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협상의 덫에 걸린 한국 정부의 선택은?

끌려나가는 한국 협상단, 재협상에 나서도 얻을 것 없어

정부가 한미FTA 재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미 협상단이 재협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종훈 수석대표는 ‘조건부’ 재협상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실상 재협상에 나설 명분 카드만 쥐어들면 되는 셈이다.

샌드위치 된 한국 정부.. 결국 재협상 나서나

정부가 어떠한 명분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결국 ‘재협상 불가’를 외친 한국 정부가 미국 측의 요구에 또다시 굴복했다는 점은 달라질 게 없다.

재협상의 방식도 문구 조정을 언급하거나, 추가 협상이나, 조건부 재협상이라는 방식을 택한다 하더라도 결국 한미FTA 재협상 테이블에 끌려 나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선범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언론국장은 “미국의 신통상정책들의 주요 내용들이 국내 재벌들이 반대하고 있는 사안들임을 알면서도 협상에 나서기에는 정부 명분이 부족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실 신통상정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노동 5개조 항과 환경의 7개 조항 등은 노동계 및 환경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던 것들로 재계가 받기 어려운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부가 재계의 눈치를 보면서 ‘재협상 불가’의 카드를 강경하게 써 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재협상을 거부할 경우 한미FTA 협상 자체가 무효화 되는, 미 의회에서 비준 거부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정부의 '위기의식' 이다. 신통상정책 합의 내용을 밝힌 미 정부가 페루와 파나마와의 FTA를 거론했지만, 그간 미 의회는 한국과의 FTA에는 신통상정책 그 이상의 내용이 반영돼야 비준동의 해주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혀 왔기 때문이다.

결국 반대여론 속에서도 한미FTA 협상을 추진하며 공조 해 온 재계와 정부가 '한미FTA 협상 좌초'라는 정치적 부담에 따른 위기의식을 함께 함으로, 사실상 조건부 협상에 나설 공분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재협상으로 얻을 것은 더욱 없다

현재 한국 협상단은 노동, 환경 기준 등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전문직 비자 쿼터 제공’과 ‘개성공단제품의 즉각적인 한국산 인정’ 등을 전제로 하는 조건부 협상을 추진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 측은 신통상정책을 기반으로 한 노동이나 환경 기준 뿐만 아니라 의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쇠고기, 자동차, 농업, 지재권 등에서도 재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편집국장은 “재협상에 나선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협상 내용들을 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간 미 의회에서 주창해온 내용대로 재협상이 추진될 경우 미 협상단은 더욱 공세적인 내용을 요구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익 여부를 따질 문제도 아니지만, 종결 된 한미FTA 협상보다 더 실익 없는 재협상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나아가 한국 정부가 조건부로 제시할 것으로 예측되는 ‘전문직 비자 쿼터 제공’과 ‘개성공단제품의 즉각적인 한국산 인정’의 경우도, 미 의회 소관이다. 그간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미 협상단이 보였던 태도의 연장에서, USTR(미 무역대표부) 협상단이 협상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발뺌 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박상표 국장은 “사실상 한국 협상단이 협상력도 없지만, 재협상으로 얻을 것이 없는 상황”임을 거듭 강조했다.

결국 한국 정부가 문구 조정이나, 추가 협상이나 조건부 재협상의 형식으로 한미FTA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물론 현재 제기되고 있는 내용들이 양국의 무역현안들 이기 때문에 협정문에 들어가기 보다는 부속서나 사이드 레터들로 충분히 해결할 수도 있다. 문제는 미 의회가 이 이상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극적 타결을 선언하며, 타결을 위한 드라마를 연출했던 한국 정부가 결국 5월 협정문 전문 공개에 앞서 오히려 재협상에 나서야 될 상황에 처하게 됐다. 과연 재협상의 덫에 걸린 한국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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