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한솔교육과 아직도 싸우는 중”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한솔교육 해고노동자 김진찬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

전국학습지산업노조(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금요 집회가 끝나고 나는 조합원들과 상암동 한솔교육 본사 앞으로 이동했다. 차 안에서 재능교육지부 오수영 사무장에게 들은 한솔교육 이야기는 여느 투쟁 사업장들의 사정과 마찬가지로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김진찬 선생님은 2006년 말부터 학습지노조 조합원으로 활동하면서 2007년 2월에는 학습지노조 대의원에도 출마했다. 한솔교육이 교사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수수료를 부당하게 떼어먹고 있다는 문제도 정면으로 제기했다. 한솔교육은 노조에서 활동하는 ‘성가신’ 김진찬 선생님을 솎아 내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해고 사유를 갖다 붙이며 재계약 4일 전인 2월 26일에 일방적으로 해고를 구두 통보했다. 김진찬 선생님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김진찬 선생님은 공덕동에 있던 한솔교육 옛 본사 앞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집회를 열었고 마포 경찰서 앞에서 1인 시위도 벌이며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는 싸움을 끊임없이 해 나갔다. 학습지노조 조합원들은 공덕동 본사 앞에서 김진찬 선생님과 매일 24시간 차량 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2007년 9월 28일 마포 경찰서 앞 1인 시위 [출처: 학습지노조 한솔교육지부]

사측은 2007년 6월에 서울 서부지법에 집회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한 달 뒤 “대법원 판례에 따라 학습지 교사를 노동자로 볼 수 없고, 6개월째 계속된 시위로 회사 시설에 대한 관리권 및 업무수행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 1996년에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집회는 계속되었고 그 와중에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이현숙 위원장이 강제 연행되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김진찬 선생님이 부당 해고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지 400여 일이 지난 2008년 4월에야 사측은 6개월 동안 자회사에서 다른 근무를 해 보고 거기서 자질이 검증되면 다시 원직복직을 시켜 주겠다는 조금은 생뚱맞은 합의안을 들고 나왔다. 합의서의 내용은 이랬다.

“㈜한솔교육은 기 계약 만료된 김진찬에 대하여 6개월간 별도의 업무를 부여하여 자질을 확인한 뒤 재계약을 체결한다.”

김진찬 선생님은 5월부터 자회사 기획팀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약속한 6개월째인 지난 11월 중순, 한솔교육은 원직복직 약속을 또 다시 일방적으로 깨뜨렸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으니 거기서 일하는 게 좋겠다”며 사측은 김진찬 선생님을 원직복직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진찬 선생님과 전국학습지산업노조는 한솔교육을 규탄하는 집회를 매주 상암동 본사 앞에서 벌이고 있다.

한솔교육 앞 집회가 끝난 오후에 김진찬 선생님과 밥을 먹으며, 밥을 다 먹은 뒤에는 차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솔교육에서 해고된 선생님은 김진찬 선생님이 처음인가요?”

“아뇨.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표적 해고된 학습지 교사는 제가 7번째예요. 한 노조 간부는 아이를 낳고 나서 계약 해지를 당하기도 했죠. 특수고용직이라 휴직이 ‘계약 정지’라는 형태로 되는데, 재능교육 같은 경우는 본인이 원하면 재계약을 한다는 전제를 깔고 계약 정지를 해요. 대교는 출산 후 재계약을 할지 안 할지 사측이 판단하구요. 그런데 한솔교육은 회사를 일단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는, 즉 재입사를 하는 형태예요. 노조 간부가 출산 때문에 계약 정지를 하니까 나중에 한솔교육은 이때다 싶어 재입사가 안 된다고 해 버린 거죠. 끝내 그 조합원은 재입사를 못 했어요. 대법원 판결도 지고...... 해고된 조합원들이 여럿 더 있지만 생계 문제 때문에 활동을 다 쉬고 있고, 사측과 싸우고 있는 조합원은 지금은 저 하나 뿐이죠.”

