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로 인해 민주노동당 내 정파 갈등이 재점화되고 있다. 당내 평등파인 ‘전진’은 당 위기 돌파를 위해 대북 종속주의와 정파 패권주의의 전면적인 청산이 필요하다며, 이를 전당적 합의로 이끌어내기 위해 임시당대회를 열 것을 주장하고 있다. 당내 다수파를 점하고 있는 자주파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 포고다. 반면 자주파는 “총선을 100일 앞두고 노선 논쟁을 하자는 것은 비현실적인 주장이자 사실상의 정치공세”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29일로 예정된 중앙위원회에서 양대 정파의 격돌이 예상된다.
“자주파 대북관은 反진보적”..‘총선 불출마’ 배수진 치고 총공세
당내 평등파 계열 최대 정파인 ‘전진’은 지난 22일 중앙위원회, 23일 임시총회를 잇달아 열어 ‘당 혁신을 통한 제2창당’을 당면 최대 사업으로 정했다. “현재의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진보정당운동을 이끌고 나갈 수 없으며 당원과 국민에게 외면당할 뿐”이라는 현실 인식에 따른 것.
이와 함께 ‘전진’은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하며 ‘배수진’을 쳤다. 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은 “(당 혁신 주장이) 비례대표 한 자리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기득권 포기를 결의했다”고 말했다.
‘전진’은 임시총회를 통해 △당 강령 정신의 재실현 △대선 및 당 운영에서의 패권주의 평가 △종북주의 등 반진보적 노선에 대한 전면적 청산 등을 관철시키기 위한 임시당대회 소집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또 당 지도부가 대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청할 방침이다.
김종철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일심회 사건에 대해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북한에 대해 할 말은 정확히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며 “과거 북핵 옹호 발언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함께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을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선 시기 ‘코리아연방공화국’으로 통일중심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려 한 것도 문제제기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종철 집행위원장은 “정파 패권주의를 고착시키는 당직공직 겸직 허용과 대선후보 경선 시기 노회찬 후보에 대한 자주파의 네거티브 공방에 대해서도 정확히 평가하고 사과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대북관, 패권주의에 관한 문제는 당내 고질적인 논쟁 주제로, 자주파와 평등파는 이에 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현안마다 산발적인 충돌을 빚어왔다. 이들이 이것을 재차 꺼내들고 나온 이유는 권영길 후보의 실패로 그를 조직적으로 지지한 자주파가 정치적 수세에 몰린 상황을 기회로 삼아,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논쟁을 매듭짓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김종철 집행위원장은 “일단 당 안에서 최선을 다해 싸워본다는 생각이고,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 대해 현재까지 논의된 바는 없다”면서 “아직은 새롭게 갈라서느냐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분당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전진’ 내부에서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자”는 주장과 “당 혁신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대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 맘에 안 들면 뒤집는 식 문제 있어..노선 평가는 총선 이후”
자주파는 ‘총선 전까지 총단결’ 을 주장하며 무너진 전열을 가다듬고 평등파의 반격에 맞서고 있다. 대선 시기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적극 설파하며 자주파의 선봉에 서왔던 이용대 정책위의장은 “총선까지 100일 남았는데 이 때까지 노선 논쟁을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총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게 급선무기 때문에 노선 정리는 총선 후에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 쇄신이 말로는 쉽지만 총선까지 몇 달 안 되는 기간에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다”면서 “총선을 치르고 난 다음 당의 전반적인 혁신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용대 정책위의장은 “‘전진’의 주장은 총선 기간 내 할 수 없는 일을 제기함으로써 정치공세 성격이라고 본다”며 “노선 문제도 실질적인 노선 차이보다는 파벌화된 정파 갈등이 더 많다. 당의 공식적인 결정 절차인 다수결 원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 내 맘에 안 들면 뒤집는 식은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없다”고 평등파에 날을 세웠다.
이어 “29일 중앙위원회에서 현 지도부에 책임을 묻고 지도체제를 새롭게 정비해 준비를 해나가면 된다”면서 “총선 때는 대선처럼 정파 갈등과 같은 안 좋은 모습을 보이지 말고 국민에게 ‘마음을 잡고 어려운 조건에서 열심히 뛰려고 노력하는구나’라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대 정책위의장은 “일각에서 분당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지금 분당이 옳은 것은 아니다. 당이 어려울 때도 있고 잘 될 때도 있는데 당 자체를 깨자는 것은 옳지 않다”며 “자꾸 논쟁만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발빠르게 할 일을 하며 움직여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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