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의사, 인간광우병 가능성 부인 안했다"

국내 인간광우병 의심환자 가족 인터뷰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을 앞두고 광우병 논란이 뜨겁다. 청계광장 앞에서는 이틀째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이어지고, 인터넷 포털에서 진행되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사태 진화를 위해 2일 ‘끝장 토론’을 자처한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를 통해 한국인이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광우병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희귀 질환으로 알려진 CJD(크로이츠펠트 야콥병) 환자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점이 심상치 않다.

2006년 말 고경화 한나라당 의원이 한림대 ‘한국 CJD 진단센터’에 의뢰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CJD 환자는 2000년 2명에서, 2001년 6명, 2002년 18명, 2003년 38명, 2004년 59명, 2005년 61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 가운데 10대 3명, 20대 5명, 30대 6명, 40대 18명으로 40대 이하의 젊은 CJD 환자가 32명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40대 이하 CJD 환자 중 상당수가 인간광우병(vCJD, 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국내에는 인간광우병 환자가 한 명도 없다”는 정부의 말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광우병 환자를 판정할 국내 의료체계는 미비한 실정이다. 지난 2001년 김상윤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팀은 36세 환자를 인간광우병으로 진단했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부검을 하지 못해 판정을 유보했고, 국립보건원은 이 환자를 인간광우병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김상윤 교수는 “인간광우병이 아닌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중언론참세상’은 2007년 2월 인간광우병 의심 증세로 끝내 사망에 이른 환자의 가족을 인터뷰 했다. 참세상 편집국은 최근 인간광우병 환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바 당시 기사를 재정리해 지면에 싣기로 했다. 정부의 묵인 속에서 환자와 가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으로 제2, 제3의 피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일은 없길 바란다. -편집자주



환각 증세, 발작, 의식 불명..발병 5개월 만에 사망

김승주(가명) 씨의 어머니 한경자(가명) 씨는 인간광우병 의심 질환으로 2006년 3월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본래 승주 씨의 어머니는 잔병치레 없이 건강한 편이었다고 한다. 다만 젊을 때부터 머리가 무겁다거나 뒤통수가 당기는 증세가 있었고, 약간 저혈압이었다. 그래서 2005년 10월초 처음 징후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승주 씨는 으레 노인에게 나타나는 중풍이려니 했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말씀하시는 게 이상했어요. 당신은 잘 모르시는데, 듣기에 발음이 어눌하고 부정확하더라고요. 노인들에게 오는 전형적인 중풍 초기 증상인 것 같다 싶어서 바로 동네 병원에 모시고 갔죠.”

이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승주 씨 어머니는 서울 소재 종합병원인 A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어머니는 발음이 어눌하고, 언어감각이 떨어져 사물과 단어가 일치되지 않으며, 균형 감각이 없어서 자주 앞으로 고꾸라지고 서 있으면 어지럼증을 느끼는 일반적인 중풍 증상을 보였다. 병원에서도 중풍으로 진단했다. 승주 씨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은 A병원에 입원한 지 2주가 된 무렵이었다.

“어느 날 보니까 어머니 발바닥이 새까매요. 왜 그런지 도통 이유를 모르고 있다가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어머니가 병원 복도를 맨발로 돌아다니시더라고요. ‘엄마 왜 이래’ 라고 했더니 ‘여기가 어디냐’고 도리어 물으셨어요.”

이후 승주 씨 어머니의 증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화장실을 혼자서 가지 못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화장실 벽이 솟아오르고 바닥이 올라오는 것처럼 보이는 환각 증세를 겪었다. 한 달 가량이 지났을 때 어머니는 성격이 광폭해지고, 급기야 발작 증세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입으로 ‘아으’란 소리를 내시잖아요. 그러면 이 동작을 멈추지 못하고 한두 시간씩 계속해서 ‘아으아으’하고 소리를 내시는 거예요. 팔을 한번 움직이면 두세 시간이고 계속해서 팔을 움직였어요. 그럴 때 어머니가 상상도 못할 정도의 힘을 발휘해서 남자 가족 두세 명이 달라붙어도 제지를 못할 정도였죠. 또 한번 비명을 지르면 온몸에 진이 빠질 때까지 소리를 지르셨고요.”