“재계약을 거부당하셨을 때 사측에서 얘기한 해고 사유들이 뭐였나요?”

“실적이 저조하다, 불성실하다, 사무실에서 술을 마셨다 등등이 있었는데, 한솔교육이 직원을 평가하는 그 성실함이란 것의 기준이 뭐냐고 물어봐도 아무런 답변이 없고...... 술을 마셨다는 것도, 2006년 말에 사무실에서 지점장이 행사 상품으로 내건 와인을 동료 교사들끼리 한 잔씩 시음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김진찬 선생님은 사무실에서까지 술을 마시는 불성실한 교사라고 소문을 낸 거예요. 사측도 공식적으로는 제가 술 먹었다는 얘기를 못했죠. 너무 허무맹랑하니까. 제가 소송을 걸 수도 있고. 그러면서 여기저기에 소문은 내고 다닌 거예요. 저도 제가 술 먹었다느니 하는 얘기를 다른 지점 교사들에게 들었어요.”

“해고되고 나서 집회는 얼마나 오랫동안 하셨어요?”

“본사 앞에서 차 대 놓고 농성을 406일 동안 했어요. 여기(상암동) 집회는 3번째고...... 원래 한솔교육 본사가 마포구 공덕동에 있었는데 건물주가 한솔교육이랑 재계약을 안 했어요. 저희는 건물 앞에서 거의 매일 집회를 하는데 한솔교육은 모른 체하니까 건물 관리자가 중간에 낀 상황이었죠. 관리자도 집회하는 걸 싫어하긴 했는데 왜 저희가 집회를 여는지는 이해해 줬어요. 어쨌든 그렇게 학습지 노조랑 같이 406일 동안 싸우다가 지난 4월에 6개월 합의 얘기가 나온 거죠. 그래서 5월부터 얼마 전인 11월 13일까지 자회사 기획팀에서 일했어요. 6개월 일했더니 학습지 교사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업무에 더 자질이 있는 것 같다는 답신이 한솔교육으로부터 온 거고. 어이없는 한솔과 지금까지 그렇게 계속 싸우고 있는 거예요.”


  11월 28일 한솔교육 본사 앞에서 벌어진 규탄 집회

나는 갑자기 학습지노조에 대해 궁금해졌다.

“전국에 학습지 교사가 어느 정도 되나요?”

“음......한 15만 명 정도?”

“그럼 80년대에도 학습지노조는 있었나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로 학습지 교사들끼리 뭔가를 해 보자는 모임 비슷한 건 있었어요. 노조의 형태는 아니었죠. 1999년에 재능교육 노조가 처음 생겼어요. 재능 노조가 단체협약이랑 임금협약을 사측과 맺는 걸 보고 다른 학습지 회사들이 자기 회사 안에 정규직들을 중심으로 하는 노조를 만들어 버렸죠. 그래서 구몬이랑 대교 교사들은 복수노조 금지조항 때문에 노조를 못 만들었어요. 단위별 노조가 안 되니까 산별노조 산하에 있는 학습지노조로 우회하는 길을 택했지요. 2000년에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이 설립됐구요.”

“한솔교육도 학습지 회사들 중에서는 꽤 유명한 곳 아닌가요?”

“대교나 웅진, 구몬만큼이나 유명하죠. 변재용 회장이 80년대 초에 영재수학교육연구회랑 모범산수교육연구회 같은 걸 만들면서 수학 학습지로 처음 시작했는데, 나중에 신기한 한글나라, 신기한 수학나라 같은 무슨무슨 나라 시리즈가 대박이 나면서 한솔교육이 지금의 위치에 오른 거예요. 변재용 회장한테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야학 같은 경험들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회사 이미지가 이른바 ‘밝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 만든 학습지 회사’라는 식으로 퍼지기 시작했죠. 저도 한솔교육 임원에게 들은 얘긴데, 변재용 회장이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갔다가 돌아와 보니 회사에 노조가 만들어져 있더래요. 그걸 보고 엄청난 환멸을 느껴서 모범산수교육연구회를 때려 치우고 돈이나 벌겠다고 다짐했대요.”

