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사무금융연맹)은 31일 한미FTA협상에 대한 분석 평가 자료를 배포했다.
사무금융연맹은 한미FTA의 금융 협상 결과는 “한미FTA 협상은 한국 금융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규제 철폐와 진입 장벽 제한 해제를 통해 투기자본이 원하는 만큼 한국의 금융 산업을 농락할 수 있는 토대를 보장했다“고 평가했다.
연맹은 동 자료를 통해, ‘단기 세이프 가드’ 도입의 단서조항에 대한 해설을 비롯해, ‘미국에 대한 불필요한 손해를 피할 것’이라는 단서 조항의 고의적인 은폐 의혹 제기 그리고 협상의 주요 내용들이 미국 측이 요구하는 대로 관철 됐음을 확인했다.
외국인 투자 증가..그중 50% 이상이 미국계
IMF 구제 금융 이후 자본시장 개방에 따라 국내 주식 시장의 외국인 투자 비중은 40%를 넘기고 있다. IMF 이후 국내로 유입되는 초국적 금융자본은 더 이상 채권자의 지위가 아니라 주주로서 경영활동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에 진출한 초국적 금융자본 중 58.1%가 미국계이다. 한미FTA 금융서비스에 대한 이들의 노림수가 무엇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경우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총수익의 25%이상, 민간서비스 부문 수출수익의 50% 가량을 금융업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금융업은 전문화되고 특화된 산업으로 세계 최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금융산업의 특성상 미국 금융자본이 한국의 금융산업을 장악하면 손쉽게 한국 내 산업 전반에 대한 지배의 통로로 활용할 수도 있다.
더구나 국내 금유시장 규모는 전체 자산규모나 상장, 등록 기업 시가 총액으로 볼 때 약 2,200조원에 이르고 있다. 2006년 2월 말 현재 16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적립금도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고, 최근 시행되고 있는 퇴직연금 시장도 2050년 2,1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금융 시장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임에는 분명하다.
사무금융연맹은 “미국의 초국적 금융자본은 한미FTA를 통해 한국 시장 내 자본자유화와 금융세계화를 완결시키겠다는 구체적인 요구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며, 한미FTA협정문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 ‘불필요한 손해’, 과연 누가 판정할 것인가
IMF 구제 금융과 구조조정의 경험이 있는 한국은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 자금 유출을 일시적으로 금지시키는 ‘단기 세이프 가드’ 도입이 금융서비스에서 단연 초점이었다.
특히 IMF 이후 초국적 금융자본의 주식 소유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이들에 의한 의도적인 국내 금융시장의 왜곡 및 조작 가능성이 언제나 상존하는 상황에서 ‘단기 세이프 가드’ 도입은 이후 또 다른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협정문을 보면 ‘단기 세이프 가드’ 발동 전제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그리고 숨겨졌던 독소조항도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그간 정부는 ‘단기 세이프 가드’ 발동을 위한 전제로 합의한 내용으로 △발동기간이 1년 이내일 것(필요시 미국과 협의 거쳐 연장 가능) △몰수 금지 △이중환율제 금지 △외환규제로 해외에 나가지 못하고 국내에 묶인 자산의 운용에 대한 제약 금지 △불필요한 경제적 피해 초래를 피하고, 경제여건 개선 시 해제 △내외국차별 및 국가별차별 금지 △투명한 절차 유지(발동 즉시 공포)의 7개 조항을 들었다.
이와 관련한 부속서, <투자> 부속서 11-사를 보면 ‘송금’과 관련한 단서 조항과 예외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부속서 11-사의 미합중국의 (투자) 상업적, 경제적 또는 재정상의 이익에 대한 불필요한 손해를 피할 것
이라는 명문 규정이다.
'금융 이프가드가 발동된다' 함은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최장 1년간 위기상황을 해결하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금의 유출입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국내에 투자돼 있거나, 투자 의사를 가진 초국적 금융자본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송금을 할 수 없으니, 당연히 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손해를 피할 것’이라는 설령 이프 가드가 발동이 되도 미국 자본은 상관없이 자본을 철수 해 갈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을 쥐어 준 것과 다름 아니다. 외환 위기와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국내 투자 비중이 높은 미국계 자본들이 예외를 인정받아 유유히 송금해 간다면 과연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의미가 있을까.