A병원 측은 MRI 등 재검사를 통해 승주 씨 어머니가 중풍이 아닌 CJD(크로이츠펠트 야콥병)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밝혔고, 담당 의사의 권유에 따라 어머니는 분당 소재 B병원에 입원 수속을 밟았다. B병원에서 승주 씨 어머니는 뇌척수검사를 통해 CJD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B병원 담당 의사는 어머니가 인간광우병일 가능성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11월말에 이르면서 승주 씨 어머니는 의식이 거의 없는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담당 의사는 어머니의 병에 대해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사실상 병원 측에서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2월 중순 경 어머니는 포천 소재 C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졌고 약 20일 후 사망했다. 발병한 지 5개월 만의 일이었다.

의료진도 두려워 환자 기피...환자 가족이 간호사 대신

CJD는 100만 명에 1명꼴로 나타나는 희귀 질환으로, 대부분 원인 불명이며 90% 이상이 발병한 지 1년 이내 사망한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먹어서 걸리는 인간광우병(vCJD, 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콥병)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뇌에 구멍이 뚫리는 등 증상이 유사하다. 단 CJD가 주로 60대 노인층에서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인간광우병은 평균 발병연령 29세로 젊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CJD와 인간광우병 모두 환자 사망 후 뇌의 부검을 통해서만 확진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CJD와 인간광우병은 ‘의료계의 불모지’로 여겨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병원에서도 환자를 꺼려했다. “CJD 진단이 나온 뒤에 바로 간호사들 복장부터 확 바뀌더라고요. 안 쓰던 일회용 장갑이며 마스크며 거의 우주인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어머니 병실을 들어오게 되면 큰일이라도 생기는 것처럼 굴었어요. 간호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전염성 문제 때문에 다른 환자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그런 지침이 내려졌다고 하더군요. 그럼 매일 병실에 드나드는 전 뭡니까?”

며칠 뒤 A병원 측에서 승주 씨에게 제안을 해왔다. 환자를 1인실로 옮겨 24시간 CCTV 촬영을 허락해준다면 치료에 나서보겠다고 한 것. 단 호전 가능성에 대해 확신할 수 없으며 모든 비용은 본인 부담이라고 했다. 승주 씨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었다. 병원 측이 치료를 구실로 어머니를 임상실험 대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임이 뻔했기 때문.

B병원으로 옮긴 뒤에도 형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뇌척수검사를 할 때 의사를 보조할 간호사가 없어 결국 승주 씨가 직접 의사를 도왔다. 간호사들이 승주 씨 어머니 검사 과정에서 인간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에 노출될까 두려워 모두 자리를 피한 것. 승주 씨는 “의아하고 좀 어이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전했다.


국내 의료체계 ‘구멍’..인간광우병 확진조차 못 받아

어머니의 투병 기간인 5개월 동안 승주 씨 가족은 3곳의 병원을 전전했다. 두 번째로 옮긴 B병원에서는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다. 어머니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병원 간부는 병실이 부족하니 다른 병원으로 옮겨 달라고 승주 씨 가족을 닦달했다. 그러나 다른 병원에서도 ‘그런 병이면 곤란하다’는 이유로 줄줄이 거절당했다.

병원 측의 무지와 거짓 정보 전달로 인해 받는 고통은 순전히 가족들 몫이었다. A병원은 승주 씨 가족에게 B병원을 ‘국가 지정 전문 병원’(현재 국내에서 CJD를 진단하는 곳은 질병관리본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지원하는 한림대 의대 두 곳이다)이라고 소개하며, “환자를 격리병동에 옮길 수도 있고 환자 집을 역학조사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다. A병원 측의 말은 모두 사실과 달랐다. “B병원 의사가 CJD는 신체 접촉으로 전염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혀 그럴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럼 그 쪽에서 왜 그런 얘기를 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의사가 그러는 거예요. ‘겁나서 그러죠. 그 병에 대해 겁나서.’”

“CJD를 국가 전염병이라고 지정만 해 놓으면 뭐합니까? 정부 차원에서 관리 체계가 하나도 없어요. 오죽하면 뇌척수검사에서 나온 추출물을 질병관리본부에 보내는데 택배비를 저더러 지불하라고 하겠습니까? 그 땐 정말 황당하더라고요.”

승주 씨 어머니의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인은 ‘CJD’로 되어 있다. 그러나 승주 씨 어머니가 CJD인지 인간광우병인지는 현재까지도 알 수가 없다. 승주 씨 어머니가 확진을 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담당 의사는 국내 의료체계의 문제임을 솔직히 인정했다. 신경과에서 확진을 원해도 수술을 관장하는 외과에서 검사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광우병의 발병 인자로 알려진 프리온은 300℃의 고온에서도 죽지 않기 때문에, 부검에 사용한 모든 기자재는 전부 폐기처분해야 한다. 수술 기자재를 폐기하고 재구입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외과에서 감당할 리 만무하다는 설명이다.