“예? 왜 그랬을까요? 노조를 보고 환멸을 느꼈다니.....”

“자기 딴에는 좋은 세상을 위해 경찰서에 끌려 가기도 하고 얻어 맞기도 하는데 노동자들이 그런 ‘고결한’ 마음도 몰라주고 노조를 만들었다고 생각했겠죠. 그런 식이에요. 기업 이미지는 참 좋죠. 주요 언론에서 ‘여성 소비자가 뽑은 좋은 기업’ 상도 받은 적 있어요. 그거 아세요? 변재용 회장이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출신이에요.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변재용 회장은 김근태 쪽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있죠. 과거에 어떤 활동을 했든 지금은 다른 자본가들과 다를 게 없어요.”


나는 악덕 고용주가 이른바 학생운동 출신인 경우와 맞닥뜨린 것은 처음이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렸을 때는 ‘운동권’이었고 한나라당에는 지금도 80년대 열혈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이 득실대긴 하지만 학습지 회사 회장에게도 그런 과거가 있었다니 신기하다고 느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얼른 알 수가 없었다.

“색다른 경우네요. 변재용 회장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다니.....”

“주변에서 많이 보잖아요? 자기 과거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

  본사 앞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진찬 선생님

“한솔교육 노조는 어떤가요?”

“그게......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안에 한솔교육지부를 만들어야 하는데 상황이 좀 여의치가 않아요. 학습지 회사가 본사 한 곳만 있는 게 아니라 지역별로 많이 흩어져 있잖아요. 그래서 몇 개 지역 이상, 몇 명 조합원 이상이 되어야 지부를 설립할 수 있어요. 그런 조항이 있죠. (실제로 한솔교육지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첫 화면에 ‘한솔교육지부 추진위원회’라는 문구가 뜬다)”

“학습지 교사가 완전성과급제잖아요. 그러면 각자가 거둔 성과에 따라 학습지 교사 사이에도 빈부격차랄까 뭐 그런 게 있을 것 같은데.....”

“개인마다 성과를 얼마나 올리느냐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대박 교사들이 있잖아요. 한 달에 600만 원을 번다고 언론에 나오는 재능교육 교사가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예요. 재능교육에서 수수료를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해도 55%인데 회원 한 명당 33000원에서 55%면 19000원 정도거든요. 학습지 교사는 학원 강사와 달라서 아이들이 사는 곳까지 직접 이동해야 하고, 아무리 모둠 수업을 한다고 해도 가르칠 수 있는 아이들 수가 한정돼 있어요. 게다가 학원 강사처럼 자기 수업만 딱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아이들 한 명 한 명 학습 지도까지 해야 하니까. 한 달에 600만 원 벌기엔 시간이 너무 없죠. 600만 원을 19000원으로 나누면 얼마죠? 300이 넘죠? 한 달 동안 300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학습지 교사가 관리하는 건 불가능해요. 분명 가라입회(회원 수를 문서상으로만 늘이고 회원 가입비는 자기 돈으로 내는 것)나 가라홀딩(탈퇴한 회원들을 문서상으로는 탈퇴하지 않은 것으로 하고 회원비는 자기 돈으로 내는 것)으로 실적만 불린 거예요. 아니면 스타 강사를 키우기 위해 사측에서 돈을 대 줬거나. 아이들 2백 명 3백 명 모아놓고 같은 자리에서 수업하는 학원 강사는 한 달에 오륙백만 원씩 버는 게 가능하지만 학습지 교사는 업무 구조상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요. ”

“지금도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다른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음......다들 어렵고 힘든데...... 밝고 힘차게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너무 이야기를 뜬금없이 마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어 얼른 다른 물음을 던졌다.

