면, 미 의회는 미국 행정부가 제출한 이행 법안에 대해 가부 투표를 하게 된다. 설사 이것이 가결 되더라도 우리에게는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지니는 조약이고, 신법이라 이전 법에 우선한다. 그런데 미국은 행정협정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국내법 하위에 놓인다.

그래서 전후를 봤을 때, 미 정부도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 때 이행법안을 낼 것이다. 미국도 내년 초면 대선 국면에 돌입할 것이고, 우리도 9월부터는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다. 이런 조건에서 한미FTA법안을 의회에 냈는데, 이게 안 됐다고 하면 부시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정치적인 변수들의 경우 다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조합들이 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얘기하기 어렵다. 그런데 제일 불행한 경우는 9월에 우리 국회가 먼저 나서서 비준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미 정부가 이행 법안을 내놓지 않을 때 이다. 물론 우리 국회도 그렇게까지는 가기 힘들 거다.

사실상 이제 싸움은 국회로 넘어간 셈이다. 협상 타결을 전후로, 의원들의 단식 등 한미FTA를 둘러싼 정치계의 노선 정리도 속도감 있게 전개됐다

100% 확실한 것은, 의원들에게는 한미FTA보다 차기 정권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는 것이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봐야 한다. 무조건 비관할 필요도 대책 없이 낙관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시민사회 적극 동원과 개입이 없이 국회가 움직인다는 것은 그건 완전한 착각이다. 그런 일은 안 일어 날 것이다.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론을 만들어 내고 필요하면 조직도 하고 가능한 압박의 지렛대 해야 한다. 그나마 의원들이 시민사회와 함께 할 태세가 돼 있고, 그 의원들의 수가 과거 보다 분명히 많다.

지금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저앉아 버리면 정말 우리는 정치적으로, 표에서도 패배해, 1년 내내 헛농사 지은 상황이 된다. 지금 국면은 더욱 다양한 방법의 실천이 필요한 시기이다. 장기적 국면으로 간 거다.

기동전 뿐만 아니라 진취적 전망을 가지면서 다양한 창의적 방법 개발해야 한다. 3월 말에도 그랬다. 결국 협상의 가부간에 결판 날 테니 그만하자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건 아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어쩔 수 없다. 개인적으로 봐서는 빨라야 모든 상황은 내년 하반기에 가야 결판이 날 것 같다. 자, 이제 정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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