“쇠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지요...하지만 늘 불안합니다.”

승주 씨에게 어머니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승주 씨는 집에 있는 어머니 사진이나 병원 문서들을 모두 태워버렸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아픔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승주 씨 어머니는 쇠고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영국 등 광우병 발생 국가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도 없었다. 고작 중국이나 태국으로 관광을 갔던 것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승주 씨는 “쇠고기를 가급적 안 먹게 된다”고 했다. 대형 마트에서 싼 값에 파는 고기들은 가급적 안 먹게 되고 특히 사골국이나 뼈해장국은 입에 대지도 않게 됐다. 승주 씨 본인이나 가족들 모두 돼지고기 위주로만 먹고 웬만하면 육류를 잘 먹지 않게 된다고 했다.

“어머니가 발병하시기 전에 홈쇼핑에서 사골국 우려먹는 소뼈 세트를 한두 번 사다드린 일이 있었어요. 어머니에게 이런 병이 생기다 보니까 ‘그 때 그런 걸 해드려서 병을 얻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비교적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승주 씨의 얼굴에서 순간 그늘이 드리워졌다.

승주 씨는 항상 불안하다고 했다. CJD가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어머니가 인간광우병이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승주 씨는 걱정을 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요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얘기 나오고 하면 찜찜하죠. 우리 어머니가 음식으로 인해 발병한 게 아니라는 느낌은 갖고 있지만, 화장품부터 시작해서 소뼈를 원료로 만드는 물질이 좀 많아요. 아무튼 전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것에 정말 반대해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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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 쇠고기 , 미친소 , 인간광우병 , CJD , vCJD , 사골국 , 뼈해장국 , 프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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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Erious

    큰일이군요 ...

  • hhhqz

    ...휴.....이제 3일 남았습니다..

  • 힘든세상

    정말 한숨만 나오네요...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에선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정부인지 모르겠습니다

  • 빙초산

    소름끼칩니다. 남일이 아닙니다..

  • 몽몽이

    저 환자는 소위 광우병 위험국가를 간 적도 없고 미국소 수입이 금지된 시절에 발병한 국내 환자입니다.
    이 사례는 오히려 국내산 소의 광우병 발생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기자가 의도적으로 위험을 미국산 소에게 돌리고 있을 뿐, fact는 fact로서 정확히 판단합시다.

  • 정말

    무섭긴하군요

  • 도대체왜

    도대체 왜 이런기사들이 묻혀있는겁니까? 메스컴, 왜 똑바로 보도안해요? 돈받아먹었나들?

  • 눈팅이

    왜 이 기사가 묻혀 있었냐면 1년전 fta가 체결될 즈음해서
    나온 기사기 때문 그 때는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
    민주노동 범국본등 몇몇 단체만 빼곤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

  • 한정호

    거짓말도 작작하십시요. 광우병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수술도구의 폐기 때문에 수술을 거부한다뇨... 저도 광우병환자 진료한적 있지만 정말 보호자의 일방적 거짓말로 도배를 하는군요.

    광우병의 진단을 위해서 뇌조직생검을 해야하는데, 목숨걸고 그것을 받을 환자/보호자가 있습니까? 어짜피 진단되도 치료방법이 없는데, 궁금하다고 뇌조직검사하자면 당신이라면 하겠습니까? 국가차원에서는 하고 싶고, 의료진도 하고 싶죠. 조직검사하자고 하죠. 환자/보호자가 거절하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사후에 부검으로 확진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교 덕분에 부검도 거부하는거죠. 그래서 CJD는 CJD인지 전염성인지, 자발성인지 진단할 수가 없는 겁니다. 좀 알아보고 기사를 쓰십시요. 그리고, 국내광우병이 보고된게 10년은 된 일인데, 그럼 어느 정부를 비난해야할까요?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누구였죠?

  • d

    한정호님 진짜 의사 맞으세요? 광우병환자 맡아본 적 있다고 하셨는데, 그럼 우리나라 광우병이 정말 발생했다는 걸 고백하는 꼴이 되는데요. CJD랑 vCJD는 다르다면서요. 공식입장은 우리나라에 광우병은 없고 그냥 산발성CJD만 있다는 입장인데. 의사라면 단어에 신중을 좀 기하시길..

  • 문주

    한정호/ 2006년에 국내에서 60여명이나 광우병과 똑같은 증상을 보이면서 죽었다 합니다. 근데 정호씨는 국내에 광우병 환자가 없다고 딱잘라 말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런 신통력을 갖고 계시나요?

    그럼 제가 어디 살고 있는지도 아시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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