“변재용 회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좀...... 사람답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되게 약삭빠르고 치사한 게 많은데, 보통은 탄압을 하려면 구사대나 용역 깡패들을 동원해서 하잖아요. 근데 한솔 얘네는 구청에 전화해서 현수막이랑 차량 주차 문제 가지고 막 떠들고, 경찰들이랑 사바사바하고, 자기네들이 정정당당하게 주장하는 게 없어요. 차라리 내가 학습지 교사로서 자질이 안 좋다고 얘기를 하든가. 6개월 동안 일하고 나니까 하는 말이 그거였잖아요. 자질은 좋은데 다른 데서 일해라. 그게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 탄압을 해도 깡패들을 내려 보내든지. 새벽 4시에 야음을 틈타, 누구를 동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수막이랑 선전물들 다 걷어 가고...... 사람이 참 쪼잔해요. (웃음)”

“변재용 회장은 회사에 자주 나오나요?”

“글쎄요. 자주 보진 못하죠. 가끔 본사에 들르는 것 같긴 하던데. 저도 딱 두 번 봤어요. 한 번은 회사 앞에서 차에서 내리길래 “변재용 회장님, 왜 복직 안 시켜 주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당신은 학습지 교사로서 성실하지 못해”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다시 “학습지 교사의 성실함을 판단하는 기준은 뭔가요?”라고 물었더니 아무 말 없이 회사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 뒤에 다시 한 번 마주쳤을 때에는 이쪽에서 뭐라고 소리쳐도 그냥 외면해 버리고 들어가더군요.”


김진찬 선생님과 나는 해가 저물어 갈 때까지 차 안에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나는 볼펜질을 멈추고 수첩을 덮어 버리고는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대화를 하듯 편하게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했다. 몇 년 있으면 나이 서른인데 아직도 안정된 직업 없이 이러고 있으니 집에서 배겨 나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하자 김진찬 선생님은 웃으며 자기도 집에서 내 놓은 자식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투쟁해 왔는데 가정을 꾸려가기 힘들지 않았는지 물어 보니 자기 부인도 지금 거리에서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고 했다. 바로 오수영 재능지부 사무장이 김진찬 선생님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다.

기사를 내려면 사진이 필요하다고 하고는 김진찬 선생님에게 자세를 좀 잡아달라고 했다. 차 안이어서 그런지 어둡게 나왔지만 김진찬 선생님과 헤어지고 나서도 사진을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사진을 보며 새삼스러운 물음을 던져 보았다. 학습지 교사는 왜 노동자가 아닐까? 노동자가 아니면 대체 뭘까? 잘못 만든 법 하나가, 잘못 내린 판결 하나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차 안에서 찍은 김진찬 선생님

특수고용직? 학습지 교사가 15만 명, 보험설계사가 30만 명,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이 2만 명, 퀵서비스 노동자가 3만 명, 레미콘 기사가 2만 명...... 그 외 방송 작가, 애니메이션 작가, 대리운전 기사, 간병인, 철도유통매점, 텔레마케터 등등 특수고용직은 무척이나 다양하고,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숫자는 이미 200만 명을 넘었다. 이들은 전부 다 법적으로 자영업자들이다. 노동 3권은 당연히 없다. 보험설계사와 경기보조원, 학습지 교사, 레미콘 기사에게는 지난 7월부터 산재보험 가입이 허용되었지만 보험료를 고용주와 절반씩 나누어 내는 탓에 보험 가입률은 턱없이 적다.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고용주가 산재보험이 아닌 일반 보험 가입을 강요하기도 한다. 언제 교통사고를 당할지 모르는 퀵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은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김진찬 선생님의 싸움은 김진찬 선생님만의 싸움이 아니며 학습지 교사들만의 싸움도 아니다. 세상엔 한솔교육 같은 악덕 기업이 널렸고 악덕 기업이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방식도 많고 많지만,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일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특수고용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노동으로 먹고사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기도 하다. 이 나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희한한 나라다. 김진찬 선생님이 어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김진찬 선생님이 어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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