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법,행정, 입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든다

[한미FTA-지재권]④ 협상 총괄 평가

28일 한미FTA 저작권 독소조항 설명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미FTA졸속타결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 소속 최재천 의원은 “현재 공개된 한미FTA 협정문을 보면 지재권이 헌법 보다 우위에 있다”고 지적하며, “한미AFT가 초헌법적인 권리가 된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지적재산권은 하늘이 부여한 특권인가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공개된 협정문에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력 분립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들이 있다.

협정문 제 18.10조 지적재산권 집행 27항은 “장래의 침해를 억제하기에 충분한 벌금형뿐만 아니라 징역형 선고를 포함하는 형벌을 규정 한다”고 적혀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는 이 조항과 관련해 “한미FTA 협상이 입법권자인 국회가 갖는 형사 처벌에 관한 입법의 재량까지 침해하며 형벌의 기준까지도 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는 국회가 가진 입법재량의 침해이면서, 동시에 사법부가 가지고 있는 ‘양형에 대한 재량’을 근본적으로 훼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제27항 (가)목 후단의 “실형을 포함하여 장래의 침해를 억제하기에 충분한 수준에서 형벌을 부과하도록 권장 한다”는 것과 제27항의 (다)목은 "사법당국은 특히 침해행위에 기인한 모든 자산의 몰수를 명령할 권한을 가지도록 규정 한다"는 내용을 헌법 질서 훼손 조항으로 꼽았다.

사실 현행 지재권 법률도 권리자 보호를 위해 지나칠 정도로 많은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국내 논의도 없이 권리 보호를 명분으로 행정, 사법적 집행 조치들이 추가되고 있다.

법정손해배상제도의 도입(제18.10조 6항), 상대방의 의사청취없이 권리자의 신청만으로 법원이 일방적 구제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일방적 구제절차(제18.10조 17항), 저작권 침해물품에 대한 세관 신고제도의 도입(제18.10조19항), 형벌 기준 도입과 양형 기준 권고(제18.10조 제27항), 침해 행위에 기인한 모든 자산의 몰수와 폐기 권한(제18.10조 제27항), 범죄행위 실행의 착수조차 없는 라벨의 거래 행위에 대한 형사 처벌(제18.10조 제28조), 영상저작물의 미수범에 대한 형사 처벌(제18.10조 제29항)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남희섭 대표는 “지적재산권의 집행규정의 대부분이 권리자라고 주장하는(또는 추정되는) 원고(민사절차) 또는 고소인(형사절차)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되면 먼저 소송을 제기한 자가 실제로 그 자에게 그러한 권리가 없는 경우나 또는 권리침해가 사실은 없었던 경우에도, 실체적 진실과는 달리 피고의 패소부담이 가중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또한 협정문 제18.10조 제3항은 저작권자의 표시만 있으면 그 대상물에 권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이를 민사, 행정 절차 뿐만 아니라 형사 절차에까지도 적용하고 있다.

현행 소송절차에서는 원고가 권리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협정문의 추정규정은 피고가 권리의 부존재를 입증해야 하므로, 피고의 패소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남희섭 대표는 “현재와 같은 입증책임 분배원칙은 소송상 공평의 원칙에 입각하여 오랜 세월에 걸쳐 확립된 원칙”임을 강조하며, “저작권 소송의 경우는 원고에게 불리하다고 할 수 없고, 형사절차에서까지 저작권 등의 권리 존재 및 등록상표의 유효성을 추정하는 규정을 두도록 했는데, 이는 모든 입증책임을 검사에게 돌리도록 요구하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명백히 위반되는 부당한 규정”이라고 주장했다.

상충되는 법리..문제 조항들

남희섭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 과정에서 문제조항들에 대한 법률적 검토 내용을 밝혔다. 이 내용은 추가 검토를 통해 보완된 예정이다.

협정문 제18.10조 제6항은 법정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강제하면서, 법정손해배상액은 “장래의 침해를 억제하고 침해로부터 야기된 피해를 권리자에게 완전히 보상하기에 충분한 액수”로 하여 실제 손해배상액보다 법정 손해배상액이 더 많도록 했다.

또한 제6항과 제13항(기술적보호조치나 권리관리정보의 침해)에서는 권리자가 실제 손해배상액과 법정 손해배상액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실 이 내용은 법 체계가 다른 한국과 미국이 타결한 FTA 협정문이기 때문에 나타난 이상한 그림이다. 한국은 법원이 변론의 취지를 참작해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이런 내용은 영미법계 체계에 해당 되는 내용이라는 설명이다. 사실상 한국의 기존 법체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미법계 제도가 끼어든 셈이다.

물론 법정 손해배상액을 ‘실손해 + 장래 침해 억제액’으로 계산된다면, 권리자는 실제 손해보다 더 많은 배상액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이 내용 자체만으로도 민법의 손해배상법리와 상충된다.

또한 협정문 제18.10조 제17항은 “각 당사국은 일방적 잠정조치의 신청에 대하여 신속하게 대응한다(Each party shall act on requests for provisional measures inaudita altera parte expeditiously)”고 되어 있다.

지재권 침해 사건은 외연이 확정되지 않은 권리의 침해 여부를 다루고, 실제로 침해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매우 어렵다.

정부는 ‘일방구제제도는 TRIPS 협정에 규정된 것으로 우리측이 이미 이행하고 있는 의무’라고 했지만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TRIPS 협정(제50조 제2항)은 “지연으로 인해 권리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생길 수 있는 경우(where any delay is likely to cause irreparable harm to the right holder)” 또는 “증거가 멸실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경우(where there is a demonstrable risk of evidence being destroyed)”에 일방적 구제절차를 채택할 권한을 사법당국이 가지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지재권 침해 사건에 대해 침해자로 지목된 당사자의 청문권을 보장하지 않고, 권리자의 일방적인 의견만으로 구제조치를 하도록 한 것은 권리자에게 지나치게 치우친 제도라는 지적이다.

파일 다운로드, 상업적 규모의 침해 행위 될 수 있다

협정문 제18.10조 제26항은 상업적 규모의 상표 위조나 저작권 침해에 대한 형사절차와 처벌을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제26항 제2호에 따르면 ‘상업적 규모의 침해’는 “상업적 이익 또는 사적인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고의적인 침해”도 포함되고 각주 33에는 ‘금전적 이득’이란 “가치를 지닌 그 어떤 것의 수령 또는 기대”(receipt or expectation of anything of value)”를 포하고 있다.

협정문에서 말하는 ‘상업적 규모’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업 행위가 아니라, 예를 들어 음악 파일 하나를 다운로드하는 행위도 ‘상업적 규모의 침해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남희섭 대표는 “협정문에는 권리자의 고소가 없어도 처벌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음”을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금번 협상을 통해 ‘상업적 규모’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권리자의 고소 없이 수사기간의 직권으로 공소제기가 가능토록 합의”했다고 밝힌바 있다.

이와 같은 정부 발표 내용을 근거해 엮어보면, 사실상 한 두번의 파일 다운로드 행위를 한 일반 이용자도 단속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사실 이런 상황이 일반화 된다면 고소, 고발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 가능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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