심지어 ‘상업적 경제적’, ‘불필요한 손해’ 등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어디에도 없다.
또한 정부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의 대상에 세이프가드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전해 왔다. 그러나 협정문에는 "다만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단서 조건이 붙어 있다. 이는 역으로 요건을 충족하지 못 하면, '외환 세이프가드는 ISD 대상이 된다'것을 의미한다.
사무금융연맹은 “누가 해석할 것인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결국 미국의 입장에서는 언제든 금융 세이프가드가 미국에 대한 불필요한 손해를 끼쳤다며, 협정문 위반을 이유로 투자자-국가소송에 나설 수 있게 된다”고 해석했다. 이 조항이 존재하는 한 금융 세이프가드가 사후적으로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돼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부속서 11-사의 2항에는 세이프가드 예외 규정이 있다.
2. 제 1항은 다음을 제한하는 조치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가. 경상거래를 위한 지급 또는 송금. 다만 (1) 그러한 조치의 부과가 국제통화기금협정 조항에 규정된 절차에 합치하고 (2)대한민국이 그러한 조치를 미합중국과 사전 조율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나. 외국인직접투자와 연계된 지급 또는 송금
금융 세이프가드 발동에 예외가 되는 경우가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FDI) 및 경상거래를 위한 지급 또는 송금의 경우 세이프가드 적용의 예외로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외국인투자촉진법’상 외국인 직접투자는 '외국인이 내국기업과 지속적인 경제관계를 수립할 목적으로 당해 기업의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하는 것으로서 주식총수의 10%이상을 소유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나 기업경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합작계약서 등에 의해 입증되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경우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나 SK(주)의 지분율 14.82%를 보유하고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던 소버린의 경우 세이프가드에 해당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금융위기가 발생돼 세이프가드가 발동됐다 해도 언제든지 매각 대금을 유유히 들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상거래를 위한 지급 또는 송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협정(IMF) 협정조항 제 30(d)조에 의한 무역대금, 서비스 경상거래, 단기은행여신, 대출이자, 투자 순이익, 대출 분할 상환, 직접투자 감가상각액, 가족 생계비 등은 세이프 가드 제외 대상이다.
협정문은 경사거래에도 세이프가드를 도입할 수 있다고 하나, ‘국제통화기금협정(IMF) 협정 조항에 규정된 절차’에 합치해야 하고, 또한 한국 정부의 관련 조치들이 미국과 사전 조율해야 함을 단서로 들고 있다. 사실상 세이프 가드를 경상거래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IMF의 허가를 득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세이프가드 발동 조건에는 ‘미국에 대한 불필요한 손해를 피할 것’을 명시하고, 예외 상황에는 미국과 사전 협의를 명시하고 있다. 한국의 금융 세이프가드 발동 여부는 사실상 미국 자본과 정부의 덫에 걸려 있는 셈이다.
사무금융연맹은 “은행의 단기 여신 마저 제외된 금융세이프 가드, 결국 차 떼고 포 떼고 보니 정부가 금융협상의 최대 성과라고 자랑하는 금융세이프 가드가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돼 버렸다”고 주장했다.
정부, 의도적으로 은폐했나
사무금융연맹은 특히 ‘미국에 대한 불필요한 손해를 피할 것’이라고 명시한 ‘단기 세이프 가드’ 발동 전제 합의 내용과 관련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이 단서 조항이 공개된 것은 협정문 공개를 통해서 이었다. 사실 협상 내용 발표 과정에서는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또한 사무금융연맹 교육위원회가 주최한 월례 강좌에 참석한 신제윤 한미FTA 금융협상 분과장은 금융세이프 가드 협상 결과를 성과 있게 자랑하며 발동요건 전제가 7가지 조항 외에는 별도의 발동 조건이 없음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특히 협정문 발표 이후 동시에 제공된 정부의 협상 상세 설명 자료에도 이 조항은 누락돼 있다. 그리고 금융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이 까다롭다는 논란이 일자 정부는 외국환거래법 및 국제통화기금(IMF) 협정문 상의 의무를 열거한 수준이라고 강조 하면서도, 관련한 조항에 대한 해명은 전무했다.
사무금융연맹은 이와 관련한 정부의 ‘고의적 은폐’ 의혹을 제기하며 “정부의 명확한 해명과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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